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역사인물 가운데 경기도와 관련된 분은 누가 있을까?”
번뜩 떠오르는 인물은 수원에 화성을 건설한 정조대왕과 파주에서 후학을 양성한 율곡이이. 그리고 여주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명성황후 정도였습니다.
이밖에도 경기도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의 수는 굉장히 많을 텐데요. 과연 어느 지역에 누가 있고 그 지역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오늘의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네요.
경기도는 위치적으로 한반도의 중심부인 만큼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지역입니다. 때문에 한 시대를 주름 잡던 다양한 인물이 배출됐는데요. 역사책에 거론될 정도의 인물 수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대충 인터넷 검색으로 나온 인물만 100명을 가뿐히 넘기더군요.
그렇다고 그 인물들을 모두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겠죠. 이 가운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상당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구한 곳. 경기문화재단입니다.
우선 경기도를 대표할 만한 유명 역사인물 가운데 몇 명을 소개할 지가 정해져야겠는데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10인 정도가 적당해 보였습니다.
'경기도 대표 역사인물 10인'
뭔가 그럴싸해 보이죠? 이제 경기문화재단에 가서 대표인물 10명만 추천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경기문화재단에는 ‘경기문화재연구원’이란 곳이 있었고 그 안엔 경기도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경기학연구실이란 부서가 있더군요. 일이 쉽게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지훈 연구원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아... 취지는 알겠는데요. 저희가 경기도 역사인물 10명을 선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한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쿵!
아뿔싸. 생각이 짧았습니다. 단순히 인물을 추천받고 소개하기엔 걸림돌이 많았던 겁니다. 민감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이대로 취재를 접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다 소개해? 그것도 아니면 각 시․군별 시리즈로 다뤄볼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 가운데, 경기학연구실 이지훈 연구원의 한 마디에 뇌세포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지난 6월 경기도 자치행정과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 역사인물 33인’을 선정한 바 있다는 건데요. 당시에도 쉽진 않았지만, 대학교수 및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위원들의 심사숙고 끝에 선정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선정위원회가 결정한 33명의 경기도 역사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정결과를 보면 고려시대 6명, 조선시대(1392~1876) 15명, 근현대(1876~2012) 12명으로 나타났는데요. 인물이 활동한 분야나 지역이 고루 분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시대순으로 나열한 점 참고하세요.
이제 여기서 10명으로 추리는 작업만 남았습니다.
어떤 단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순 없는 상황이니 남은 건 하나. 시민 여러분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방법은 설문조사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됐는데요. 공신력 있는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일을 거기까지 크게 벌리기엔 부담이 컸습니다.
다음 기회에 경기도 관련 부서나 기관에서 제대로 해줄 것을 기대하며, 저흰 가벼운 마음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시스템적인 문제로 SNS를 통한 온라인 리서치는 어렵게 되는 바람에 설문조사지를 직접 만들어 1대1 면접조사방식으로 진행해 봤는데요. 대상은 무작위로 선발된 경기도민으로 10대에서 50대까지 각 연령별 10명씩 총 50명에게 받았습니다.
표본오차 및 신뢰수준 그런 건 없다는 점 명심하시고, 여러분도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랄게요.
총 2장으로 제작된 설문조사지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역사인물 10인을 뽑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33명의 인물을 규칙 없이 배치해 시민들의 선택을 유도했습니다. 최대 10명까지 다중투표가 가능토록 했고요.
설문조사지를 본 많은 분들은 ‘역사인물 투표’라는 것에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는데요. 대체적으로 성심껏 조사에 응해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50명의 시민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이 분이 정말 경기도 인물이었어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오히려 고마워하는 시민도 있더군요.
그럼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투표결과를 공개해 볼까요. 여러분이 생각한 결과와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영광(?)의 1위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차지했습니다. 전 세대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2위, 3위와 격차를 벌렸는데요. 특히 10대에게 ‘유일한 10표’의 몰표를 받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혹시 예상하셨나요? 저는 정조대왕의 압도적 1위를 예측했었는데 말이죠.
2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전 연령대에게 높은 득표를 받았습니다. 정조대왕은 2위와 단 1표 차이로 3위를 기록했는데요. 20대에서 50대까지는 1위 정약용 선생보다 높은 득표를 얻었지만 10대에게 받은 4표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영 장군과 명성황후는 공동4위에 함께 올랐습니다. 최영 장군은 10대에게, 명성황후는 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저조한 4표를 받은 것이 눈에 띄네요.
이밖에 6위부터 10위까지는 이이, 허균, 황희, 권율, 김정희 순으로 'TOP 10'에 오른 걸 볼 수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당초 취지가 그랬듯 인지도에 가까운 순위가 나왔는데요. 세대별로 득표수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이채롭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나혜석 작가의 경우도 극과 극을 보였습니다. 30대에겐 높은 득표를 받은 반면, 10대로부터 단 한 표도 얻지 못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건데요. 학생들 대상으로 나혜석 거리 견학을 추진해 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경기도 대표 역사인물 TOP 10'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과정을 쭉 소개해 봤는데요. 이번 시도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살짝 염려되는군요. 하지만 역사의 중요성과 재인식 차원에서 다뤄본 것이니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한편,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는 앞서 선정한 경기도 역사인물 33인을 대상으로 각 인물별 평전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내년 초부터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기회에 경기도를 빛낸 그들의 삶과 역사적 위상이 재조명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선정한 경기도 역사인물 10인에 대한 간략 프로필을 소개합니다.
※ 출처: 두산백과
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