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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이사야-17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장 1-5절)
성경 말씀은 이사야서 40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이사야 40장]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서 40장 이후 66장까지는, 39장까지 이어져 오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주제로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기간이 다 끝나고 돌아와야 될 시점, 바벨론 포로 사역 기간이 다 끝나고 막 돌아와야 되는 그런 시점에 주어졌던 말씀인데, 여러분 바벨론에서 왜 돌아와야 합니까?
거기가 더 살기 좋을 텐데, 거기는 그야말로 바벨론 성이 잘 둘러쳐져 있고 그 성 안에는 도시구역이 아주 완벽하게 되어있었을 뿐 아니라, 바벨론을 나라가 초강대국이다 보니까 각국에서 들여오는 세금과 조공과 이런 것만 가지고도 바벨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문명된 생활, 그 당시 최고로 발전된 생활 수준이 유지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70년 동안 황무지가 있는 그런 곳으로 왜 돌아와야 하느냐? 생각해 보지도 않았죠?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살기 좋아도 거기에서는 종의 신분입니다. 종..
물론 몇몇 사람은 아주 고위직에 기용된 것도 있지만, 어떻든 그들은 바벨론 시민권이 있는게 아니고 노예신분으로 잡혀가 있는데,
사람이 추구하는 여러가지 가치가 있는데 그 중에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자유라는 겁니다.
자유와 자주와 주권이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인격으로 창조하실 때 인격의 기초가 자유입니다. 자유..
그래서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정치원리가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의 원리 위에 서 있어요.
그래서 개인의 양심이나 교회가 자주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게 했다는 겁니다.
양심을 주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아무도 타인의 양심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타락한 양심이라 할지라도 그 양심이 신앙 양심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때, 내 생각 내 판단기준과 맞지 않다할지라도 함부로 남을 정죄하거나 남을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결정권, 인격의 기초가 자유 의지로서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거죠.
아주 중요한 권리예요.
그래서 이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는 자유가 없는 거예요. 사실은..
그 억압된 상황에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오면 살기 좋은 세상이 준비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70년 동안 묵어 황무지가 되어있는, 여우가 거기에서 놀고 있는 그런 곳에 돌아와야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바벨론은 이스라엘 자기 나라도 아니고 자유와 주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돌아와야 되는 건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옛날에는 애굽에서 한 400년 있다가 해방되어서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도 그 이후에 사사기 시대에 보면 360년 중에 거의 한 절반 이상을 주변 나라에 억압을 받으면서 사사시대에 타락하니까 그렇게 지배를 받다가, 거기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애굽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되고, 앗수르의 지배를 벗어나면 바벨론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렇게 항상 강대국에 의해서 자유가 유린되었어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도 우리나라와 아주 흡사한 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위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있고, 밑에는 애굽이 있는데, 그 틈새에서 항상 고통을 당했어요.
우리도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또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강했기 때문에 늘 일본의 압제를 당하고 있고, 또 거기다가 소련까지 우리 땅을 넘보고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서 우리 땅을 차지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미국은 자기 군대를 동양에 극동지역에 어디 주둔시킬 데 없는가 하고 호시탐탐하다가 결국은 한반도가 제일 적격이다 해 가지고 나라를 찢어놓고 절반은 자기들이 차지하고 절반은 소련군이 주둔하고..
소련은 물러가도 미국은 안 물러가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미군 철수하라 하면 난리가 나겠죠?
미군이 왜 우리 땅에 있어야 됩니까? 소련군은 우리 땅에서 없어졌는데..
사실은 이것도 오랜 후에 두고 보실 일이지만 아주 기분나쁜 일이예요.
미군들이 왜 우리 땅에 와 있습니까? 자기 땅이나 잘 지키지..
그래서 우리가 자유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참 자유가 주어진 것도 아니고, 바벨론에서 돌아온다고 해서 자유가 주어지느냐? 그것도 아니예요.
다니엘서 11장에 보면 바벨론에서 돌아온다 할지라도 상당기간 동안 강대국 틈바구니, 남쪽에 애굽이라는 용이 있고 북쪽에 앗수르라는 호랑이가 있는데, 이 용호상박을 하는 틈바구니에서 이 작은 이스라엘이 혹독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다니엘서 11장에서 이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용호상박이 끝난다고 해서 자유하냐?
그것도 아니고 그 뒤에 다시 로마가 또 진주해 올것까지 다니엘이 다 예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되면 자유하냐? 그것도 아니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른바 자유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우리 자유를 유린하고 억압하는 세력들이 파워가 한 12가지는 있는 것 같애요.
그래서 12가지 관문을 다 벗어나야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는데,
오늘 지금 일단 그 12단계의 장애를 잘 넘어서 완전 자유하기 까지는 한참 가야 되지만, 우선 일단 우선 바벨론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겁니다.
바벨론에 있어서는 어떤 자유도 누릴 수 없으니까 바벨론에서 나와야 되는데,
[이사야 40장]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것 오랜만에 듣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이후로 처음 듣는 말씀인지 몰라요.
그래서 바벨론의 복역이 다 끝났기 때문에,
..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정다운 말로)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여러분 ‘복역’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죄가 있어야 죄에 따르는 복역인데, 끝났답니다. 이제는..
..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죄악이 있었을 때 그 죄악에 대해서는 복역을 하든지 징벌을 받으면, 일단 죄는 사유받는 거죠.
..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그러니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렇게 혹독한 고난을 받게 되었느냐 하면 강대국들이 제멋대로 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스가랴서에 가서 보면 나는 조금만 노했는데 이 자식들이 너무 심하게 내 백성을 다뤘다.
그래서 그 댓가는 물어내야 돼요.
어떤 형벌을 하나님께서 허락한 만큼만 해야 되는데, 자기들 감정대로 제멋대로 했기 때문에 ‘안일한 열국들에 대해 내가 심히 진노한다’ 하는 그런 음성을 나중에 듣게 될 겁니다.
어떻든 지금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징벌할려고 한 것의 배나 받았다는 겁니다.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진노하심이 사라졌다는 거죠.
70년이 지나니까..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자 이제 바벨론이 신바벨로니아가 BC625년경에 느부갓네살 왕의 아버지 나보폴라살이라는 사람이 앗수르로부터 독립을 시도해가지고 독립을 쟁취하면서 신바빌로니아가 패권을 잡게 되는데, BC612년에 니느웨를 함락시키면서 이른바 신바벨로니아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는데,
그러고나서 6년 후에 니느웨가 무너진 후 6년 후에 BC606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와서 제1차 포로를 잡아가요. 여호아김왕 3년인데,
그 때,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이런 사람을 다 1차 포로 잡아간거죠.
BC625년부터 시작된 신바벨로니아가 BC539년에 무너지게 되니까, 불과 그 역사 길이 해봤자 86년 동안 유지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86년.
그 86년이라는 세월속에 유대인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잡아다가 특별 교육하는게 70년이 끼어있으니까, 바벨론 자체가 일어난것은 바벨론을 위한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그 뜻이 뭐냐하면 유대인들 잡아다가 교육시키는 것, 특별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 교육이 다 끝나니까 바벨론은 없애버립니다. 아예..
그런 이야기를 공부하게 될 텐데,
‘이 모든 것을 누가 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 전체를 이런 큰 역사의 흐름을 누가 끌어가고 있는지 너희가 아느냐’ 하는 얘기를 40장 이후에 줄곧 하고 있는데요,
잘 보시면 그런게 들릴 겁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그래서 그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사람은 70년 지나니까 50세 이상 넘어서 포로 잡혀간 사람은 다 시들어버리겠죠.
그리고 지금 한창 꽃핀다고 할지라도 얼마 지나면 시듭니다.
옛날 어른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그런 말이 있죠. 물론 백일홍(百日紅)은 백일까지 갑니다만, 그러니까 다 백일까지 가도 백일 지나면 다 시드는 거야.
꽃은 다 시든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있는 영광이라는 것은 일순간 반짝 피었다가 없어지는 그런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두고 봐라. 영원히 서게 된다..
여러분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니까 영원히 남지 않을 말은 안해야 되겠어.
영원한 가치가 있고 영원히 남을 말을 해야지, 입이 자기것이라고 함부로 이말 저말 할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 말을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원히 남을 말은 무슨 말이겠어요?
사람 말은 영원히 남는게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말씀만 영원히 남을 텐데, 그 말씀을, 우리가 무엇을 말을 내는가 중요한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잘 드러나는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만 영원할 테니까..
괜히 딴소리 해봤자 시대 지나면 다 날아가버립니다.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아름다운 소식’이 복음이라는 뜻이죠. 기쁜 소식..
..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하나님이라는 분이 사람의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마음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 하시는 일이 보인다는 겁니다.
역사 안에서도 보이고, 현실 안에서도 보이고, 미래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다 보이면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돼요.
그것을 보지 못하면 그야말로 소경과 다름 없어요.
우리가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하시는 일이 보이고, 오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뭘 하고 계시는가 보이고, 미래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보여야 돼요.
지도자는 더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이 말을 할려고 하는 얘기거든요. 지금..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돌아오는 것은 좋은데, 돌아올 때 확실히 배운 것 한 가지는 가져와야 돼요.
바벨론에서 그들이 70년 동안 댓가를 지불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 하나는 확실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신과 어떤 우상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 모든 우상은 다 한자리에 끌어모아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 교육 할려고 나중에 우리가 다니엘서에서 보시게 되겠는데, 사실은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 여기서 공부할게 아니고, 정직하게 말하면 다니엘서 에스겔서 읽은 후에 이 부분을 읽어야 되거든요.
히브리어 원문의 시제를 다 비교해보면 40장부터 66장까지는, 앞에 1장부터 39장까지의 그 이사야가 쓰던 시제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루살렘이 이미 불에 타버린 걸로 기록하고 있어요.
성소가 이미 완전히 유린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뒷부분을 보통 우리가 ‘제2이사야’ 이런 말을 하는데, 이사야서 구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현대 자유주의신학자들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12세기에 벌써 ‘아브라함 이반 에스라’라는 학자가 이사야서는 한 사람이 쓴것 같지가 않다. 해서 그때 이의를 제기했는데 워낙 그때는 무식하니까 히브리어 원문 문법을 명확히 대조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되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그래서 용납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학자들이 본문을 많이 비평할 수 있는 실력이 늘어서 볼 때, 40장부터 66장까지는 앞에 쓰던 이사야가 쓴 것 같지가 않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중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서가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은 한테 붙여놨습니다. 한 책이예요.
그런데 우리 기독교가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기독교는 둘로 나누는데, 왜냐하면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내가’ 라는 말을 쓸 때, 다시 말해 1인칭 작가 시점으로 글을 쓸 때, ‘내가’ 라는 사람이 한 책에 둘이 나오면 안 되죠.
그런데 에스라서 앞부분에는 10장까지는 에스라가 ‘내가 내가’ 그러다가, 이른바 10장 그 자리 그 뒤에 보면 오늘 우리가 느헤미야서로 분류된 느헤미야서를 보면 ‘내가’ 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한 책에서 작가가 둘이서 ‘내가’ 라고 하면 안되거든요.
그 때문에 기독교 학자들이 이것은 한 책이 아니고 두 책이다.
그래서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로 두 책으로 나눈겁니다. 기독교는 나눈 겁니다.
유대교는 아직도 한테 붙여 놨어요. 멍청해서 모르니까..
이사야서는 진작 이것을 나누고 싶은데, 이름을 누가 썼는지 모르니까 나누기도 그렇고 어정쩡하게 있는 거예요.
자유주의학자 19세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고, 물론 제2이사야서라고 한 사람들은 자유주의신학자중에 버나드듐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고, 칼마티라는 사람은 이사야서가 한두 사람의 글 같지고 않고 여러 사람이 쓴 것을 문집 형식으로 한테 붙인것 같다. 그렇게까지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볼 생각은 없고, 최소한 40장부터 66장까지는 앞에 쓴 이사야가 쓸 수 없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읽어가면서 보면 충분히 증명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읽으면 안 되고, 다니엘서 에스겔서 읽은 다음에 읽으면 그냥 훤히 읽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안 배웠고 그리고 에스겔서를 아직 안 읽었기 때문에 조금 설명을 하는데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비싼 댓가를 지불했는지 몰라요.
두라 평지에 세웠던 높이가 60규빗이니까 30m예요. 30m이면 10층 아파트만한 금덩어리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고 다 절하라고 했는데, 다 아시는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절 하지 않았던것 아닙니까?
안한 것 때문에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는데, 던져졌어도 타지도 않고 세 사람 던졌는데 네 사람이 다니고 있으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나오라고 해가지고 나중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 하면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증명되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그것을 증명하는 세팅장이 하나님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거야.
물론 하나님 돈 든게 아니겠죠. 바벨론의 돈이죠.
그러니까 바벨론은 아무 제 할일이 없고 이스라엘 백성을 교육하는 교육장만 만들면 돼요.
사실..
그런데 자기들은 뭐하는지 모르는 거지.
느브갓네살이 한번 착각을 해가지고 옥상에 올라가서 큰 성을 내려다보고 ‘이 큰 성은 내가 내 능력으로 이 나라와 이 성을 만들지 않았느냐?’ 하는 순간에 웃기지마 하면서 하나님께서 짐승의 되어가지고 들청초 가운데 이슬을 마시면서 7년을 지내게 하는..
그런 계시가 뭐냐 하면 인간 나라 전체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겁니다.
그 때, 18절에,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부어 만든것은 고급 우상입니다. 주물로 만든거예요. 이것은 아주 고급이고..
..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그런 판검사 되겠다고 노력해가지고 겨우 판검사 되어가지고 돈 벌어서 국회의원 나갔다가 뇌물 받고 감옥가면 끝나는 것이고..
철들자 망령들고 인생이 그런 겁니다. 다 해봤자.. 아무 것도 아니야.
인간이란게 내노라고 큰소리치지만 하나님께서 볼 때 메뚜기떼처럼 보인다는 거야.
하찮은 것이 인간인데, 그것도 모르고 인간을 우러러 본다든지 아니면 우상에게 눌려있다든지..
이렇게 우리의 자유를 가리우는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간단하게 살펴 보면,
첫째 악한 정치인들, 악독한 정치인들 밑에서, 차우세스쿠라든지 마르크스라든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현재 쿠바에 그런 정치세력도 마찬가지고 아직도 악한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킬링필드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이라든지, 하여튼 정치적으로 악한 정치인들에게 자유가 유린당한 일은 말이 있고요,
심지어 악한 종교인들에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눌려서 신음하고 있는 거예요. 자유가 없이..
종교에 갇힌 것 참 불쌍한 일이예요. 잘못된 종교에 갇히면..
그 다음에 사이비 이단 교주에게..
우리나라에는 이단 사이비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정확한 집계가 안 나와요.
엄청난 거예요. 영원히 자유를 잃어버린 거죠.
그 다음에 사이비 종교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이데올로기.
아직도 이북에는 주체사상인가 뭔가 주체사상은 무슨 주체사상.. 아무 것도 아니죠.
거기에 눌려가지고 저렇게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에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었고요.
더 중요한 것은 죄에 메여 있어요. 죄에..
더 나아가서 귀신들에게 억압당하고 있어요.
사람의 자유가 이렇게 12겹으로 눌리고 유린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은 자기 습관에서도 못 벗어나요.
어떤 사람은 저녁에 꼭 라면 한개 끓여먹어야 자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 아무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은 생쌀을 씹어먹어야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못 끊어요.
그러니까 중독이 무슨 마약이 되어야 중독되는게 아니라, 하찮은 것에서도 사람이 눌려.
그만큼 인간이 약한 거예요.
담배 그것 하나 못 끊어가지고.. 아이고..
여기도 혹시 담배피는 사람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담배피우면 지옥간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담배 피워도 지옥 안 가요.
담배라는게 몸에 해롭다는 것은 불신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렇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불신자도 다 아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담배 그것 하나 못 끊어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려면 내가 유익하던 것도 때로는 포기해야 되는데, 자기 몸에 해로운 것도 못 끊는 그런 박약한 의지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요? 도대체가..
어떤 사람은 담배 열두번도 더 끊는다고 해요.
담배 피는 사람 끊는 방법 간단합니다. 안 피우면 끊어집니다. 그냥..
저도 담배를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피웠으니까..
그런데 안 피니까 끊어집디다.
못 끊는다는 말은 말이 안돼요. 끊기 싫어서 그렇지.. 끊을 수 있어요.
술은 제가 3살 때부터 먹었는데 그것도 다 끊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냐? 저도 별로 그렇지 못해요.
그런데 마음 먹으면 끊을 수 있어요.
하찮은 습관 못 벗어나는데, 참 그것 괴로운 일이죠.
그 다음에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질병에 한번 걸려들면 잘 못 벗어나요.
자유가 없죠.
그 다음에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상하게 가난한 사람은 꼭 망할 짓만 골라서 하면서 계속 가난을 못 벗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을려면 가난에서도 구원 받아요. 진짜.
가난은 숙명이 아닙니다.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한번 보세요. 조선족이라든지 무슨 제3세계 사람들이 한국땅에 와서 쫓아내기만 안 하면 돈 벌어서 자기 나라에서 잘 살겠다는 하는데..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우리 말 잘하면서 못사는 것도 기적 아닙니까? 정말..
뭘 해도 어떤 놈 코를 쥐어박아도 가난하다는게 말이 안돼. 뭘 하든지 해야지.
그래서 가난의 굴레 이것도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환경도, 너무 파괴적인 환경에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것도 벗어나야 돼요.
그 다음에 악한 조직에 걸려들면 거기에도 자유가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하도 조직이 많아 가지고..
그런 데에서 다 벗어나야 돼요.
그래서 우리 자유가 단지 그저 애굽에서 나온다, 바벨론에서 나온다 해서 완전히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말씀대로 같으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참 진리를, 예수님 안에 있는 참 진리를 알 때까지는 자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인간의 인격을 유린하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해야 되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기는 어렵고 그래도 최소한 진리를 알아야 돼요.
진리를 알면 수많은 얽어매는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어요.
진리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매이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더 보겠습니다. 25절,
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이런 얘기죠.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하겠다는 거냐?
..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다시 계시의 맨 기초부터 얘기하는 거죠.
바벨론에서 나올 때,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다른 나라 모든 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홀로 아무와도 누가 도와준 분도 없고 의논한 분도 없고 누가 지도하신 분도 없이 홀로 창조했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 신앙의 기초는 항상 제가 늘 얘기하는 대로, 창세기부터 시작해야 돼요.
로마서나 십자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은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는’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그게 안 되는 것에서 무슨 성령의 은사가 어떻고 무슨 십자가의 보혈 다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해요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믿는 거기가 믿음의 기초예요.
..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모든 별들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서 노예생활을 하니까, 노예근성으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도 우리를 안 돌아보시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낙심이 되는 거예요.
낙심하는 척 하면서도 바벨론에 눌러앉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내가 어떤 사람들 일깨워서 그런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게 아니겠는가? 신학을 해볼 마음이 없는가 하고 권하면 대개 부잣집 아들이 자기가 약하다고 해요
자기가 뭘 할 수 있겠나? 못한다고 해요.
가난한 사람은 어차피 바닥이니까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설 수 있는데, 배부른 사람은 잘 못 나서는 거야.
편안하면 잘 안돼.
편안한 사람은 도전을 안할려고 해요
어차피 아무 것도 없어야 이판사판으로 도전해 보는 건데,
바벨론에서 너무 편하게 살다보니까 점점.. 사람이 이상하게 사람이 편할수록 약해져요.
편할수록 강해지는게 아니고 편할수록 약해져요.
우리 어릴 때는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에 체력장 할 때 턱걸이를 이렇게 잡고 10개를 해야 돼요.
10개 못하면 못한것 만큼 두들겨 맞아요.
그러면 애들이 4~5km 걸어다녀서 강했는데,
요즈음 애들은 잘 살수록 약해져가지고 턱걸이는 턱도 없고 매달리기만 10초.. 이렇게..
점점 약해져요. 의지도 약해지고..
제가 우리 지리산 쪽에 옛날 소풍다니던 길을 가보니까 산길 100리가 넘어요.
하루 1일 코스가 산길 100리가 넘는 거예요.
선생님과 다 같이 가요.
선생님도 옛날 선생님이 강하고 학생들도 옛날 학생이 강한 거예요.
점점 잘 살고 편안해지면 점점 우리가 약해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것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얘기죠.
[이사야 41장]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서로 의논해보자. 이야기해보자. 맑은 정신으로 이성을 가지고 대화해보자.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이 말은 고레스 왕을 불러서 바벨론 성을 무너뜨릴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예요.
누가 동방에서 고레스라는 큰 왕을 불러와가지고 바벨론 성을 함락시킬 사람, 누가 자기 발 앞에 서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것 아니냐? 그런 말이죠.
..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그래놓고 자기가 일으켜 세워서 흔들리지 않게 하고 거기에 절을 한다는 거예요.
땜이 잘된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나무를 빚어서 어떤 쪼가리는 불 때고 어떤 쪼가리는 우상 만들어놓고, 한쪽에는 불 타고 한쪽에는 절 받고 앉아있다는 거예요.
이사야가 그런 말 해요.
그러나, 8절,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여기 이 부분도 이상한 부흥강사나 아니면 요절주의가 이상하게 하는 구절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 때, 바벨론에서 완전히 끝장이 나고 거덜나고 희망이 없다고 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 왜 희망이 없어? 이것들아!
하나님이 도와줄려고 하는데 희망이 왜 없어? 하면서 얼마든지 내가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희를 도와줄 테니까 염려하지 마라.
그런 얘긴데,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먼저 사실 파악을 먼저 하고,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낙심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나라가 일어섰던것 아니냐?
우리도 지금 형제도 자매도 지금 이렇게 되어있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설 수 있다 이렇게 적용은 할 수 있지만, 오늘 어떤 사람이 잘못된 선교회가 있는데 이른바 레마선교회예요.
어느 날 성경을 딱 폈는데, 이사야 41장 10절,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구절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날 아침에 ‘레마가 나에게 떨어졌다.’ 그게 엉터리라는 거예요.
레마가 떨어지기는 뭐가 떨어져? 지가 거기 읽은 거지..
문득 편다고 편게 거기 읽은 것 뿐입니다.
그런 설교하는 사람이 지금 한국에 즐비한거야.
아주 위험한 발상이예요.
그러면 안 도와 줘봐 나중에.. 그런 말씀이 들어왔는데 안 도와 주고 기업이 망하고 회사가 망하고 끝장났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이 부도를 냈습니까? 레마가..
아주 위험한 발상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런 구절은 우리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고,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나라가 완전히 70년 동안 황무지가 되니까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고, 사실 예레미야가 그런 예언을 했지만 이게 이루어지겠나 그렇게까지 낙심천만하고 스스로 좌절하고 이럴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일어설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11절,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노하던 자들’은 바벨론 사람들이죠.
..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제가 부산에 어떤 여자 전도사님이 있는데 전화가 자주 와요.
음성도 늘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졌는데, 이 사람이 하루종일 성경을 그렇게 보는 거야.
어느 날 말씀이 내게 주어졌다는 거야. 주어졌으면 그 믿으면 되지 왜 나에게 전화했어?
계속 성경을 가지고 자기 보고 한 말이 아닌데, 전부 자기에게 한 말이라고 해가지고 시험들고 낙심하고..
그러니까 기본이 안 되어있으니까 바로 이 레마선교회같은 이런 스타일이 이명범씨와 옛날에 베뢰아 쪽에 있던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인데, 아주 애먹인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어떤 말씀이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은 66권 다 주어진거야.
그것을 잘 읽어보고 그 때와 같이 오늘도 하나님은 도울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내가 도움을 받을 자리에 있는지 생각을 해 봐야 돼요.
아무 것이나 자기 마음에 들면 전부 자기보고 한 말이고, 그런데 ‘이런 놈은 저주를 받으라’ 하니까 ‘주여 통과’ 하고 그것은 나에게 한 말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보는 습관이 있어요. 우리가..
아주 큰 문제입니다. 작은 문제가 아니예요. 기독교가 안고 있는 큰 문제예요.
그래서 성경을 객관적으로 사실 파악을 먼저 한 후에, 내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면밀히 생각을 해 봐야 돼요. 깊이..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지렁이의 특성이 뭡니까? 지렁이라는게 맨날 땅을 파는 거죠.
땅이나 뒤지고 그리고 밟혀 죽어요. 나중에는..
밟혀봐야 꿈틀밖에 못하죠. 아무 것도 못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못나고 지질이 못나고 땅에 쳐박히고 큰 나라에 짓밟히고 그런 하잘것 없는 그런 존재들인데,
그래도,
..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여러분 이런 것은 굉장한 얘기인데, 조그마한 이스라엘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이가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삼겠는지..
이것은 조금 있다가 일어날 일들을 두고 말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고레스 칙령 이후에 에스더서 넘어서 그 뒤로 이스라엘 나라가 아주 고레스 왕의 비호 아래에서 떵떵거리는 시대가 있거든요.
..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자산(赭山)’이라는 것은 벌거숭이 산에,
18 자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며 헤아리며 깨닫게 되는게 중요하죠.
21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우상을 조롱하는 거죠.
..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23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 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다.
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회삼물’이라는 것은 참 어려운 말인데, 히브리어로 ‘호메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흙이나 타르같은 찌꺼기 같은 그런 것을 말합니다.
..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
26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27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28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29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니라
그러니까 바벨론에서 확실하게 손 씻고 미련 버리고 완전히 관계를 끊고 나와야 될게 있는데 우상이야.
우상과 다른 모든 신들에게서 미련 버리고,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것 하나 확실히 배우고 오면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잘 믿은 것도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했어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후에 지금 이 시간까지 우상은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바른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상숭배만큼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포로가서 70년 동안에 배운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교훈이 있다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그리고 다른 나라 모든 신들은 아예 없던지, 있어봐야 귀신에 불과하다. 이런 것도 배운거예요. 그렇게 하면 자유하냐?
그렇게 해도 안돼.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리인데 진리의 일부분이지 진리의 다가 아니예요.
참 진리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려면 유대교처럼 구약성경만으로는 안되고, 반드시 신약성경까지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한 권도 모르면 안 돼요.
제가 볼 때는 다 알아야 돼요.
66권 중에 필요없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는 거예요.
다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 가족들이 지금 우리가 창세기부터 이사야서까지 왔는데, 아직 절반도 못 온것 같애요.
그래서 이쯤해서 우리가 성경을 절반쯤 왔는데 끝까지 쭈욱 연결해서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우리가 바르게 인식하고, 진리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참 자유하다는 거예요.
예수님 말씀대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고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리고 진리를 알고 진리를 안 후에 자유가 있다’는 거요.
참 진리를 알고 누리는 자유는 아무도 유린하지 못하는 거예요.
감옥에 집어넣어도 자유해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할려고 자기를 드렸으니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말라.’
여러분 잘못된 비진리를 따라서 거기에 매이면 구제할 길이 없어요.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참 불쌍한 사람이예요.
참 자유할 수 있도록..
갈라디아서의 총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케하사 섬기게 한다’는 겁니다.
일단 먼저 자유를 주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사랑으로 섬기게 한다는 겁니다.
조직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는게 아니고 사람이 하는 거예요. 사람이..
교회가 조직도 있고 행정도 있고 질서도 있지만,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으로 밀어붙이면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분명히 예수님으로 출발했는데 마리아로 마치게 생겼죠.
그래서 그 잘못된 조직에서 자유할려고 들고 일어난 사람이 루터 칼빈 쯔빙글리 허스 위클리프 카렐 이런 사람들이 자유를 줄려고 했는데, 우리 기독교인은 또 잘못된 신학에 빠진 거예요. 잘못된 신학에..
저는 신학을 하고는 신학이 많이 잘못되었구나 하고 빨리 신학으로부터 벗어날려고 자유할려고..
그래서 성경 말씀 그 진리에게만 매이고, 어떤 사상 어떤 신학이나 어떤 조직에나 그런것으로부터 자유해야 돼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그리고 그 진리에게만 매이고 우리 모두가 참 자유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가서 70년 교육이 다 끝나갈 때, 그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손에서 배나 받은 후에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정다이 예루살렘에 가서 말하라’고 하시는 그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애굽에서 나왔다든지 바벨론에서 나왔다고 해서 참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배워야만 참 자유를 누릴텐데, 거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세월이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역사와 성경을 잘 배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 계명을 잘 배우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진리를 배우게 하시고, 진리로 말미암는 참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