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외과 李健旭(이건욱·59) 교수를 따라 「生體(생체) 肝移植(간이식)」 수술 현장에 들어갔다. 살아 있는 사람의 肝(간)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다.
생체 肝이식 수술은 肝경변증, 급성 肝부전증, 肝기능이 나쁜 肝癌(간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치료법 중 하나다. 수술 특성상 두 개의 방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두 수술팀 사이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 수술은 李교수가 환자의 肝 절제를, 같은 科(과) 徐敬錫(서경석) 교수가 供與者(공여자)의 肝 절제를 맡았다.
외과 수술실 제1방(GS1). 진한 소독약 냄새와 요란한 기계음 때문에 귀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소리의 정체는 석션 팁(Suction tip)이라는 기구였다. 이 기구가 수술 부위에 고이는 혈액을 힘차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환자는 40代 여성이다. 환자의 얼굴이 천으로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마취에 들어간 지 두 시간이 지난 뒤라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배는 갈라져 있었다.
환자 옆으로 다가갔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넓게 벌려져 있다. 李健旭 교수가 『肝은 횡격막 아래에 있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보조의사 중 한 명이 『肝의 뒤에는 콩팥, 옆에는 胃(위), 밑으로는 샘창자가 있다』고 했다. 모두가 선홍빛 내장으로만 보였다.
마취과 의사가 궤적을 그리고 있는 스크린을 쳐다봤다. 환자의 맥박·혈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리모컨을 들고 침대를 좌우로 움직여 執刀(집도)에 적합한 위치를 잡았다.
『자, 시작하자』
李교수는 환자의 뱃속에 깊숙이 손을 넣었다. 大家의 손놀림은 주저함이 없었다. 스태프들의 숨소리와 기구를 주고받는 소리만이 들렸다.
눈빛만으로 李교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냈다. 세 명의 간호사가 李교수 좌측 에 바짝 붙어서 수술기구를 챙겨서 건넨다.
두 명의 레지던트는 李교수가 肝 절제하는 것을 도왔다. 肝 주위의 혈관을 정리하기 편하게 석션 팁을 갖다 댔다. 손놀림과 호흡이 정확하게 맞았다. 혈액은 고이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이 기구를 잡고 있는 보조의사는 레지던트 2년차 전공의라고 했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가위질 李교수가 오른손에 가위(메쳄바움·metzembaum)를 들었다. 肝 주위의 혈관과 조직들을 정리하는 가위다. 환자의 肝을 切除(절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간호사가 이렇게 설명했다.
『외과의사에게 메쳄바움은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젊은 의사들은 메쳄바움 쓰는 걸 기피해요. 李교수님은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하니까 메쳄바움을 잘 사용하죠. 뱃속을 훤히 알거든요. 잘 보세요. 메쳄바움을 쓰는 게 예술이에요』
李교수의 가위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40여 분쯤 지났을까? 李박사는 절제한 肝을 왼손에 들어 우측에 마련된 넓은 용기에 내려 놓았다. 肝경변증이 심한 肝은 정상적인 肝에 비해 색깔과 크기가 달랐다. 검붉은 肝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肝癌에 걸리면 肝의 일부를 절제하지만, 肝경변증이 심하면 肝의 기능이 파괴돼 肝이식 수술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간경화증, 급성 간염 환자에 담즙 정체성 肝질환 환자까지도 肝이식 대상이 되고 있다. 李교수의 얘기다.
『의학의 발전속도가 워낙 빨라요. 예전에는 肝경변증 같은 건 내과에서 치료했는데 지금은 肝이식 수술을 하고 있잖아요. 미국 외과 교과서 신판이 또 나왔어요. 이번 학기에 강의가 또 바뀌어야 해요. 외과에서 취급하던 질환이 내과나 방사선과로 옮겨지고 있어요. 수술할 병이 수술해서는 안 되는 병으로, 수술 안 해도 될 병이 수술할 병으로 바뀌고 있어요』
배가 남산같이 부풀어 오르는 급성 췌장염의 경우, 예전에는 수술만이 살길이었지만 요즘은 내과에서 치료한다. 수술 후 뱃속에 농염이 생겨도 再수술을 하지 않고 방사선과에서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뽑아 내고 있다.
肝이식 수술은 1963년 미국 덴버에서 스탈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됐다. 1983년 미국 국립보건원이 말기 肝질환에 대한 임상적 치료방법으로 공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 서울대병원에서 뇌사상태인 환자에게서 肝을 제공받아 이식 수술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본격화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州 서쪽에 있는 공업도시 피츠버그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철 생산지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癌수술로 유명한 의료도시가 됐다. 李교수는 『肝이식 수술은 CT(컴퓨터 단층 촬영)가 나온 1970년대 말부터 세계가 똑같이 시작했다』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홍콩·대만·일본 등은 肝질환 발병률이 높아서 肝수술이 서구와 미국보다 세분화돼 있다』고 했다.
李교수는 『국내 어느 병원에 가도 肝이식 수술을 마음놓고 받을 수 있다』면서 『전국 병원이 평준화되어서 종합병원이라면 믿고 맡겨도 된다』고 했다.
수술 성공률 91%
한국의 肝이식 수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리나라 肝이식 수술은 1년 후 수술 생존율이 82.6%, 수술 성공률이 91.1%다. 이는 미국의 1년 후 수술 생존율 76~ 80%, 수술 성공률 85%보다 앞서고 있다. 작년 한 해 국내에서 肝이식 수술이 500건 이뤄졌다.
李교수는 떼어낸 肝을 들여다보면서 스태프에게 『술을 얼마나 마셨어』라고 물었다. 이 여성 환자는 알코올성 肝경변증을 앓았다.
인턴 중 누군가가 『일주일에 소주를 두 세 병 마셨답니다』라고 대답했다. 李교수는 『마신 것도 아닌데…』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肝질환은 남성의 발병률이 여성보다 5배 높다.
李교수는 『肝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아주 심한 臟器(장기)』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술을 마셔도 肝이 멀쩡한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간염, 간경변증에 걸립니다. 肝의 자기 재생 능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예요. 이 여성 환자는 일주일에 소주 두세 병을 마시고 간경변이 왔어요. 애초부터 부실한 肝을 갖고 태어났다는 얘기죠』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걸리는 간염은 B형 간염이다. 국내에서 肝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90% 이상이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을 앓던 환자였다. 알코올性 간경변증은 4~5%에 불과하다.
『간암의 90% 이상이 나쁜 肝에서 생겨요. B형·C형 바이러스와 싸우다가 간경변증이 생기고, 그러다 간암까지 가는 거죠』
한국인은 왜 B형 바이러스 보균자가 유독 많을까? 바이러스는 단백질의 일종이다. 반드시 생물의 세포 속에서만 증식한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는 肝세포에만 증식하는 바이러스다.
『6·25 때 간염에 걸린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많았던 거죠. 어머니한테서 수직감염된 거죠. 10만 명당 30명꼴이었다고 해요. B형 간염이 猖獗(창궐)해서 癌까지 20년이 걸려요. 어릴 때는 모르다가 성인이 돼서 술을 마시다가 40~50代가 되면 알게 되죠. 그때는 이미 肝이 20~30년간 바이러스와 싸움을 벌인 상태예요』
―肝질환의 조기발견은 힘든가요.
『모든 검사가 100%라는 것이 없어요. 「알파 태아 단백」 검사를 해요. 간암에서는 80~90% 올라가는데, 보통 10~20% 올라가면 잘 몰라요. 복부 초음파 검사를 같이 해야 정확해요. 肝질환이 유전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없어요. 하지만 B형 간염 환자가 가족 중에 있거나 간암으로 죽은 가족이 있으면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해서 치료를 해야 해요』
李교수가 수술대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두 팔을 들어올리자 간호사가 녹색 가운 벗는 걸 도왔다.
『환자의 신상은 몰라도 뱃속은 훤해요』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李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수술장을 나온 李교수는 베라틴 용액이 묻어 있는 황갈색 스펀지를 이용해 손과 팔을 구석구석 닦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수술도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거예요. 肝수술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라 환자마다 다르거든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른 거죠. 해부학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나요. 환자한테 맞게 수술을 해야 해요』
李교수는 수술장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손놀림이 빨라졌다.
李교수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외래방에 가야 해요』라고 했다.
매주 금요일은 李교수가 외래환자를 보는 날이다. 오늘은 외래진료 때문에 肝이식 수술에서 환자의 肝만 절제한 거라고 했다. 나머지 수술은 徐敬錫 교수(외과 부교수)가 집도했다.
―외래진료를 보는 날에도 수술을 하시나 봐요.
『그럼요. 하루가 급한 환자니까요. 외래를 보다가도 수술해야 하면 와야지요. 오늘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건 보통이에요. 오후에도 수술이 또 있어요. 응급수술까지 하는 날에는 하루에 수술을 세 번 이상 해요. 환자들은 수술을 너무 오래 기다린다고 불평하지만, 외과 달력은 환자가 기준이에요. 급한 순서대로 해요』
『방금 수술한 환자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묻자, 李교수는 『잘 알지 못해요』 했다. 순간 의아했다. 어떻게 자신에게 목숨을 맡긴 수술 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李교수의 설명이다.
『외과의사는 환자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평소에 소화가 안 됐다」, 「헛배가 불렀다」 하는 병에 얽힌 이야기는 내과의사가 알죠. 환자의 신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외과의사는 직접 배를 열어 봤기 때문에 환자의 뱃속 사정은 훤히 기억하죠』
서울대병원 소화기 내과에서 수술한 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李교수가 肝을 절개해 낸 이 환자는 서울에 사는 47세 여성이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알코올성 간경변증」을 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고 마흔이 넘어서 일주일에 두어 병의 소주를 마셨다고 한다.
肝이식만이 유일한 생명선이었는데 다행히 아들(18세)의 건강한 肝을 이식받게 됐다. 이 환자는 수술 후 당분간 중환자실 에서 튜브를 꽂고 인공호흡기로 호흡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肝이식 수술비용은 3000만~5000만원 선이다. 5년 전 1억원대였던 것에 비한다면 저렴해졌다. 사립병원의 경우 서울대병원의 두 배 정도 비용이 든다. 퇴원 후 간염 예방주사약과 일부 면역억제제를 맞아야 하는데 보험혜택을 감안하면 한 달에 드는 비용이 50만~100만원이다. 肝이식 환자는 수술 후 5년 동안 4000여만원 상당의 치료비가 더 드는 셈이다. 간암 절제술은 한 차례에 500만~1000만원, 肝색전술은 1회에 100만원이 든다.
이 환자는 2週 후면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된다. 기증자인 아들의 회복은 더 빠르다. 일주일이 지나면 식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한 달 후에는 가벼운 운동까지 가능하다. 남은 肝은 두 달이 지나면 원래의 크기대로 복원된다.
『사람이 천냥이면, 肝이 구백냥』 李교수는 『肝세포가 재생하는 건 신비스럽고 경이롭다』고 했다.
『肝은 85% 이상을 잘라내도 한두 달이 지나면 저절로 재생해서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쥐의 肝을 많이 잘라 봤는데 80~90%를 잘라도 이틀이면 완전히 DNA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체격에 따라 肝의 크기가 다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키가 작아도 간이 클 수 있고, 키가 커도 간이 작을 수 있죠. 대체로 자기 체중에 비례해서 肝의 크기가 결정돼요. 肝의 무게는 자기 체중의 50분의 1로 대략 1.5kg 정도입니다. 肝이 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고, 肝이 작고 혈관이 좁으면 세심하고 내성적입니다. 肝이 크고 건강하면 스트레스 解毒力이 좋죠』
―스트레스가 癌의 주요 원인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인가요.
『관계가 없진 않아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내시경을 해보면 위암이 생겼다는 사람도 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면역세포가 억제가 되고, 억제된 면역기능 때문에 癌이 생길 수 있죠』
우리 몸에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호르몬은 제 기능을 다하고 나면 肝에서 폐기처분된다. 肝질환에 걸리게 되면 호르몬 대사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여러 합병증이 발생한다.
肝이 하는 일은 5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야말로 신비의 臟器(장기)다.
『사람이 천냥이면 肝은 구백냥입니다. 肝에서 에너지를 생성하고 알부민을 생성하고 해독을 합니다. 肝이 탈나면 그런 것들이 안 되니까 복수가 차고, 사지가 붓고, 지혈이 안 됩니다』
肝은 각종 물질대사를 한다. 胃나 작은창자에서 가수분해된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지방산, 수용성 비타민, 무기염류 등이 간문맥을 거쳐 여과장치인 肝을 지나게 된다. 우리가 「肝에 기별도 안 간다」고 하는 말은 「음식물이 胃에서 흡수되어서 肝까지 와야 하는데, 먹은 것이 시원치 않으면 肝까지 올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의사나 약사들이 자기 가족에게는 약을 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약도 肝에 큰 부담이 되나 보죠.
『불필요한 약을 남용하지 말아야 해요.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된 보약은 肝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수은 성분,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한약들이 발견됩니다. 특히 버섯 종료는 독성이 심해서… 한약 먹고 肝이 급성 괴사에 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담배도 肝에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담배만 피우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같이 피우잖아요. 상승효과가 있죠. 癌발생 요인中, 담배가 2라면 술하고 담배를 같이 하면 4가 넘어요』
李교수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肝에서 분해되고 수용성으로 바뀌어 배설된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10% 정도는 땀과 호흡, 소변으로 빠져나가지만 90%는 肝세포에서 알코올 가수분해 효소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c형 간염 바이러스와 알코올성 간염에 의한 간암 발병률이 높다. 최근 알코올성 간염에 의한 간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방肝을 우습게 보지 마라 李교수는 『지방肝을 우습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 술을 끊는 게 길』이라고 했다.
『肝에는 원래 약간의 지방이 있습니다. 매일 과음을 하게 되면 肝에 중성지방이 차는데 이를 지방肝이라고 합니다. 알코올 과음者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는 肝의 변화가 지방肝입니다. 肝은 술이 들어오면 열일을 제쳐놓고 알코올을 처리합니다. 우리 뱃속에 지방조직이 있는데, 과음을 하게 되면 지방이 알코올에 의해 肝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지난해 종합검진에서 멀쩡했던 사람이 올해 검사에서 癌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포 하나가 2~4개월 자라서 2개가 돼요. 장고한 세월이 걸려서 최소 크리니컬 사이즈(Clinical Size)가 되는 거죠. 1억 개가 돼야 초음파나 CT에서 발견이 되거든요. 최소한도로 1년 6개월이 걸려요. 아무리 빨리 발견해도 벌써 1년 6개월 전에 시작했다는 거죠. 여기서 자칫 잘못해 주춤하면 2cm, 4cm로 커져요. 건너뛰면 금세 커지고 번지죠』
李교수는 『간암이 1cm에서 3cm가 되는 데 4개월이 걸립니다. 아무리 세밀히 관찰해도 1cm 이하는 찾기 힘들지만 요즘은 1cm만 넘으면 찾을 수 있어요. 6개월에 한 번씩 검사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肝癌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하는 경우가 있겠어요.
『최근 간암 말기 환자 중에 나이가 일흔이 넘은 분이 있었어요. 통증은 고사하고 술을 잘 드셨고 소화력이 좋았는데 「며칠째 헛배가 부르다」면서 복부 초음파를 해 봤대요. 간암 말기였어요. 암 덩어리가 좌우엽에 넓게 퍼져 있었는데, 한쪽은 완전히 절개해 버렸죠』
서울大병원의 수술 후 5년 이상 생존율 59%
―항간에는 「肝은 수술하면 더 악화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간암은 나쁜 肝에서 생기니까 절제하다 보면 환자는 肝부전으로 사망할 확률이 있어요. 환자가 이 사실을 들으면 겁날 것 아니에요? 하지만 그동안 외과가 많이 발전했어요. 예전에는 간암이 생기면 많이 잘랐어요. 하지만 이젠 해부학적으로 肝의 구조를 잘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왼쪽이다」, 「오른쪽이다」만 알았지만 지금은 肝이 8개로 구분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제는 최소화해서 자를 수 있게 됐어요. 8분의 1까지 정밀하게 자를 수 있어요. 수술 후 사망률이 10%에 가깝다가, 이제는 1% 이하로 떨어졌어요』
간암 수술을 하다 보면 내과에서 분석한 상태와 다를 때가 많다고 한다. 막상 배를 열어 보니 암 덩어리가 너무 넓은 부위에 퍼져 있거나, 간경변까지 심해서 얼마나 잘라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다.
간암 치료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간암 덩어리로 향하는 혈관(동맥)에 항암제를 투여하는 「肝동맥 색전술」을 실시한다.
간암의 크기가 작고 혹의 수가 3개 이하일 경우에는 간암이 있는 부위에 알코올을 주사해 간암 세포를 죽이는 「경피적 에탄올 주입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간암 수술 수준은 어느 위치에 와 있을까? 李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1978년부터 현재까지 2000건의 간암 수술을 실시해, 수술 후 「5년 이상 생존율」을 1978년에서 1986년까지는 23.9%, 1987년에서 1990년까지는 41.3%, 1991년에서 1997년까지는 59.0%로 향상시켰다. 이는 세계 유수 병원들의 40~50%에 비해 우수한 수준이다.
―癌환자에게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다고 얘기해 줍니까.
『절대 안 해요. 사람은 病으로 죽는 게 아니라 命으로 가는 것 같아요. 「몇 개월 남았다느니」 하는 말은 사람을 지레 죽게 만드는 거예요. 암환자에게 「이렇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해야 해요. 희망이 없으면 죽게 되거든요. 환자가 자기 命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 줘야 해요』
―정신력으로 육체의 병을 뛰어넘는 경우도 보시겠어요.
『정신이 육체에 의해 지배당하는 겁니다.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요. 간혹 정신력에 놀랄 때가 더러 있었죠. 예전에 盧泰愚(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어요. 토요일인데 청와대에 불려갔죠. 「영부인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유방 낭종이었어요. 제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지 그날 밤에 대통령 부부가 붙들고 울었대요. 病 앞에서는 대통령도 인간이더라고요. 수술하고 며칠 뒤에 육사 졸업식이 있었어요. 김옥숙 여사가 수술한 지 며칠 안 되었는데 남편을 따라가서 서 있겠다는 거예요. 결국 그렇게 했어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병원에 와서 쓰러져 버렸어요. 「군인 아내의 정신력이 저런 거구나」 알게 됐죠』
李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건 오후 8시가 넘어서였다. 연구실이 생각보다 협소했다. 비서실까지 포함해 8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李교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직접 째고 꿰매는 고집스런 남자 ―외과 레지던트 전공의들이 「외과교수는 전공의들에게 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데, 李교수님은 수술실에서 혼자 수술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했어요?(웃음) 제가 다 째고, 제가 닫는 게 습관이 돼서요』
―교수들은 대개 결정적인 부분만 집도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맡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렇게 하는 의사가 별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꿰맨 것하고, 맡긴 것하고는 합병증의 차이가 좀 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하는 게 편해요. 환자에게도 좋아요. 肝기능이 안 좋은 사람은 더더욱 그래요. 肝을 절제하고 나서 전공의들한테 「닫아라」 하고 나오면 문제가 생기곤 해요. 肝이 나쁘면 피가 많이 나오거든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사고시에 합격해야 의사가 된다.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을 거치고 시험을 거쳐야 전문의가 된다.
―레지던트들이 혼자 힘으로 수술을 해 봐야 하는 건 아닌가요. 교수님 밑에서 배우는 레지던트들은 언제 혼자서 수술을 할 수 있나요.
『전임의가 돼도 잘 못 해요. 완벽한 트레이닝을 받아서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교수 밑에서 보고 또 보고 눈으로 경험하고, 체험해야 해요. 시뮬레이션을 계속 하는 거죠. 한 번의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잖아요. 환자가 실험 대상이 될 수는 없거든요』
―그래도 교육병원인데.
『수술실을 전공의들에게 맡겨 놓고 교수가 옆에서 조수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죠.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아요. 환자가 너무 많고, 또 그렇게 되면 법적인 문제가 따라요. 수석 전공의(4년차)가 되면 교수를 보좌해서 수술을 하고, 환자를 보고 외래진료를 하죠. 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교수가 져요』
―수술에서 절개하는 것보다 꿰매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마음을 못 놓으시나 봐요.
『맞아요. 꿰매는 것도 공간을 두면 안 되거든요. 성격상 저는 남들 세 바늘 뜰 때 다섯 바늘을 뜨는 것 같아요. 외과의사는 털털해선 안 돼요. 세밀하고 정밀하지 않으면 안 돼요. 큰 수술이라는 것은 큰 것을 한꺼번에 자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밀한 수천 개의 작업이 모인 거예요』
무의식도 훈련된다 ―세밀하고 정밀하기로 따지자면, 외과에서 여성이 유리하겠어요.
『요즘은 외과에도 여성들이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다섯 명 뽑는 데 여의사가 들어오면 인력손실이 막대하다고 판단했었죠. 그런데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손재주가 좋고, 재봉기술이 좋아서 꿰매는 것이 아주 꼼꼼하더라고요. 참 잘해요. 우리 병원의 소아외과 수술의 90%를 여의사가 다 해요』
李교수는 단서를 하나 달았다.
『응급상황이 닥쳤을 때 여성이 대처하는 건 좀 부족해요. 수술하다 심장이 멈춘다거나 출혈이 심하면 당황하게 되잖아요. 무의식적으로 대처를 해야 해요. 의사로서 感이랄까요? 외과의사에겐 센스가 중요해요. 「어, 피가 나온다. 뭘 잡을까」 생각하면 늦었죠. 感이 탁월해야 해요』
李교수는 『感은 무의식으로 훈련돼야 한다. 무의식도 훈련된다』고 했다.
李교수는 미세 수술의 大家다. 뭔가를 연결하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이더스의 손」은 췌장을 자르고 3mm도 안 되는 췌관을 동서남북으로 떠다가 소장에 연결해 내는 혼자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만약 연결을 잘못해서 터지면 사망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망한 환자는 없다. 食道(식도)와 小腸(소장)을 연결하는 미세 수술은 자신만의 특이한 방법을 개발해 냈다.
그는 『외과의사는 수술을 잘해야 하지만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면서 『의대 교수는 연구를 전체 시간에서 3분의 1 이상 해야 하는데 워낙 수술환자가 많아서 힘들다』고 했다.
李교수는 肝수술뿐만 아니라 췌장, 위, 大腸(대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술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이더스의 손」이라지만 어떻게 가능할까?
李교수는 『64학번이기 때문에 그렇다』며 『1960년대에 의과대학을 다닌 외과의사들은 복부 수술을 대부분 경험한 세대』라고 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외과의사에겐 전공분야가 따로 없었다.
李교수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肝癌 수술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기껏 한다고 해도 열었다 닫는 예가 많았다』고 했다. 간암에 걸리거나 간경화에 걸리면 무조건 사망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李교수가 미국行 비행기를 탔던 이유이기도 하다.
외과의사에게 응급상황은 예측불허로 다가온다. 대장 수술을 하다가 膿(농)이 고여서 위장을 뚫었다든지, 肝수술 이후에 臟이 癒着(유착)돼 소장을 잘라야 한다든지, 수술하다가 동맥이나 정맥이 찢어져 여러 군데 출혈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李교수는 최근 執刀했던 수술 중에 대표적인 응급사례를 얘기했다. 한 정부 고관을 수술할 때였다.
『대장암이 肝으로 전이된 경우였어요. 내과진료에서 간암의 크기가 정확하게 체크되지 않은 거죠. 대장암 수술을 하려다 간암 수술까지 했어요. 이럴 때에는 대장을 떼내고 肝도 잘라야 하거든요. 환자가 한창 일해야 할 현직 공직자라서 최대한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했어요. 정말 힘든 수술이었어요』
그는 『외과의사는 상황마다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막상 배를 열어 보면 혈관 기형인 사람이 있고, 수술 중에 출혈이 너무 심해 혈압이 40까지 떨어지고 심장이 멈추는 경우가 있어요. 침착하고 냉정해야 합니다. 심장이 멈추는 것을 확인하면서 肝을 자른 적이 여러 번 있어요. 肝을 잘라낸 뒤 심장을 전기쇼크로 살려내요』
李교수는 하루 평균 세 차례 이상의 肝 수술을 하고 있다. 열 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후배들에게도 식사를 꼭 하라고 권한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게 되고 상대에게 안 좋아요. 특히 환자에겐 더 안 좋아요. 수술복 입고 먹으라고 해요』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면 肝에 제일 좋다』 肝이식에 필요한 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李健旭 교수는 급성 肝부전증 환자가 肝이식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돼지의 肝을 이용한 「인공 肝」을 개발 중에 있다. 인공 肝은 체외에서 간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현재 동물실험 중이다. 성공하게 되면 肝부전증 환자가 肝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또는 肝이식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신경학적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교량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李교수는 『환자들이 검증이 안 된 언론보도에 너무 휩쓸린다』고 걱정했다.
『간혹 언론에서 검증이 안 된 치료법이 나옵니다. 파급효과가 너무 커요. 녹차만 먹었더니 肝의 크기가 커졌다느니… 퇴원 환자들이 제게 「나가서 뭘 먹어야 하냐」고 물으면 남들이 좋다는 것에 혹하지 말라고 하죠』
李교수는 40년 이상 외과의사로 살다 보니 어지간한 고통에는 둔감해졌다고 한다. 간혹 아내가 아프다고 해도 흘려듣기 일쑤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단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李교수는 헤어지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肝에 제일 좋다』고 했다.
『肝을 생각해요. 싫은 것을 억지로 하면 肝이 스트레스를 못 견뎌 아파해요』●
첫댓글 우리나라 간이식이 세계수준이다 라고 말하는것은 좋은데, 꼭 미국을 능가한다 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전혀 그렇치 않은데도.......... 5년 생존율이 88%라고 하던데.....
내동생은 서울대에서 이천삼년에 수술했는데 깨여나지도 못하고 십삼일만에 저세상으로 의사왈 환자는 다 좋아는데 죽음앞에서 어쩔수없다고 의술로도 안돼다고 웃긴다 난매일 욕하지 실패할때 어쩔수없고 살아을때 제일이라고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