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합동위령 미사 강론(다해)
어느 아버지의 상속 재산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구정 설날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금년 병신년 붉은 황금 원숭이띠 해에 모두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금년 설은 어느 때보다도 연휴가 길어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2015년 양띠 해 을미년(乙未年)을 보내고, 새해 2016년 병신년(丙申年) 원숭이띠 해(Year of the Monkey)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丙申年의 ‘丙’이 상징하는 색상은 붉은 색이며, ‘申’이 상징하는 동물은 원숭이이므로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가 됩니다. 2016년은 60 갑자 중 병신(丙申)년입니다. 병(丙)은 하늘의 에너지로 큰 불을 의미하고 색깔로는 붉은 색이고 신(申)은 땅의 에너지로 12띠 중 원숭이를 말하여 2016년을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하는 겁니다. 병은 플러스 양적인 '불'이어서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화끈한 도전이나 활동을 말하고 신은 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칙 등을 말하여 금년에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개혁하는 에너지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좋은 의미에서 금년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대축일로 정하고 우리 겨레 모두와 함께 설날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설 혹은 설날을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씁니다.
설날 곧 신일이란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슬기로운 우리의 조상들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그 해의 운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은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옛날부터 한 해의 첫날을 설날이라고 이름을 짓고 몸과 마음가짐을 경건하고 바르게 가짐으로써, 벽사초복(辟邪招福), 즉 사악함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설날에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경거망동하여 화를 불러들이고 재앙을 초래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리 길이 멀다 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조상들을 위하여 제사를 바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날은 조상 영전에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며 세화를 문짝에 붙이고 삼재(三災)를 쫒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또 자손들은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합니다.
그렇다면 조상들의 이 설날은 종교적인 요소를 굉장히 많이 가졌다고 보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 미사성제를 올리는 것은 조상 전래의 전통과 풍습의 근본정신에 부합된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일 년을 하늘의 축복 속에 지내기 위하여 이렇게 근신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와 기도 속에 보내기 때문이요.
둘째, 돌아가신 부모 형제를 위해서 제물 중의 최고 제물인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께 봉헌하는 미사성제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셋째, 세상을 떠난 영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술이나 밥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기도를 바침으로써 연령을 위로하고 가장 기뻐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방의 예의도덕을 지키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물론 살아 계신 보모에게도 효도할 것을 결심함이 이날을 의의 깊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음식을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 하더라도 살아생전의 한 술만 못하다 했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 보모에게 얼마나 효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늙을 때 얼마나 효성 있는 아들딸을 갖는가 하는 것이 달려있다는 것도 잊지 맙시다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를 다 보내고 한 시름 놓자 그만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하루는 자식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 정도 빚을 좀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 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적어라”
아버지의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먼저 형제 중에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 원을 적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가격을 매기듯 큰 아들이 2천만 원, 셋째 아들이 1천 5백만 원, 딸이 1천만 원을 적었습니다.
문병 한번 없고, 그 흔한 휴대폰으로 안부전화 한번 없는 자식들을 다시 모두 불러 모았는데 이번에는 며느리와 사위는 오지 않고 4남매만 왔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하고 형제간에 반목할까봐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어준 액수의 5배를 지금 줄 것이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내가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정리하고 남은 나머지 금액 30억 원은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장남 1억 원, 둘째 2억 5천만 원, 셋째 7천 5백만 원, 딸 5천만 원… 자식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어느 재벌의 두 아들이 부친에 대한 성년 보호자 재판을 제기하여 법정에서 이를 가려달라고 한 데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벌이는 웃지 못 할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재산이나 돈이 결코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가족끼리 서로 정을 나누며 왕래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새해 첫날에 서로 서로 복을 빌어주며 또 복의 근원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모습만을 본다면 복을 받을 자격조차 없고 허물과 부족함이 많지만 하느님께서 그저 우리를 귀엽게 봐주시고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우리기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까지 주님의 복이 가득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이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금 년 한해에는 더 열심히 일하고 항상 허리에 띠를 매고 주인을 시중하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늘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며 사는 착한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족, 이웃 간에 그리고 우리 사회 계층 간에 싸움이나 비방, 분열이 없이 서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심는 사랑의 사도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허리에 디를 매는 삶이란 절제와 규칙적이고 깨끗한 생활로써 질서와 균형이 잡힌 근면한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사라지는 물안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너무 먹고 마시고 입는 현세적인 삶에 애착을 두지 말고 영원히 지속될 참되고 보람 있는 일과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우리 교구의 금년도 사목지침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사는 가정공동체로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은혜로운 한 해가 되도록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듬뿍 풍기는 풍요로운 삶이 되도록 서로 노력합시다. 아무튼 새해 첫날에 주님의 축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보람된 한 해가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