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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타★용대] 배드민턴 이용대 공식 팬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아리아
<유연성과 함께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용대. 오랜만의 인터뷰에서 한층 생각이 깊어진 그를 만날 수 있었다.(사진=이영미)>
세계 랭킹 1위. 세 차례 파트너가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세계 랭킹 1위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어떤 위기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헤쳐 나가는 임기응변은 그를 ‘거물’로 만들었다. 단식보다는 복식에서 파트너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며 때론 자신을 낮추고, 때론 자신을 드높이며 승리를 챙기는 그는 배드민턴 부동의 스타 이용대(27·삼성전기)이다.
지난 20일 이용대는 자신의 파트너 유연성(29·수원시청)과 함께 ‘2015 빅터 코리아 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총상금 60만 달러) 남자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8강에서 탈락했던 이용대는 2년 만이자 통산 다섯 번째 대회 정상에 올라 최고 선수임을 입증했다. 정재성(은퇴), 고성현(김천시청) 등과 짝을 이뤄 우승한 적은 있었지만 유연성과는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만끽했다. 이미 이용대-유연성은 지난 5월 호주오픈과 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직전에 열렸던 일본오픈에서도 정상에 올랐고, 지난 4월 중국의 아시아선수권을 포함, 올 시즌 네 차례 국제대회 금메달을 수확했다.
오랜만에 태릉선수촌에서 이용대를 만났다. 그동안 우승을 ‘밥 먹듯이’ 정도는 아니어도 자주 해왔던 그는 유독 이번 대회의 우승을 굉장히 기뻐했다. 이유가 있었다.
#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무조건 우승하고 싶어
“무엇보다 한국에서 하는 가장 큰 대회이고, 세계 랭킹의 상위권에 있는 선수들이 거의 다 나왔기 때문에 꼭 이기고 싶었다. 바로 이전에 치른 일본오픈에서부터 골반에 통증이 있었던 터라 코리아오픈대회 첫 경기에선 통증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침을 맞아가며 버텼고, 덕분에 몸 상태가 좋아지면서 계속 경기를 치른 것이다. 결승전 상대가 김기정-김사랑이었다. 그 팀이 8강전에서 세계랭킹 2위인 무하맛 아산-헨드라 세티아완(인도네시아)을, 준결승에선 세계랭킹 3위인 푸하이펑-장난(중국)을 차례로 꺾으며 매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터라 바짝 긴장했는데 운 좋게도 우리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용대는 한 달에 2주 정도는 대회 출전으로 해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장 심장 떨리는 대회가 바로 한국에서 치르는 경기라고 한다.
“물론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대회에 나가면 자국 선수들보다 더 좋아해주는 그 나라의 팬들 덕분에 경기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치르는 대회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어렸을 때부터 난 국제대회보다 한국에서 하는 경기에 더 짜릿함을 느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배드민턴은 국제 대회가 많다. 이용대로선 모든 대회에 출전했다가는 체력적인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올림픽 전까지는 슈퍼시리즈 대회에만 참가하며 체력관리 및 전술운영보완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시합이 많으면 잘 한 것보다 못했을 때의 성적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매번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다. 컨디션에 따라, 환경에 따라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가는 대회는 모두 우승해야 한다는 시선을 느꼈다. 그게 은근 스트레스로 작용하더라. 그래서 요즘엔 강약조절을 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평가, 시선들에 신경 쓰지 말고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앞만 보고 갈 생각이다.”
# 인도네시아에서 ‘적과의 동침’
이용대는 지난 1월 ‘슈퍼리가 배드민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 클럽인 뮤지카 챔피언 쿠두스와 계약 체결 후 팀에 합류했다. 배드민턴 열기가 대단한 인도네시아에서 이용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이용대는 그 인기와 실력 덕분에 ‘자룸 슈퍼리가 배드민턴 2015’에서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클럽에서 뛸 수 있었다.
“야구는 메이저리그, 축구는 프리미어리그처럼 배드민턴은 중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리그가 최고로 손꼽힌다. 대회를 다니며 친분을 쌓았던 뮤지카 팀에서 내게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초청을 제안했고, 주위의 도움으로 그 팀 훈련에 참가하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한국 배드민턴 선수가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소속팀에서 흔쾌히 승낙해준 덕분에 인도네시아 리그 속으로 들어가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드민턴 선수들의 인기는 여느 연예인을 뛰어 넘는다. 그런 뜨거운 관심과 열기 속에서 배드민턴을 치다 보니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지금까지도 그곳에서의 생활이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관련 영상)
한국에선 배드민턴이 비인기 종목으로 꼽히지만,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은 축구 다음으로 인기를 얻는 국민 스포츠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 시장은 우리나라와 비교조차 안 된다. 선수들 대우도 굉장하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많은 선수들이 한국만이 아닌 해외에 나가 훈련을 하고, 경기에 출전했으면 좋겠다. 관중들이 많은 데서 뛰어보고, 느껴보고, 배운 것들이 모아지면 나중에 한국 배드민턴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쓰여지지 않겠나. 작고 좁은 것만 보지 말고,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이용대는 뮤지카 팀에서 인도네시아 선수들이 네트 플레이에 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네트 플레이는 완벽한 수준이다. 시합 때 마다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그곳에서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들은 감추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그 기술을 갖고 귀국해선 (유)연성이 형에게 전달했다. 경기할 때 서로 어떠한 형태로 네트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연습을 통해 익혀나갔다. 이전까지만 해도 연성이 형은 뒤에서의 플레이에는 강했지만 앞의 네트 플레이에 약했다.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후 형에게 앞의 네트 플레이에 중점을 둬서 연습하자고 말씀드렸고, 형도 흔쾌히 받아들인 덕분에 이번 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 ‘2015 빅터 코리아 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유연성-이용대의 환한 미소.>
# 스캔들, 도핑 파문으로 얼룩진 시간들
이용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한국은 체력적인 부분과 정신력을 강조한다. 물론 기술적인 면도 배운다. 거기에 외국에서 배운 또 다른 기술적인 요소를 얹힌다면 플레이가 얼마나 정교해지겠나. 인도네시아 선수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적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그 자체를 즐기더라. 고등학교 때까지의 난 감독님이 뛰라면 뛰고, 매를 들면 맞아가면서 운동했다. 그로 인해 체력과 오기, 승부근성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했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다양한 측정과 통계가 나타나고, 그걸 운동에 접목시키면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이용대는 자신을 주입식 세대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헝그리 정신’이 잠시 집을 나가면 정신 못 차리고 헤맬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당근과 채찍’이란 말을 그래서 좋아한다는 그는 인터뷰를 통해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을 주저 없이 꺼내놓았다.
“1등이 아닌, 2등, 3등만 해도 주위에선 ‘정신 못 차린다’며 이런저런 말들을 보탠다. 어느 순간 게임에 나가는 게 두려워졌다. 나도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싶고,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고 싶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알아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데 주위에선 여전히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물론 그동안 스캔들이든, 도핑 파문이든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지만 지금 현재 내 인생의 전부는 배드민턴이다.”
이미 9만4580점 포인트를 얻어 세계랭킹 1위를 지키던 이용대-유연성은 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우승을 통해 9200점의 포인트를 보탰다. 10만 점을 돌파하면서 7만 점대의 2∼4위와 큰 격차를 벌이고 있다.
“리우 올림픽 때까지 이 흐름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번에 나가게 되면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란 각오로 임하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 시작 전부터 4년 뒤의 올림픽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중 3때 상비군에 뽑히면서부터 지금까지 12년 넘게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이젠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물려줘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나만 독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2003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된 이용대는 2006년 1월 독일 오픈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에서 정재성과 함께 남자 복식 우승을 하면서 첫 시니어 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당시 이용대의 나이는 정확히 17세 4개월 5일로 종전 박주봉의 최연소 국제대회 우승 기록(17세 3개월 15일)을 갱신하면서 ‘제2의 박주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위키백과 참조)
이용대는 남자 복식을 하면서 정재성부터 고성현, 유연성 까지 3명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췄다.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정)재성이 형이랑은 워낙 어린 나이에 만났던 터라 내가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게 되면서부터 내 의견을 제시했다. (고)성현이 형은 1년 정도 같이 뛰었기 때문에 배드민턴과 관련해서 특별히 부딪힌 일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친하게 지냈다. 지금의 연성이 형은 후배인 내게 많이 맞춰주는 편이다. 경기 후엔 서로의 플레이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주고받고, 나 또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선 선후배 따지지 않고 가감 없이 얘기한다. 부부가 결혼해서 1년 정도 지나면 상대의 단점이 보이고, 그러다 잔소리가 늘어나면서 싸운다고 하는데 난 지금까지 복식 파트너랑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물론 경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실수로 인해 승리를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열 받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경기를 마치면 실수를 복기하면서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그래야 파트너랑 오래 갈 수 있다. 정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모든 게 가라앉은 다음, 파트너의 기분을 봐서 눈치껏 얘기한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복식 선수로 살아가는 노하우일 수도 있겠다.”
이용대는 도핑테스트를 회피했다는 이유로 2014년 1월 28일 세계 배드민턴 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선수의 소재지 보고를 대신해오던 대한배드민턴협회 행정 실수가 원인이었으며, 같은 해 4월 재심의에서 자격정지 결정은 취소되었다.
“그 일 있고 한 달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이 소속팀인 삼성에서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서 날 도와줬고, 변호사를 만난 후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자격정지 기간 동안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조차 훈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경남 함양으로 내려가 체력 훈련에 집중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다. 그곳에 배드민턴 전문 트레이너 분이 계셨다. 함께 징계를 받은 (김)기정이랑 색다른 환경에서 훈련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날 변호사가 전화를 해선 징계가 풀렸다고 하더라. 당장 서울로 오라고 하시면서. 선수촌 밖에서 보낸 3개월가량의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약’으로 작용한 것 같다. 더 강심장이 됐으니 말이다.”
도핑 파문 이후 이용대-유연성은 세계 랭킹이 10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용대는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후배들이 똑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게 되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 인생 최고의 경기는 결승전이 아닌 준결승전
이용대 배드민턴 인생에서 최고의 경기는 언제였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이)효정 누나와 일궈낸 혼복 결승전이 최고의 경기일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난 결승전보다 준결승전이 내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준결승전에서 당시 세계랭킹 3위였던 인도네시아의 마리사 비타-림펠레 프랜디조를 만났는데 1세트는 일방적으로 승리했고, 2세트는 자칫 방심한 바람에 12-21로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3세트에서도 초반에 끌려가는 경기를 하다가 10-14에서 21-17로 승리하며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은메달을 확보한 상태에서 모처럼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결승전에선 져도 은메달이었기 때문이다.”
금메달 확정 직후 카메라를 향해 선보인 윙크 세리머니로 인해 이용대는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금메달리스트에다 잘생긴 외모가 버무려지니 스포츠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를 섭외하려고 난리였다.
“사실 배드민턴 선수가 그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 분위기에 취해 중심 잃고 한껏 마음이 들뜬 적이 있었다. 그러다 연예인과의 스캔들이 터지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정신 차리게 되고….(웃음) 모든 게 인생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배드민턴 인생을 100으로 볼 때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용대는 “6,70%는 달려온 듯하다”고 대답한다.
“욕심 같아선 서른다섯 살 까지 지금의 랭킹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복식뿐만 아니라 개인전에서도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개인전을 생각하면 뛸 수 있을 때까지 대표팀을 놓고 싶지 않기도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내년이 마지막 올림픽이란 얘기 취소할까요?(웃음)”
이용대는 지금도 배드민턴 훈련이나 경기할 때 땀이 나고, 숨이 차오를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그 느낌이 그에게 행복감을 더해준단다. 그러면서 한 마디. “전 아직도 배드민턴이 정말 좋아요. 이 배드민턴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시련은 아픔 만이 아닌 경험과 배움으로 남는다. 일련의 일들이 이용대한테 배드민턴 인생의 시야를 넓히게 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사진=이영미)>
기사입력 2015-09-26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