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고쳐주셨습니다
- 간증 : 김진경 성도
우울증의 근원은 나의 성장과정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머니는 처녀 때는 믿음이 있으셨으나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온 뒤, 하나님을 잊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정은 늘 가난과 다툼으로 평안한 날이 없었다.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술을 드시기만 하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셨다. 그래서 살림살이들이 깨지는 소리, 부모님 다투시는 모습 등 나의 어린 시절 기억들은 어두운 것들뿐이다.
한 때 나는 그 다툼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친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지기도 했었는데, 그곳에서도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우유조차 먹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삼 남매 중 둘째인 나는 오빠와 여동생 틈에 끼여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온 가족이 나만 떼어놓고 외출을 했던 작은 기억들조차 내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나는 사랑 받고 싶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며 애쓰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경제적 빈곤 때문에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엄마 대신 살림을 도맡아야 했는데, 어린 나이에 살림을 해야 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것이 내게는 더 큰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재능을 인정받고 스카웃되어 송원초등학교를 거쳐 송원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다시 송원중학교 농구팀이 해체되면서 수피아여중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실업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전학을 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문제는 하숙생활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고 혼자 남아있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어머니는 가기 싫다며 우는 나를 겨우 달래 하숙집으로 돌려보내시곤 하셨다.
하루는 하숙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산천초목 사이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사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쌓이게 되면서 우울증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못 가고 오직 방안에서만 숨어 지냈다. 믿음생활을 하시던 외할머니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목사님을 모셔와 내게 안수를 받게 하셨다. 그 후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새벽기도 때 회개와 방언이 터져 나왔다. 그날 나는 기쁨에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예전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실업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실업 2년차에 베스트멤버로 시합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시합을 앞두고 다시 불안, 초조, 염려, 두려움이 다가왔다. 경기에서의 긴장감,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 계속되는 동료들과의 경쟁, 합숙훈련 등 부적응으로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국 나는 95년 농구대잔치 도중에 운동을 그만 두고,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운동을 그만 두고 나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농구는 나의 위로요, 친구였고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상실감, 절망감, 허탈감, 무기력, 좌절감이 나를 무섭게 짓눌렀다. 죽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또한 나는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농구를 하면서 가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러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다시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감사하게도 한 개척교회의 사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모님은 나에게 늘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사모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작정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자 잠시 병이 호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심장수술, 그리고 물질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서 나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충청도 당진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가서 8개월 정도 있게 되었다. 21일 금식을 마친 후 보호식을 했으나, 음식에 대한 탐심 때문에 보호식에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보호식을 실패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아무 차도도 없이 식구들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정말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나는 병원에는 정말이지 다시 가고 싶지가 않았으나 아버지의 간청에 못이겨 병원에 갇혀 2개월간의 감옥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계속 약을 복용하며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그러던 중 사모님의 권유로 다시 기도원에 올라가게 되었다. 사모님은 “예배와 말씀을 통해 치료가 임할 터이니, 예배에 잘 참석하고 설교를 통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니 순종해야 한다”라고 권면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사모님의 권면에 불순종하고 예배에 불참했다. 예전에 방에서 혼자 울면서 기도할 때 치료 받았던 기억을 내세우며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기도굴이나 방안에 처박혀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예배에 불참한 진짜 이유는 예배시간에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는 식당에조차 갈 수 없어서 숨어서 몰래 음식을 먹곤 했다. 그런 나의 연약한 모습이 또 나를 괴롭히는 죄책감이 되고 나는 우울증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7일 금식을 하기로 작정을 했지만 나는 성전에도 못 들어가고 기도굴에만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엄습할 때면 도망치듯이 집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때마다 짐을 갖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기도원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짐을 기도원에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짐을 가지러 오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기도원으로 올라와야 했다. 억지로라도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보호의 손길이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 성전 밖으로 나오면 다시 두려움이 다가오곤 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 내려와서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마침내 기도원에 대해 부정적이시던 아버지마저 내가 다시 기도원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하실 정도가 되었다. 또한 사모님도 기도원에서 못 고치면 그 어느 곳에서도 고칠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셨고, 나 역시 더 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다는 생각에 굳은 결심을 하고 작년 12월 31일 다시 기도원으로 올라왔다. 금식을 안 하려고 했지만 지난번 7일을 작정하고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상담을 한 후 7일 금식 작정을 했다.
이번에는 모든 예배에 참석할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크게 부르는 가운데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차츰 사라져가고 마음속에 평안함이 넘쳐나게 되었다. 모든 예배에 철저히 참석하면서 드린 7일 금식기도를 통하여 그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대인공포증. 우울증이 깨끗이 낫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제는 주님만을 위해 살리라 결심하면서 성령 충만하기 위해 기도한다. 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