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프랑스 혁명을 보자,
혁명가들은 왕을 처형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하고, 인권선언을 하고,
귀족특권을 폐지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프랑스인의 생화학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 결과, 혁명이 초래한 모든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프랑스인의 행복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유전자 복권에서 '즐거운 생화학'에 당첨된 사람은 혁명 전이나 후나 여전히 행복했고,
'우울한 생화학'을 가진 사람은 과거 루이 16세나 마리 앙투어네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신랄한 불평을 로베스피에르와 나폴에옹에게 던졌다.
만일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에 무슨 좋은 점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조금도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면,
그 모든 혼란과 공포, 피와 전쟁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생물학자들이 라면 결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정치 혁명이나 사회 개혁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체의 생화학은 거듭해서 이들을 속인다.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진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나 반란이나 이데올로기에 시간을 그만 낭비하고,
대신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잇는 유일한 일에,
즉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가 뇌의 생화학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절한 요법을 개발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과거 어느때보다도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일례로 프로작(미국 일라이 릴리 제약사가 개발한 항우울제)은 생화학 시스템 자체는 바꾸지 않지만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줌으로써 사람들을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게 돕는다.
과거 뉴에이지 세대의 유명한 구호만큼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또 없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성형수술, 아름다운 집, 높은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적 행복은 오로지 세로토닌, 도파민 , 옥시토신에서만 온다
미국 대공항의 절정기인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멋진 신세계》 속에서,
행복은 최고의 가치이며 향정신성 약물이 경찰과 투표 대신 정치의 기반 자리를 한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소마'라는 약을 복용하는데,
생산성과 효율성을 해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성 마약이다.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 정부는 전쟁이나 혁명, 파업이나 시위로 인해 위협받는 일이 전혀 없다.
모든 사람이 현재의 상황에 어떻든 대단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미래상은 조지 오웰의 《1984》보다 훨씬 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헉슬리가 그려내는 세상을 괴물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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