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녁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이정록(1964 - )‘참 빨랐지 그 양반’
첫댓글 더딘 사랑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 이 분 기억하시지요(2014년 1월 24일 소개)
빠르다 <->느리다???
후다닥 횟쳐 먹다니..ㅎㅎ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물어는 봤나?
최소한 혼빙은 아니쟎나요!
ㅋㅋㅋ !
힐링하고 갑니다 !
코에 바람 넣어야 힐링 아닌가요?
봄엔 각자 소지품-옆구리(?) 조심
행여 이정록 시인을 가벼이 여길까 염려되어 전에 소개한 '더딘 사랑'을 댓글로 붙여놨지요!
좋은 시인입니다!
대단한 감각을 가지신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