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화 己卯날
정재 병지, 겁재 록지, 겁살. 갑기합, 묘술합.
눈뜨자마자 햇볕이 아까워 이불 빨래 돌려두고 창, 현관 열어 맞바람을 들였다.
어제는 종일 굶고 빈속에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때려넣었더니 속쓰림과 울렁증이 생겨 고생했기 때문에
오늘은 위장 코팅부터 했다.
어젯밤에 해둔 오트밀 죽을 데우고 원래 껍질째 먹는 복숭아를 잘 깎아 과육만 먹었다.
속살이 부드러워 반대편으로 씹을 만했다.
발치한 자리는 여전히 뻐근하고 쿡쿡 쑤셔댄다. 거울을 보니 턱이 부어 얼굴이 퉁퉁해졌다.
아침먹고 힘낸 김에 베란다에 일주일째 방치 중인 양배추를 잘라서 정리하고
흠집 난 복숭아를 다 깎아서 바리바리 쟁여두었다.
고추도 두 가지 버전으로 손질해 냉동실에 넣고,
힘 남아있을때 입천정에서 뜯어온 깻잎으로 김치도 담았다. 똑 떨어진 김치 대용이다.
고작 그 일을 하는데 다리가 퉁퉁 붓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쓰레기 정리까지 다하고 방에 대자로 뻗었다. 달게 1시간여를 자고 일어나 잘라놓은 복숭아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 시국에 복숭아는 정말 고마운 양식이고 든든한 밥이다. 많이 달진 않지만 부드러운 과육이 위로가 된다.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더니 벼가 쑥쑥 키자람한 논 너머로 늘 6시, 7시 즈음에 동행하게 되는 청년이 보인다.
겨드랑이와 팔이 닿지 않고 허벅지가 떨어지지 않는 비만형이었는데
몇 달째 거의 매일 이 길을 걷더니 뒤태가 제법 슬림해졌다.
대진으로 가는 블루로드에서 늘 마주치는 또 한사람은 스틱을 좌우에 쥐고 도로를 점유하며 휘적휘적 걷는 할배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다녀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처음엔 영 비척이더니
요즘은 걷는 속도도 빨라지고 걸음걸이도 정확해졌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꾸준한 것은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는 나에게만 거꾸로 오는 것 같다.
매일 원치않는 부위가 부피 자람 중이다.
해안 방파제 근처엔 전국의 캠핑족이 총 출동한 듯 카 텐트와 캠핑카가 즐비하다.
오늘은 늦게 출발한 탓에 최단거리를 잡았는데도 금새 해가 져버리고 깜깜해졌다.
줄행랑을 치듯 귀가 길을 서두르는데, 늦게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부쩍 늘어 어두운 길이 두렵지 않았다.
본격적인 여름이 기세를 떨쳤던 하루가 마감되었다.
낼 모레면 입추. 이 여름도 길지 않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4F64D5F29857B19)
첫댓글 어두운길이 두렵지 않았다...흠
두려운것도 있으셨나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ㅎㅎㅎ
저는 일단 얼굴이 무기임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