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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기 『성명총괄(星命總括)』과 조선 초기 『속편 성명총괄 신집(續編星命總括新集)』에 관하여
2019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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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命總括』,卷上,高麗國師 撰,遼、耶律純 錄
* 『續編星命總括新集』, 일본 국회도서관 소장
20m까지 올릴 수 있기에 첨부하지 못합니다.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쉽게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星命淵源,五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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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총괄(星命總括)』 3권은 칠정사여(七政四餘)에 관한 기본 교과서로서 고려시기의 천문학과 점성술 수준과 고려학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운서존진노인(雲嶼存眞老人)이 편집한 『속편 성명총괄 신집(續編星命總括新集)』을 을해자(乙亥字, 1455년)로 출판하였습니다.
두 서적은 당나라시기에 수입한 서역과 서양의 점성술 위에 고려와 조선시기 학자들이 깊은 연구를 더하여 고려와 조선의 학술적 정체성을 가진 점성학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성서는 고급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개인의 운명을 비롯하여 각종 행사 날짜와 시간 등을 따져서 미래를 예측하고 길일을 골라내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각들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일상생활형태를 형성시켰던 자료입니다.
앞으로 많이 연구하여 한국 점성학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목할 것은 야율순(耶律純)이 서문에서 말한 “大遼統和二年,翰林學士耶律純,以議地界事,奉國書,使於高麗。遼東至其國,頗聞國師精於星躔之學。” 구절에서 “遼東至其國”입니다. 중국학자들은 구두점을 “使於高麗遼東。至其國”이라고 단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려국에 사신을 가는 것이며, 요동(遼東)에 사신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동 두 글자를 뒤에 붙여야합니다. 다시 말해 “요동에 들어서서 고려국에 이르기까지”라고 번역해야합니다. 요동지역부터 고려국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에 고려국사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관하여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요동부터 고려국까지의 길에서 야율순이 탐문을 시도하였다는 정보를 해석하면, 이 시기에 요동지역은 발해국의 문화유산이 남아있기에 고려 소식을 탐문하였다고 보아야합니다. 이것은 발해의 문물과 학술이 상당한 부분은 고려와 공통적이었고 특히 발해 일반인들의 일상생활형태가 고려와 닮았거나 공통된 동질성이 있었다고 보아야하는 근거입니다. 요동지역의 문화와 민속이 거란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문물과 학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생활형태가 분명히 발해지역 곧 요동지역에서 유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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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천문학과 지리학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이런 자료는 『성명총괄(星命總括)』 3권이 고려의 서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고려 현종은 1021년에 사신을 포함하여 170명을 송나라에 파견하여 음양지리서와 의학서적 『성혜방(聖惠方, 太平聖惠方)』(100권)을 요청하여 도입하였습니다. 170명 인원에는 여러 분야의 기술 인력이 포함되어 송나라 기술을 도입하였을 것입니다. 음양지리서는 1005년에 편찬된 『건곤보전(乾坤寶典)』(417권)을 필사한 필사본이었습니다. 필사하는 동안에 수많은 오류를 발견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송나라와 고려 양국의 전문 인력이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고려와 송나라의 전문가들이 만나 토론하고 서적의 오류를 교정한 것처럼 평가되는 자료가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송나라는 사천감(司天監)에서 천문, 지리, 음양, 술수의 서적을 정리하여 『건곤보전(乾坤寶典)』(417권)을 편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 사신에게 필사하여 주면서 수많은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지리에 관한 부분은 21년간 수정하여 1034년에 『지리신서(地理新書)』(32편)을 편찬하였다. 『건곤보전』은 당나라 정덕 연간에 여재(呂才)가 편찬한 음양서(陰陽書) 50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에는 당연히 후자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劉未,「宋元時期的五音地理書」,『青年考古學家』,總22期,2010年5月.
李燾,『續資治通鑒長編』,眞宗景德二年(1005)五月丁巳條:“先是,上以天文、地理、陰陽、術數之書,率多舛誤,乃命司天少監史序等同加編次,掇其精要,以類分之,爲『乾坤寶典』四百一十七卷。丁巳,序等上其書,上作序,藏秘閣。”
眞宗天禧五年(1021)九月甲午條:“權知高麗國王事王詢遣告奏使、禦事禮部侍郎韓祚等百七十人來謝恩,且言:‘與契丹修好。’又表求陰陽地理書、『聖惠方(太平聖惠方)』(100卷),並賜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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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세종연간에 음양학에 관한 서적:
『세종실록』, 세종 12년 경술(1430) 3월 18일(무오)
12-03-18[02] 상정소에서 여러 학의 취재에 있어 경서와 여러 기예의 수목에 대하여 아뢰다
상정소(詳定所)에서 여러 학(學)의 취재(取才)에 있어 경서(經書)와 여러 기예(技藝)의 수목(數目)에 대하여 아뢰기를:
음양학(陰陽學)은 『천문보천가(天文步天歌)』ㆍ『선명보기삭보교회(宣明步氣朔步交會)』ㆍ『수시보기삭보교회(授時步氣朔步交會)』ㆍ『태양태음(太陽太陰)』ㆍ『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金星木星水星火星土星)』ㆍ『사암성보중성(四暗星步中星)』ㆍ『태일산(太一算)』ㆍ『성명복과(星命卜課)』ㆍ『주역점(周易占)』ㆍ『육임점(六壬占)』ㆍ『성명서(星命書)』ㆍ『대정삼천수(大定三天數)』ㆍ『범위수(範圍數)』ㆍ『자미수(紫微數)』ㆍ『황극수(皇極數)』ㆍ『원천강오행정기(袁天綱五行精紀)』ㆍ『전정역수(前定易數)』ㆍ『응천가(應天歌)』ㆍ『오총귀(五摠龜)』ㆍ『삼신통재란(三辰通載欄)』ㆍ『강강관매수(江綱觀梅數)』ㆍ『해저안(海底眼)』ㆍ『벽옥경(碧玉經)』ㆍ『난대묘선(蘭臺妙選)』ㆍ『금연신서(禽演新書)』ㆍ『삼거일람(三車一覽)』ㆍ『지리대전(地理大全)』ㆍ『지리전서(地理全書)』ㆍ『천일경(天一經)』ㆍ『영경(靈經)』이요.
----------------------------------------------자료 소장과 출판:
『성명총괄(星命總括)』은 현재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에 『증광도설범위역수(增廣圖說範圍易數)』 서적의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속편 성명총괄 신집(續編星命總括新集)』은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를 참고하면, 임진왜란시기에 약탈하여 가져간 문화재라고 하며 장서인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홍콩 이상승(李常勝)이 교정하여 2014년에 홍콩 성역도서유한공사(香港星易圖書有限公司)에서 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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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 총목제요』 오류의 비판:
먼저 이 서적이 고려의 서적이냐? 중국 명나라 초기의 서적이냐?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청나라 건륭시기 『사고전서』 편찬관원들의 견해는 요나라 야율순(耶律純)의 기록이 아니고 오히려 명나라 초기에 야율순의 이름에 의탁한 기록이라고 보았습니다. 첫째, 984년에 요나라에서 고려에 국경선 획정을 상의할 사신을 파견한 기록이 없다. 둘째, 야율순 이름을 가진 한림학사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들은 중국의 서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고 요나라 또는 고려의 서적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명태조가 점성서들을 금지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경선 획정에 관하여 984-985년 역사사건을 보면, 여진족이 요동지역에서 약탈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요나라가 여진족을 억압하려고 시도하였고, 고려는 여진족을 복속시키거나 방어하려고 이겸의(李兼宜)를 시켜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당시 요동지역은 요하의 동쪽지역인데 두 지역을 가리킵니다. 두 지역 모두 늪지가 많았기에 군사를 동원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요동지역을 놓고 여진족, 고려국, 요나라 셋이 국경선 획정을 상의하였을 것입니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현재 『속편 성명총괄 신집(續編星命總括新集)』의 출판을 보면 분명히 고려와 조선의 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명총괄』은 조선시기까지 전해왔고, 지리학의 응시과목에 들어있었다고 합니다.(1744년, 『속대전』)
따라서 이 서적은 고려와 조선의 서적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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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史』,卷十,本紀第十,「聖宗一」:
聖宗統和二年(984),二月癸巳,國舅帳彰德軍節度使蕭闥覽來朝。甲午,賜將軍耶律敵不春衣、束帶。丙申,東路行軍、宣微使耶律蒲寧奏討女直捷,遣使執手獎諭。
夏四月丁亥,宣徽使、同平章事耶律普寧、都監蕭勤德獻征女直捷,授普寧兼政事令,勤德神武衛大將軍,各賜金器諸物。
八月辛卯,東京留守兼侍中耶律末只奏,女直術不直、賽裡等八族乞舉眾內附,詔納之。
聖宗統和三年(985),八月癸酉朔,以遼澤沮洳,罷征高麗。命樞密使耶律斜軫為都統,駙馬都尉蕭懇德為監軍,以兵討女直。丁丑,次稿城。
冬十一月丙申,東征女直,都統蕭闥覽、菩薩奴以行軍所經地里、物產來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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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 총목 제요(四庫提要)』 번역:
『성명총괄(星命總括)』,三卷,永樂大典本:
옛 판본의 제목에는 요나라 야율순(耶律純)의 편찬이라고 하였다. 야율순의 서문 원본 1편이 실려 있고, 서문 끝에는 통화(統和) 2년(984) 8월 13일이라고 적고, 스스로 한림학사라고 하며 고려에 사신 가서 국경선 획정을 상의하였는데, 이때 고려국 국사가 가르쳐준 행성과 항성의 운행 도수를 연구하는 천문학(성전, 星躔) 학술을 배웠다고 하였다.
고증해보니, 첫째, 통화(統和)는 요나라 성종(聖宗)의 연호이다. 『요사、(성종)본기(遼史、本紀)』에는 이 해에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둘째, 『요사、이국(고려, 서하)외기(遼史、二國外紀)』에는 다만 통화 3년에 고려를 정벌하라는 조서를 내렸지만 요택(遼澤, 요하 서쪽 평원의 沼澤)에 빗물이 가득하여 정벌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또한 사신을 파견하여 국경선 획정을 상의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셋째, 요나라 귀족들 관리들은 주로 야율씨(耶律氏)와 숙씨(蕭氏) 두 집안에서 나왔는데, 열전을 모두 찾아보아도 순(純) 이름만은 두 집안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이 서적은 어떤 사람이 야율순의 이름을 빌려서 썼다고 위서(僞書)라고 판단한다.
『문연각 서목(文淵閣書目)』에는 이 서적 1부를 기록하였는데 책(冊) 숫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명나라 엽성(葉盛, 1420-1474)이 편찬한 『녹죽당 서목(綠竹堂書目)』에는 5 책(冊)이라고 기록하고 권(卷) 숫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민간에는 다른 판본이 전해오지 않고, 오직 『영락대전(永樂大典)』에 실린 판본이 서적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었는데, 편(篇, 목차)와 쪽(頁)을 계산해보면 5 책(冊)의 숫자에는 부족하다. 아마도 엽성의 기록에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서적의 내용에서 천문학 주장이 정확하고 천문학 논리도 분명하게 해석하였는데 대체로 수순이 상당히 높아 술수가(術數家)들이 참고해야할 서적이 되어왔다. 특별히 “궁(宮)에서 편(偏)과 정(正)을 구분하였다.”는 주장은 아주 새로운 것이지만 검증해보면 많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천도(天道, 하늘의 괘도)가 아주 멀고 사람의 눈으로 관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명(命)은 큰 줄거리만 아는 것에 그치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만약에 신기한 생각을 하거나 억지로 적용하여 추측하여 맞도록 하겠다면, 오히려 막히고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술수가들의 잘못이 대체로 이런 문제에 있다. 독자들은 이 서적의 장점을 배우고 복잡하고 자잘한 것들을 생략하면 좋을 것이다.
건륭 46년(1781) 9월 삼가 교열하여 올립니다.
『四庫提要』:『星命總括』三卷,術數類五,命書相書之屬:
舊本題遼耶律純撰。有純原序一篇,末署統和二年八月十三日,自稱爲翰林學士,奉使高麗議地界,因得彼國國師傳授星躔之學云云。
案統和爲遼聖宗年號。『遼史、本紀』,是年無遣使高麗事。其「二國外紀」,但稱統和三年詔東征高麗,以遼澤沮洳罷師,亦無遣使議地界之文。遼代貴仕不出耶律氏、蕭氏二族,而遍檢列傳,獨無純名。殆亦出於依托也。
『文淵閣書目』載有是書一部,不著冊數。『綠竹堂書目』作五冊,又不著卷數。外間別無傳本,惟『永樂大典』所載,始末完具,然計其篇頁,不足五冊之數,或葉盛所記有訛歟?
中間議論精到,剖析義理,往往造微,爲術家所宜參考。惟所稱“宮有偏正”,則立說甚新,而驗之殊多乖迕。蓋天道甚遠,非人所能盡測,故言命者但當得其大要而止。苟多出奇思,曲意揣度,以冀無所不合,反至於窒塞而不可通矣。術家流弊,往往坐此。讀者取其所長而略其繁瑣可也。
乾隆四十六年九月恭校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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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命總括自序」는 현재 『四庫全書』와 『全遼文』(卷五)에 남아 있기에 둘의 글자를 비교하여 붙였습니다.
「原序」:
大遼統和二年,翰林學士耶律純,以議地界事,奉國書,使於高麗。遼東至其國,頗聞國師精於星躔之學。具重幣,設威儀求見,屢請,不從。
一日,自請於高麗國王,曰:“臣奉國書來此,稔聞國師,富於道德星命之學。願借玉音,得遂一見,以請所學,何啻昌黎之遇大顛也?”國王遂命一見。
既見之後,往復數囘(回,『全遼文:四』),前請曰:“微生跧伏北方,聞國師深於星命之度。今日天幸,得瞻毫相,願北面從師,聞以一二(『全遼文:願從師略聞以一二),以聳北方之學者,亦是三生夙昔之幸,不知可乎?”
國師曰:“何不可之有?但學士平生論學,有何所得,吾與學士從長商榷而已,何以師爲?”
(耶律純)曰:“膚學得於生尅、制化之外,亦有十條,前有六條看根本,後四條看流年。
其一曰:太歲尊神,加臨管攝。
其二曰:無中有曜,弱處高強。
其三曰:得經失次,細辨盈虛。
其四曰:身傍母吉,傍鬼者凶。
其五曰:同宮千里,異宮尺寸。
其六曰:黨母福多,藏鬼禍大。
其七曰:元守雖詳,流年猶(猶,『全遼文:尤)急。
其八曰:當生變曜,流年變星。
其九曰:限倂(倂,『全遼文:並)諸煞,貴祿不臨。
其十曰:流年諸星,無忽柔曜。
此十條者,各有詳注,未審如何?”
國師曰:“十條之說,抑(抑,『全遼文:亦)末矣,本之則無。今學士談星根本,以宮主爲重耶?度主爲重耶?”
(耶律純)曰:“得於平昔之講明,以宮、度兼論,不可用一而廢一也。”
國師笑曰:“宮、度兼論,吾恐子於星度,胸中不能自斷,何以斷人之禍福也?且如命躔丑宮之牛度宮,土度金,限行遇火,一生一尅,何以爲斷?又如命坐寅宮,尾火度木宮,大限行遇水,一生一尅,何以爲斷?於禍福何憑?”
(耶律純)遂再進曰:“願棄所學,而從師求教。”
師曰:“吾嘗以近世談星者,言宮不知度,言度不知宮,二者胥失矣。吾於海上異人,授我以偏正之垣,於二十八宿之中,分之,曰一太陽、五太陰、六木、六土、六水、二火、二金之說。學士曾聞之乎?”
(耶律純)曰:“未也。”
國師曰:“人生於地,日月五行見於天,其生值此七曜之吉,則一生享福安榮。遇(『全遼文』無‘遇’)七曜之凶,則(則,『全遼文』:前)一生迫忙,百不如意。日月五星,其爲物也,於天地間最大,於天下萬物,日主晝,月主夜,乃天之眼目也。在天有五星,在地有五行,人生在世,五者一日不可缺。觀星談命,苟不知此根本,則爲徒然,徒(『全遼文』無‘徒’)學宮度兼論之術,何以決人之禍福?
故十二宮有偏正之垣,子宮以虛日鼠爲正垣,鼠乃子垣之宮神,非正垣而何也?
丑宮牛(牛,『全遼文:斗)金牛;寅宮尾火虎;卯宮房日兎;辰宮亢金龍;巳宮翼火蛇;午宮星日馬;未宮鬼金羊;申宮觜火猴;酉宮昴日雞;戌宮婁金狗;亥宮室火豬,皆本宮之正垣。此爲(爲,『全遼文:乃)千古不易之論。此談星之大根本,可不盡知要妙哉?
所謂一太陽者,太陽君象(『全遼文:象也),天無二日,民無二主(主,『全遼文:王),惟星日馬乃太陽之正垣。
五(『全遼文無‘五’)太陰者,后妃之象,后妃嬪眾多,宜太陰之(『全遼文:之有)五也。故以鬼金羊爲太陰之正垣。其餘張、心、危、畢、月,皆偏垣之月也。
六木者,寅宮尾火虎,亥宮室火豬,爲木正垣。其餘斗、奎、井、角,皆偏垣之木也。
六土者,子宮虛日、丑宮牛金,爲土正垣。其餘女、氐、胃、栁(柳),皆偏垣也。
六水者,巳宮翼火、申宮觜火,爲水之正垣也(『全遼文無‘也’)。其餘箕、壁、參、軫水,皆偏垣也。
二火者,卯宮房日、戌宮婁金,爲火之正垣。
二金者,辰宮亢金、酉宮昴日,爲金之正垣。
天地之間,水木土,隨寓而有,隨所居而可得,木滿山林,土滿寰宇,水滿江河,隨處皆有。至於金火,則不可多得焉。只有二火、二金,使金火,如木、水、土之多,則天下嘗有持刄縱火之患耳(耳,『全遼文:耶)?豈不爲世道憂?
吾有偏正垣七政論,幷日月並明說,計八篇。又有二百字眞經二十五題,詳於學士十條者,學士所舉十條,人常聞常知也。吾之「諸論」,其金火者(『全遼文無‘者’),人所未聞未知也。今以授子,子欲行之,當誓於天地鬼神,不可輕泄此天機玄妙。吾得海上異人所傳,而未嘗泄。今子得吾之所(『全遼文無‘所’)傳,若不寳而重之,必招譴於天,不可逃也。”
(耶律純)乃對師焚香設誓。三日後,國師遂以「諸論」八篇與夫「二百字眞經」二十五題授之,百拜而寳之。
大遼統和二年八月十三日,耶律純自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