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탄생의 기쁨과 축복
이사야 9:1-7
2024년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성탄은 첫 번째 성탄절에 하늘의 천사들이 말했던 것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되는 줄 믿습니다.
성탄절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귀한 날이고 가장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할 가장 행복한 날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성탄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비밀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 날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은 이 날이 행복하고 기쁘십니까?
아니면 그냥 무덤덤하고 관심도 없고 의례적으로 지키는 날입니까?
구상 시인은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지키면서도 주님을 통하여 거듭나지 않고는 누릴 수 없는 명절이 성탄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그 시를 낭독해보겠습니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구상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권능의 주님만을 모시고 있어
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그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앞에
양을 치던 목동들처럼
순수한 환희로 경배할 줄 모르옵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허영의 마귀들이 들끓고 있어
'지극히 높은 데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
그날 밤 천사들의 영원한 찬미와 축복에
귀먹어 지내고 있었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안일의 짐승만이 살고 있어
헤롯의 폭정 속, 세상에 오셔
십자가로 당신을 완성하신
그 고난의 생애엔 외면하고
부활만을 탐내 바라고 있었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 자신 거듭나지 않고선
누릴 수 없는 명절이여!
이 시에서 시인은 아직도 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성탄의 주님이 내 마음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면 70번, 아니 700번 맞이하여도 진정한 성탄절은 지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속에는 너무 많은 세상적인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성탄절은 매년 반복되어 우리 가운데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의 설교도 매년 듣던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더욱 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이 땅의 구세주로 오신 주님을 다시 한 번 모셔 들이는 성탄의 임재를 경험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었던 메시아 구세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요,
주님은 이 말씀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4장 1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잡혔음을 듣고 갈릴리로 물려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면서 오늘 본문인 이사야 9장1, 2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사야가 선포한 오늘 말씀은 메시아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사모하고 기다렸던 구세주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예수님만이 유일합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요 소망이요 생명이요 평안이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인 줄 믿습니다.
선지자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요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보존할 분이시기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요 영원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오실 때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먼저,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멸시를 당하던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으나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앗수르의 영지로 편입되어서 고통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릴리 지방을 왜 이방의 갈릴리라고 하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지역은 지형적으로 강대국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강대국의 침략의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앗수르가 강대해지면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바벨론이 강대해지면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그렇다 보니까
이방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혼혈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멸시를 받던 이방의 땅을 주님께서는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에서 메시아가 오셨고 메시아이신 주님이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우리 한반도도 예전에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러도 하등 문제가 될 것 없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얼마나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습니까?
중국이 치고 일본이 치고 소련이 치고 미국이 치고 그때마다 이방의 갈릴리처럼 나라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고
국민의 살림살이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대한민국을 축복하셨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 한반도에 메시아가 오신 때는 일반적으로 1884년으로 봅니다.
그 이전에도 간혹 복음전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메시아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 대한민국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멸시를 당하던 대한민국이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축복은 누가 뭐래도 메시아 구세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이 민족이 기독교신앙을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이 나라가 앞으로 계속적으로 세계 속에 영화로운 나라가 되고 인정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나라가 든든히 서가고 경제도 회복되고 세계 속에 인정받는 일류국가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천사도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영광스런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마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룩한 성도가 되었고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하고 높여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구세주이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구세주입니다.
그 분을 잘 믿으면 우리 개인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고 우리 가정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고 우리 민족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구세주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화롭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메시아이신 주님께서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있던 자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2절에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흑암과 사망이 연속하여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면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많은 경우 흑암에 행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육신의 쾌락을 위하여 즐기는 날로 생각하고 1차 2차 3차에 걸쳐서 술을 마셔 댑니다.
그렇게 해롭다고 하는 대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줄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난잡하게 성관계를 갖고 마약에 손을 댑니다.
우리가 죄에 빠지면 결국 죄의 삯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흑암가운데 행할 때에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세주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믿으면 흑암에 거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빛이 흑암에 행하던 자에게 비추었고 빛이 비쳤을 때 사망을 벗어나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가성에서 만났던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진짜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의 빛이 비추자 그가 흑암을 벗어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의 빛을 받은 후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빛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이 세상에서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즐거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3절에 보면,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즐거움을 더하게 하시는데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농사다운 농사를 져 본적이 없고 전쟁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이 두 가지 즐거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하면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내가 땀 흘리고 수고하여 무엇을 얻는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수고의 열매를 거둘 때 그 흐뭇함과 즐거움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 즐거움을 기드온이 미디안의 군대를 이기고 승리한 것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이 불과 3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메뚜기의 떼와 같고 해변의 모래와 같은 수많은 미디안의 군대를 이겼을 때의 그 기분이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들이 남겨 논 재산과 가축들을 거두어들일 때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경험했던 최고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즐거워했습니까?
추수의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고 점점 재산이 불어나는 즐거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직장에서 진급이 되고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여 상을 받고 장학금을 받아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는 그런 즐거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장 기쁘고 신나고 즐거운 것은 구세주이신 메시아 예수를 믿고 그 분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즐거움인 줄 믿습니다.
이것보다 더 기쁘고 더 즐거운 것은 없는 줄 믿습니다.
참다운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요 그 즐거움보다 더 신나고 기쁜 즐거움은 없는 줄 믿습니다.
메시아이신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성탄절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그리고 30년 동안 은둔의 생활을 하시고 30세가 되셨을 때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흑암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메시아 구세주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가까이 하시고, 그 분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성탄절에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