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핵심 사료: 상하이·닝보 체류 초기 서신(1854–1856), 윌리엄 번즈(William Burns)와의 순회 전도 일기, 《회상(A Retrospect)》 제5~7장, 테일러의 첫 중국 복장 착용 선언문
핵심 성경 근거: 고린도전서 9:19-23, 빌립보서 2:5-8, 요한복음 1:14, 갈라디아서 6:17, 히브리서 2:14-17
1. 서론: [SECTION 1]의 완결 — 제국주의의 성벽을 넘어선 성육신의 결단
[제1강]의 드레인사이드 훈련과 [제2강]의 덤프리즈호 기적을 통과한 스물한 살의 청년 허드슨 테일러는, 1854년 3월 1일 마침내 목적지인 중국 상하이(上海)에 발을 디뎠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과 청나라 관군의 격돌로 도시 전체가 불타오르고, 성벽 밖에는 참수당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피비린내를 풍기던 생지옥이었습니다.
그러나 갓 도착한 테일러의 영혼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포탄 소리나 전염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구 열강의 군함과 불평등 조약의 비호 아래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살아가던 서구 선교사들의 '식민지적 우월주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조계지(외국인 거주지)의 호화로운 서양식 저택에 머물며,
영국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죽 구두를 번쩍이며 거리를 걸었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서양 귀신(洋鬼子, 양구이쯔)'이라 부르며 증오와 멸시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한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복음보다 먼저 영국의 군사력과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있었다!
선교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군중은 흩어졌고,
아이들은 돌을 던졌으며, 문은 굳게 닫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저들의 가슴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들의 완악함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저들의 눈에 '외세 침략자의 옷'을 입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이 거대한 문화적·심리적 장벽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4억 중국 영혼의 심장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직시했습니다. 1855년 8월, 그는 교회사 선교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자기 부인(Self-Denial)'의 결단을 단행합니다.
2. 머리를 깎고 변발을 땋다: 1855년의 성육신적 혁명
1855년 8월 23일 밤, 테일러는 거울 앞에 앉아 중국인 이발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발사에게 자신의 금발 머리를 청나라 백성들의 방식대로 깎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3대 외적 성육신 결단]
│
==============================================================
1. 머리의 삭발과 흑색 변발(Queue):
- 이마 앞부분을 면도칼로 완전히 밀어버림
- 뒤통수에 남은 갈색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인조 땋은 머리를 이어 붙임
--------------------------------------------------------------
2. 청나라 한복(漢服)과 비단 두루마기 착용:
- 영국제 정장과 코트를 벗어 던지고 헐렁한 중국 전통 통소매 옷을 입음
- 가죽 구두를 버리고 바닥이 얇은 천 신발과 양말을 착용함
--------------------------------------------------------------
3. 젓가락과 토착 식단:
- 서양식 포크와 나이프를 버리고 젓가락을 사용하며, 현지인들의 음식을 먹음
==============================================================
│
[서구 백인의 특권 완전 상실 & 중국인과의 전인적 일체화]
이것은 단순한 옷차림의 변화(Costume Change)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국법상 대영제국의 신민이 청나라 복장을 입는 것은 영국 영사관의 치외법권적 보호를 스스로 포기하는 위험한 행위였으며, 상류층 백인 사회로부터의 파문(Excommunication)을 의미했습니다.
염색약이 피부로 스며들어 이마에 화상을 입고 피부가 짓무르는 고통 속에서도, 테일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린도전서 9장 22절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20, 22)
3. 내부와 외부의 핍박: 동료 선교사들의 조롱과 멸시
테일러가 변발을 하고 중국 옷을 입고 거리에 나타나자, 가장 맹렬한 비난을 쏟아부은 것은 불신자 중국인이 아니라 동료 서양 선교사들과 영사관 관리들이었습니다.
[테일러를 향한 2대 핍박 전선]
│
┌────────────────────────────┴────────────────────────────┐
▼ ▼
[1. 서구 선교사 사회의 정죄] [2. 영사관과 상인들의 적대]
- "영국의 명예를 더럽힌 미치광이" -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
- "야만인의 옷을 입고 복음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 영사관 출입 금지 조치
- 런던 본국 선교회에 파면 요청 서한 발송 - "영국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그를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않았고, 그를 "광대", "변절자"라 부르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가 소속되었던 '중국복음선교회(CES)'의 영국 본부 이사들조차 테일러에게 편지를 보내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경박하게 행동한다"며 후원금을 삭감하고 책망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의 일기장은 눈물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품위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냄새나는 마구간 구유에 누우시며,
죄인의 누더기 옷을 입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품위를 따지셨는가?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이 되셨다(요 1:14).
그렇다면 내가 중국인들을 얻기 위해 중국인의 옷을 입는 것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나는 영국의 신사(English Gentleman)로 남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노예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과 함께 묻히기 위해 이곳에 왔다!"
놀랍게도, 테일러가 중국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바로 그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그를 피해 도망치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호기심과 친근감을 품고 다가왔습니다.
사대부와 학자들의 집 문이 열렸고, 아녀자들과 노인들이 그를 방 안으로 초대하여 차를 대접했습니다.
군중은 더 이상 그의 서양식 옷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리지 않았고,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복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4. 윌리엄 번즈(William Burns)와의 영적 연합: 야전 전도자의 야성 장착
1855년 말부터 1856년까지, 테일러의 영적 여정에 결정적인 불을 지핀 거인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스코틀랜드 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던 윌리엄 번즈(William C. Burns) 선교사였습니다.
번즈는 1839년 스코틀랜드 킨사이스(Kilsyth)와 던디(Dundee)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기도의 거장이었습니다.
당시 번즈는 이미 중국에 들어와 수년째 사역하고 있었으나, 열세 살이나 어린 무명의 청년 테일러의 불타는 성육신적 헌신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테일러와 윌리엄 번즈의 7개월 동역]
│
==============================================================
1. 번즈의 회심적 동참:
- 테일러의 모습을 본 번즈 역시 영국 옷을 벗고 변발을 땋아 중국 옷을 입음.
--------------------------------------------------------------
2. 양쯔강 수로를 따른 복음 원정:
- 작은 나룻배를 타고 수로를 누비며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수백 개의 내륙 마을을 기습하여 전도지를 뿌리고 설교함.
--------------------------------------------------------------
3. 겟세마네의 연합 기도:
- 밤마다 나룻배 선실 바닥에 엎드려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눈물로 통곡함.
==============================================================
테일러는 훗날 번즈와의 7개월간의 동역을 회고하며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번즈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는 나에게 학문적 선교가 아니라 **'야전 복음 전도자의 야성(The Spirit of Evangelism)'**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마치 불덩이를 삼키듯 읽었고, 기도할 때는 하늘 문을 뜯어낼 듯 매달렸다.
그와 함께 수로를 다니며 전도하는 동안,
내 안에는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 해안 도시의 울타리를 깨고 저 텅 빈 내륙 18개 성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대한 영적 파도가 솟구쳐 올랐다!"
5. 닝보(寧波)에서의 핍박과 마리아 다이어(Maria Dyer)와의 거룩한 연합
1856년, 테일러는 저장성의 거점 도시 닝보(Ningbo)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두 가지 결정적인 영적 관문을 통과합니다.
1) 모든 재산의 도난과 화재: 빈손의 용광로
테일러가 임시로 머물던 숙소에 불이 나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의료 장비와 옷가지, 그리고 마지막 현금 상자까지 도둑에게 털렸습니다. 수중에 단 1푼도 남지 않고 입고 있던 중국 옷 한 벌만 남은 상태에서, 테일러는 원망 대신 무릎을 꿇고 시편 34편을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으니, 이제 주님께서 친히 내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영국과 현지의 무명 성도들을 통해 도난당한 것의 배나 되는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2) 영적 동역자 마리아 다이어와의 결혼 (1858년 1월)
닝보에서 테일러는 영국 조기 선교사의 딸로 태어나 유창한 닝보 방언을 구사하던 지혜롭고 헌신적인 여성 마리아 다이어(Maria Dyer)를 만났습니다. 마리아의 보호자였던 선교사 친척들은 변발을 하고 가난한 테일러를 "미천한 거지 선교사"라며 경멸하고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테일러의 영혼 속에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불꽃을 보았습니다. 1858년 1월,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고, 마리아는 훗날 창설될 중국내지선교회(CIM)의 가장 위대한 영적 심장이자 테일러의 목숨보다 귀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6. 3강 요약 및 적용 질문
요약: 중국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사신(The Ambassador in Chinese Dress: Incarnational Mission)은 고린도전서 9:19-23과 빌립보서 2:5-8에 입각하여, 서구 제국주의의 특권을 버리고 머리를 깎아 변발을 땋으며 현지인과 완벽히 일체화된 허드슨 테일러의 성육신적 토착화 사역을 다룬 [SECTION 1]의 완성 강의입니다. 동료 선교사들의 조롱과 영사관의 위협 속에서도 자아의 품위와 백인의 기득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윌리엄 번즈와의 동역을 통해 내륙을 향한 야전 전도자의 영성을 확립함으로써, 닫혀 있던 중국인들의 심장을 뚫어낸 성육신 선교의 영원한 모델을 세웠습니다.
적용 질문:
오늘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때, 내 안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는 '영적 우월감', '문화적 기득권', 혹은 '내 방식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인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자신의 금발 머리를 깎아내고 대영제국의 품위를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오늘 내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기꺼이 내려놓아야 할 '내 안락한 권리와 알량한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SECTION 1: 회심과 내적 훈련 — 영국 땅에서 치러진 혹독한 예비 시험](1강: 드레인사이드 훈련 / 2강: 덤프리즈호의 기적 / 3강: 성육신적 토착화)을 완벽히 통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국으로 일시 귀국한 테일러가 지도를 펴놓고 통곡하며 교회사에 유례없는 '믿음의 선교단'을 출범시키는 역사적 분수령인 [SECTION 2: 브라이튼 해변의 결단과 중국내지선교회(CIM)의 창설]로 진입합니다.
그 첫 관문은, 1865년 여름 테일러의 무릎을 꺾고 내륙 18개 성의 문을 열어젖힌 [제4강: 브라이튼(Brighton) 해변의 모래사장 — 내륙 18개 성을 품은 거룩한 항복]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