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담는 밤
박경선
물이 있고 목초가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이 사는 땅, 사막! 그 사막의 황량함을 떠올리면 힘든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유목민의 애환이 어렴풋이 그려지면서도, 황야의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멋진 백마의 모습이 앞서 달리고 있다. 그 뒤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풀밭에서 양 떼와 염소는 평화롭게 풀을 뜯으며 살고, 낙타와 사막여우는 지구에서 가장 밝은 은하수가 흐르는 사막 언덕에서 은하수가 흐르는 십자 형태의 자리에 사는 백조랑 친구 하며 살리라. 윤동주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헤며 별 하나에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고 했는데….
나도 별 하나에 아름다운 이름 하나씩 담아보고 싶어, 별이 총총한 미지의 그곳을 찾아 떠났다. 남편과 함께 대구문인협회 몽골 여행단에 합류해 여행 가방을 챙겼다.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32명이면 한 반 아이들 이름 외우듯이, 4박 6일 동안 모두의 이름을 외워 가슴에 담아오리라는 들뜸으로 신나게 출발하였다.
별 하나-
구태 가이드 선생! 몽골 젊은이인데도 한국에 와서 초등교육을 받아서인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발음으로 설명에 최선을 다하며 회원들을 챙겼다. 사막 나라에서 여우 한 마리 구해 달라는 부탁보다, 수박 한 통 구해달라는 내 부탁이 더 무서웠을까? 이 마트 저 마트 바깥 시장까지 뛰어다니며 이틀 만에 럭비공 수박 네 덩이를 구해와 주었다. 그 덕택에 럭비공 수박이 가로 잘려 쪽배로 접시에 담겨 4인 테이블 여덟 곳에 고루 올라앉았다. 허르헉이란 몽골 요리를 먹으며 다소 닝닝할 때 나눠먹는 수박 맛이라 바이킹(해적)이 되어 바다를 노 저어 가듯 시원한 맛이었다. 자상하고 덕스러운 심성으로 사는 가이드를 만나 누리는 호사에 몽골하늘의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뛰어내렸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저런 자세로 살아가야지.
별 둘-
첫 날 저녁, 물 귀한 사막 샤워장에서 겁 없이 머리를 감으려고 수도꼭지에 머리를 디밀었다. 수압이 세지 않아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나오는 바람에 엉거주춤 서 있는데, 옆자리에서 세수하던 김미선이라는 명찰을 단 그녀가 졸졸 흐르는 수돗물을 비닐봉지에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담더니 내 머리에 부어주며 머리를 감으란다. 난감한 이웃을 선뜻 도와주는 그녀의 섬섬옥수 배려가 몽골 하늘의 별 아래 또 하나의 별로 내 가슴에 담겨왔다. 나도 섬세하게 남을 돕는 배려심을 키워가야지.
별 셋-
백마 타고 초원을 달려보고 싶은 꿈은 원대하나, 헬멧을 쓰고 끈을 동여매고 우리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도 긴장되었다. 먼저 팀 손님을 태워 달리던 말들이 들어왔다. 말들은 그들을 내려놓고 연이어 우리 팀 앞으로 왔다. 쉴 틈도 없이 또 우리를 태우고 달려야 하다니…. 미안해서 은근슬쩍 가이드한테, ‘말이 많이 고단하겠다’고 했더니, 마을마다 말을 모아 놓고 교대로 쉬고 난 뒤 사람을 태워준단다. 말의 왼쪽으로 가서 안장에 올라타고 ‘미안해, 잘 부탁해요!’ 속삭이며 말 등을 살짝 긁어주었다. 왼쪽, 오른쪽 발을 걸 고리에 3/1쯤 들이밀자 한 사람이 말고삐를 서너 마리씩 잡고 질퍽거리는 길을 지났다. 질퍽거리는 길에 발을 담그고 걸어가다니, 너무 측은해보였다. 나를 태운 말이 마두금 연주에 눈물 흘리던 말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는데, 옆에서 말을 타는 김귀선 명찰을 단 그녀가 ‘긴장을 풀고 말의 꿀렁거림을 즐겨보세요.’ 하는 한 마디 격려에 잡념을 ‘확’ 놓아버렸다. 순간, 나는 말 타고 초원을 달리는 초인 (超人)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보살핌 한마디는 나를 선생일 때의 교실로 데려갔다. 늘 진도 나가기에 바빴던 선생이 겁먹고 움츠려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자상하게 격려해주었을까? 평생 교사로 살아온 나에게 그녀는 반성문을 쓰게 하는, 또 하나의 별이 되어 나를 비춰주고 있었다.
별 넷-
문인협회 김민아 실장은 기쁨조였다. 강명주 선생이 생일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사막에서 그 귀한 꽃다발을 어디서 구해와 전해주는지 그 센스와 챙김에, 눈 여겨 보게 된 여자였다. 대학생 딸 아이가 있단다. 아직 다 무르익지 않은 연륜인데도, 남자들이 밖에서 사온 소주병을 들고 와 술을 건네다가 식당 주인 눈에 띄어 ‘밖에서 사 온 술, 신고하면 벌금 나온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그녀는 얼른 달려가더니 식당 집 소주를 몇 병 사와 돌리며, 주인의 화를 가라앉혀 주는 센스며, 일 처리 능력까지 지혜롭다. 차에서 모두 지쳐 앉아 있을 때는 스킨을 들고 와 돌아다니며 얼굴에 뿌려주며 상큼한 기운을 돋우는 그녀의 센스! 자그마한 것이지만, 섬기고픈 마음이 몸에 베어 있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일이다. 마음 폭이 넓고 아름다운 그녀를 몽골에서 얻은 빛나는 큰 별로 가슴에 담았다. 그녀가 얼굴에 향수를 뿌려줄 때 심회장은 먹으려고 입을 벌린 모양이다. “하하!” 늘 기발한 발상으로 글을 쓰는 그분의 재치가 또한 우리를 즐겁게 했다.
별 다섯-
심 회장보다 그분의 곁지기가 더 별스러웠다. 몽골에서 처음 뵈었는데 서로 돕고 살며, 정겹게 정 나누고, 순수하게 사람을 이끌고 대하는 자세가 신사임당을 닮아 있다. 몽골 밤하늘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이 되어 내 가슴에 안겨 왔다.
별 여섯-
김석 가이드 선생은 식사 시간마다 회원들이 식사를 다 하도록 보살피고 나서 늘 뒷전에서 식사했다. 명승지를 갈 때는 가는 곳마다 앞장서 가서 사진대 삼발이를 펼쳐두고 기념사진을 찍어대고, 보살피는 열성까지,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 가서 보살피는 모양새라서 ‘옛 시절 우리 선생들처럼 참 힘들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다.
별 일곱-
호텔에서 자는 밤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게르에서의 첫날밤은 모두가 동태 잠을 잤다. 새벽녘에 여기저기 게르를 돌며 불을 피워 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들끼리 자는 게르에 불 피워주러 온 이는 그녀들의 남편이 아니라 신승원 선생이었다는 사모님의 폭로에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남의 아내들이라도 고국에 두고 온 아내마냥 보살펴준 신승원 선생의 자상한 배려심은 또 하나 몽골의 별이 되었다.
이렇듯, 이번 여행에서 만난 32분이 모두 별처럼 빛나서 이분들의 이름을 모두 외워 내 가슴에 32개의 별로 담아 넣었다.
카톡방에 저마다 담아 올린 사진들 주제도 따스하였다. 물 없는 사막에서도 꽃을 피워 웃고 있는 기특한 풀꽃들을 갈무리해 올린 시인! 사막을 달리는 말을 위주로 찍은 작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데 도움 될 자료 위주로 찍은 학구파. 내가 담아 올린 사진은 ‘다 같이 함께’가 주제다. 식사 때마다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들, 좋은 경치 앞에서 혼자 서성이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나는 여럿이 함께 찍은 사진이 좋더라.’며 무리 지어 사진 찍게 하고, 지나며 스치며 소소한 사람 향기 나는 포즈들을 갈무리했다. 얄트산 트레킹 때, 물기 적은 사막 땅에 얼굴 들고 펴있는 풀꽃을 보고 하도 기특하여 풀꽃 앞에 무릎 꿇고 들여다보았다. 게르 집에 짐 가방을 들어주는 엄마를 따라다니는 꼬마여자 아이는 몽골 땅에서 만난 더 귀한 꽃이었다. 준비해 간 사탕 봉지를 풀고 더 줄 것이 없자 얼른 안아주었다. 몽골 어린이들을 만나 내가 쓴 <천막 학교의 꿈> 동화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굿네이버스 봉사 활동을 딸 학교로 가야 했다.
다음 날 몽골 역사박물관에 갔을 때 상상으로만 그려보던 마두금을 만나 눈여겨보았다. 나무로 만든 몸통 윗부분에 긴 자루가 꽂혀 있고, 머리 부분에 말머리가 조각되어 있어서 마두금이라고 한단다. 우리나라 해금과 비슷하지만, 사각형 울림통이 있는 게 좀 다르다. 줄은 두 줄인데 한 줄은 수말의 꼬리 130가닥, 한 줄은 암말의 꼬리 105가닥을 꼬아 만들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초원의 첼로’라고도 한단다. 암말이 산통 후유증으로 새끼에게 젖 주기를 거부하는 일이 있을 때 마두금을 연주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눈물을 머금고 새끼에게 젖을 물리게 되는 악기라니 그 소리가 얼마나 애처롭고 애절할까? 궁금했는데 연이어 민속 공연을 볼 때, 어미 말과 새끼 말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화면 앞에서 마두금을 든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였다. 현을 무릎 앞에 비스듬히 세우고 왼 손가락으로 줄을 누른 다음 오른손에 활을 쥐고 문지르는데 애절한 음률이 심장을 문지르는 듯, 내 영혼을 위로하는 연주처럼 들렸다. 그 옆에는 결혼 전에 죽은 18세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가 놓여 있었다. 깡(kang-다리) 링부(ling bu-피리)라는 뜻으로 불리는 다리뼈 피리였다. 그녀의 영혼이 살아 저 피리 소리를 낸다면, 못다 산 한()이 스며들어 마두금 연주보다 더 애절하리라. 먼저 간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살아 있는 우리는 순간순간을 숙연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6박 4일 일정을 마치고 밤 한시 비행기를 타러 왔는데 비행기 대합실에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일이 생겼다. 비행기 고장 수리 중인데 언제 탑승하게 될 지도 모른단다. 그 바람에 김장 비닐 같은 큰 비닐 포대기 한 장씩 받은 승객들이 그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대합실 바닥에 나란히 누운 모습은 시장에 팔려 나온 동태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 틈에 나는 낮에 역사박물관에서 사온 <몽골 비사>를 들쳐보았는데 징기스칸의 일생을 적은 책이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그는 죽어서 별이 되었을까?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한 줌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새벽 5시에 고장 수리가 완료되어 탑승하라는 방송이 나와 반가웠다. 잘못 하면 추락사로 황천 갈 수도 있었는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모두 별이 되는 여행이었다. 하늘의 별뿐 아니라 함께 간 별들의 향기까지 가득 담아오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날을 살면서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23.9.27.2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