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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노송은 언제나 푸른 꿈을 꾸었다.
여명(필명) / 김진호 시인 수필가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산실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일평생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삶의 보람과 행복을 추구(追求)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 벌써 80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내 삶 뒤를 돌아보니 격세지감으로 주마등처럼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연 지난날 나는 내 생각과 가지관이 옳았을까? 반문하고 생각하면서 지난날 "나는 내 삶의 철칙은 정직한 삶을 추구했고 공적인 일은 청렴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여 반드시 원칙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철칙은 옳았을까 반문해 본다.
나는 내 철칙을 지켜서일까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고, 수많은 공적인 일에 추대되어 수장이나 고문직을 수행했다. 고문직이나 대표 수장으로 일할 때는 '솔선수범으로 사익이 아닌 공익'으로 일을 처리하여 지역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아 공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공적인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풍파가 떠나질 않았다. 사업에 관한 일엔 자기의 이익을 위한 부도덕 사익을 가진 자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수장 대표직을 하면서 걸림 돌은 사익을 취하려는 자들을 경계하고 저지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수장의 가장 큰 ‘딜레마’이었다.” 공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선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하고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여 그 누구보다도 컴퓨터는 완벽하게 다룰 줄 안다. 그리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할 땐 진행 절차를 철저히 분석하고 절차와 법리를 완벽하게 하자가 없다고 판단될 때만이 일을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절차법과 법리를 알아야 하기에 법리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적 일엔 힘 있는 자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 거부하면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결국은 법적 다툼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힘 있는 자들을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선 '승소 전략전술'을 연구하여 잘못이 없는 일엔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여 공적인 일에 수많은 소송에서 승소하였다.
승소 전략전술을 터득한 노하우로 나중에는 전국 사법피해자 단체에서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고문 자격으로 사회운동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고, 마음의 정서를 위해 문학을 공부하게 되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고 현명한 지혜가 생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자성의 길잡이가 되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심성이 착하고 범죄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러서 술도 못해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선 산책을 하고 음악을 좋아하여 피아노를 배워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 기분전환이 되고 정서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기본 소양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필요한 필수는 독학으로 배우고 읽혀서 끈질긴 인내심으로 내 것으로 만들고 마는 저력은 있었나 보다.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할 수 있다는 속언처럼 다방면으로 공부를 했다."
공적인 일을 하다 보면 사익을 위해 임원직을 하려는 자들이 많다. 이런 자들이 임원이 되면 자기 이익을 위한 잿밥에만 눈을 돌리고 공익은 안중에도 없다. 이러다 보니 부도덕한 임원들이 청탁을 하게 되고 총책임자 수장이 자기 이익에 힘을 실어주질 않으면 임원회에서 항상 반대만을 일삼고 일처리에 애로가 많았다.
그러나 40여 년 동안 수많은 공적인 일을 함에 있어 그런 사람을 제압하는 노하우가 축척이 되어 그 들을 꼼짝없이 굴복시키는 비법이 생겼다. "임원회의 안건 처리는 임원 발의자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장은 반대만 일삼는 자들을 제압하는 길은 절차법에 하자가 없어야 하고 수장이 책임질 수 있는 철저한 분석 하여 확고부동한 완벽하게 하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수장은 책임 약속을 하고 안건을 처리한다. 만약에 사익을 취하는 자가 상정한 안건을 반대할 때는 수장은 대안을 제시하게 하고 그 대안은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수장이 상정한 안건은 책임진다고 했으니 반대한 임원이 제시한 대안 안건은 책임지도록 하면 꼬리를 내린다. 사실상 사익을 취하는 반대 임원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대안이기 때문에 꼬리를 내린다.
나는 임원회의에서 수장인 내가 안건 상정한 것은 자신이 있고 절차에 하자가 없기 때문에 책임진다는 약속하고 이런 논리로 모두 다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따라서 하자가 없기 때문에 모두 다 통과된 안건은 공익으로 주무관청 등 허가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인 법인 대표 수장은 회원들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신뢰는 수장의 일처리가 정확하게 신속하고 회원들의 이익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실상 수장은 회원들에게 공익으로 성공하여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공적인 일엔 공익을 위해 일했을 뿐 사익을 탐내진 않았으며 단 한 점 부끄럼 없이 양심을 걸고 수행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일까 공적인 일에 나를 추대하거나 선거에서 당선되어 수많은 법인 수장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공적인 일에 내 몸을 돌보지 못해서일까 남자들이 흔히 발생하는 3개월 전 전립선암 3기란 진단으로 다행히도 다른 기관에 전이가 되질 않아 삼성 서울 병원에서 전립선 암 전문의 교수님의 로봇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PSA 혈액 암 수치가 0.01로 완벽하게 제거되었다는 교수님은 친절하게 설명 말씀에 이 글을 통하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수님께서 깨끗이 제거되었으니 항암 치료는 안 해도 된다는 말씀 하셨으나, 그러나 암 균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으니 아내와 아들이 재발을 방지를 위해 비타민(항암치료) 주사를 맞아야 된다며 간청을 하여 마침 전주에 비타민 항암치료 전문의가 있어 일주일에 2번씩 항암 주사를 맞고 있다.
수많은 공적인 일을 수행하다 보니 벌써 나의 인생에서 황혼에 접어들었고 병마와 투병으로 인하여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과연 나는 보람된 삶을 살았는지 내 뒤를 다시 한번 돌아보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수많은 공적인 수장의 일을 하면서 절망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밝은 희망을 찾아준 보람도 있었지만,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 자신 자성의 자책을 하면서 깊이 성찰하고 상량할 따름이다. 과연 나는 “만인에게 상대를 배려하고 정당한 삶은 살았는가?” 따라서 나 스스로 반문해 본다.
지난날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으로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고 노년기 황혼 길에 접어들었다. 나는 해방 직후 46년 혼란기에 태어나 유년시절 6.25를 겪었고 국난 속에 국토는 폐허 되었고, 그 당시는 국민 누구나 할 것 없이 굶주림 속에 허덕이던 고난을 겪었으나 폐허 속에서도 한민족의 단결심으로 세계 속에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나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묻는다면 국난 속에 태어나 주어진 일에 열심히 일했고, “나는 북파공작원으로서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특수임무수행‘으로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국가를 위해 조금은 헌신했다고 생각해 본다.” 이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암 치료 요양을 전념하고 한 세상 조용히 마무리 준비하려 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하고 지혜롭게 똑똑하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님들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국난 속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고관대작들이 아니라 각처에서 의병을 일으켜 외침을 무찌른 것은 민초들이 이었다. 우리 민족 단결 힘은 전 세계어서 극찬했고, 올림픽, 월드컵, 국제 대회를 질서 정연하게 그 어느 선진국보다 세계에서 가장 튀어 난 단합 힘을 발휘했고, IMF, 서해 기름유출 사고 등 이 모두가 민초들이 단합된 힘으로 국난을 극복했다. 그러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지도층인 검찰과 사법부 그리고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선진국 석학들이 한국 경제를 찬사를 하고 있지만, 언론과 정치권 검찰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와 견해를 하고 있어 참으로 슬픔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내 인생 마감하는 후반기 황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내 소망 하나는 언론과 위정자 권력자들이여!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를 위해 '솔선수범' 하시어 "우리 후손들을 위해 세계 속에 우뚝 선 조국이 천만년 대길로 도약하길 바랄 뿐이다."
다음은 필자가 40여 년 동안 수많은 공적인 일을 해 봤지만 돈 앞에 비굴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실체의 실화를 열거해 본다.
- 다 음 -
1. 인간의 속성 1 (A 백화점 입점주 영업 실체 실화)
나는 A 백화점이 부도로 인하여 입점주 채권에 관하여 총책임을 지고 일을 하게 되었다. 백화점이 당시 IMF 국가 부도 상태로 인하여 국가 전체 기업들이 직원 감축 등 경영 긴축 비상체제로 경영할 무렵 그 여파로 A백화점도 은행 채권 상환 되지 못해 A백화점은 입점 점주 모두가 임대 입점으로 입대금 모두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점주들은 임대금 채권 소멸위기에 접어들게 되자 입점주들이 채권 위원회를 구성하여 나를 채권에 관하여 총괄 법적 대응 대표로 선정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점주들이 가장 적은 피해를 입히지 않고 점주들의 채권 확보 방법이 무엇일까 법리 검토 한 결과 백화점 은행 채권단과 협의하고 법원에 화의 채권 신청하여 3년 거치 5년 상환으로 법원 화의 신청하게 되어 화의 채권으로 확정받는 것이 가장 입점 점주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5년 동안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화의 채권으로 확정받는다는 것은 은행채권단과 합의가 거의 불가능했고 내가 볼 땐 당시 A백화점이 법원으로부터 화의채권 개시 성립이 되어 3년 거치 5년 상환 확정받은 것은 우리 A 백화점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반전이 생긴다. 인간의 검은 탈을쓴 입점주 채권 위원 15명 중 10여 명이 은행 채권단과 유착이 되어 법원 성립 화의 채권을 2년 만에 이행을 파기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10여 명 위원 자기들끼리 은행 채권단과 검은 커넥션 유착으로 입점주 영업 5년 간의 영업이 2년간으로 축소되어 입점주들 모두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위원 10명이 자기들 이익을 위한 검은 속내가 500여 명의 입점주가 피해를 본 사례였다. 나는 입점주 채권 위원 총대표로서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은행 책권단과 유착으로 수포로 가는 입점주 영업 5년이 2년 만에 축소되어 입점주 입차금이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백화점이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되었다. 몇몇 사람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500여 명의 입점주들이 피해를 본 것은 이것이 인간의 돈 앞에 남이 죽든 말든 자기만 이익으로 살면 된다는 인간의 속성 양심도 없고 철면피 부끄럼도 없는 단면을 보았다.
2. 인간의 속성 2 (B 백화점 입점주 영업 실체 실화)
지방에서 83년도에 최초로 백화점을 오픈했으며 입점주 모두 임대로 영업을 했다. 사실상 백화점 개점할 당시 백화점 건축비가 엄청난 비용으로 백화점주는 부도로 인하여 개점할 수 없어 건축회사에 대물로 설정하여 개점하게 되었다. 건축비가 많이 든 것은 백화점 건물은 영업층은 4층이고 4층 위에 18층 아파트 건물을 짓기로 하였고 또한 백화점 앞 도로 800m에 지하상가로 설계되어 기초공사 시공비와 도로에 지하상가로 시공 중 3번 정도나 문어 졌고 시공 중 무너진 이유는 지하 터파기에서 지하수가 엄청난 물이 나와 시공하지 못했고 백화점 4층 위에 18층 아파트 시공은 주무관청인 시청에서 미관상 아파트는 시공할 수 없다고 하여 시공 허가가 중지된바 사실상 지하상가 실패 아파트 시공 할 수 없어 사실상 기초 공사 시공비가 가중되었고, 이로 인하여 백화점주는 부도로 인하여 시공사에게 대물건으로 설정하고 개점하게 된 것이다.
입점주들은 모두 다 임대로 입점하여 영업하게 되었으나 입점주 들은 사실상 부도난 백화점인 줄 모르고 입점하여 3년 정도 영업하던 중 시공사가 백화점 경매로 인하여 입점주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으며 경매로 넘어가면 입점주 임대금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 상태에 노였다. 입점 상인들은 상인 번영회를 구성하여 경매 대책을 하기 위해 비상체제로 가기 위해 번영회 구성 중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번영회 구성 방해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입점주 모두가 경매를 막아내야 한다는 시각이 급박하여 협조하여 어렵지만 번영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나는 번영회 총무로 일을 하게 되었다. 경매를 막기 위한 총체적인 직무를 하게 되었고 낯밤을 가리지 않고 서점에 가서 경매등 그 외 입점주 채권에 관한 법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하게 된 것은 채권 채무는 당사자 책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백화점 입점주들의 임차금은 시공사에게 시공비 일부 지급된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법원 경매에 입점주 채권으로 쟁점이 되었고 이것으로 걸림돌이 되어 시공사와 번영회 같아 수차례 협상을 하여 시공비를 3년 거치 7년 상황으로 최종 협상하여 그 당시는 경제가 아주 좋아 영업도 잘 되어 10년 정도 영업하면서 시공사 채권을 입점주들이 변제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10여 년 동안 영업하기로 합의가 되었으나 입점주들이 7년 여동안 영업하면서 시공사 채권을 변제하게 되었다. 문제는 입점주들이 10년 동안 영원권을 가지고 있으나 7년 후 채권을 다 변제하고 나니 채권을 다 회수했고 입점주들도 임차금을 다 확보했으므로 백화점주가 철수 하란 통보를 한 것이었다. 영업기간이 3년이나 남아 있으니 입점주들은 철수할 수 없다고 맞섰으나 백화점주가 번영회 위원 30명 중 20여 명을 포섭하여 번영회를 와해시키는 우를 범하여 결국은 번영회는 무산되는 사태가 되어 나는 총무로써 백방으로 해결 방법을 강구했으나 역 부족으로 결국은 백화점 측에서 단전 단수로 인하여 철 수 하게 되었다. 번영회 위원들이 똘똘 뭉친다면 3년은 더 영업할 수 있었으나 몇몇이 자기 이익으로 매수된 상황으로 의심되었고 입점주를 배신하여 입점주 들이 쫓겨나는
안타가운 현실이 되었다. 몇몇이 자기 이익을 위해 포섭되어 입점주를 배신하였고 나는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역부족으로 배신자들의 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 인간의 속성 3 (C백화점 입점주 영업 실체 실화)
나는 B 백화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마침 대형쇼핑 약 건평이 10,000여 평이나 되는 대형쇼핑 백화점이 분양으로 개점을 앞두고 있어 B 백화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B백화점 입점주들이 대부분 C백화점에 분양 입점을 하였다. 그러나 백화점 관리권을 가지고 다툼이 있었으나 C백화점이 대형매장을 수영장, 헬스장 등을 확보하고 매장 과반을 넘겨 관리권은 C백화점 시공자가 운영권을 가지고 영업을 하게 되었으나 관리권을 가지고 분양 입점주와 관리비 등 여러 가지 운영에 대한 마찰이 많았다. 개점 후 3년 만에 백화점 시공자가 부도로 인하여 입점주들이 나를 A, B 백화점 부도로 인한 일처리 경험이 많다 해서 입점주들이 나를 번영회 회장으로 추대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C백화점 시공자가 부도가 낯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경영권을 내놓지 않고 관리를 하여 어절수 없이 나는 불법행위 법리를 검토하여 고소를 하게 되었고 그러나 건축주가 손을 들고 고소 취하 하는 조건으로 관리권을 넘겨주어 입점주들이 관리권을 넘겨받아 사단법인을 설립하여 백화점을 입점주들이 관리권을 운영했고 초대 대표 이사로 나를 만장일치로 추대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관리권을 넘겨받아 운영을 하다 보니 대형 매장 수영장, 헬스클럽 등 대형매장에서 그들끼리 합심하여 관리비를 체납하고 (수억 원을 11억여 원 체납) 그들은 관리비를 체납하면서 재력으로 입점주를 포섭하여 자기들 사람으로 만들어 관리권 대표인 나를 괜스레 시비를 걸고 난동을 버리는 등 혼란 속에 어쩔 수 없이 대표 이사를 내놓고 그 들과 싸워 받자 내 자손심에 상처를 받아 그리고 포섭된 입점주들이 괘심하고 더 이상 다툼이 싫어 내놓고 나는 매장도 영업하지 않고 비공실로 나와 버렸다.
나는 백화점이 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고 지각없는 점주들이 그들에게 술 사주고 밥 사주고 꾐에 넘어간 농간에 놀아나 결국은 자기들도 망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 후로 그 백화점을 공실 매장이 많고 지금은 임점주 들은 영업을 포기 상태로 망한 백화점으로 남게 되었다. 인간들은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안타가운 현실에 지금도 안타가 움을 금치 못한다.
4. 인간의 속성 4 (아파트 재건축 조합 실체 실화)
나는 백화점 영업을 포기하고 쉬고 있던 차에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37,000여 평 되는 대형 아파트가 노우화로 재건축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아파트 자치관리회에서 이사직으로 직무를 수행했으며 나는 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주거환경정비법 토대로 법리 검토를 하고 1,300여 세대 주민들의 재건축 동의를 받기 위해 등기 우편으로 세대주에게 재건축 추진 동의서 내용증명 통지를 보내여 90% 동의를 얻어 주무관청인 시청에 재건축 추진신청을 하여 조합준비 단계에서 주민 100% 승인을 받게 되어 재건축 추진위원회 위원 100명으로 구성하여 조합을 설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내가 추진위원장으로 추대되어 2년여 만에 조합을 설립하여 주무관청에 허가를 받았고 대형 아파트 재건축 시공을 하기 위해선 안전하게 재건축을 완공하기 위해 만에 하나 시공사가 시공 중 부도가 나면 낭패를 보기 때문에 시공사 선정을 국내에서 1급 브랜드 시공사를 기준으로 컨소시엄으로 2개 회사를 선정하였다. 조합을 설립 후 나는 조합장으로 만장일치로 추대되어 조합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재건축 책임 수석인 조합장이 가장 어려움은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는데 우리 아파트 같은 규모의 재건축 비용이 (약 150억 여원 다른 아파트 경우) 그러나 우리 아파트는 조합설립하는 비용이 약7억여원으로 조합을 설립하여전국 재건축 추진 연합회에서 거짓말이라고 말을 했었다. 설립 7억으로 조합을 설립하게 된 그 이유는?내가 몸소 이리 뛰고 저리뛰고 절약할 수 있는 역건으로 법리 공부를 해 가면서 법적인 문제는 내 혼자 다 해결했으며 허가 절차에 주무관청 허가 위원회의 설득과 돈 많이 들어가는 허가 절차엔 항상 돈이 들어가는 역건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그런 요소는 다 차단하고 주무관청에서 또한 허가 절차 행정처에 문제를 절차법에 하자 없이 충분히 법리 검토하여 하자 없이 준비 했다. 그러나 허가처인 교육청 심의위원회 시위원심의위원 등 허가 위원회 사실상 교제비 노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푼도 들이지 않고 하자 없이 준비 하여 허가 절차을 밟아갔다. 그러다 보니 허가 위원회에서 믿보여 걸림돌이 많았다. 나는 그런땐 기자 회견을 열어 허가위원회의 잘못된 것을 기자회견에서 상대방인 허가절차 위원회도 참석토록 공문도 보내고 기자 회견을 했으나 누가 하나도 참석하지 않았고 나는 허가처의 몽리를 규탄하고 허가처의 잘못된 형태가 대서특필이 되었고 그 후론 허가처의 몽리가 없어 순조롭게 허가 절차를 밟아 조합을 설립을 하게 되었다.
또한 어려움은 조합설립 운영자금이 부족하여 임원들의 연대 책임으로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단 한 사람의 임원이 동참을 하지 않아 내가 내 재산을 담보로 은행 차입금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운영자금이 없어 조합설립 자체가 불가능하였으나 그래도 내가 혼자 어쩔 수 없이 은행 차입을 하여 다행히 조합을 설립했고 시공사를 선정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조합을 설립하고 시공사를 선정한바 시공사와 본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수차례 협의했으나 합의를 보지 못했고 계약서는 사회 통념상 쌍방의 이익으로 합의를 해야 하는데 시공사의 일방적 주장만 앞세워 계약을 체결하려고만 했다. 나는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으로써 사회 통념상 반하는 계약을 할 수 없어 계약체결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공사는 조합 임원들을 포섭하고 시공사에 회유당하는 비양심적 소유주들에게 반하는 양심을 저버리고 시공사에게 이익으로 계약을 체결하려는 짓 거리를 하려 했으나 나는 조합장으로써 주민들의 불이익을 당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대다수 임원들이 시공사의 농간에 놀아나고 결국은 조합장인 나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재건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거 법리 절차법에 의거 근거로 재건축 허가 진행을 하게 되어있다. 주거환경법엔 조합장 해임은 조합장이 비리나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조합원 과반수 참석과 참석자 과반 수 동의만 받으러 조합장이 해임이 되게 되어 있다. 내 조합장을 해임하기 위해 임원들을 포섭하여 수십억여 원의 돈으로 조합원을 회유하여 조합장 해임 총회를 개최하여 나를 해임을 시켰다. 나는 해임총회에서 나를 해임하는 것은 좋으나 그 어느 농간에 놀아나면 주민 여러분들이 엄청난 손해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잘하시라 ~!!! 말하고 언젠가는 주민 여러분들이 판단을 잘 못하여 조합장을 해임하면 피눈물을 흘릴 수 있으므로 새 조합장 임원들이 구성되면 조합원들이 철저히 관리 감독을 하시라고 말하고 협력해서 재건축이 성공적으로 완공될 수 있도록 바란다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내 조합장 해임 당한 후 결론은?
내 조합장 해임당한 후 8년이 지났으나 사실상 말성만 많고 여러 가지 불쌍사가 되어 허가 절차가 삐덕거리고 있다 나는 내가 조합장 해임당한 후 내가 말한대로 결국은 조합원들이 피눈물 흘리는 지경으로 재건축 완공이 언제 될지 불투명한 상태가 되고 있다. 나는 해임 당한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를 매각하였다. 매각 이유는 사실상 나를 해임에 동참한 조합원들도 보기 싫고 또한 그 이외 조합원들이 잘못 돌아가는 조합장 임원들의 허가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관계로 전화로 매일 전 조합장이 좀 나서서 수습하라고 전화가 와 나는 더 이상 재건축에 회의를 늦겨 조합원들의 전화받기 싫어 내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였다. 지분을 매각하니 이제는 전화하는 사람도 없어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 따지고 보면 "조합원들의 자업자득으로 자기 자신들이 전 조합장을 해임한 행위가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하면서 어쩌든 한때는 전 조합장으로 안타가운 현실에 조합원들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한 데 대하여 자기들이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해임 후 8년이나 지났으나 언제 재건축이 완공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탐욕과 농간에 넘어간 어리석은 조합원들의 말로가 한 마디로 '자업자득'이 아니던가?"
5. 전국 민, 형사 사법피해자 단체 고문직 추대된 동기
나는 사실상 지난날 공적인 대표직 아니면 고문직을 하면서 법적인 불상사가 발생하여 민, 형사에 관하여 법리를 공부를 할 수밖에 없어 30여 년 동안 이길 수 있는 전략 전술을 치밀하게 공부하여 내가 잘못이 없다면 이길 수 있는 전법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 형사건은 당사자가 재판에 참석할 수 있고 민사건은 변호사 없이 변론할 수 있어 그에 대한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 실체와 권력자 또한 돈 많은 사람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잘 못이 없다면 나는 변호사 없이 나 홀로 변론하여 반드시 단 한 번도 실패 없이 승소하였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이유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판사와 상대 변호사와 의 유착이 된다면 우리나라 민, 형사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 없이 나 홀로 변론하여 이길 수 있는 전략 전술을 철저히 준비하여 패소 없이 18건이나 다 이길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형사건 민사건은 사실상 재판상 규정은 상식에 반하는 것은 없고 형사는 재판상 규정과 민사건도 소송 규정 와 규칙이 아주 잘 되었다.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 전술이란?
첫 번째 :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길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여 재판 중 증거 채택을 받는 것이다.
두 번째 : 재판 후 반드시 변론조서가 1주일 후면 재판부에 정리가 되어 1주일 후 반드시 변론조서를 열람 복사를 해야 한다. 변론조서가 잘 기재가 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잘 못되었다면 다음 변론 기일에 정정을 요구한다.
세 번째 : 재판부가 불공한 재판이 진행된다면 반드시 소송규정 규칙으로 따져서 공정한 재판이 진행하도록 바로잡는다. 그 외 재판 진행 중 변론 중에 그에 따른 수많은 이길 수 있는 그때그때 전략 전술과 변론서를 작성하여 재판에 대응할 수 있는 변론 준비를 철저히 준비하여 재판을 한다.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전략 전술 변론하여 소송에서 이기는 소문이 전국 사법피해자 단체에서 여러 차례 초청하여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 전술을 강연을 하다 보니 단체 회원들이 고문으로 추대되어 사법개혁 운동 활동하게 되었다. 전국 사법피해자 단체에 고문으로 추대된 사람은 판사출신 그리고 법대교수등 이런 분들이 고문으로 추대되었으나 그런 전문가 아닌 사람이 고문으로 추대된 것은 내가 처음이었고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기법은 법전문가도 할 수 없는 전략 전술이 전국에서 유명세를 가지게 된 동기로 전국 사법피해자 단체에서 일할 수 있었고 억울한 사법피해자를 광명을 찾아준 것은 사명감으로 나에겐 보람으로 생각한다. 사법개혁을 위한 민, 형사건의부당한 짓거리를 개선토록 사법개혁 운동을 하였으나 썩어빠진 일부 검, 판사 처벌 운동을 벌였지만 지금까지 개선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법치국가에서 과연 권력자와 민초들이 평등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 지금까지 개혁 운동을 하고 있지만 공메아리만 메아리 칠뿐 개혁은 정말 어렵다는 현실에 분통만 쳐질 뿐이다.
6. 시, 수필 문학 작가가 된 배경은?
나는 중학교 때부터 글 쓰기를 좋아했고 글 쓰는 솜씨가 있었나 보다 내가 중학교 60~80년 시절 그 당시는 시골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면 신부집에서 결혼 혼례를 올리는데 시골 마을은 축제장으로 마을분들이 다 모여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곤 했다. 전통 혼례지만 격식과 갖출 건 다 갖추고 신부 측 마을에서 혼례를 치르는데 결혼 축사는 신랑 측에서 답사 신부 측에서 하는데 나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글재주가 있어서인지 마을 사람들이 축사 답사를 내게 부탁하여 축사 답사 원고를 작성하여 읽고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당시 60~80년대에는 전국 웅변대회가 활발히 웅변대회가 많았다. 그러나 보니 내가 웅변 원고를 많이 써주었다.
중학교 때부터 글을 쓰게 되자 전국 창작예술인 협회에서 시, 수필가로 등단하여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문학 협회의 고문직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쓰고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착하고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 사회생활에 모범되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범죄자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를 좋아했만 사회생활에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다 보니 수많은 공적인 단체나 모임에서 회장 아니면 고문직으로 추대되어 공적이 대표를 많이 하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나 나이 이젠 80분 턱에 접어들어서 그동안 나 삶을 돌아볼때 나름대로 보람된 활동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내 뒤를 돌아볼때 과연 지인들 상대방에게 호의적인 사람으로만 비쳐졌을까 반문도 해본다. 나도 한 인간으로써 인간의 속성을 성찰하면서 살았을까 생각하면서 황혼의 마지막 삶을 아름답게 생을 마감 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인간의 속성은 변덕스럽다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자기 성찰을 컨트롤( control)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다고 생각지 않지만 나름대로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항상 자제하려는 글을 쓰면서 자성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은 나의 삶이 성숙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나도 왜 허물이 없겠는가 반문하면서 나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괴리는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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