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8. 일심봉천 (一心奉天) - 3
23 남자 청년 식구가 쩔쩔매면서 갖다 준 밥상에는 물에 삶아 건진 국수 두 사발과 맨 간장과 김치가 있었는데 그것도 옆방에서 얻어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 먹어 보는 식사다. 우리 식구들은 이렇게 각처에서 못 먹고 헐벗고 고생하면서 수고를 한다.
24 어떤 식구는 40일간 미숫가루만 먹고 어떤 식구는 배가 고파서 개밥을 먹었다고 한다. 또 어떤 식구는 밀가루 죽을 멀겋게 끓여 위에 묽은 것은 아침에 먹고 밑에 좀 가라앉아 진한 것은 저녁에 먹는 등 수많은 고생의 일화를 남기고 있다.
25 그런 것에 비하면 이 국수가 얼마나 훌륭한 식사인가. 국수를 간장에 찍어서 감사히 먹었다. 시장할까 봐 두 사발이나 주었지만 한 사발을 먹으니까 충분히 배가 불렀다. 서투른 남자 청년이 애써 만들어 준 것이니 더 미안하고 감사했다.
26 충청남북도 순회를 마치고, 전북을 거쳐 전남을 순회할 때 완도에 가기 직전, 통호리에 약 30여 명 모인 집회에서 말씀을 해주고 그날 밤 어느 부인식구 집에서 자게 되었다. 이분은 아이들이 일곱이나 되는 과부였다.
27 그때가 12월 초였는데 큰 방에 여덟 식구가 이불 하나를 덮고 자는데 나도 거기에 끼어 자게 됐다. 나는 내 오버를 덮고 발만 그들 이불 속에 넣고 잤다. 28 다음날 장덕희 권사님이 인도하고 있는 완도교회를 가는데, 어젯밤에 자던 집에서 이가 올라 버스 속에서 온몸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속으로 이가 기어다니는 것을 느꼈지만 버스 속에서 어찌할 바가 없었다. 다만 장 권사님을 찾아가면 즉시 옷을 갈아입고 이를 잡아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29 그날 아침 강순애씨를 만나 같이 버스를 타고 완도에 갔다. 완도가 작은 섬인 줄 알았는데, 우리 교회를 찾기 위해 강순애씨와 둘이서 두어 시간 헤매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겨우 찾았다.
30 교회에 들어가자마자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예배 시간이 되고 식구들이 모여 있어서 곧 성전으로 나가 예배를 보고 또 화동의 시간을 갖고 나서야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호롱불 밑에서 이를 잡았다. 옷을 갈아입은 뒤에도 한동안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장 권사님을 만나면 그때 이 잡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웃으시곤 한다.
31 1964년 10월 1일부터 전국순회부흥회가 시작되었다. 나와 한 조(組)로서는 한인수, 김성일 양씨였다. 우리가 맡은 지역은 의정부, 천안, 김제, 목포, 마산, 포항, 충주, 홍천, 8개 시읍을 한 곳에서 일주일씩 머무르면서 전도부흥회를 했는데 6개월 동안 계속했다. 부흥회를 하는 동안 성지 기도와 성초를 켜고 정성 들이며 전도에 힘썼다. 32 뜻길을 따라온 지 30년 가까운 동안 말 못 할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 길이 참이라는 것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이다. 그래서 나는 말씀에 취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3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지만 입교 이후 나는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리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영원성을 띤 이 막중한 뜻길에서 일심봉천(一心奉天)만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