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253
■ 1부 황하의 영웅 (253)
제4권 영웅의 길
제 31장 유랑의 시작 (10)
이보다 더 초라하고 비참할 수 있을까?
30여 명으로 줄어든 중이(重耳) 일행은 다 해어진 옷에 터진 신발을 신고 천천히 마을로 들어섰다.
하루종일 걸었지만 음식 구경을 하지 못했다.
좀처럼 마을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중에 마을을 하나 발견했다.
아직 위(衛)나라 영토는 아니었다.
중이(重耳)의 가신들은 마을로 들어서자 각자 흩어져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굶어야 했다.
음식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혼자 먹지 않고 일단 돌아와 다른 사람들과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다.
남는 것은 다음 마을로 들어설 때까지의 비상 식량으로 사용된다.
이쯤 되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신세다.
어떤 마을에서는 중이(重耳) 일행의 몰골을 보고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그런 날은 굶어야 했고, 바위 밑에서 잠을 자야 했다.
들풀을 뜯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중이(重耳)는 의연했다.
배가 고파도 배고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처량한 마음이 들어도 처량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조금만 참아라. 황하만 건너면 위나라 수도 초구(楚丘)가 아닌가.
위(衛)나라는 주왕실로 인정받은 제후국.
진(晉)과는 같은 피를 나눈 희성(姬姓)이다.
적어도 중이(重耳) 일행을 진(晉)나라 공자로서 대우해줄 것이다.
중이(重耳)는 열심히 가신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가신들은 중이의 이 말을 믿고 열심히 걸었고, 열심히 구걸했다.
마침내 황하가 보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누런 물결.
- 이 강만 건너면 고생 끝이다.
모두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황하를 건너자 저편으로 초구성(楚丘城)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폐허가 되었던 그곳.
제환공(齊桓公)이 위나라를 위해 초구성을 쌓아주었다.
"아아 -!“
기쁨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초구의 성문 앞에 섰을 때 중이(重耳)와 그 가신들은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섰다.
이미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호언(狐偃)이 악을 쓰듯 말했다.
"우리는 진(晉)나라 공자 중이와 그 가신들이오.
지금 제(齊)나라로 가는 길인데, 잠시 귀국의 길을 빌리고자 이곳에 들렀소이다.“
"잠시 기다리시오.“
성문을 지키던 관리 책임자는 궁정 안으로 들어가 보고했다.
"진(晉) 공자 중이(重耳)?"
당시 위나라 임금은 문공(文公),
제환공의 도움을 받아 망해가던 위나라를 다시 일으킨 명군이다.
그러나 위문공은 그다지 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그는 적족(狄族)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다.
16년 전,
위나라는 적족(狄族)의 공격을 받고 패하여 멸망했다.
오랫동안의 도성인 조가를 버리고, 또 임시 도성인 조(漕)도 버리고 겨우 황하를 건너 초구에다 새 도시를 건설한 바 있었다.
제환공(齊桓公)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컸다.
위문공(衛文公)은 제환공의 은혜에 대해서는 하늘처럼 생각했으나, 자신을 돕지 않은 타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감을 갖지 못했다.
진(晉)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 우리가 초구에 새 나라를 세웠으나 진(晉)은 우리를 눈곱만큼도 도운 적이 없다.
진(晉)에 대해서는 이 정도의 인상뿐이다.
- 더욱이 중이(重耳)라는 자는 오랑캐가 아닌가.
공자 중이는 적족의 피를 타고났다.
모친이 적족인 것이다.
위나라의 철천지원수 적족(狄族)의 후예다.
위문공(衛文公)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문장에게 명을 내렸다.
"진(晉)공자를 입성시키지 말라!"
위문공(衛文公)의 말을 전해들은 중이와 그 가신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중이(重耳) 자신은 이처럼 초라하고 비참한 감정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눈동자가 분노로 붉게 타올랐다.
새파랗게 질린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위(衛)나라..........!“
가신들은 중이가 그토록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결코 이날을 잊지 않으리라!“
중이(重耳)는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절규를 내뱉고는 휭하니 몸을 돌렸다.
그 뒤를 호언과 조쇠 등이 따랐다.
굶주린 발길들.
그것은 걷는 것이 아니라 끄는 것이었다.
무심한 봄바람만이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를 허공 속으로 휘날릴 뿐이었다.
성벽을 따라 걷던 위주가 아무리 생각해도 화를 참을 수 없었던지 걸음을 멈추고 중이에게 외쳤다.
"위(衛)나라 임금이라는 자를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가 당장 달려가서 멱통을 끊어놓고 오겠습니다.“
중이는 만류할 힘조차 없었는지 멍한 눈길로 위주를 건네다보았다.
조쇠가 위로하듯 그런 중이(重耳)에게 한마디 던졌다.
"용(龍)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남이 보기엔 한갓 지렁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자께서는 꾹 참으시고 위(衛)나라의 일을 잊어버리십시오.“
위주가 다시 투덜거렸다.
"위나라가 주인으로서 손님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 촌가를 약탈해서 먹을 것을 구합시다."
조쇠의 말에 마음을 바꿨음인가.
비로소 중이(重耳)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자를 도적이라 한다.
내가 지금 한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도적질하면 후일 무슨 낯으로 천하 영웅들을 대할 것인가.
위주는 조금 참도록 해라."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 열국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