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화유산 울림 제29차 대전문화유산답사
보문산에서 찾아보는 해방과 한국전쟁
일시 : 2020년 5월 2일 (토) 09:00~13:30
코스 : 옛충남도청(09:00) - 헌병대분소터 – 보병80연대3대대터 – 애국지사총(09:50) - 보훈공원(10:20) - 대전지구전투전승비 UN탑(11:10) - 을유해방기념비(11:30) - 윤옥춘전공비(11:45) - 대전지구전적비(11:50) - 점심(12:20) - 옛충남도청(13:30)
강사 : 안여종-(사)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2020년 올해는 한국전쟁 70년이 되는 해이면서 해방 75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래서 올해 울림에서는 대전문화유산답사의 주제를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정하고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계속 일정이 미루어졌습니다. 회원님들 모두 많이 기다리셨지요? 그러다 드디어 5월 2일, 2020년 첫답사를 다녀왔기에 보고드립니다.^^
5월 2일 아침 9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답사를 위해 옛충남도청에 모였습니다. 딱 열명의 인원이 만나 서로 인사나누고 한장의 사진을 함께 보며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래사진은 6.25전쟁 당시의 대전의 원도심지역 지도인데 붉은 색 칠한 부분, 빗금 칠한 부분 모두 전쟁으로 인해 훼손된 건물들입니다. 지금은 이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그래서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보문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 우리가 자주 지나치면서도 몰랐던 옛충남도청의 나무 한그루 아래 푯돌을 알려주시고 계신 안여종 대표님.
전두환 대통령이 대전에 와서 기념식수를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렇게 또 하나 알고 갑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헌병들이 있었던 헌병대분소터를 지납니다. 지금의 선화센트럴뷰 아파트 자리입니다. 헌병들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차안에서 사진을 찍어 속도감이 느껴지는 사진이 되었네요.ㅎㅎ
그리고 또 차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예쁜 사진은 아니지만 이근처는 보병80연대3대대터입니다. 현재 예술가의 집부터 서대전공원과 홈플러스, 삼익아파트까지 전부 군부대였다고 합니다. 연병장이 있었다고 해서 연병정이라고 불렸던 곳이 해방후 문화동으로 바뀌었습니다.
6.25전쟁 때의 서대전 네거리 모습입니다. 지금은 네거리이지만 아래 사진에는 삼거리입니다. 정면의 곧은 길을 따라가면 유성입니다. 보문산쪽으로 가는 길이 저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1. 일제강점기 대전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면서 보문산의 사정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사정공원 안의 애국지사총입니다.
"6·25사변시 북한공산군이 우리의 애국지사로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을 대전형무소와 목동성당내에서 학살하였는데, 주인을 알수 없는 15,476명의 시체를 합장한 무연고 합총이었다가 후에 연고자들의 신고에 의해 작성된 희생자들의 명단이 발견되어 지사총을 사정공원으로 이전하면서 지역별로 구분하여 비에 새겼다."-대전 중구청-
중구청 자료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지만 15,476명이라는 인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돌비석에는 1557명으로 되어있고, 현재 이곳에는 600여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전해지는 자료들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겠습니다.
현재 이곳 보문산으로 옮기기 전 애국지사총의 위치입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하였습니다.
다들 사정공원에 와봤다고 하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바로 아래 놀이터까지는 여러번 갔지만
애국지사총은 처음이었습니다. 유해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신록과 함께한 커피 한 잔의 여유. 전쟁의 아픈 과거는 잠시 잊고 5월의 푸르름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 다음 목적지는 대전 보훈공원. 우뚝 솟은 영렬탑이 저절로 우러러보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작품설명을 보면 이 영렬탑은 휴식하고 있는 다섯자루의 총으로 무궁화 꽃모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선화동에 있던 탑이었는데 이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영렬탑 아래에는 6.25 전쟁기념물과 월남참전기념물이 양옆에 있습니다.
"1942년 중구 선화동에 건립을 추진하다 해방이후 공사가 중단된 ‘충렬탑’을 1952년 도민성금 1만환으로 재정비하여 전몰군경 위패 1,676위를 봉안하였고, 1956년 내부수리 및 군인동상 건립 등 정비후 ‘영렬탑’으로 개칭하여 운영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지역 주민의 이전요구와 선화․용두지구 재정비 촉진사업에 따라 시민 의견수렴을 거쳐 2001년 3월 「영렬탑 이전 보훈공원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였고, 2002년부터 연차별 계획에 따라 중구 사정동에 ‘대전보훈공원’을 조성하여 2008년 11월 6일 개원" -대전 시청-
지금 그 자리에는 아래와 같은 조형물을 세워 이전에 영렬탑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이 사정이라는 고급정보를 들으며 보문산 사정지구를 떠나 대사지구로 이동합니다. 보문산에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그린랜드와 푸푸랜드가 있었던 과거는 또 하나의 역사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옛날 푸푸랜드가 있었다는 곳에 주차를 하고 대전지구전투전승비를 만나봅니다. UN탑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모양을 보면 딱이다 싶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중에 파병된 미24사단 장병들이 대전지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낸 공적을 빛내기 위하여 1959년 세운 비가 대전지구 전승비 일명 유엔탑으로, P.J. Primrose씨의 조언에 따라 당시 제1202건설공병단장인 대령 한승엽이 건축하였다. 이 전승비는 처음에 사단장 딘 소장이 직접 바추카포를 메고 공산군 전차를 격파한 대흥동 성모병원 옆길인 옛 명정로 파출소 앞 공원(중구 대흥동 630-1)에 세워졌으나, 1975년 10월 1일 계룡건설산업 이인구씨의 지원으로 이곳 보문산공원으로 이전하였는데, 이곳은 미24사단의 사병 세명이 우리 피난민을 모두 산중으로 도피시키고 7월 22일 끝내 침공해오는 공산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보문산 기슭이다. 당시 미24사단은 유엔연합군으로 7월 5일 오산에서 처음으로 적과 대전을 하였으며, 7월 17일 대전을 포위공격 받게 되자 20여일동안 결사적인 방어전을 벌이다가 불행히도 사단장인 딘(Dean)소장이 행방불명 되었다가, 주민의 신고로 북한군에 체포되어 후에 포로교환 때 돌아왔다."
[출처] 대전지구전승비(UN탑, 1959.03.31 대흥동에 건립 → 1975.10.10 보문산으로 이전)|작성자 통일임박
창녕에 가면 대전의 유엔탑과 똑같은 탑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디자인이 쌍둥이 같이 닮았습니다.
같은 장소 다른시간. 위의 사진속 아이는 커서 아래 사진 왼쪽의 아이아빠가 되었습니다.
4. 다음 발길을 옮긴 곳은 을유해방기념비입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대전시민들이 광복의 기쁨을 나누고자 건립한 비석입니다. 원래는 대전역 앞에 해태상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해진 상황입니다. 함께 있던 해태상은 1957년 서울 현충원에 기증하였고 비석은 대전역 광장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워졌다가 보문산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한글로 깊이 새긴 글자는 그만큼 광복의 기쁨이 컸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비석 뒷면을 보면 대전부민 일동이라고 적혀있습니다. 1935년부터 1949년까지 대전은 부라는 행정명을 썼습니다. 그 시대 배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초 이기복이라는 분으로 비문을 쓰신 분입니다. 한문만 쓰다가 처음으로 한글로 비문을 쓰셨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의 해방기념비는 대체로 마을사람들이 투박하게 새긴 경우가 많은데 대전의 이 비석은 전문가가 제대로 썼고 크기면에서도 굉장히 큰 편이라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하였습니다.
대전역 앞에서 양옆의 해태상과 함께 있는 해방비의 모습입니다.
안여종 대표님이 직접 서울 현충원에 가서 대전에서 이사간 해태상을 만나고 오셨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해방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우고 기념식수를 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전에는 세군데나 남아있습니다. 유성초 해방기념비와 세동 느티나무 또한 해방을 기념하여 마을사람들이 함께 세운 기념비이고 기념식수입니다. 보문산의 을유해방기념비, 유성초 해방기념비, 세동 광복기념 느티나무 모두 조금 더 대전 시민들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 을유해방기념비를 뒤로 하고 산을 조금 오릅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금세 야외음악당에 도착합니다. 야외음악당의 관객석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또 대전의 한국전쟁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윤옥춘 전공비입니다. 대전에서 이 비석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육탄 10용사 중 한 사람인 윤옥춘 2등 중사는 대전시 문화동에서 1929년 4월 14일 출생,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 소속으로 적을 무찌르기 위해 폭탄을 가슴에 안고 적 토치카에 뛰어들어 자폭함으로써 아군을 승리로 이끌게 한 역전의 용사이다.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1971년 5월 고향 언덕에 이 비를 세움"
이라고 윤옥춘이라는 분을 소개하고 있는데 다른 의견도 있어 소개합니다.
https://blog.naver.com/seocheon/221053642877
6. 마지막으로 간 곳은 대전지구전적비입니다.
"1950년 7월 5일 오산전투 이후 경부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전개하여 오던 미 제 24사단이 대전에서 북한군의 포위공격을 받아 방어전을 전개하면서 3.5인치 로겟포를 최초로 사용하여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이때 24사단을 진두지휘하던 '윌리엄 에프 딘' 장군이 실종되는 비운을 격었다. 본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영령등을 추모하고 혈맹의 우의를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81년 12월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가운데 3.5인치 로켓포(바주카포)를 들고있는 사람이 딘소장인데 직접 적의 전차를 향해 포를 쏠 정도였으니 전쟁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6.25전쟁 당시 대전에서 북한군과 미군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빨간색이 북한군 3, 4사단, 파란선은 미군 24사단입니다.
대전지구 전적비를 마지막으로 산을 내려와 보문산 아래 맛있는 보리밥과 도토리묵으로 점심을 먹고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보문산에 숨겨진 광복과 전쟁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보고온 듯 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020년 울림의 첫답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멋진 사진 담아주신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최윤영 활동가님. 사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와 늦게 봤네요.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