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스턴 선교사님은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당시 자행되던 노예무역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선교사이자 탐험가입니다.
그의 삶과 전도 사역은 한마디로 "복음을 위해 길을 닦은 개척자의 삶"이었습니다.
1. 아프리카로 향한 발걸음과 사역의 전환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리빙스턴은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의학과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본래 그는 중국 선교를 꿈꿨으나 아편전쟁으로 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로버트 모팻(Robert Moffat)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많은 마을을 봅니다. 그곳에는 아직 아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말에 가슴이 뛴 리빙스턴은 1841년 남부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착 선교를 시작했으나, 그는 곧 안락한 선교 기지에 머무는 대신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미지의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영적 갈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2. 탐험이 곧 전도였던 개척 사역
리빙스턴은 흔히 ‘탐험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탐험은 오직 선교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내륙은 말라리아와 무서운 맹수들, 그리고 부족 간의 갈등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사자에게 물려 평생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맹수와 질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륙을 횡단하며 지도를 그린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 복음의 통로 개척: 후배 선교사들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 노예무역 근절: 아프리카인들을 비참하게 만들던 인간 사냥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는 합법적인 무역로가 열려야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부족마다 복음을 전했고,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과정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탐험가로서가 아니라, 선교사로서 이 길을 간다."
3. 영적 고독과 위대한 유산 (코람 데오의 삶)
사역의 과정은 눈물과 고독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내 메리 선교사는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과도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영국 사회가 그의 생사조차 몰라 기자 헨리 스탠리가 그를 찾아내어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 편히 쉬자"고 권유했을 때도,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사명을 완수하려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나의 예수님, 나의 왕이시여, 나의 생명을 다시 한번 당신께 드립니다. 저를 받아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써 주소서."
1873년 5월 1일, 리빙스턴은 잠비아의 한 작은 마을 골방에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 엎드린 예배자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 리빙스턴이 남긴 영적 메시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영국의 요청으로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심장만큼은 "내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프리카 땅에 묻혔습니다.
리빙스턴 선교사님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안주할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내는 ‘개척자의 신앙’, 그리고 어떤 외로움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무릎으로 전진했던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의 삶’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참된 전도자였습니다.
그의 생애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위대한 업적 이면에 우리가 일상에서 실제로 본받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삶의 태도와 성품’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