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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오온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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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63편) 20240715
제목 : 피부(皮膚)
[마대사가 약산에게 묻되 "그대가 여기에 있은지 퍽 오래 되었다. 본분의 일은 어찌됐는가?" 약산이 대답호대 "피부는 다 떨어지고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남았습니다" "그대의 소견에 의하건대 가위 마음의 본체에 계합하여 팔다리에 퍼진다 하겠다. 어째서 세 가닥의 '대테로써 아랫배를 조르고 아무데나 가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고?" 약산이 대답호대 "제가 무엇이기에 감히 주지가 되겠다 하겠습니까?" 마조가 말호대 "그렇지 않다. 오래 수행했는데 주지하지 않는 이가 없고, 오래 주지했는데 수행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익을 주려 해도 이롭게 할 수 없고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빨리 나룻배가 되는 것이 좋으니라" 하니, 약산 이 이 말에 따라 한 산문의 주인이 되었다.]
주) 1. 대테...... 대를 쪼개서 다듬어 자리도 짜고, 통도 메우는 데 쓰는 것이니, 중국에서 어떤 의도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많아서 배가 터질 지경이라 하여, 배에다 세 까닭의 대퇴를 메고 다녔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도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출발하는 것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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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皮膚
馬大師問藥山 子在此許多時 本分事 作麼生 山云 皮膚脫落盡 唯有一眞實 師云據汝所見 可謂協於心體 布於四肢 何不將三條篾 束取肚皮 隨處住山去 山云 某甲 何人敢言 住山 師云 不然 未有長行而不住 未有長住而不行 欲益無所益 欲爲無所為 宣作舟航 山 由是住山
(중국 원본)
有一天,马祖问:“子近日见处作么生?”
惟俨禅师道:“皮肤脱落尽,唯有一真实。”
马祖道:“子之所得,可谓协于心体,布于四肢。既然如是,将三条篾束取肚皮,随处住山去。”
惟俨禅师道:“某甲又是何人,敢言住山?”
马祖道:“不然!未有常行而不住,未有常住而不行。欲益无所益,欲为无所为。宜作舟航,无久住此。”
惟俨禅师于是辞别马祖,重新回到石头禅师那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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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一六三】 마대사가 약산(藥山)에게 묻되 자네(*子)가 여기에 있은 지 허다한 시절이니 본분사가 어떠한가. 약산이 이르되 피부가 탈락하여 없어지고 오직 1진실만 있습니다. 대사가 이르되 너의 소견에 의거할진대 가위(可謂) 심체(心體)에 화협(和協; 恊은 協과 같음)하여 사지(四肢)에 퍼졌다. 왜 세 가닥 대껍질을 가져댜 두피(肚皮)를 묶어(*束取) 곳을 따라 주산(住山)하지 않느냐. 약산이 이르되 모갑이 어떤 사람이라고 감히 주산을 말하겠습니까. 대사가 이르되 그렇지 않나니 늘 행하기만 하고 머물지 않음은 있지 않으며 늘 머물기만 하고 행하지 않음은 있지 않다. 이익되게 하려 하다면 이익되는 바가 없고 하고자 한다면 하는 바가 없다. 의당 주항(舟航)을 지어라. 약산이 이로 말미암아 주산(住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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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8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전편까지는 방 거사와의 내용이었고 오늘 내용은 약산 유엄 선사(藥山惟嚴禪師)라는 분과의 내용인데요.
약산(藥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한국 자료>
약산유엄(藥山惟嚴751~834)-화정덕성-협산선회로 그 법맥이 이어졌다.
마조와 약산은 42세 차이
https://m.blog.naver.com/074098jms/223466262402
[조동종(曹洞宗) 조동종은 청원행사(靑原行思) ― 석두희천(石頭希遷) ― 약산유엄(藥山惟儼) ― 운암담성(雲巖曇晟) ― 동산양개(洞山良价) ― 조산본적(曹山本寂)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동산과 조산을 개조로 하는 종파이다. ]
그리고 약산은 조동종(曹洞宗)을 크게 일으킨 분이라고 자료에는 나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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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료>
【药山惟俨禅师:22岁具戒,离法自净,不事细行;月夜长啸澧阳90里】https://me.mbd.baidu.com/r/1l89XIKUZhe?f=cp&u=42a47eb419c77311
[22세에 계를 받고 자신을 정화하며 세세한 일을 하지 않고 리양(澧阳호남성 묘족 자치주)에서 90리 떨어진 곳에서 울부짖는다.
요산(孝山)이라고도 알려진 웨이옌(魏延, 737~834)은 당나라의 저명한 승려이자 선사인 석두희건(師頭熙恩)의 후계자이다. 장저우(지금의 산시성 호마시 북동쪽) 출신이며, 성은 한(한)이다. 위연은 남종 청원종 승려이자 조동종(曹洞宗)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마조도교와 석두서건선을 연결하는 중요한 선승이다. 선불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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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와 약산은 28세 차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요.
그런데 한국 자료와 중국 자료의 태어난 연도 수는 14년이나 차이가 나는데요?
이런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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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가능하면 중국 사이트에서 선문염송 원본이나 자료들을 열심히 찾아보고는 있는데요.
가끔은 운 좋게 오늘처럼 중국 원본과 자료를 찾을 때가 있답니다.
그런데 중국 자료와 고려 때 혜심 스님이 옮겨 적은 글들을 비교해 보면 서로 다른 글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당시 고려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게 우리 식으로 한문을 꾸며서 그런 것이랍니다.
우리와 중국은 같은 한문을 쓰긴 했으나 표현 방법이나 생활 문화가 다르다 보니까 특히 한문을 우리가 빌려 쓰면서 자존심 강한 우리 어른들은 글자를 바꿔서 쓰거나 아예 다른 글자로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똑같이 쓰지는 않겠다 이거지요.
선문염송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고요.
더군다나 우리의 옛 어른들이 당나라 때 글들을 고려 때 우리 식으로 옮겨 적고 또 지금 식으로 해석을 하자니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있을 수 박에 없었을 것이고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런 점들을 아시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옛날 자료들이 남아 있으니 천만다행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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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피부탈락진(皮肤脱落尽)이라는 내용인데요.
이 글자는 [살갗이 다 벗겨지다]라는 뜻이랍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살갗이 다 벗겨졌다는 뜻이지요.
새롭게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죽은 살갗은 벗겨지고 새로운 살갗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증득을 뜻하는 것이고 도피안(到彼岸)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는 뜻입니다.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거듭 낳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영접]했다는 뜻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영원한 안식처이니까요.
(제가 기독교 출신이다 보니까 이 글은 다수의 천주교 신부님들과 목사님들과 신자들도 같이 보고 계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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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국 원문 중에
有一天 , 马祖问:“子近日见处作么生?”
马祖道:“子之所得,
라는 글자에서 앞에 (子~) 어쩌고저쩌고하는 글자가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子~)는 어른이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적은 아들뻘 되는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랍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식 뻘 되는 젊은이들을 부를 때에는
"자야.. 밥 먹었노~"
"김군 이리 와 보게..~"
"박군 저쪽으로 가보게..~"
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했었고요.
쉽게 말해 마조는 지금 약산을 아주 다정하고 부드럽게 아들을 대하듯 부르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지금 마조의 마음은 하도 약산이 좋은 그릇으로 보이니까 자기 제자로 두려고 엉큼한 마음도 가지고 있답니다? ^^~
물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이지요.^^
왜 그런지 한 번 같이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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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답니다.
하루는 약산의 얼굴이 이상해 보이니까 마조가 약산을 보면서 말하길..
[有一天 , 马祖问:“子近日见处作么生?]
하루는 마조가 묻기를 : “자야..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
하고 다정하게 물으니까 약산의 대답이?
[惟俨禅师道:“皮肤脱落尽,唯有一真实]
"살갗이 다 벗겨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만이 진실합니다."
했다는 것인데요.
그랬더니 마조의 대답이?
[马祖道:“子之所得,可谓协于心体,布于四肢。既然如是,将三条篾束取肚皮,随处住山去。”]
"자야.. 네가 얻어 이르렀구나.."
이 말은
"네가 드디어 깨달았구나"
하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마조가 덧붙여서 하는 말이..
"몸과 마음의 조화라 할 수 있느니라" (사지에 분포함)
(바로 이 부분을 알려고 조견오온을 하라는 이유랍니다. 이 내용은 앞전에 설명드렸던 내용인데요. 매우 중요한 내용이니 못 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m.cafe.daum.net/119sh/XASd/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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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조의 말이
"이렇게 된 이상 대나무 세 마디를 묶어서 뱃살에 조르고 산에 가서 살거라"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당시 수행승들은 처음 절에 들어와서는 다 같이 모여서 먹고 자면서 수행을 했지만
오래도록 수행을 한 수행승이거나 깨달은 수행승들은 산에 암자를 하나 내주어 혼자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문화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将三条篾束取肚皮]라는 말은 [대나무 세 마디를 묶어서 뱃살에 조르고]라는 뜻인데요.
이 뜻을 중국 자료를 찾아보니까
(대나무 삼줄로 배를 묶는다는 뜻은 허리띠를 조인다는 뜻으로 배고픔을 견디고 가난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 )
라고 해석되어 있었는데요.
<참고 중국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将三条篾束取肚皮 什么意思 - 百度】https://mr.baidu.com/r/1lvTVjXHksM?f=cp&u=9cbdfd76d51c6cc2
마조 선사가 활동하던 지역은 더운 지역으로 대나무가 풍부했던 지역이랍니다.
그래서 북쪽과는 달리 대나무로 집도 만들기도 하고 울타리도 치던 곳이지요.
대나무는 조작이 쉽기는 하나 단점은 1년에 한 번씩은 교체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대나무 한 묶음은 1년을 비유로 한 말이랍니다.
그래서 대나무 세 묶음은 3년의 세월을 뜻하는 비유이고요.
쉽게 말해 대나무 세 묶음을 배에 조르고란?
3년 정도 여기서 허리띠를 졸라 매고 후 공부를 해보라는 뜻이랍니다.
스승인 석두에게 가지 말고 말이지요.^^
요즘식으로 말하면 다른 회사 직원이 우리 회사에 왔을 때 특출한 인재로 보이면 "월급을 세배로 줄 테니 여기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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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내용에서도 위에서 한문 원문을 해석하신 두 분들이 모두 잘못 해석하신 부분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고려 때 혜심 스님이 옮겨 적은 글에는 분명히
[何不將三條篾 束取肚皮 隨處住山去]에서
[住山去]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그리고 아래에 있는 중국 원문에도 분명히 [住山去]라고 적혀 있었고요.
[马祖道:“子之所得,可谓协于心体,布于四肢。既然如是,将三条篾束取肚皮,随处住山去。”]
여기서 말하는 [住山去] 란 [산에 살러 가라]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해 산에 암자를 하나 내어줄 것이니 거기 가서 3년 정도 허리띠 졸라매고 빡세게 후공를 해보라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위에서 해석하신 두 분은?
한 분은
[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고?]
라고 해석을 하셨고? 또 한 분은?
[왜 주산(住山) 하지 않느냐?]
라고 해석을 하신 것이 잘못 해석하신 부분이랍니다.
왜냐하면 [가라]는 뜻과 [왜 안 가느냐?]는 전혀 다른 뜻이니까요?
[왜 안 가느냐?]는 의문형인데 한문 원본에는 [不去?/안가?] 나 [不去吗?/안가냐?] 와 같은 의문형의 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에는 그냥 [去/가라]로 해석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지금 마조는 향산에게
"산에 암자를 하나 내어 줄 것이니 가서 3년 정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후 공부를 해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
"왜 산을 내어주는데 안 가느냐?"
하는 말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느냐?]는 더욱 잘못 해석하신 것이고요.
아무튼 마조가 약산에게
산에 암자를 하나 내어줄 것이니 3년 정도 여기서 허리띠를 졸라 매고 후 공부를 해보라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더욱 웃기는 말은 약산에게? ^^
약산 네가 마음에 드는 암자를 하나 골라서 산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지금 엄청난 파격적인 대우랍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마조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학인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 때이고 헛간이나 처마 밑이라도 좋으니 마조 밑에서 공부 좀 하게 해달라고 하는 판에?
그것도 기라성 같은 마조의 제자들도 개인 수행처인 산에 암자를 하나 받기도 힘들 판에 나이도 젊은 그것도 다른 곳에서 와 수행을 하고 있는 남의 제자에게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으니 향산도 적잖이 노라면서 하는 말이..
"아니? 제가 어찌 그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아직 자기는 그럴 군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조의 대답은 더 적극적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
“ 不然!"
"아니 그렇지 않다!"
"너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느니라, 그런 걱정 말고 네가 마음에 드는 산에 암자를 하나 골라서 가거라"
했다는 것입니다.
"가겠느냐?" 도 아니고 "가라"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마조는 지금 향산이 제자로서 탐이 났던 거랍니다.^^
그래서 능청스럽게 슬그머니 자기 곁에 두려고 아들뻘 되는 향산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던 거랍니다.
그런데 향산의 반응은 전혀 딴판이랍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를 듣고 바로? ^^~
[惟俨禅师于是辞别马祖
重新回到石头禅师那儿]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향산이 마조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석두 선사에게 돌아갔다.]
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약산은 마조의 제자가 아니라 석두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향산은 마조의 이런 의도를 알아차리고 매정하게 이런 좋은 조건을 뿌리치고 "획~" 하고 자기 스승인 석두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랍니다. ^^
속된 말로
"네가 해 달라는 것은 다 해줄 테니까 석두에게 가지 말고 여기서 수행하라"
고 권했는데 향산은 이 제안을 뿌리치고 "획~" 하고 스승인 석두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조는 향산에게 진담반 농담반으로 권했을 것이겠지만 얼마나 향산이 제자로서 탐이 났으면 그랬을까 하는 것이 오늘 내용의 스토리랍니다. ^^~
불자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불가에서 스승이 다른 스승에게 보내서 한철 공부하고 오라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석두도 제자인 약산에게..
"내가 서신 하를 써 줄 것이니 너는 이번 한철은 마조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고 오너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조가 가르쳐 보니 약산의 근기가 너무 좋아 보이니까 석두에게 가지 말고 내 옆에서 수행을 이어나가라는 뜻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요.^^
그만큼 향산이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끝^^)
♡
음..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고려 때 혜심 스님도 중국 글을 옮겨 오실 때 있는 그대로 옮겨 오시지 않고 뜻을 다르게 옮겨 적었다는 점인데요?
왜 자꾸 이런 일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혜심 스님의 글에는 [由是住山]라고 쓰여 있고?
중국 원본에는 [重新回到石头禅师那儿]라는 글이 서로 다르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되면 마조와 향산과 이 둘의 내용은 정 반대의 뜻이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혜심 스님이 옮겨 적은 글은 마조의 유혹에 넘어가 본래 스승인 석두를 버리고 마조를 따라갔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중국 원본은 마조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마조의 제안을 뿌리치고 석두에게 돌아갔다는 뜻인데도 말이지요.
이것은 고려 때 혜심 스님이 실수하신 거랍니다.
아니면 혜심 스님도 선문염송을 옮겨 적을 때 중국 원본이 아닌 당시 고려에 흩어져 있던 선문염송들을 이미 누가 뜻을 바꾸어서 쓰고 있는 것을 혜심 스님도 그대로 옮겨 적으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이 글은 뜻도 다를뿐더러 향산의 진면목을 완전히 깎아내리는 그런 뜻이라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스승인 석두를 배신하고 마조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조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간 그런 마음이라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잘못된 것이랍니다.
아무튼 중국 원본에는 분명히 마조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마조의 유혹을 뿌리치고 석두에게 돌아갔다는 것인데요.
[惟俨禅师于是辞别马祖
重新回到石头禅师那儿]
[향산이 마조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석두 선사에게 돌아갔다.]
전체 내용을 놓고 보더라도 이 내용이 앞뒤 내용들이 맞는 내용이고요.
더 큰 문제는 불가에서는 지금껏 이런 내용들을 이렇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위에 두 분도 향산이 마조가 가라는 대로 [산으로 갔다]고 해석하셨다는 것인데요.
아무튼 그렇답니다.
♡
<참고 자료>
여기서도 보면 향산은 석두의 제자로 나와있는데요.
그것도 석두 계열의 조동종(曹洞宗) 창시자라고 중국 자료에는 기록되어 있었고요.
이런 제자를 마조가 꼬신다고 얍삽하게 마조를 따라갔다고 기록해 두시면 안 되지요?
➁ 임제종(臨濟宗)은 마조 계열..
임제종은 남악회양 ― 마조도일 ― 백장회해 ― 황벽희운(黃檗希運) ― 임제의현(臨濟 義玄)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의현를 개조로 한다. 의현은 득법한 이후에 하북성 진주 임제원(臨濟院)에 주석하면서 부주(府主)였던 왕상시(王常侍) 등의 외호를 받으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선풍을 널리 떨쳤다.
➂ 조동종(曹洞宗)은 석두 계열..
조동종은 청원행사(靑原行思) ― 석두희천(石頭希遷) ― 약산유엄(藥山惟儼) ― 운암담성(雲巖曇晟) ― 동산양개(洞山良价) ― 조산본적(曹山本寂)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동산과 조산을 개조로 하는 종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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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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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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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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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분들이 질문을 주셨는데요.^^
도움이 좀 됐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용들을 다 올리지 못해서 좀 뭐 한데요.
내용들이 거의 비슷한 내용들이라 합해서 올려드리고 있답니다.
가급적이면 수행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위주로 올리고 있는데요.
오늘도 앞전에 같이 했던 분과의 내용을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
♡
(질문)
선배님의 어제 답변을 보고난 뒤에 저의 수행 중간 점검을 해봤습니다.
1. 현재 수행 방편 : 의식이 깨어서 마음챙김 및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림
2. 반성(부족함을 돌이켜 보기)
감지된 오온의 초기 차단은 잘되고 있지만 유사 조건을 만나면 관련 오온이 재발되어 무한 루프(다람쥐 쳇바퀴 돌림 현상)에 빠질수 있다고 봄. 그리고 차단(쳐내기)에만 치중하면 자칫 기존 내 기준,아집을 더 견고하게 하여 수행의 효과가 없다고 봄.
3. 대처 방법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여기서 원수는 역경계 관련 오온이라고 봄) 및 대행스님의 '일체를 몰록 맡겨놓으라'는 말씀에 착안하여 다음처럼 수행 방법에 변화를 준다.
1) 시스템 이름 : 오온 정화 시스템
2) 기능별 분담
(1) 의식 : 마음을 대상으로 경계 근무를 유지하고 이상 기운이 감지되는 즉시 여의봉(알아차림의 애칭)으로 그 기운을 '사랑의 가마'으로 몰아넣기(본성님에게 내맡김)
(2) 사랑의 가마 : 오염된 기운을 깨끗하게 바꾼 뒤에 허공으로 배출시킴. 본성의 일부분으로 영묘함
(3) 생각 : 상기 시스템을 기억하기
3) 참고 사항
기존 화염방사기,와이퍼, 두더지 망치 등을 폐기.
이상입니다.
중간 점검을 한 뒤에 느낀 것은 '한참 돌아서 왔네. 하지만 수행한 보람이 있구먼.' 이란 자기 위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묵은 숙제를 푼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선배님께서 상기 내용이 괜찮다고 보시면 여러분에게 공유하여 주셔도 괜찮습니다.
(답변)
[감지된 오온의 초기 차단은 잘되고 있지만 유사 조건을 만나면 관련 오온이 재발되어 무한 루프(다람쥐 쳇바퀴 돌림 현상)에 빠질수 있다고 봄.]
맞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오온이 자꾸 일어나지요.
이렇게 생각을 해보십시오.
본성(마음)과 오온(몸의 기능)의 역할은 전혀 별계라고요?
깨닫고 보면 실제로도 그렇답니다.
중간중간 시간 날 때 법우님이 보내준 답장을 쓰고 있지만 법우님이 말씀하셨듯 유체이탈도 마찬가지랍니다.
조견오온이란 결국 오온(몸)과 본성(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거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유체이탈 현상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전생에 이런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한 결과가 있기 때문에 현생에서도 나도 모르게 이런 현상들이 보이는 거랍니다.
마음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알아차림의 기능이 아주 좋답니다.
그래서 예전(전생)에 것들을 자꾸 비추어보는 것이고요.
본성은 내(몸)의 의도 와는 전혀 상관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본성(마음)은 거울과 같은 기능이 있을 뿐이지 마음의 기능과 몸(오온)의 기능은 전혀 다른 범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몸(오온)의 기능은 밥을 안 먹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고,
달리기를 하면 당연히 숨이 차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접하느냐에 따라 오온(몸)도 자동으로 작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오온)에 뜨거운 것이 닿는데 어떻게 오온이 안 일어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부처님 아니라 부처님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배(오온)가 고프면 몸(오온)에서 밥 생각이 나지요.
부처님에게 누가 몸(오온)을 때리면 당연히 몸(오온)은 아픔을 느끼고요.
그러니 당연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오온의 작용은 반복될 수 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자극을 주면 몸(오온)도 자동으로 작용을 할 수 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물론이고 누구나 말이지요?
그러면 왜 조견오온을 하라고 하는 것이냐? 이것인데요?
이 이유를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아주 많답니다.
먼저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조견오온을 왜 하라고 하는 것인지?
화두는 왜 들라고 하는 것인지?
위파사나는 왜 하라고 하는 것인지?
호흡관은 왜 하라고 하는 것인지?
사마타는 왜 하라고 하는 것인지?
등을 왜 하라고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위에 나열한 것들은 방법은 서로 달라도 그 원리는 다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방법으로 하던 오온(몸)의 작용은 자동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것들을 하라는 이유는 이렇게 계속 올아 오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소멸시키고 또 알아차리고 소멸시키고 하다 보면 마치 항아리 안에 가득 차 있는 물을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다 보면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밑장이 깨지듯이..
또는 어렸을 때 이빨이 흔들리면 이리 가지고 놀고 저리 가지고 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빨이 쏙↓ 하고 빠지듯이 나도 모르게 마음의 밑창이 와장창하고 빠지면서 경허선사나 저처럼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사실 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게 된답니다.
솔직히 선정이고 뭐고 따로 들 필요도 없고요.
오늘 아침에도 운전을 하면서 체험을 했지만 소위 말하는 밑창이 빠지게 되면(증득하게 되면) 오온(몸)과 본성(마음)은 전혀 따로 논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지금 법우님처럼 오온과 마음은 계속 붙어 다닐 수 박에 없답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이 나오는 것이고요.^^
지금 법우님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밑창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왜 이런 것을 하라고 하는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간화선은 화두를 통해 마음(본성)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고
위파사나는 알아차림을 통해 마음(본성)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고 (부처님 경우)
조사선은 바로 마음 알아차림을 통해 마음(본성)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고
사마타는 선정을 통해 마음(본성)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라 했던 거랍니다.
마음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도 그중에 하나인 것이고 주리반다가 처럼 "내 마음에 때를 없애자" "내 마음에 때를 없애자" 하면서 반복하는 모양도 같은 원리이고요.
깨닫고 증득하기 전에는 지겹더라도 이 방법 외에는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답니다.
따라서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마시고 내가 왜 이런 것을 하고 있어야 하나 등의 마음도 먹지 마시고 이것은 오로지 어느 방법으로 하시든 마치 물방울이 바위 위를 때리듯이..
돋보기가 종이를 태우듯이..
닭이 모이를 쪼듯이 요령 부리지 말고 꾸준히 답답할 정도로 바보처럼 하고 또 하면서 반복할 수박에 없답니다.
그래서 수행이 어러운 것이고 마음을 닦는다고 표현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결국은 지겨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수행을 닦는다란 청소하는 모양을 비유한 것으로 걸레질이나 빗자루질을 할 때에도 보면 계속해서 반복하는 모양을 비유로 "마음을 닦는다" "도를 닦는다" 했던 것이고요.
이렇게 이것은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서 닦고 또 닦는 거랍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오로지할 뿐!"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고요.^^
제가 법우님에게 조언을 드리고 싶은 내용은?
아무 생각 없이 하십시오.
목적도 생각하지 마시고 하십시오.
빨리 깨닫자 한다든지? 빨리 버리고 싶다든지? 집중을 하고 싶은 생각조차도 버리고 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은 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 어떤 목적도, 그 어떤 생각도, 그 어떤 마음도 먹지 말고 어느 방법으로 하시든 모든 방법은 방편에 불과한 것이니 스스로 마음이 떨어질 때까지 오로지 꾸준히 할 수 박에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네가 자꾸 목적을 가지고 생각을 하면 마치 잘 익을 때로 익은 감나무 위에 감을 못 떨어지게 내가 잡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온(몸)과 마음(본성)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오온/생각, 의지, 욕심, 조바심, 육근, 신경, 감성, 감정 등)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왜냐하면 쉽게 말해 본성은 오온이 작동을 하면 할수록 더 숨기 때문입니다.
본성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스스로 드러나게 해야지 내가 자꾸 어떻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숨는답니다.
저도 이것을 엄청 시험을 많이 해본 결과인데요.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는 의식만 깨어 있어도 바로 눈앞에 본성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일부로 시험을 해보기 위해서 본성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든지? 딴짓을 하게 되면 보고 있던 본성이 바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진실)
그러나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식이 깨어 있으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고요.
제 경우는 일을 하면서도 본성을 알아차리는 수준까지는 왔지만 일반 사람들은 몸에 있는 기운조차도 모두 내려놓고 힘을 뺀 상태에서 차단을 하던 버리기를 하던 하셔야 된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모든 알아차림(수행)은 본성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방편이랍니다.
차단도 방편이고요.^^
최종적인 마지막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이랍니다.
이것을 한방에 해결하려고 차단도 연습도 하는 것이고 알아차림 연습도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앞전에 말씀드렸듯이 법우님은 할 수 있으면 마음을 직접 상대로 내려놓고 버리기를 해보시라 했던 거랍니다.
차단이나 그 외에 것들은 그때그때 상황이 닥치면 해보시고요.^^
마음을 직접 상대로 내려놓고 버리기만 하시면 다른 것들은 다 거저먹기가 된답니다.
왜냐하면 저나 바보 주리반다가 처럼 단 한 방에 정상 윗부분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하시든 계속 마음을 상대로 해보십시오.
오온이나 화두 등은 단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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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다섯 분을 위해 신설된 유마경(維摩經) 내용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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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수달다의 바른 보시 (3)
(화면 왼쪽 하단 숫자)
3:33:19~
(법을 보시하는 모임이란)
바르게 노력하는 것에 의해 곧바로 청정한 삶을 누리게 되고, 믿음과 즐거움을 중요시함으로써 곧바로 성자를 섬기는 길로 나아가게 되며, 성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얕보지 않음으로써 곧바로 깊은 통찰력을 완성하게 되고, 출가와 동시에 거룩한 서원을 다짐하게 되며, 굳센 노력에 의해 곧바로 배운 것을 두루 꿰뚫게 되고, 번뇌 없는<숲속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함> 법을 터득함에 따라 곧바로 숲 터에 머무는 이와 견줄 수 있게 되며, 부처님의 지혜에 도달함에 따라 곧바로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이와 나란히 되고, 모든 사람들을 번뇌로부터 해탈케 하는 행에 의해 곧바로 요가 행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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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여기서 말하는 (법을 보시하는 모임이란) 지금 식으로 말하면 깨달은 사람들이 법을 가르치고 알려주는 법문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오늘 내용은 쉽게 말해 법문을 설하거나 법을 가르칠 때에는 대중들을 아래로 보거나, 거만을 떨거나, 교만하게 언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교 용어로는 하심(下心)이라는 내용이 있는데요.
이 내용은 모든 출가자들에게 이르는 내용 중 하나랍니다. (재가자들이 아님)
왜냐하면 불교의 가르침들은 대부분 거의가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르침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보면 항상 "비구" "비구니" 가 먼저 나오는 것이고요.
그리고 특히 오늘 내용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유마경은 출가자나 특히 깨달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경전이라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 내용에는 어떤 가르침이 있는지 같이 한번 살펴 보실까요? ^^
★
[바르게 노력하는 것에 의해 곧바로 청정한 삶을 누리게 되고, 믿음과 즐거움을 중요시함으로써 곧바로 성자를 섬기는 길로 나아가게 되며]
(맞는 말씀입니다. 모든 출가자들은 어른들은 물론 행자에 이르기까지 일단은 "바르게 노력하는 것"에서 곧바로 청정한 즉 깨끗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바르지 못한 것이나 일에는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이 깃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어른들처럼 특히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무당들이나 하는 일들이나 하고 있다면 그런 마음들은 뻔하지 않겠어요?
이런 행위들을 어떻게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지금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또
★
[성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얕보지 않음으로써 곧바로 깊은 통찰력을 완성하게 되고, 출가와 동시에 거룩한 서원을 다짐하게 되며, 굳센 노력에 의해 곧바로 배운 것을 두루 꿰뚫게 되고]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보십시오?
성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얕잡아 보지 않음으로써 곧바로 깊은 통찰력을 완성하게 된다 하지 않던가요?
이 말은 지금 어른들처럼 건방지게 상좌에 앉아 삼배나 청하고 주장자나 두들기면서 대중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거나?
대중을 얕잡아보고 자기 눈을 흐리게 하는, 통찰력을 떨어트리게 하는 행위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와 동시에 초기에 거룩한 서원(誓願)을 다짐했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굳세게 노력해 곧바로 배운 것을 두루 꿰뚫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출가한 사람들이 수행 외에 다른 일로 바빠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
[번뇌 없는<숲속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함> 법을 터득함에 따라 곧바로 숲 터에 머무는 이와 견줄 수 있게 되며]
(여기서도 잘못 해석한 부분이 나왔는데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번뇌 없는]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 <숲속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함> 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모든 수행자들은 깨달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내용은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처럼 열심히 노력하게 되면 번뇌 없는 즉 깨닫고 증득한 법을 터득함에 따라 곧바로 숲 터에 머무는(고요하고 조용한) 이와 견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해 위에 내용들처럼 열심히 하게 되면 깨달은 사람들과도 견줄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
[부처님의 지혜에 도달함에 따라 곧바로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이와 나란히 되고, 모든 사람들을 번뇌로부터 해탈케 하는 행에 의해 곧바로 요가 행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도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처럼 열심히 하게 되면 부처님의 지혜에 도달하게 되고 곧바로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이(깨달은 이)와 나란히 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을 번뇌로부터 해탈케 하는 행위에 의해 곧바로 요가 행자(자유롭고 유연한 지위)에 오르게 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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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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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우바국다존자의 게송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부터의 마음이다. 본래의 마음은 법이 있는 것 아니니라. 법이 있고 본래의 마음이 있다.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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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오늘 내용도 본성에 관한 내용인데요.^^
누가 저에게 우바국다존자의 위의 게송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선답을 할 것입니다.
[불법(佛法)]
이라고요.
왜냐하면 불(佛)은 곧 부처의 마음이요, 법(法)은 곧 만법(萬法)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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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바수밀존자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이 허공의 세계와 같아서 허공과 같은 법을 보여 주나니 허공을 증득할 때에 옳은 법, 그른 법, 모두 없으리.]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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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선답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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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64편) 20240805
제목 : 사구(四句)
마조에게 어떤 중이 묻되 "사구와 백비를 떠나서 서쪽에서 온 뜻을 곧장 보여 주십시요" 마조가 대답호대 "내가 오늘 심기가 불편하니 지장에게 가서 물으라" 그 중이 지장에게 가서 물으니, 지장이 손으로 머리를 가리키면서 말호대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다. 회해 사형께 가서 물으라" 그 중이 회해에게 가서 물으니, 회해가 대답호대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 다" 하였다. 그 중이 다시 돌아와서 마조에게 고하니, 마조가 말호대 "지장의 머리는 회고, 회해의 머리는 검도다" 하였다.
주)
1. 사구
같은가, 다른가, 있는가, 없는가 함을 따지는 외도의 논리.
2. 백비
사구를 따짐으로써 생기는 백 가지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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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馬祖因僧問 離四句絕百非 請師直指西來意 師云 我今日 無心情 汝去問取智藏 僧 乃問藏 藏 以手指頭云 我今日頭痛 不能爲汝說 汝去問取海兄 僧 去問海 海云我到者裡 却不 會 僧 廻舉似師 師云 藏頭白海頭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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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메일 주소를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mail : 119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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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오늘 내용은 오랜만에 서암 스님의 법문을 같이 들어보겠습니다.😄🙏
제목: 서암스님 - 주인공아 꿈을 깨어라 - 2(참선법문)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pRH0y9D0xRI?si=sIr_mbNIHMxsFig-
~♡~
(7)《음악과 함게 수행을.. 》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추억의 음악 캠프]인데요.
건달바(乾達婆)처럼 얼마든지 음악을 통해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답니다.
방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서 귀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지금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인데요.
★ 음악을 들으면서 수행하기
음악에만 끌려들어 가면 내가 지는 것이고요.
듣고 있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 법이랍니다.
같이 귀로 들어보시면서 듣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구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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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사/자막] 비틀즈 (The Beatles) - Yesterday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WZ0iKKBPhoY?si=PMmBzESBH054q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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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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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관리 잘 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늘 건강관리 잘 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공무연기 예~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건강 하세요.
고맙습니다_()_
@금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