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눈물이 나
옆구리가 터진 채
해변으로 흘러온
고래의 파란 흉터에
그냥 눈물이 나
국자에 뜨거운 수프를 받아 와
다친 고래의 입술에
부어주는 소년과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에
그냥 눈물이 나
내가 집에 데려갈게
눈발 속에서 입을 맞추는
둘의 자폐에
그냥 눈물이 나
*
가출 후 자기 아파트 옥상 물탱크 속에서
몇 달을 살았다는
어느 여고생의 시에
그냥 눈물이 나
“난 겁이 나……”
“나도 오늘 내 집으로 돌아가……”(***)
그러나 물이 들어차
무수히 많은 빵 봉지들과 함께
노란 물탱크 속에
그 소녀 카나리아처럼 떠 있었다는
죽음의 묘사에
그냥 눈물이 나
*
복권에 당첨되어 달아난 아비를
모르고 문패를 뜯어
발로 차며 노는
아이들의 천진함에
그냥 눈물이 나
입속에 천국을 만들고
북방의 달문[月門]을 가리는
귓속에는 살이 찐
벼슬들에게
그냥 눈물이 나
*
모든 것을 가만히 둔 채
아무것도 멈추지 않은
시인들의 생식기에
불에 태운 설탕을 좋아하는
그들의 수사에
지적인 은신처에
그냥 눈물이 나
*
너무 성급하게 우린
첫눈에 반해버려
그 말에 그냥 눈물이 나
시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며
지면으로 울혈을 푸는 철학자의
피곤에 대해
그냥 눈물이 나
*
언제부턴가 신문지는 꽃잎이나
말리는 것으로 사용했는데
오래된 신문을 모아 햇볕에 놓아두면
습기도 날려버리고 소란도 옮겨 놓고
활자들도 구절초나 산국이나 쑥부쟁이처럼
향기도 기슭도 버리고
사나운 시절을 견딜 것 같아 모아두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사는
시집은 쌉니다
그냥 눈물이 나
나, 그냥
(*** 어린 왕자의 구절)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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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제가 쓴 시입니다.
그냥 슬퍼
2년 전부터 꼬박 챙겨보는
KBS2TV 주말드라마가 그냥 슬퍼
김영철이 살기 위해 신분 세탁한 것도 슬펐고
신구가 눈이 멀어가 새 삶을 설계한 것도 슬펐고
그것을 지켜본 김영애가 진짜로 영면한 것도 슬펐고
유동근이 암으로 죽어간 것도 참으로 슬펐어
요즘은 황금빛 내 인생을 해
사랑 찾아 자기 인생 찾아 재벌 타이틀을 버린
박시후가 전 같으면 어거지 신파였지만
KBS2TV 주말드라마를 사랑하고부터는
그의 동선이 그냥 슬퍼
고아로 자라 최고의 빵을 만드는 강남구는
이름 자체가 너무 슬퍼 본명이 최귀화야
그냥 기억해주고 싶어
오로지 한 여자만을 바보처럼 바라보는
외골수 사랑도 신파의 종착이지만
KBS2TV 주말드라마 애청자가 되고부터는
처연히 슬퍼 아름답도록 삶이 슬퍼
돈으로 볼 때 바닥부터 천장까지 있는 삶들 모두 슬퍼
부자가 타도의 대상이고,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가난한 자는 혁명의 주체이고, 건설의 역군이었지만,
나이가 들었나 봐, 너, 나, 우리, 삶 자체가 아프도록 슬퍼
모든 게 슬퍼
나이가 더 들까봐 걱정이야,
그때는 더 슬퍼서 눈물이 마를 거야
그래도 KBS2TV 주말드라마는 꼭 볼 거야
슬픔이 삶을 밀어가고 있거든
그래서 그냥, 더욱, 많이 슬퍼
(-김서정)
(시 그대로입니다. KBS2TV 주말드라마가 재밌습니다. 뻔한 구도에 뻔한 스토리 같은데, 열심히 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많은 사람, 적은 사람, 그런 거 굳이 구분하지 않으며 인물 하나하나에 감정이입하면서 봅니다. 나이 탓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