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가 중요한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중요한가
사사기 21:1-25
들어가며
앞서 살펴본 미가의 가정은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상황이 어땠는지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은 한 가정을 넘어 한 지파,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영적인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겉모습은 유지했어도
그 속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어두운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성경 속으로
1.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끝났습니다(삿 20장).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3절)
우선 전쟁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사사기 19-20장을 보면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살던 한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서 넉 달 동안을 지냈습니다.
남편은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서 첩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라는 곳에 있던
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마을에 있던 불량배들이 나그네가 성읍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그 노인의 집으로 와서 성관계를 목적으로 그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레위인은 자기 첩을 무리들에게 넘겨주었고 무리들은 그 여자를 밤새 윤간하였고,
결국 그 여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죄와 그 결과입니다.
더 놀랍고도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레위인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조각으로 내서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심각한 사체 유기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레위인이 보낸 시신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분노했고 기브아를 징계하고자 모였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불량배들을 넘겨주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와 전쟁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로써 전쟁이 벌어졌고 베냐민은 두 차례나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마지막에 대패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남은 사람이라고는 육백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삿 20:47).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2-3절입니다.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중에서 한 지파,
즉 베냐민 지파가 없어지게 된 것 때문에 슬퍼했습니다.
그들의 슬픔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더욱 슬퍼해야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나 사체 유기한 레위인이 범한 죄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영적으로 매우 어둡고 암울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밥 먹듯이 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것의 결과가 레위인이 첩을 두고,
동성애적 강간을 시행하려다 안 되니 다른 사람을 집단 강간하여 살해하고,
그 사체를 유기하는 등의 죄악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베냐민 지파가 소멸될 처지에 놓였다는 그것에 대해서만 슬퍼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적인 이유인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따라서 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회개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보았을 뿐 근본적인 영적 문제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든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더 난처하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1, 6-7절)
1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바로 이 맹세,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으리라는
그 맹세가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6-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베냐민 지파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도 육백 명이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그들에게 딸을 아내로 주지 않는다면 베냐민 지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근심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주는 중요한 도전과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맹세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감정이 격앙될 때는 더욱더 맹세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맹세한 후에 후회하는 사람들, 맹세는 했지만 지키지는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혹은 맹세로 인해 난처한 경우에 처하기도 합니다.
맹세는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교훈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한 맹세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자신들의 맹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이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매우 중시합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무시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우리는 ‘내가 한 말’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이 한 말을 무겁게 생각하여 한 번 한 약속은 가급적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소중히 여길까요?
자신이 한 맹세는 지키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길이며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3. 베냐민 지파를 회복시키고자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8-12, 19-24절)
8-9절입니다.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 중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총회와 함께하지 않은 자들은 다 죽이기로 결의했기 때문입니다(5절).
그렇게 해서 찾은 사람들이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도 전쟁을 위한 총회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10-12절을 보면 이스라엘 회중은 군사 일만 이천 명을 야베스 길르앗으로 보냈습니다.
그들 가운데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는 사백 명의 처녀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방 민족을 진멸할 때나 한 일을 동족에게 행한 것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자신들의 맹세도 지키고 베냐민 지파가 소멸되는 것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렇게 또 다른 엄청난 죄악과 비극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일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야베스 길르앗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사백 명의 처녀를 얻고서도 여전히 이백 명이 부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19-21절입니다.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참 기가 막힙니다.
아예 베냐민 족속 이백 명으로 하여금 실로의 여자들을 납치하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납치된 여자들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따지면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22절).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이 했던 맹세를 지키겠다는 일념뿐입니다.
낯선 남자에게 납치되어 강제 결혼해야 하는 여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강제 납치는 누가 보아도 범죄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를 조장한 것입니다.
애초부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잘못 맹세했다고 뉘우치고 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헛된 맹세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한 것입니다.
하기야 사사기를 통틀어서 진실한 회개의 모습이 없기는 합니다.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전쟁과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비극적입니다.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25절)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앞서 미가의 가정에 대한 말씀의 결론도 이 말씀과 비슷했습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국가에도 하나님이 참된 왕이 되지 않으시면 엉망진창이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교회에, 국가에 우리 하나님이 참된 왕이 되시기를 기도합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비롯해서 믿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철저히 순종합시다. 그럼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이 왕 되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헛된 맹세로 인해 죄 위에 죄를 더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어떻게 보입니까?
그런데 혹시 나도 회개하지 않고 뻗대다가 죄를 더한 경우가 있다면 솔직히 나누어 봅시다.
하나님이 내 삶에, 우리 가정과 교회에 참 왕이 되시기 위해서는 내가 그분의 다스리심에 먼저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한 주간의 실천/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하나님이 왕 되시기를 구하는 기도문 만들기
마무리하며
가정이든 나라든 교회든 심지어 내 삶에도 하나님이 왕 되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왕으로서 나와 가정, 교회와 나라를 다스리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물론 나 자신부터, 우리부터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