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신약(新約) ☆ (豫言書)
☆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때 ☞ 종말(개인/우주)
계12:1-9절) 龍과의 전쟁(戰爭)
中世 영국이나 북유럽의 신화(神話)들을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주인공(主人公)과 용(龍)과의 싸움입니다. 원래 용(龍)이라는 것은 상상(想像)속의 짐승이지만, 대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傳說)이나 이야기 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나 동양 문화권(文化圈)에서는 용(龍)이 아주 신성(神聖)하고, 좋은 짐승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대개 사람을 해치는 악(惡)한 짐승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聖經)에서 나오는 용(龍)은 서양의 신화(神話)에서 나오는 악(惡)한 짐승을 의미합니다. 용(龍)이란 짐승은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힘이 세어서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가 없는 상대입니다. 특히 용(龍)은 꼬리에 엄청난 힘이 있어서 사람이나 건물(집)을 치면, 다 부서지든지, 날아가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서 한번 걸려들면 찢어놓습니다.
더욱이 용(龍)은 하늘을 날기도 하고, 특히 입에서 화염(火焰)방사기처럼 불을 뿜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용(龍)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용(龍)의 지배(支配)를 받아서 처녀(處女)들을 갖다 바치기도 하고,용(龍)을 숭배(崇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 주인공(主人公)들은 이런 용(龍)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용(龍)과 싸워서 용(龍)의 목을 칼로 찌르기도 하고, 혹은 눈을 칼로 찔러서 그 거대(巨大)한 용(龍)을 이기고, 용(龍)에게 갇힌 여자(女子)들을 구출(救出)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양(西洋)의 신화(神話)에 나오는 이런 용(龍)은 실제로는 악(惡)한 통치자(統治者)를 상징(象徵)할 때가 많습니다. 즉 악(惡)한 사람이 정권(政權)을 잡게 되면, 그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權力)을 휘둘러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학대(虐待)하고, 자기(自己)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괴롭힙니다.
이런 악(惡)한 통치자(統治者)가 있으면, 평민(平民)들은 감히 이런 지도자(指導者)와 대항(對抗)하여 싸울 수 없습니다. 이런 악(惡)한 통치자(統治者)들은 잔인(殘忍)해서 자기(自己)에게 반항(反抗)하는 자(者)들을 무자비(無慈悲)하게 죽이기도 하고, 혹은 음모(陰謀)를 꾸며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악(惡)한 통치자(統治者)의 분노(忿怒)에 걸려들어서 그 입에서 나오는 불에 타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기(勇氣)있는 사람이 이런 악(惡)의 세력(勢力)에 굴복(屈伏)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이길 때, 이 사람은 진정한 영웅(英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主)님은 참으로 악(惡)의 세력(勢力)과 타협(妥協)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싸워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금식(禁食)하신 후(後)에 마귀(魔鬼)의 시험(試驗)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마귀(魔鬼)는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자기(自己)에게 *절을 하기만 하면, *천하(天下)의 모든 영광(榮光)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魔鬼)의 유혹(誘惑)을 단번에 거절(拒絶)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절을 하고 경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마귀(魔鬼)는 예수님과는 타협(妥協)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을 알고는 기회(機會)가 있을 때마다 죽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마귀(魔鬼)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背叛)했을 때, 모든 악(惡)한 권력(權力)을 다 동원(動員)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망(亡)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마귀(魔鬼)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死亡)을 깨트리기 위해서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죽음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귀(魔鬼)를 이기기 위해서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죄인(罪人)이 되셔서 심판(審判)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地獄)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自己) 스스로 지옥(地獄)의 고통(苦痛)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리(勝利)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거대(巨大)한 용(龍)과 싸우셔서 이기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세상(世上)에서 싸워야 할 대상(對象)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거대(巨大)한 용(龍)이어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Ⅰ.한 존귀한 여인(상)
악(惡)이 지배(支配)하는 시대(時代)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 중(中)에 여인(女人)들이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으서 모세가 태어나기 전(前), 히브리 남자(男子) 아이들을 살려준 두 산파(産婆)와 같은 사람이 있었고, 또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前), 마리아나 엘리사벳 같은 여인(女人)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여인(女人)들은 믿음을 가진 여인(女人)들이고, 대개 이런 여인(女人)들이 악(惡)의 세력(勢力)을 물러가게 하고, 따뜻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역할(役割)을 합니다.
12:1절)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오늘 말씀도 보면, 용(龍)이 온 세상(世上)을 지배(支配)하려고 할 때도 용(龍)에게 굴복(屈伏)하지 않는 한 존귀(尊貴)한 여인(女人)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여인(女人)을 통(通)해서 위대(偉大)한 아들이 오게 되고, 결국 사탄(詐誕)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하늘에 큰 이적(異蹟)이 보인다,’'는 것은 하늘에서 어떤 환상(喚想)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평범(平凡)한 하늘이 어느 한 순간 마치 영화(映畫) 스크린처럼 변(變)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담겨있는 영상물(映像物)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舊約) 시대(時代)에 선지자(先知者)들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의 예언(豫言)이 담겨져 있는 꿈을 꾸게 되면, *징조(徵兆)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진 꿈이나. 이상(理想)을 볼 때는 이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자기 (自己) 온 영혼(靈魂)을 사로잡는 영적(靈的)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본인(本人)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時代)에도 가장 놀라운 이적(異蹟)은 사람의 입을 통(通)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이것입니다. 즉 오늘날 많은 기적(奇蹟)들 중(中)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기적(奇蹟)은 설교(說敎)를 하고, 또 그 설교(說敎)를 듣는 이것입니다. 즉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설교(說敎)를 통(通)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또 사탄(詐誕)의 시험(試驗)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설교(說敎)를 들음으로 우리가 처(處)한 현실(現實)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또 내가 나아가야 할 바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답답한 것이 있다면,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게'됩니다.
이 세상(世上)은 마치 거대(巨大)한 풍랑(風浪)이 이는 바다와 같기 때문에 배(船)에 튼튼한 엔진이 없으면.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제자리에서 맴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풍랑(風浪)을 헤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영상(映像)은 대단히 존귀(尊貴)한 한 여인(女人)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여인(女人)이 얼마나 존귀(尊貴)한지, 이 여인(女人)은 해를 옷처럼 입고 있었습니다. 즉 그 여인(女人) 자체(自體)가 태양(太陽)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대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女人)들을 보려면, 큰 파티를 하는 곳에 가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국제영화제(國際映畵祭) 시상식(施賞式)같은 곳에 가보면, 아름다운 여자(女子) 배우(俳優)들이 모두 반짝이는 장식(粧飾)을 단 옷에 달라붙는 긴 드레스를 입고 등은 거의 다 드러낸 채, 등장(登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멋진 드레스를 입은 여자(女子) 배우(俳優)들이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존귀(尊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본 여인(女人)은 아예 입은 옷이 태양(太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女人) 이 입은 옷 자체(自體)가 도저히 보통 사람들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너무나도 강렬(剛烈)한 빛을 내는 옷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이 세상(世上)에 태양(太陽)을 자기(自己) 드레스로 만들어 입고 나올 수 있는 여인(女人)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 여인(女人)은 곧 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데렐라 동화책(動畫冊)을 보면, 평소(平素)에 신데렐라는 누추(陋醜)한 옷을 입고, 집에서 하녀(下女)가 하는 일을 하지만, 마녀(魔女)가 마술(魔術)을 부리니까 그 누더기 옷은 멋진 드레스로 변(變)하고, 호박은 마차(馬車)로 변(變)하고, 생쥐는 말(馬)로 변(變)해서 왕자(王子)님의 파티에 초대(招待)되어 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고, 무식(無識)한 사람들도 많아서 도저히 태양(太陽)같이 빛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속에는 태양(太陽)보다 더 강(强)한 빛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고난(苦難)을 받을 때,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보석(寶石)으로 변(變)하게 되고, 우리를 통(通)해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영광(榮光)은 태양(太陽)보다 더욱 강(强)한 빛입니다.
이 여인(女人)의 빛 아래는 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등잔 불 빛은 어둡다는 말을 합니다. 아마 이 여인(女人)에게도 어두운 시절(時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女人)은 아무리 어두울 때도 발에서 달이 빛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캄캄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이 여인(女人)의 머리에는 열두 개의 별로 된 면류관(冕旒冠)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열두 개의 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百姓)들이 이 세상(世上)에서 변화(變化) 되어 만들어지는 모습을 말합니다. 원래 별이라는 것은 이 세상(世上)의 어떤 죄(罪)도 접근(接近)할 수 없는 순수(純粹)한 존재(存在)를 말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世上)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모를 때는 죄(罪)에 오염(汚染)이 되어 쓰레기 같은 인생(人生)을 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연단(練鍛)을 받으면, 순수(純粹)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하늘에 있는 별처럼, 이 세상(世上)의 어떤 사람도 함부로 대(對)할 수 없는 존귀(尊貴)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
이 여인(女人)에게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빛이었습니다. 이 여인(女人)에게는 태양(太陽)빛도 있고, 달빛도 있고, 별빛도 있습니다. 결국 이 여인(女人)이 갖고 있는 빛은 하나님의 진리(眞理)가 가지는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舊約) 이스라엘과 신약(新約) 교회의 가장 중요(重要)한 특징(特徵)은 하나님의 진리(眞理)의 빛이 있는 이것입니다. 구약(舊約)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新約) 교회를 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는 신적(神的)인 영광이 있습니다.
이 여인(女人)은 어느 때는 태양(太陽)처럼 밝은 빛을 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달과 같은 빛을 나타낼 때도 있고, 별처럼 사람들의 길을 인도(引導)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존귀(尊貴)한 여인(女人)의 정체(正體)가 무엇일까? 이 여인(女人)은 곧 교회(공동체)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이 캄캄한 죄악(罪惡)된 세상(世上)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發)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罪惡)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빛을 비추는 등대(燈臺)인 것입니다.
밤에 바다에 가면, 반드시 등대(燈臺)가 있습니다. 바다에 등대(燈臺)가 있는 이유는 거기에 암초(暗礁) 가 있어서 표시(標示)를 하지 않으면, 배(船)가 암초(暗礁)에 부딪쳐서 바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세상(世上)에서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휴게소(休憩所)가 아닙니다. 교회(공동체)는 이 세상(世上)에 빛을 발(發)하는 곳이며, 바다에 빠진 자들을 건지고, 죽어가는 자들을 치료(治癒)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셀(Cell)공동체를 비유(比喩)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나 예배(禮拜)하는 하나님의 백성(百姓)들로 정의(正義)할 수 있지만, 죄악(罪惡)된 세상(世上)의 등대(燈臺) 요, 영혼(靈魂)을 치료(治癒)하는 병원(病院)으로 비유(比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교회(공동체)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생수(生水)는 죄(罪)로 인해 심하게 부패(腐敗)하고, 다친 사람들을 치료(治癒)하는 능력(能力)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世上)이 아무리 미래(未來)에 대(對)한 희망(希望)이 없고, 불안(不安)과 두려움이 세상(世上)을 덮는다 할지라도 교회(공동체)에는 하나님의 빛이 있고, 내일의 소망(所望)이 있는 것입니다.
12:2절)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그런데 이 존귀(尊貴)한 여인(女人)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아기를 낳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기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온 인류(人類)를 구원(救援)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인(女人)이 아이를 배어 낳았다 해서 교회(敎會)가 그리스도를 탄생(誕生)시켰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라는 영적(靈的) 공동체(共同體)를 매개(媒介)로 해서 이 세상(世上)에 오셨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百姓)들을 구원(救援)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여인(女人)이 아기를 낳기 위해 엄청난 해산(解産)의 고통(苦痛)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여인(女人)은 배가 아파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世上)에 오시기까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한 진통(陣痛)을 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이 부패(腐敗)하지 않고,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엄청난 진통(陣痛)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 때, 부패(腐敗)한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셔서 남(南)쪽 유다는 순수(純粹)하게 남게 하셨고, 나중에는 유다마저도 바벨론의 포로(捕虜)라고 하는 진통(陣痛)을 통하여 순수(純粹)한 하나님의 백성(百姓)으로 남게 하셨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百姓)들 안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言約)이 있었고, 영적(靈的)인 부흥(復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이방인(異邦人)들은 감히 이스라엘의 복(福)에 가까이 접근(接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異邦人)출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엡2:12-13절)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영광(榮光)만큼이나 또 많은 고통(苦痛)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켜야 했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對)한 책임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은 자꾸만 이방인(異邦人)들을 따라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苦痛)을 주셨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은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약시대(新約時代) 우리들이 이 존귀(尊貴)한 여인(女人)의 뒤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요, 하나님의 가장 귀(貴)한 축복(祝福)의 백성(百姓)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靈的) 순결(純潔)을 지켜야 하고, 정신적(精神的) 순결(純潔)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영적(靈的) 순결(純潔)이라는 것은 성경적(聖經的)인 신앙(信仰)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적(精神的)인 순결(純潔)이라는 것은 세상(世上)에 추파(秋波)를 보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만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아-멘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매일 새벽(冬)5-6시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저녁엔 회개와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517)
| 우리세대와 다음세대,소중한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마28:18-20) ◑멸망할 영혼救靈과 避難處설립할 특별기도와 특별기부동역자 찾습니다. 온라인 헌금 농협중앙회 주거래 우대통장 302-8772-0191-01 이름 옆에 헌금종류-6자(예 : 착한이 십일조) ☆네 재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인정(認定)과 순종(順從) 💖진리의 복음💖 |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친절하게 열린 상담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