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1번째 시간으로서 “사랑의 무게” 愛の重さ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앞의 두 구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26절~27절
“26.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6.こういうわけで、神は彼らを恥ずべき情欲に引き渡されました。すなわち、彼らのうちの女たちは自然な関係を自然に反するものに替え、
27.同じように男たちも、女との自然な関係を捨てて、男同士
で情欲に燃えました。男が男と恥ずべきことを行い、その誤りに対する当然の報いをその身に受けています。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지금 여기서 <그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이는 앞의 로마서 1장 18절에 등장하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不義によって真理を阻んでいる人々)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不義によって真理を阻んでいる人々), 즉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서 27절에 보면 이는 대단히 독특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동성애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만, 그 중에 보면 제가 볼 때,
이게 정말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맞는 것일까 하는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언급된 부분은 이는 동성애에 대한
말씀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종종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좁게 이야기를 하면 동성애이지만, 혹시 여러분께서는 LGBT라고
하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L은 레즈비언으로 여성 동성애자, G는 게이, 남성 동성애자, B는 바이섹슈얼
양성애자, T는 트랜스 젠더. 성별월경자라고도 합니다만, 이는 쉽게 말해서 선천적인 성이 아닌 다른 성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살아가고 싶다거나, 아니면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성전환 수술까지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오로지 동성애만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6절과 27절에 보면 분명히 여성 동성애와 남성 동성애에 관한 기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이겠습니다만,
여기서 동성애라고 하는 것은 우정 같은 친구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성적인 관계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일본 기독교에서의 입장은 명확하게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한국의 경우를 본다면 같은 기독교라 하더라도 이 동성애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배척할 것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 코로나 사태 이전에 보면, 어느 정당이 제출한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계기로 해서 각 교회들마다 이
법안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움직임이 대단했습니다. 서명운동도 하고 집회도 하고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러던 차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그리고 한국의 경우를 보면 교회 예배나 모임을 통해서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이제는 국민들이
교회를 공격하고, 오히려 교회가 차별을 당하게 되다 보니까 이런 움직임이 조금 잦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요즘이 아니더라도 이 동성애 문제, 특히 교회에서 이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동성애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먼저 이와 같은 내용, 좀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겠으나,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 성경을 바탕으로
잠시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여러분께는 성경에 등장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8장 3절~5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すると、律法学者とパリサイ人が、姦淫の場で捕らえられた女を連れて来て、真ん中に立たせ、
イエスに言った。「先生、この女は姦淫の現場で捕らえられました。
モーセは律法の中で、こういう女を石打ちにするよう私たちに命じています。あなたは何と言われますか。」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여기서 서기관이란 다른 말로 율법학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이 율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간음하던 여자를 잡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를 끌고 와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데에
세우고는 예수님한테 말하기를, 율법에 보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되어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자, 그렇다면 간음한 여인은 죽이라고 하는 율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예, 있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人が他人の妻と姦淫したなら、すなわち自分の隣人の妻と姦淫したなら、その姦淫した男も女も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2장 22절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夫のある女と寝ている男が見つかった場合
は、その女と寝ていた男もその女も、二人とも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こうして、あなたはイスラエルの中からその悪い者を除き去りなさい。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율법에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죽이라고 되어 있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끌고 온 사람은 여자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오늘은 객관적이 사실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들이 이 율법을 어긴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여자는 율법에 의하면 죽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신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사실 지금 이 상황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냐 하면,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는 이 여자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또한 잘못하면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로마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강압적인 통치방법이
아니라, 그 지역에 어느 정도 자율권을 허용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재판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만 사형 집행에 대해서만은 로마 기관에 의한 판결을 받아야만 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게 하기 위해서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까지 끌고 갔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이 여자를 죽여야 하냐 말아야 하냐를 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약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여자를 죽여랴, 라고 하셨다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 판결을 내리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당시 로마의 법률, 말하자면
현행법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반면에 이 여자를 죽이지 말아라, 라고 한다면, 아니,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다 뭐다 하더니만 결국 로마에 굴복하는 거네? 뭐 이런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시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간절히 바랬던 백성들의 믿음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요.
솔직히 이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교묘한 함정이었다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8장 7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しかし、彼らが問い続けるので、イエスは身を起こして言われた。「あなたがたの中で罪のない者が、まずこの人に石を投げなさい。」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그래?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 여자를 심판하고 싶다면, 너희들 중에서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한복음 8장 9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彼らはそれを聞くと、年長者たちから始まり、一人、また一人と去って行き、真ん中にいた女とともに、イエスだけが残された。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11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イエスは身を起こして、彼女に言われた。「女の人よ、彼らはどこにいますか。だれもあなたにさばきを下さなかったのですか。」
彼女
は言った。「はい、主よ。だれも。」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もあなたにさばきを下さない。行きなさい。これからは、決して罪を犯してはなりません。」〕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그 여자는 분명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질 만큼 죄가 없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당장에라도 그 여자를 향해서 돌을 던지려고 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둘째로 이번에는 사도행전 말씀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16절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16절
“9.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翌日、この人たちが旅を続けて、町の近くまで来たころ、ペテロは祈るために屋上に上った。昼の十二時ごろであった。
彼は空腹を覚え、何か食べたいと思った。ところが、人々が食事の用意をしているうちに、彼は夢心地になった。
すると天が開け、大きな敷布(しきふ)のような入れ物が、四隅をつるされて地上に降りて来るのが見えた。
その中には、あらゆる四つ足の動物、地を這うもの、空の鳥がいた。
そして彼に、「ペテロよ、立ち上がり、屠って食べなさい」という声が聞こえた。
しかし、ペテロは言った。「主よ、そんなことはできません。私はまだ一度も、きよくない物や汚れた物を食べたことがありません。」
すると、もう一度、声が聞こえた。「神がきよめた物を、あなたがきよくないと言ってはならない。」
このようなことが三回あってから、すぐにその入れ物は天に引き上げられた。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이는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일입니다. 여기서 제 육 시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지금 우리 시간으로
본다면 낮 12시, 정오가 됩니다. 이제 베드로가 기도를 하는데 환상이 보여요.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거기 안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온갖 짐승들이나 새 같은 것들이 거기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걸 잡아먹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는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구약에 보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이 명확하게 율법으로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율법에 정해진 것 외에는 지금까지 먹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거절을 한 것으로 미루어본다면, 베드로가 환상으로 본 그
보자기 안에는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 먹으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만약에 그 중에서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안 되는 것도 섞여 있었다면, 그것만 어쩌면 잡아먹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베드로가 그 안을 보았을 때에는 아무리 봐도 율법적으로 금지된 것만 들어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렇게 먹지 못할 것만 들어 있는데도, 들리는 목소리는 자꾸만 잡아먹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먹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이런 깨끗하지 않은 것들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니까, 그 목소리가 말하기를, 아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왜 못 먹겠다고 하는 거냐……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는 상종을 안 했습니다. 그야말로
인종차별을 철저하게 했었던 것이지요. 이방인들과는 말도 나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앙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자를 베드로에게 보내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마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거부했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인해서, 너는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이방인을 거부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라고 하는 뜻으로 베드로에게 이와 같은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순종한 베드로는 이제 처음으로 이방인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절~2절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さばいてはいけません。自分がさばかれないためです。
あなたがたは、自分がさばく、そのさばきでさばかれ、自分が量るその秤で量り与えられるのです。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비판을 받지 않는 방법, 간단합니다. 상대방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비판을 하는 사람이 흠이 없다면
비판을 하면 되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비판을 하는 너한테도
얼마든지 비판을 받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판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비판을 한다는 것은 항상 교만과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언 13장 10절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高ぶりがあると、ただ争いが生じるだけ。知恵は勧告を聞く者とともにある。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들이 왜 상대방을 비판을 합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을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 너나 나나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내가 뭘 잘났다고 너를 비판할 수 있겠냐……이렇게 되면
교만이 사라지고 다툼도 사라지고 평안과 화평이 찾아오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까지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가 본 보자기 환상 이야기였고요, 세 번째는 비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본론으로 돌아와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성애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어떤 경건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앞에 어떤 한 동성애자를 끌고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한쪽 손에 돌을 쥐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경건한 신앙인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 이 사람은 동성애자다. 너는 이 사람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겠느냐.
이 경건한 신앙인은 성경말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레위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0장 13절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男がもし女と寝るように男と寝たなら、二人は忌み嫌うべきことをしたのである。彼らは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血の責任は彼らにある。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둣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래. 알았다” 하고 말씀을 하시더니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지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천사들도
그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동성애자는 수많은 돌에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이 경건한 신앙인에게 묻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중 후반부인 로마서 1장 28절~32절까지 뭐라고 써있는지 한 번 읽어봐라.
그래서 이 경건한 신앙인이 성경을 펴보았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32절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28.また、彼らは神を知ることに価値を認めなかったので、神は彼らを無価値な思い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れで彼らは、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行っているのです。
29.彼らは、あらゆる不義、悪、貪欲、悪意に満ち、ねたみ、殺意、争い、欺き、悪巧みにまみれています。また彼らは陰口を言い、
30.人を中傷し、神を憎み、人を侮り、高ぶり、大言壮語(たいげんそうご)し、悪事を企み、親に逆らい、
31.浅はかで、不誠実で、情け知らずで、無慈悲です。
32.彼らは、そのような行いをする者たちが死に値するという神の定めを知りながら、自らそれを行っているだけでなく、それを行う者たちに同意もしているのです。”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너 여기에 적힌 죄를 지금까지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니? 율법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
야고보서 2장 10절에 뭐라고 적혀 있니?
이 경건한 신앙인은 또다시 서둘러 성경을 찾아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過ちを犯すなら、その人はすべて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からです。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가 되나니
예수님께서는 이 경건한 신앙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율법 모두를 지키다가도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나 마찬가지라고 되어 있지? 그러면 율법을 범하면 어떻게 된다고?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32절에 의하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면 사형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지 않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그 동성애자의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십니다. 자, 저기 서. 이제 네 차례야.
여러분,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는 제 상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앞서 레위기 20장 13절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동성애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율법을 하나도 어긴 적이 없나요?
꼭 무슨 사람을 죽여야 살인이고, 바람을 피워야 간음이 아닙니다. 우리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22절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昔の人々に対して、『殺してはならない。人を殺す者は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兄弟に対して怒る者は、だれでも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弟に『ばか者』と言う者は最高法院でさばかれます。『愚か者』と言う者は火の燃えるゲヘナに投げ込まれます。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장 27절~28절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姦淫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情欲を抱いて女を見る者はだれでも、心の中ですでに姦淫を犯したのです。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앞서 22절에 나오는 <라가>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바보, 멍청이 같은 욕설을 말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기만 해도 그것은 살인한 것과 같고, 음란한 생각을 가지고 이성을 보기만 해도 이미 간음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살인과
간음은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 우리가 다른 사람이 율법을 어겼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죄가 없는 사람입니까.
오해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먼저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동성애는 틀림없이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한다는 것은 나는 그 사람들보다 의롭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요, 나는 그 사람들을 비판할 정도로 죄가 없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를 동성애자라고 해서 배척을 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저를 보고 뭐라고 말씀하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처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よくやった。良い忠実なしもべだ。おまえはわずかな物に忠実だったから、多くの物を任せよう。主人の喜びをともに喜んでく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아니면,
앞서 살펴본 베드로가 본 환상에서처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神がきよめた物を、あなたがきよくないと言ってはならな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실까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自分の敵を愛し、自分を迫害する者のために祈りなさ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가 무엇입니까. 원수란 나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나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동성애자는 그와 같은 내 원수보다도 더 배척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2장 8절~9절
"8.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もし本当に、あなたがたが聖書にしたがって、「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最高の律法を守るなら、あなたがたの行いは立派です。
しかし、もし人をえこひいきするなら、あなたがたは罪を犯しており、律法によって違反者として責められます。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는 그 무게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는 많은 피를 흘리시고, 죄인들을 위해서는 조금만 흘려주셨나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갈 만한 자격은 조금도 없고, 오로지 지옥불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모든 피를 흘려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의로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예수님의 보혈
없이는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을 차별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차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과 넘치는 축복을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우리 이웃을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