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차비가 떨어졌어요,
여존남비(女尊男卑)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우리 집에서는 딸은 아들보다 더한 우선권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아래인 여동생은 어엿하게 이화여고에 진학하였고, 나는 낮에는 뚝섬에 있는 오리엔트 시계회사의 조립공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성동공고의 야간학부에서 공부하였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우유배달, 아이스크림 배달을 하면서 고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직업훈련원에서 1년 과정을 거쳐 기능공 자격증을 취득하느라 3살 터울인 여동생과 같은 해에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동생에게는 명문 학교에 입학하였다고 가족이 몰려들어 교복과 더불어 구두를 사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는 책가방을 사주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딸이 우선이고 아들은 머슴처럼 섬기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교문리에서 살던 시절
아침에 동생이 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떨어졌다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더니 마침 집안에 돈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은 터라 아버지는 체면을 마다하지 않고 이웃에게 급히 돈을 빌려 동생에게 쥐어 주셨다.
얼마 지난 후 나에게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나 보려고 아침에 직장에 나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어 “아버지! 차비가 없어요” 그랬더니 단박에 들려오는 아버지의 짜증 섞인 목소리 “야~~ 이놈아 나도 없는데 난들 어떻게 하냐? 넉적은 놈 같으니” 그러시면서 혀를 끌끌 차신다.
차비 없이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겨 들고 뛰쳐나가 만원 버스에 올라타니 “차비 내고 가야지~~”라는 앙칼진 차장 누나의 외침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사람들의 틈을 뚫고 헤집고 들어간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피식 웃을 뿐 불평 없이 여존남비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그 시절!
그래도 동생이 우선이라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었다. 동생은 우대받아야 하고 나는 천한 자리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서일까? 오늘까지도 여동생은 내게 잘 해줘도 너무 잘해준다. 그런 동생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