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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대간 팀 계획에 따라 '저수령 → 촛대봉 → 투구봉 → 시루봉 → 배재 → 유두봉 → 싸리재 → 흙목 → 송전탑(뱀재) → 솔봉 → 모시골재 → 1,011봉 → 1,027봉 → 묘적령 → 고항치'의 14.3km, 6시간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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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계획에 따라 이번 주 토요일 산행은 한 산악회를 따라 남원 봉화산에 갈 예정으로 1월 15일 신청했었다. 그런데 산행 열흘 전임에도 신청자가 10명을 넘지 않아 성원을 채우지 못해 산악회에서 취소할 분위기였다. 당연히 Plan B를 고민할 때라 여기저기 산악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지난 함백산행[산행기]에서 방수가 안 되는 등산화로 고생했던 친구가 방수 등산화 산 기념으로 눈 산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미 웬만한 산은 눈이 다 녹아, 새롭게 눈이 내려야 설국 산행이 가능했다. 해서 2월 17일 기상청 날씨누리에 들어가 10일 중기예보를 확인했다. 그 결과 2월 26일 금요일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 비가 내릴 예정이고, 와중에 기온이 낮은 강원 영동지역에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였다. 그럼 선자령이다!
해서 2월 27일 토요 산행으로 선자령 눈 산행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함백산행 당시 다른 등산객이 타는 걸 보고 부러워만 했던 눈썰매를 사서 들고 갈 예정으로, 함백산에 갔던 4 친구 중 두 친구는 선약 또는 집안에 일이 있어 같이 할 수 없어, 홍 원장, 기식 그리고 미지의 한 친구를 포함 총 4명이 기식이 운전하는 차로 선자령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산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게 점심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선자령에서 썰매를 탄 후 점심은 대관령 식당가에서 먹기로.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거의 매일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기상청 3일 예보는 신뢰도가 높으나, 10일 예보인 중기 예보는 정확도가 떨어져 계속 확인해야 했다. 역시 2월 21일 중기예보부터 강원 영동지역의 눈이 사라졌다. 눈이 없는 선자령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따라 일단 선자령 산행은 3일 예보가 나올 때까지 잠정보류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이제는 Plan C까지 필요해졌다. 해서 다시 각 산악회 산행 공지 게시판에 들어가 갈만한 산을 찾았으나, 눈에 띄는 산이 없었다. 물론 계획은 많았으나, 대개 섬이나 남도의 나지막한 산으로 산행 시간 5시간 내외라 이동으로 도로에 쏟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내 기준 갈 만한 산은 성원을 채우지 못해 산악회에서 취소할 게 뻔한 산이었다. 이런 경우 언제나 호황이라 취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백두대간 산행을 뒤적이는데, 토요일은 무박 산행만 있어 포기하고. 일요일 계획 중 찾아보니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지난 1월 10일 대간 13구간 중 일부인 묘적령에서 도솔봉을 거쳐 죽령까지 달렸었는데[산행기], 그 연결구간으로 저수령에서 묘적령까지 달리는 산행이다. 예약 상황을 보니 대기자 두 명의 만원으로, 예약자 중에는 익숙한 이름이 많았다. 물론 그중에 흥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토요일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어 고민하고 있었던 차라, 망설임 없이 대기자에 이름을 올렸다. 일요산행은 후유증으로 월요일이 망가지기 때문에 산행을 자제하는데 다음 날이 3.1절 휴일이라 그 고민도 없었다.
어쨌든 취소자가 3명 이상이면, 백두대간 산행에 따라갈 수 있다.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산행 3~4일 전에 취소하는 등산객이 많아 대기 5번 정도까지는 안정권이다. 그러던 중 생각보다 빨리 산악회에서 빈자리가 생겼으니 회비를 입금하라는 문자가 왔다. 혹시 26일 강원 영동지역에 눈이 내려 27일 선자령으로 달려가게 되면 대간 산행을 취소할 생각으로 일단 회비를 입금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산악기상정보를 확인했는데, 2월 26일 강원 영동지역에 눈은 없다는 최종 예보에 따라 다음을 기약하며 선자령 눈썰매 산행은 취소했다.
흥수와는 지난 토요일 백두대간 도래기재~늦은목이 산행[산행기]에 이어 다시 대간을 달리게 됐다. 흥수는 백두대간 진부령에서 중산리까지 연결 산행 중이고 나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오르는 중이라 생각보다 겹치는 부분이 많아 우연히 산악회 버스에서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주 산행도 흥수는 도래기재에서 늦은목이까지 대간 14구간의 일부를 달렸고, 나는 해발 1,000m가 넘는 두 산 ‘옥석산과 선달산’에 올랐다. 둘의 목적은 달랐으나, 코스는 같았다. 그런데 이번 대간 산행도 대부분 봉우리가 1,000m가 넘는 산이라 내 목적에 부합하기는 하나 그 봉우리라는 게 거의 알려지지 않아 '한국의 산하'나 다른 산 관련 사이트 또는 신문, 잡지가 소개한 적이 없는 봉우리다. 고로 이번 산행기에는 산이나 봉우리 소개가 없다.
산행 재미가 있거나 조망이 좋은 경우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알려 시간이 있는 친구는 같이하자고 청하는데,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대간 산행만큼은 청하지 않는다. 산악회 대간 팀은 주어진 구간을 주어진 시간 내에 끝내야 해 앞만 보고 달려야 간신히 마감 시각을 맞출 수 있는 산행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서 사전에 협의 없는 흥수와 둘만의 산행이다. 물론 버스에서 가끔 보던 등산객을 만나겠지만. 그 구간의 봉우리나 산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건 경치나 조망이나 볼 게 없어서 임은 말할 필요도 없어 카메라는 가장 가벼운 거로, 점심도 간편식으로 가볍게 준비한다. 그리고 날머리인 고항치에 식당이 없는 만큼 주어진 시간을 다 활용한 산행을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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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당일 새벽 4시에 잠이 깨, 다시 자려고 발버둥 쳤으나 자지 못했다. 거의 한 시까지 책을 보다 잠이 들었으니 대략 3시간여를 잤다. 비록 잠은 오지 않았으나, 새벽부터 돌아다니면 잘 자는 가족에게 방해가 될까 봐, 5시까지 그냥 누워 있으려다 잠이 들어 다섯 시 알람 소리에 기상했다. 알람이 울리기 10여 분 전에 잠이 들어 알람을 끄고 더 잘까도 고민도 했으나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늘 그렇듯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전날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5시 48분경 집을 나섰다. 교통 앱에 의하면 마을버스는 1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 오랜만에 불광역까지 걸어서 갈 생각이었다. 집과 불광역 사이 지역 재개발로 모든 길이 막혀 그동안 시간이 아슬아슬했음에도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집에서 불광역으로 가는 길목에 ‘대조시장’이라고 재래시장이 있다. 물론 재개발 구역을 통과해야 하므로 재개발이 시작되자 이 동네에서 재래시장까지 접근이 어려워 시장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에 관해 상인의 항의가 있었는지, 12월 말 대조시장으로 향하는 통로가 생겼다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달렸다. 그래 봐야 기존에 있던 통로보다는 더 멀 거라는 생각에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 시간이 아슬아슬했으나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며칠 전 친구가 대조 시장 내 단골집인 '삼오순대'에서 한잔하자고 해 그 통로를 이용해 대조시장에 갔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통로가 잘 만들어져 많이 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이 도로를 이용해 불광역으로 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과거 재개발 이전에 집에서 불광역까지 걸어서 15분가량 걸렸었기 때문에 2분 정도 더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서 불광역으로 향했다. 재개발 지역 내 모든 건물이 사라져 시야를 가리는 게 없이 과거와는 달리 아주 잘 보이는 여명 속 북한산 족두리봉을 감상하며 불광역으로 향해 지하철 출발 2분 전인 6시 4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하철 출구 50여 미터 전쯤 도착했을 때 평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가 도착하는 장면을 보게 되어 속이 쓰렸다.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마을버스를 타고 왔어도 걷는 거보다 빠르다는 얘기라.
승차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평소보다 등산객이 많다. 날이 풀리고 코로나가 진정되는 모습을 보여 그동안 움츠렸던 등산객이 활동을 시작하는 거로 보였다. 이 3호선 라인에 등산객의 성지 신사역, 양재역 두 곳과 떠오르고 있는 교대가 있어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지만, 불광역에서는 나를 포함 소수에 불과했는데, 오늘은 의외로 많았다. 패드로 음악 감상과 독서를 동시에 하며 양재역으로 향해 6시 48분경 도착했다. 역시 등산객의 성지답게 코로나 이전 대비 60% 정도의 등산객이 보였다. 코로나 초기에 비하면 배 이상 늘어난 수다.
6시 50분에 사당역을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아직 지지 않은 둥근 달을 보고 깜짝 놀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월 대보름이 어제였다. 먼저 소규모 산악회? 동호회 버스가 도착하고 6시 58분경 열을 지어 버스가 도착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기 위해 앞에서부터 차례로 목적지를 확인했다. '덕유산'을 선두로 ‘대덕산’ 등이 있었으나 막 도착한 다섯 대에서는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찾을 수 없었다. 해서 혹시 내가 잘 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처음부터 확인하려고 하는 앞으로 가려는 순간, 다시 버스가 줄지어 오는 게 보여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두 번째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 같았다. ‘같았다?!’고 하는 이유는 목적지가 "대간 41-29"라고 씌어 있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간 팀도 아닌 내가 어느 팀이 어떤 구간을 가는지 알 턱이 없고, 다만 ‘저수령~묘적령’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
막판에 두 명이 취소하기는 했으나 만원이나 다름없는 차라 카메라와 독서용 패드만 들고 버스에 탔다. 사당에서 흥수가 타고 왔으니 혹시 잘 못 탔다면 흥수가 없을 거고 그럼 내려 다시 차를 찾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저수령~묘적령'이 목적지인 버스가 없었고, 목적지가 "대간"인 버스도 이게 유일해 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흥수가 자리에 앉아 있어 인사를 나누고 내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7시 정각 양재역을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 ‘단양 팔경 휴게소’에 도착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휴게소 주변을 둘러보고 버스로 돌아가 자리에 앉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주었고, 버스가 출발하자 산행 주의사항과 코스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백두대간에 내세울 만한 봉우리 하나 없는 구간이고 대부분 코스가 해발 1,000m가 넘으니 대간꾼이 아니면 잘 찾지 않아, 소위 얘기하는 알바할 만한 지점이 없었다. 해서 묘적령에서 좌회전해 도솔봉 쪽으로 가지 말라는 게 주의사항이었다. 짧은 인솔 대장의 공지가 끝나자 피곤해 눈을 붙였다. 잠깐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9시 30분경이다. 대략 40여 분을 잤다. 시간상 목적지가 멀지 않아 보여 정신을 차리고 등산화를 다시 신는 등 등산 준비를 했다. 등산화 끈을 정리하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에 관해 얘기했다. 주는 마감 시각에 관한 거로 9시 50분 들머리 도착 예정, 이 코스에 주어진 시간이 6시간이라 3시 50분 마감이나 예정대로 4시에 마감!
9시 52분경 저수령 주차장으로 버스가 들어가는 순간 이외의 모습에 놀랐다. 고개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었다.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되었는지 폐허였다. 아마 충북에서 경북으로 넘어가는 주요 국도였다가 어딘가에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진 후 주변 동네 또는 대간꾼만 이용하는 도로로 전락하며 사람이 찾지 않아 주요소와 휴게소 모두 문을 닫았을 거다. 과거 주유소와 휴게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후 뒤를 돌아보니 같이 온 대간꾼이 한 곳에 몰려 있어 가보니 백두대간 저수령 표지석 앞에서 인증을 찍고 있었다. 나 또한 기념으로 표지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내가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묘적령 쪽이 아닌 반대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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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인 저수령이 해발 850m, 첫 번째 봉우리인 촛대봉이 해발 1,080m. 고로 고도 230m만 올라가면 첫 봉우리라 웬만한 동네 뒷산보다 낮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거의 선두 그룹에서 촛대봉을 향해 출발했다. 그 시각이 9시 57분이었다. 비록 230m의 고도에 불과하지만, 위로 오르는 건 다른 봉우리나 다름이 없어 이번 산행 첫 번째 깔딱을 헐떡거리며 올라 10시 22분에 촛대봉에 도착했다. 800m를 20분이 넘게 걸려 올라왔으니 깔딱이 맞다! 촛대봉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예상대로 볼만한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지자체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어 약간 놀랐다. 그 정상석을 배경으로 이제 막 도착한 여성 대간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기고 바로 다음 봉우리를 향해 출발했다. 대간 산행은 조금만 여유를 부리면 마감 시각에 쫓기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때 거리를 단축해 두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촛대봉을 출발해 1.3km 떨어진 세 번째 봉우리이자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봉인 수리봉의 중간 정도에 있는 투구봉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30분경이다. 즉 이 코스의 두 번째 봉우리인 투구봉에 도착했다. 투구봉 정상 직전에 바위 봉우리가 있어 그 위 올라 앞을 보니 우리가 가야 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희미하게 소백산도 보이고. 역시 트레킹에 좋은 능선이라도 해발 1,000m가 넘어야 산다운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능선 부분부분 하얀 상고대가 반겨주었다. 그 상고대의 능선을 사진으로 남기고 투구봉 정상에 도착하니 표지목이 있었다. 의외다. 여기도 표지목을 세우다니. 그런데 더 놀란 건 그 표지목에 쓰여 있는 "소백산, 투구봉"이라는 글이다. 아니, 여기도 소백산?! 그럼 마구령부터 저수령까지 소백산이라는 얘긴데?!
투구봉을 떠나 다음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하산해야 했다. 물론 내려가며 그 하산 길이 길지 않기를 바랐다. 내려가는 만큼 오르는 게 능선 위의 봉우리라. 어느 정도 내려가다 다시 봉우리를 향해 올랐다. 그런데 등산로는 앞에 있는 봉우리 끝까지 오르지 않고 우회해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봉우리를 무시하고 갈 흥수와 내가 아니라 과거의 길이 있었던 희미한 흔적을 따라 봉우리에 올랐다. 정상에는 어떠한 표지도 없었고, 봉우리에 오르면 알려주는 등산 앱도 반응이 없는 거로 봐서 봉우리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명봉에 오를 때 강한 바람이 불어 상고대가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양이 떡을 하기 위해 빻은 쌀가루와 아주 많이 닮았다. 아까 투구봉에 오를 때 떨어지는 상고대를 맞으면 "상고대가 떨어진다!"라고 했을 때 앞서가던 여성 대간꾼이 "난, 싸락눈이 오는 줄 알았어요!"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 이름 모를 봉우리를 떠나 10시 49분에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봉인 시루봉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까만 소 백두대간 수건을 들고 인증을 찍고 있던 대간꾼에게 부탁해 사진을 남기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볼 게 없었다. 미련 없이 시루봉을 떠나 다음 봉우리로 향했다. 그런데 저수령, 묘적령 구간에서 나름 이름이 있는 봉우리는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흙목, 솔봉, 묘적령(표지석이 있는 곳은 고개가 아니라 봉우리다!) 정도였고, 그 외 많은 봉우리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 이름 없는 봉우리를 지나치며 급경사의 능선을 내려가 이 구간 첫 번째 고개인 배재에 11시 19분에 도착했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한다는 건 능선 산행에서 아주 당연한 거로 배재를 떠나 다시 헉헉대며 깔딱을 오르다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니 앞서가던 대간꾼이 뒤로 돌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뭐지 하고 궁금해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경이로운 모습이 보였다. 방금 내려온 봉우리가 정확히 능선을 경계로 좌우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강한 바랑에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사진 한 장 남기고 정상을 향해 계속 올랐다. 이번에 오른 봉우리 또한 이름을 얻지 못했으나 전망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 올라 앞을 보니 지난 1월 10일 올랐던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이 보였다. 그 능선을 사진으로 남기고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싸리재다. 물론 이름 모를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난 후다. 그 시각이 11시 42분이라 앞서가는 흥수에게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목에는 점심 먹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장소가 없을 거 같다는데 둘이 동의해, 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잘 들어 바짝 마른 낙엽이 쌓인 등산로 옆 비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흥수는 빵, 나는 간편식으로 점심을 먹고, 뭔가 아쉬워 들고 다니던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매번 들고만 다니다 배낭에서 꺼내 본 적이 없는 음식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중 하나인 사과와 에너지 바를 나눠 먹은 후 진한 커피 한잔한 후 우리가 있었다는 흔적을 인멸하고 그 잘 마른 낙엽 쌓인 비탈을 떠난 시각이 12시 35분이다. 물론 등산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우리 뒤에 있던 대간꾼이 우리를 앞질러 가며 "우리도 점심 먹자!", "점심?" 등, 그들끼리 얘기를 하거나 우리에게 물었다. 와중에 껍질을 깎던 사과를 놓쳐 10여 미터를 아래로 굴러가다 나무에 걸려 멈춘 반쯤 깎인 사과를 흥수가 주어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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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떠나 그나마 이름을 얻은 ‘흙목’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41분이다. 그런데 그 이정표가 아주 묘하게 만들어져 분명 우리는 방문한 적이 없는 뱀재를 지나온 거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알 수 없는. 이에 흥수가 그 이정표를 유심히 살펴보고 맨 아래에 있는 이정표의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고 이정표를 매단 방향이 같아서 혼동한 거지 사실은 그 이정표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거라고 했다. 흥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맞았다. 그리고 우리가 언급한 뱀재는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흙목 아래 550m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뱀재로 향하는 하산길은 햇볕이 들지 않는 급경사의 낙엽 쌓인 북서사면이라 낙엽 아래는 꽁꽁 얼어 있어 대단히 위험했다. 그래서인지 안내 산악회 대간 팀이 임시로 설치했을 확률이 높은 가는 밧줄이 왼쪽에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이 구간만이 아니라 해빙기 해발 1,000m가 넘는 지역의 음지는 다 같다. 이런 위험에 대비해 늘 아이젠을 가지고 다니지만, 막상 이런 위험 구간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짤막짤막해 아이젠 착용을 꺼리다가, 꼭 엉덩방아를 찧는다.
문제의 구간을 모두 안전하게 지날 수 없어 흥수를 비롯 우리에 앞서가던 대간꾼 몇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우리가 점심 먹는 동안 우리를 추월했던 대간꾼을 다시 추월하며 앞을 보고 가는데 저 앞 바위 봉우리 절벽 위에 탑 같은 게 보였다. 물론 앞만 보고 달리는 대간꾼은 못 본 건지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지나쳐갔다. 사실 그 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등산로에서 벗어나 20여 미터를 낭떠러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해서 피곤하거나 지친 등산객은 무언가 발견했어도 무시하게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고 흥수와 나도 그런 걸 무시할 등산객이 아니어서, 누군가 탑을 쌓았다면 드나든 흔적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 찾아보니 희미하게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절벽으로 가니 주변의 돌을 주워 기단과 탑신, 옥개석의 구조를 갖추어 만든 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자연석으로 비석처럼 세워 놓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비석에는 글이 새겨있었다. 한글로 음각한 글인데 잘 보이지 않았다. 흥수가 그 글을 유심히 보더니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했다. 해서 다시 보니 맞다. 한자로 "精神一到, 何事不成!!"을 새기지 않아 조금 아쉬웠으나, 탑을 만들고 비석을 새긴 누군가는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우리가 등산로를 벗어나 그 탑 주위를 맴도는 걸 본 대간꾼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으나 한 명의 호기심 많은 등산객은 우리 쪽으로 왔다. 그 등산객에게 이거저저 알려준 후 그 탑을 떠나 다시 등산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1시 21분에 헬기장에 도착했다. 솔봉까지 남은 거리는 1.95km, 2km가 채 남지 않았다. 저수령을 시작으로 묘적봉으로 향하는 구간에서 솔봉에 도착하면 거의 다 간 거라고 여겨도 무방해 그 남은 거리에 민감한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촛대봉 이정표에는 솔봉까지 거리가 12.43km로 나와 있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달린 거리가 8km도 안 되는 거리라 무언가 많이 부족했다.
둘이 이정표의 신뢰성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몇 개의 봉우리를 넘은 후 숨을 헐떡이며 깔딱을 오르는데 앞에 있는 봉우리 정상에서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줘(반경 50m 내를 목적지로 인식하는 거 같다) 확인하니 '솔봉'이다. 1.95km를 생각보다 빨리 왔다. 걸린 시간을 확인하니 23분이다! 뭔가 또 이상했다. 산악회에서 공지한 저수령에서 묘적령을 거쳐 고항치까지의 거리가 14km가 바르면 남은 거리가 4km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정표에 의하면 3km도 채 남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를 따라 바로 이어 도착한 인솔 대장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고 묘적령을 향해 솔봉을 내려가는데, 바로 아래 기슭에 ‘묘적봉 1.7km’라는 이정표를 누군가 던져 놓은 게 보였다. 묘적령에서도 묘적봉까지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묘적령도 아닌 묘적봉이 1.7km라!
1시 50분 솔봉을 떠나 묘적령을 향해 가다가 2시 6분에 모시골재에 도착했다. 모시골재에는 당연히 이정표가 서 있었는데 거기에는 '묘적령 1.7km'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야 맞아 들어 간다. 유감스럽게도 묘적령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은 "령(嶺)"이 아니라 봉우리다. 실제 묘적령은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에서 도솔봉 쪽으로 100여 미터 내려간 곳이다[산행기]. 령이 아니라 봉우리란 얘기는 올라야 한다는 거다. 그 높이가 이 구간에서 솔봉보다 높은 1.027m다! 그 묘적령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가 이번 산행 마지막 깔딱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그 묘적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했는데, 그 길은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였다. 물론 낙엽이 잔뜩 쌓인. 그 낙엽은 꽁꽁 언 얼음을 감추고 있었다.
우리 앞에 70 세가 넘어 보이는 대간꾼을 리더로 한 급조된 팀이 가고 있었다. 물론 상황을 잘 아는 리더라 미끄러운 지역을 잘 피해 갔으나, 팀원 중 여성 꾼이 먼저 엉덩방아를 찧었고, 이어 리더가 내리 세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걸 보고 흥수가 아이젠 꺼낼까 해서 아이젠을 꺼내기에는 얼음 구간이 너무 짧다고 한마디하고 길이 아니라 옆의 관목지대를 통과해 갔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지역의 길이 얼은 이유는 눈 쌓인 길을 등산객이 오가며 눈을 다져 놓아 다른 지역은 멀쩡한데 길만 얼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고로 길을 가기에는 좀 걸리적거리나 관목지대를 통과하면 미끄러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길이 아닌 곳으로 길을 가 2시 37분에 '마루금치유숲길'이라는 안내 간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 위가 묘적령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다.
마지막 깔딱을 올라 2시 41분에 묘적령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묘적령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에. 올해 들어 두 번째다(등산 앱이 좋은 게 두 번째 방문이고 언제 방문했는지 알려주었다) ! 이제부터는 자구지맥을 따라 버스가 기다리는 고항치로 내려가면 된다. 날머리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데 어두워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다. 해서 흥수에게 비가 온다고 하며 흥수를 보자, 흥수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어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중요한 통화인 거 같아 방해하지 않게 더 말을 붙이지 않고, 배낭을 벗어 비에 젖지 않게 한쪽에 잘 둔 다음, 바람막이에 모자를 달았다. 평소에는 바람막이지만, 비나 눈이 오며 우의로 사용하는 옷이라. 소나기처럼 퍼부을 거 같던 비는 잠깐 내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며 유유자적 내려가는데 길목에서 흥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내가 예측하고 있던 일에 관한 통화라 흥수와 그 내용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날머리로 갔다. 그렇게 내려가 3시 26분 저 아래 도로에 주차해 있는 버스의 빨간 지붕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목표가 마감 4시보다 30분 빠른 3시 30분까지 날머리 도착인데 목표를 달성했다. 3시 28분 등산로를 벗어나 도로에 들어서는 거로 이번 저수령, 묘적령, 고항치 백두대간 13구간의 일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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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수의 대간꾼이 도착한 거로 보였고, 그중 대여섯은 바로 앞에 있는 건물 아래 공원 의자에 앉아 등산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흥수가 우리가 또 꼴찌가 아니냐고 물었다. 고항치로 내려오다가 묘가 있는 곳에서 인솔 대장이 다른 대간꾼과 음료를 마시며 휴식하고 있을 때 우리가 추월했기 때문에 꼴찌는 아니나, 인솔 대장이 제일 마지막으로 하산할 거 같으니 대장이 도착하면 버스가 바로 출발할 거고, 고로 우리는 서둘러 뒷정리를 하고 대장을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대간꾼 대여석이 뒷정리를 하고 있는 공원의 의자까지 가기 귀찮고 힘들어 도로 난간에 주저앉아 뒷정리하며 터널(고항치 생태 터널도 두 번째다) 위를 지나는 꾼을 계속 살폈다.
뒷정리를 거의 마치고 쉬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는 출발할 기미가 없고, 기사는 날머리 입구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해서 터널 위를 계속 주시하니 끊임없이 대간꾼이 터널 위를 지나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꼴찌가 아니라 거의 선두 그룹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성 꾼이 내려오는 거로 모든 인원이 하산을 마친 3시 56분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올 때와 같이 ‘단양 팔경 휴게소’에서 10분 정도 휴식 후 다시 달렸다. 지난밤 잠을 못 잤고, 힘든 구간은 아니었으나 14km가 넘는 산행 후라 피곤해 잠을 청했으나 자리가 불편해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리가 넓어 보여 부러 가장 끝자리를 신청했으나 다른 자리보다 높고, 제일 끝이라 버스의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기사가 바쁜 일이 있는지 운전이 과격해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기존에 예약했던 다음 산행 버스 자리를 다 변경했을까?! 어쨌든 그 롤러코스터는 7시 16분에 출발했던 양재 국립외교원에 도착했다.
애초 흥수와 내 생각은 지난번 양재에서 발견한 맛집에서 “짱뚱어”를 맞힌 친구와 못 맞춰 아쉬워하는 친구를 불러 뒤풀이를 할 생각이었으나, 두 친구에게 연락이 늦어 같이할 수 없었다. 해서 둘 다 어제 각자 집안 행사로 술이 과했던 만큼 오늘은 조용히 각자의 집으로 가리고 했다. 그런데 양재에서 내리고 보니 롤러코스트는 저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독서용 패드가 없었다. 바로 흥수에게 전화해 내 자리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패드가 의자 사이에 끼어 있어 흥수가 보관하기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양재역으로 가 지하철을 타고 패드를 대신해 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녹번역으로 향했다.
녹번역에 도착하자 버스를 타기 위해 구청 쪽으로 내려가며 신호 대기 중인 버스를 확인했다. 7722번이 제일 앞이고 그 뒤에 있는 버스는 번호를 볼 수 없었다. 현재 내 위치와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상 7722번을 타는 건 불가능이고 제발 그 뒤에 9701과 725번이 없기를 빌었으나, 신호가 바뀌고 좌회전하는 차를 보니 7722, 725, 9701 순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왜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저 세 대는 늘 붙어 다니는 거냐고? 그렇게 세 대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짧게는 10분 길게는 20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해서 10에 9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이번에도 택시를 타야 했다. 이 분노의 상황에 평소라면 책임 있는 부서를 찾아 왜 세 대가 붙어 다니는지 따졌을 테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부처가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처음 계획 대로 '저수령 → 촛대봉 → 투구봉 → 시루봉 → 배재 → 유두봉 → 싸리재 → 흙목 → 송전탑(뱀재) → 솔봉 → 모시골재 → 1,011봉 → 1,027봉 → 묘적령 → 고항치'의 14.12km(트랭글 기준), 5시간 33분 코스의 백두대간 13구간 일부를 달렸다. 이동 5시간 5분, 휴식 28분!
역시 대간 구간답게 주어진 코스를 주어진 시간 내에 종료하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게 습관화해서 대간꾼은 다른 산행에서도 앞만 보고 달리는 듯!
주변의 모든 산이 발아래 있는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10여 킬로미터의 능선을 달렸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 몇 개를 오르고 내렸는지 기억도 없음.
딱히 내세울 만한 산도 봉우리도 없다는 건 볼 것도 없고 조망도 좋지 않다는 거. 볼 것과 조망이 목적인 등산객에게는 권할 만한 코스가 아님. 다만, 험하지 않은 고도 높은 흙산 트레킹을 즐기는 동무에게는 적극 추천!
첫댓글 고원 트레킹이지. 더운 여름날에 좋을 듯.
그렇지.
고원 트레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