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맥두걸'이 쓴 'BORN TO RUN'을 읽고 있다.
단어와 지명,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생소해(멕시코 배경) 읽는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그런데 그 책의 25페이지에 '가젤과 사자'에 대한 얘기가 씌여 있었다.
익히 아는 바였고, 많이 보았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RUN'에 대한 얘기였으므로 어느 때 보다도 내 가슴 속에 확 와닿았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깨어난다.
'가젤'은 제일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일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을 것이며 못 먹으면 죽을 것이다.
'사자'든 '가젤'이든 태양이 떠오르면 죽기 살기로 달려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치열한 몸짓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생존'이란 단어에는 때로 비장하고 엄숙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가젤'과 '사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존문제는 더 치열하고 처절하다.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절대 빈곤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인간생존'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 아파 죽고 불행해 죽는다.
더 큰 권력과 파워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달린다.
아프리카의 '가젤'은 해가 뜨면 달리지만 '인간'은 밤낮 없이 더 치열하게 달린다.
끝내, 무엇을 위해 달리는 지도 잊은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죽음'만이 그 무서운 '집착'과 '질주'를 멈추게 할 뿐 그 어떤 처방이나 조언도 무효하다.
하루 하루, 그래서 마음을 비우는 훈련이 필요다.
각자의 라이프 스토리가 두꺼운 한 권의 소설책 분량일지라도 그걸 줄이고 또 줄이면 결국 각자의 '스피릿과 마인드'에 귀결된다.
즉 삶의 '소명'과 '가치관'이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는 법이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매일 아침 같은 태양이 떠오른다.
오늘 하루 우리는 또 어떻게,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가?
2010년 7월 2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