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나님 살아계시네” 신승훈 미국 LA 주님의영광교회 목사 간증<1>
고등학교 교사로, ‘쪽 집계’ 과외교사를 하다가 큰돈을 벌기 위해 이민을 갔다.
1981년 2월 미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게부터 보러 다녔다.
첫 사업은 전자오락실 사업이었다.
나선 땅에서 첫 사업임에도 벌이가 괜찮았다.
1, 2년 간격으로 가게를 하나씩 늘려갔다. 짭짤한 수입이 났다.
800만원 자본을 밑천으로 몇 년 뒤 8억원을 벌었다.
이민 초기에 친척이 끈질기게 교회 나갈 것을 권유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나는 하나님을 믿어야 천당에 간다는 것이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사업에 대한 욕심으로 교회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관심은 오직 목사님께 잘 보여서 사업하는데 도움 받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성경을 읽어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으니 1년 반 만에 성경을 다 읽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다”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우주를 창조하신 섬세한 손길이 있다는 것이 믿어졌다.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6년간 사업이 번창해서 집도 다섯 채로 늘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안 좋으면 안 좋아서 교회에 안 나갔다.
환경의 풍요 속에서도 내 마음은 목말라 있었다. 영혼의 목마름이었다.
어느 날 교회 한 분이 난데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신 집사님, 구원에 확신이 있어요.”
“구원의 확신, 그게 뭐요, 집사님은 있어요.”
“물론 나는 있지요.”
이런 답을 들으면서 나는 불쾌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그 분의 말이 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일 그 분의 말이 맞으면 어떡하지, 구원의 확신이 없는 나는 지옥가나”
비로써 하나님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차를 세우고 급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면 나에게 얘기를 해주세요.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천당과 지옥도 모르겠어요. 죽고 난 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지옥이 있다면 나는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요.”
내 평생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기도를 마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면 내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잖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값으로 나를 사셨다면 예수님이 내 주인이네”
“나는 지금까지 내 뜻대로 내 인생을 살았네”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만나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방법이었다.
30~40분간 차 안에서 ‘내 맘대로 산 것’을 회개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 나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았어”
이 생각에 내 맘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한 달 뒤 이사하면서 은혜교회로 교회를 옮겼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신 집사님은 성령 세례를 받았어요.”
그 질문을 받자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성령 세례는 뭔가,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뭐 이래 복잡해”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게 받으면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여러 은사가 따라 온다는 것이다.
아침 신문을 보니 '성령대망 부흥회'라는 광고가 있었다.
그 집회에 참석했고, 성령에 관해 목사님의 뜨거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 성령 세례를 나도 받게 해주세요. 좋은 것이라면 나도 좀 주세요.”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혀가 말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내 의지로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내 혀가 맘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는 회개와 기쁨이 교차했다.
통곡의 눈물이 터져 나왔고 감사의 고백이 이어져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나무도 풀도 모두 팔을 벌려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
하늘빛도 풀빛도 달라보였다. 어제의 그 도시, 그 하늘이 아니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눈과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찾고 찾던 것이 이것이었다.
나는 소유가 많아지면 만족과 기쁨이 오는 줄 알았다.
여행을 하고 신나게 놀면 만족과 기쁨이 오는 줄 알았다.
성령을 받고 보니 만족이 하나님께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성령 세례를 받은 뒤 돈 버는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됐다.
물질만 보였던 내 눈에 영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돈, 통장이 진짜 내가 아니라 내 영혼, 내 속사람이 진짜 나 임을 알게 됐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 영혼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관심이 갔다.
사업을 하다 사람을 만나도 전도하고, 퇴근 후에도 전도했다. 전도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사람들을 보면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말씀 듣는 것이 꿀맛이었다. 한 달간 밤낮으로 설교 테이프를 200개를 들었다.
당시 나는 여러 곳에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사업이 갑자기 싫어졌다.
종업원에게만 맡겨도 한 달에 순수입이 1천만 원 들어왔지만 귀신 나오는 공포영화, 살인, 폭력, 음란 영화를 대여해주고 돈을 번다란 생각이 들자 그렇게 버는 돈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됐다.
나는 주저 없이 가게를 처분했다.
예배가 너무 좋았다. 수요예배가 끝나고 두 밤만 자면 금요철야가 있음에 위로 받았다. 금요예배 뒤에도 두 밤만 자면 주일예배가 있어 좋았다.
그러나 주일 예배 뒤에는 셋 밤을 자야했기에 그 사이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예배를 사모하고 전도에 미쳐 지내자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했다.
“신 집사 저러다 주의 종 되지”
그러던 중 아내에게도 신기한 일이 생겼다.
아내는 1984년 8월 둘째 아이를 낳았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는데, 미국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에게 “얼음 있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날씨가 더우니 사워도 하라”고 했다.
주스를 마시고 사워를 한 아내는 식인병에 걸렸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살이 시리다며 긴팔 긴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고 살았다.
의사를 찾아갔지만 병명을 찾지 못했다. 한약도 많이 먹어봤지만 효험이 없었다.
찬 물이 몸에 닿으면 비명을 질렀다. 몸이 아파 괴로워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고생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부흥회에서 아내도 뜨거운 성령 체험을 했다.
어느 날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내의 옷차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내가 찬바람이 부는 새벽 1시에 맨발에 샌들을 신고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늘 긴 옷에 양말을 신고 있어야 했는데, 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있단 말인가?
아내 역시 자신이 이런 옷을 입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워했다.
아내는 아무 생각 없이 더워서 입은 옷이었는데, 만 4년 동안 짧은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성령을 받으면서 어느 듯 아내의 병은 떠나가고 몸은 정상이 돼 있었다.
우리는 너무 감격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는지 모른다.
많은 돈으로도, 노력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병을 성령님께서 한 방에 고쳐 주셨으니, 성령의 능력은 정말 측량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 타올랐다.
1988년 34세에 미국 탈봇신학교에 입학했다.
탈봇신학교를 졸업한 뒤 1993년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사로 갔다.
그곳에 신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마음에 쏙 드는 건물을 찾았다.
기도했다.
“하나님, 집세, 보증금, 가구, 사무용품 등 1만 불이 필요합니다. 그 돈만 보내주시면 당장 신학교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쯤 팩스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팩스를 받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국에서 아프리카로 오기 전 딱 두 번 만난 홍 집사님이 보내왔다.
팩스 내용은 이랬다.
“선교사님, 제가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신 선교사님께 1만 불을 보내라는 감동을 주셨어요.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큰 액수를 헌금해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랐습니다. 다 털어 만 불을 보내라. 이 것이 너에게 좋은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만 불을 선교사님의 통장에 넣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꼭 쓰실 때가 있나 봅니다.”
그 팩스 내용을 보다 내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딱 만 불을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느꼈다.
너무나 감사해서 팩스용지를 붙잡고 방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다.
얼마 후 내 울음소리가 컸던지 자고 있던 아내가 깨어나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누구예요, 죽은 사람이.”
아내는 내가 누군가의 부고소식을 듣고 그렇게 우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순종했던 홍 집사님을 사업에 큰 복을 받아 1년에 선교헌금만 100만 불, 10억 원 이상 보내는 장로님이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