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열왕기하는 아버지 아합의 지독한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하시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2절 하나님은 속국 모압의 배반을 통해, 또 아하시야의 추락과 부상을 통해 경고를 주십니다. 아하시야 라는 이름에 담긴 여호와께서 붙드셨다 라는 뜻 그대로, 그는 하나님에게 붙잡히지 않고서는 속절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끝끝내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붙듭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던 손을 놓으시면 누구든 하나님 대신 붙든 것과 함께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3-6절 아하시야가 자신의 운명을 묻기 위해 바알 우상에게 사자를 보내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바알 신전을 향해 가는 아하시야의 사자를 가로 막고, 여호와의 사자가 일러준 대로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나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께서 내 길도 가로 막으시며 네 삶에 하나님이 없어서 겨우 그걸 의지하려 하느냐? 하고 호통하시지 않겠습니까?
7-9절 엘리야를 체포하면 하나님의 뜻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합처럼 (왕상 17,18장), 아하시야도 엘리야를 사로잡아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임한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 아니라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 때문이듯, 아하시야에게 임한 추락 또한 그 자신의 죄악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하나님 말씀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말씀이 불편할 정도로 하나님 뜻에서 멀어진 내 삶입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나입니다.
10-12절 올라가라 (3,6,7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려오라 (9,11절)고 명령하는 이들에게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아하시야가 아버지의 시대에 갈멜에 내려왔던 심판의 불(왕상 18:38)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만한 명령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임을 부정한 채,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침상에 올라간 자기 몸 하나도 통제하지 못하여 내려오지 못한 채 침상에서 죽을 것입니다(6절). (매일성경, 2024.09/10, p.22-23,. 추락하는 나라의 추락한 왕, 열왕기하 1: 1-12에서 인용).
① 열왕기상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열왕기하는 아버지 아합의 지독한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하시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속국 모압의 배반을 통해, 또 아하시야의 추락과 부상을 통해 경고를 주십니다. 아하시야 라는 이름에 담긴 여호와께서 붙드셨다 라는 뜻 그대로, 그는 하나님에게 붙잡히지 않고서는 속절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끝끝내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붙듭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던 손을 놓으시면 누구든 하나님 대신 붙든 것과 함께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② 아하시야가 자신의 운명을 묻기 위해 바알 우상에게 사자를 보내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바알 신전을 향해 가는 아하시야의 사자를 가로 막고, 여호와의 사자가 일러준 대로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나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께서 내 길도 가로 막으시며 네 삶에 하나님이 없어서 겨우 그걸 의지하려 하느냐? 하고 호통하시지 않겠습니까?
③ 엘리야를 체포하면 하나님의 뜻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합처럼 (왕상 17,18장), 아하시야도 엘리야를 사로잡아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임한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 아니라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 때문이듯, 아하시야에게 임한 추락 또한 그 자신의 죄악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하나님 말씀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말씀이 불편할 정도로 하나님 뜻에서 멀어진 내 삶입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나입니다.
④ 올라가라 (3,6,7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려오라 (9,11절)고 명령하는 이들에게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아하시야가 아버지의 시대에 갈멜에 내려왔던 심판의 불(왕상 18:38)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만한 명령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임을 부정한 채,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침상에 올라간 자기 몸 하나도 통제하지 못하여 내려오지 못한 채 침상에서 죽을 것입니다(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