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쁨 / 정선례
책을 보고 있으면 멍때리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머릿속이 개운하다. 학창 시절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문정희, 공지영, 안도현, 김용택, 김영희 작가등이다. 사람과 글은 다르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 작가의 의식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주 동신대 한방병원에서 입원 치료하는 중에 일화다. 치료 시간 외에는 항상 책을 보는 나에게 교수님은 “읽고 쓰는 훈련이 기억력 회복에 좋다, 어떤 책이냐”고 물으셨다. “공지영 작가의 수필집입니다.”라고 답했더니 “공지영 글은 잘 쓰는데 사생활은 글과 다르다”고 말하는 걸 듣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 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식으로 단정 지어 말하느냐”고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가 된다.
책을 좋아했지만, 이전에는 글을 쓴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목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다니는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이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여동생이었다. 가끔 보았는데 동성이지만 묘한 끌림을 주는 여인이다. 가끔 먼저 연락하여 차도 마시고 집에도 놀러 갔다. 농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담백한 성품에 매료되었나 보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야간반이 있으면 다니고 싶다고 했더니 목포대 평생교육원에 글쓰기 강좌가 있다며 다니기를 권했다. 여러학기를 배우면서 글을 얼른 잘 쓰고 싶은데 글쓰기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작년부터 문학관 시 창작반에도 등록했다. 구체적으로 보인 것을 다른 것에 비유하는 훈련을 하는 직유법 위주로 배우고 있다. 시를 배우는 것도 수필을 잘 쓰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다. 예전에는 글을 고쳐주는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즘 귀에 콕 박힌다. “문장 짧게 써라. 구체적으로 말하듯이 써라, 사실 그대로를 써라, 상투적으로 표현하지 말아라,” 지금이라도 들린다는 것은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리라.
글 써서 상 받은 것은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기존의 도서관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작은 마을도서관 개관 기념으로 학부모 대상으로 글쓰기에서다.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학부모 대표로 상을 받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글쓰기로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그동안 엠비시(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사연 보내 두어 번 방송을 탔다. 작년에는 농민신문사 <전원생활> 월간지 생활 수기 응모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되어 상금 50만 원과 멋진 상패를 받았다. 친정어머니께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드렸더니 주변에 자랑하셨다고 기뻐하셨다. 오랜만에 효도한 것 같아 나 또한 흐뭇했다. 나는 정말 뚜렷하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손끝도 야물지 못하고 음악이나 미술, 하다못해 말하는 것도 논리적이지 않아 남편에게 핀잔 듣기 일쑤다. 그중에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더니 책 읽는 것이었다. 끈기가 부족해 뭐든 시작만 하고 끝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는 게 글쓰기이다.
코로나로 잠정 중단되었던 우리 지역 영랑문학재가 모란이 만개한 날 다시 열렸다. 제20회 전국 영랑 백일장 대회에 사전 접수를 해놓고 어떤 글제가 제시될지 궁금하였다. 당일 쏟아지는 비를 피하며 영랑생가에 도착하니 학교에서 단체로 온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이 벌써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인솔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듣는다. 시문학 파 직원들에게 인적 사항을 확인받고 원고지를 챙겼다. 원고지에 제목과 내용만 써서 1시까지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10시가 되어 글제가 펼쳐졌다. 운문은 ‘별’이고 산문은 ‘사진’이다. 3시간 안에 글을 완성해서 내야 한다. 일상의 글쓰기 반에서 알게 모르게 훈련이 되어서인지 ‘사진’이라는 글제를 보는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 어떤 제목으로 이야기를 펼칠까 고심하는 동안 30분이 훌쩍 지났다. 제목을 ‘그 아이’로 정해지니 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글제를 받고 쓰는 건 처음이었다. 겨우 마무리하고 고치는 과정도 없이 제출하고 시계를 보니 1시 10분 전이었다. 발표는 뒷날 오후 3시 폐막식에서 한다고 했다.
다음날 2시쯤에 기다리던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왔다. 일반부(대학)에서 장려상에 뽑혔다며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묻는 전화다. 부랴부랴 갔더니 폐막식이 이미 시작되어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시 낭송 수상자부터 시상했다. 드디어 백일장 당선자들이 무대로 불려 나와 상을 받을 때마다 큰 박수와 꽃다발이 건네진다. 강원도에서 온 주부가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대상에는 관내 대안학교 청람중학교 3학년 여학생에게 돌아갔다. 상금이 자그마치 200만 원이다. 내 앞에 그 학생이 앉아 있어서 제목을 뭘로 썼느냐고 물었더니 ‘화려한 고백’이란다. 그 학생의 대상작을 읽고 싶다. 이 지역에서는 내세울 만한 여류 문학인이 없었는데 기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입선에 든 백일장이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첫댓글 '영랑' 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짙푸른 잎에 당당하고 우아하게 핀 모란이 보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쓴 글이 상까지 받으셨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축하합니다. 글 쓰는 일이 신명나겠습니다.
강진에 오시걸랑 모란이 활짝 핀 날 오시구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영랑 백일장까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늘 궁급합니다. 열정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제서야 글 읽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이번 글은 아주 좋네요. 상 받을실 자격이 충분합니다. 정 선생님, 축하합니다.
열정이 대단하네요 강진까지 가시다니. 그리고 축하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멋지시네요.
저도 공지영 작가를 편견으로 바라보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그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또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기에 각기 성이 다른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거겠지요?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니까요.
감히 누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저도 영랑 백일장 홍보물은 읽었답니다.
상의 등급에 상관 없이 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