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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로 승리하는 삶. / 伝道によって勝ち抜ける生活。( 2024년 3월 3일 주일예배)
본문; 로마서 12:1-2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神の憐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自分の体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けるいけにえとして献げなさい。これこそ、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礼拝です。2. あなたがたはこの世に倣ってはなりません。むしろ、心を新たにして自分を変えていただき、何が神の御心であるか、何が善いことで、神に喜ばれ、また完全なことであるかをわきまえるようになりなさい。
지난 주일에는 전도자의 영적상태에 관하여 주님께서 맡기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전도를 통해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건강하게 회복되고, 또한 유지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성취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와 그 뜻이 성취되는 현실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만큼 우리가 축복의 열매를 풍성히 누리기 원한다면 우리의 이웃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며 전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방주로 끌어 올려 함께 주님의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고, 사람다움을 회복하여 행복하게 축복을 누리는 인생을 미워하고 방해하며 도전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사탄과 그 지배 아래 속한 악한 영들인 귀신의 무리입니다. 누누히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약속이고, 그 소식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결국 지옥과 멸망이 약속되어 있는 사탄과 귀신은 한 사람이라도 더 천국과 영생에 속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악한 영의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고 대체로 어렵게 여겨지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생활 가운데 가장 걸림돌이 많은 것이 전도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실텐데요. 누군가를 전도하려는 마음이 생겼다하면, 그 다음부터 전도하지 못할 이유들이 마구 떠오르고, 전도를 막는 변명의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불가항력적인 것들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지키기 위한 수단 가운데 전도만큼 방해를 받는 것도 없습니다.
예배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 그리고 말씀을 읽고 매일 묵상하며 실천하고 순종하는 것은 어느 정도 기회가 주어지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만큼은 하지 않을 여건과 이유들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마귀가 영적전투를 가장 치열하게 일으키는 영역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가장 심하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명의 제자들을 세우셨을 때, 그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셨던 것이지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막 3:14-15)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먼저 귀신들과 사탄을 대적한다는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전도를 위한 영적전투는 어떻게 치러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전도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 먼저 축복하며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단지 누군가를 교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래서 마귀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상대가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전도자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와 말싸움을 해서 설복시키거나, 혹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며 호감을 갖도록 유인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역사하여 그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뒤에서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8-29)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전도하려고 하는데, 유독 저항이 심하다고 여겨진다고 여겨지면, 먼저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귀신을 쫓아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전도할 대상자를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포기하지 말고 틈틈이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저항이 심하다고 하여 그를 고약한 사람으로 여기고 협박하거나, 혹은 회유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마귀가 더 좋아하는 일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마귀와 반대의 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영적전쟁에 대해서 말씀을 전할 때도 함께 나누었던 내용인데요. 내 육신의 생각이나 혹은 경험, 그리고 지식으로 판단하고 진단하여 내린 결론에 근거하여 행동하지 말고,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혹시 무례한 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친절함과 예의바름으로 대하는 것이고요.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성공을 위해서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정직함으로 실패까지도 수용하는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심부리고 살더라도 나는 절제하고 제어하고 검소하게 사는 태도와 자세를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멸망을 향해 하는 이 세속의 흐름과는 다른 “경건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는 생활방식이 몸에 스며들어 배도록 연습하며 사는 것이 반대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절이 말씀하듯이 “이 세대의 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상생활”을 지키는 것인데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가 바로 빛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저와 여러분을 빛으로 회복시켜 주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곧 이 세상이 멸망으로 가더라도 반대정신으로 사는 빛의 존재로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비유하여 말하면 어두운 밤바다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반대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반대정신으로 살며 삶의 기준과 지표로 서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이들은 빛을 싫어하고 무서워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결국 빛을 갈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어둠의 왕인 마귀가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빛을 담고 있다면 마침내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게 이기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말씀으로 용기를 얻으시고, 세상의 흐름과 반대정신으로 사는 빛의 삶을 끝까지 지켜내어 가족과 이웃과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리를 끝까지 지키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분위기의 도전에 맞서야 합니다. 전도를 방해하는 영적인 다툼에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있는가 하면, 지역적이고 환경적인 걸림돌이 존재합니다. 물론 눈에 드러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공간(문화와 가치관)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그런 영적 공간의 장애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우리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기 전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의 습관이나 문화보다 세속적인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씀과 관련된 글, 혹은 그런 문화 컨텐츠를 접하는 것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글과 영상을 읽고 보는 것을 더 재미있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세속의 문화가 우리의 내면세계를 서서히 잠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사악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대중음악 혹은 스포츠와 같은 문화적 콘텐츠도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의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믿지 않는 이들과 같은 시대의 정신을 공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문화가 우리의 영적인 존엄을 침해하고, 존재가치를 변질시켜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걸림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신적 유산과 문화는 악한 것이라고 죄악시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합니다. 마치 때가 꼬질꼬질한 아기를 욕조에 담아 씻기고 나서, 욕조의 더러운 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모든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유산을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성공지향의 가치관, 물질만능의 가치관, 능력지향의 가치관, 그리고 과학만능의 가치관 등이 우리의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문을 닫고 통제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에 대한 약속을 전하기로 결단한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의 태도와 자세로 하루에 하루만큼 살아나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 가지 영적전투에서 승리하여 주님께 칭찬받고 인정하시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전도를 가장 싫어하고 방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 곧 마귀입니다. 그래서 그 수하에 있는 귀신(악한 영)들이 우리의 전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을 설득하려 하거나, 강요하여 교인으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도하려는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빛의 모습으로 전도하려는 이들에게 본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만 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또한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우리 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구름 위에 영생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나고 계심을 기억하고 복음을 고백하며 전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임재하심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며 전도를 위한 영적승리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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