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발가락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하던 중 하체가 운동 부족으로 약해졌다. 통원하며 재활치료 중에 있는데 가끔 함께 산행을 즐기던 친구로부터 걸을만하면 가까운 산에 가자고 연락이 와서 모처럼 약속하고 소래산 아래서 몇 개월 만에 재회를 맛보며 산에 오르게 됐다.
며칠간 못 보던 나뭇잎이 금세 푸르게 단장하고 숨가피 오르는 발길을 쉬어가라 손짓하곤 해서 몇 번을 쉬면서 오르 내리막을 반복했다.
산 중턱에 가파른 등성에서 지친 몸과 아직 아물지 않은 발가락 통증 때문에 정상을 포기하고, 완만한 둘레길을 따라서 지난 온 삶을 나누며 즐겁게 산행을 했다. 이를 마친 후, 몸에 좋다는 옻삼계탕을 한 그릇씩 나누고 부천역 지하철까지 시흥에서 넘어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역에 내려 다음을 약속하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져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코로나19로 묶였던 인파가 이제는 줄지어 서성이고 있었다. 확성기를 통해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가 나오면서 정차된 열차 안에서는 사람들 나오기가 무섭게 다시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엉거주춤하는 몸짓으로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입구 쪽에서 몇 발자국 안쪽으로 들어서게됐다.
앞쪽으로 나란히 줄지어 앉아있는 마스크를 쓴 대부분에 젊은이들은 손에 스마트폰을 즐기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바로 앞에는 50대 중반쯤 보이는 허름한 감청색 작업복에 건장한 중년 남자가 앉아있었다.
허울 적한 등산복을 입고 굽은 등에 매달린 작은 배낭과 깊게 늘어 쓴 모자 속에 노인티를 안 내려는 척 다리 아픔과 피곤함을 숨기고 손잡이를 불끈 잡고 몇 정거장만 버티자 하는 속내에 열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앞에 앉았던 중년 남자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괜찮아요, 바로 내릴 거에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애써 사양했으나 그는 나의 옷자락을 당기며 자리를 양보해주는 바람에 피곤했던 엉덩이는 비어진 좌석으로 털썩 주저앉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앉아서 두정거장을 달리는 동안에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양보한 그에게 고마워 내가 빨리 내렸음 하는 기대와 이제 남들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만큼 늙어버린 초라한 모습이 부인할 수 없이 서글펐다.
또, 옆자리에 앉아서 스마트폰에 빠진 젊은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 열심으로 공부한다면 뭔들 못 이룰까? 하는 등 쓸데없는 생각과 염려하는 사이에 '이번 역은 역곡역' 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문 앞쪽으로 자리를 양보한 그 중년 남자가 내리려 서성이는 모습을 보고 같은 역에서 내리는데 굳이 양보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열차 문이 열리고 몇몇 승객이 내린 후에 나도 따라 내려서는 서너발자욱서 걸어가는 중년 남자의 뒤를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듯한 충격이 나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한쪽이 뻐쩡다리로 힘겹게 걸어서 엘레 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보행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도 하면서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엘리베이터까지 갈 동안 멈춰 서서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되뇌이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무괸심한 개인주의로 각박한 사회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요즘 현실에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감사함으로 이름 모를 중년 남자에게 갈채를 보내며 노년 된 마음의 골절상을 치료하는 아름다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