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최용현(수필가)
몇 년 전, 국내 최초로 '휴테크'란 개념을 제안하였고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을 내 화제가 되었던 교수가 뜬금없이 학교에 사표를 냈다. ‘희랍인(=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갑자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부닥쳐 고심하다가 과감히 자유를 선택한 것이란다.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는 현대 그리스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1964년 미카엘 카코야니스가 각본과 편집, 감독까지 맡아 만든 흑백영화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릴라 케도바)과 미술상, 촬영상을 받았고,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작곡한 거장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영화 ‘페드라’(1962)에 이어 음악을 맡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영국의 청년작가 버질(앨런 베이츠 扮)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리스 크레타 섬의 갈탄광산을 재개발하기 위해 아테네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곳 출신의 중노인(中老人) 조르바(안소니 퀸 扮)가 말을 걸어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버질은 조르바가 학식은 없지만 현명하고 매사에 적극적인데다 채광(採鑛) 경험도 있어서 그를 현장감독으로 고용한다.
버질과 조르바가 크레타 섬에 도착하여 자동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열렬히 환영한다. 두 사람은 프랑스배우 출신의 늙은 마담(릴라 케도바 扮)이 운영하는 허름한 호텔을 임시숙소로 정하는데, 여자를 밝히는 조르바는 벌써 마담에게 수작을 걸고 있고 마담은 슬슬 넘어오기 시작한다.
어느 비오는 날, 이 마을에 사는 미모의 과부(이렌느 파파스 扮)가 키우던 염소 한 마리가 우리를 도망쳐 나오자 남자들이 염소를 가게에 숨겨놓고 과부를 골려대고 있었다. 마을 남자들이 아무리 찝쩍거려도 반응이 없는 과부에게 괜히 심통을 부리는 것이다. 가까스로 염소를 찾아 끌고 가는 과부에게 버질은 자신의 우산을 건네준다.
마을의 남자들과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한 채광 사업은 갱도(坑道)가 자꾸 무너져 내려서 도무지 진척이 없다. 조르바는 갈탄 채광을 포기하고 산중턱의 울창한 삼림을 베어 목재로 팔아서 돈을 벌자고 아이디어를 낸다. 조르바가 땅 소유주인 수도원의 동의까지 얻어내자, 버질은 조르바에게 목재를 운반할 케이블 설치 자재를 구입할 목돈을 주어 출장을 보낸다.
도시에 간 조르바는 비싼 음식을 사먹고 카바레에서 눈이 맞은 댄서와 며칠 놀아난 얘기 등을 적어서 버질에게 편지를 보낸다. 조르바에게서 편지가 온 것을 알고 찾아온 마담에게 버질은 차마 편지에 쓰인 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조르바가 당신에게 청혼하려고 멋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며칠 후에 조르바가 돌아온다.
한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과부가 쿠키를 만들어 우산과 함께 버질에게 보내온다. 그날 밤, 버질은 전에 조르바가 코치해준 대로 용기를 내어 과부 집을 찾아가는데, 과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대를 하고 두 사람은 그날 밤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낮에 과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건넸다가 퇴짜를 맞은 마을 총각이 이 사실을 알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총각의 장례식 날, 조문하러 온 과부를 마을사람들이 집 안뜰에 가두고 돌팔매질을 한다. 그때 죽은 총각의 친구가 과부를 칼로 찌르려하자 조르바가 나서서 저지하고 과부를 집밖으로 내보내려 했으나, 바로 뒤에 따라오던 죽은 총각의 아버지가 기어코 과부를 찔러 죽인다. 크레타 섬의 풍습이 그런 건지….
결혼식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지친 마담이 집으로 찾아오자, 조르바는 당장 식을 올리자고 한다. 버질이 증인이 되어 두 사람은 해변에서 간단히 결혼식을 올리는데, 며칠 후 마담이 독감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다. 이때부터 마을사람들이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이들은 마담이 죽자마자 시신이 누워있는 침대만 빼고 가재도구와 이불, 옷들을 모조리 가져가버린다. 이것도 풍습인지 아니면 마담이 외지인이라서 그런 건지….
목재 운반 케이블공사가 완료된다. 수도사들과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 통나무가 산중턱에서 케이블을 타고 빠르게 내려온다. 그런데 세 번째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 거금을 투입해서 만든 케이블의 버팀목들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만다. 목재사업도 그렇게 끝이 난다.
버질과 조르바가 해변에 앉아서 양고기를 구워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조르바가 자신은 이제 여행을 할 것이라며 ‘당신은 광기만 빼고 다 갖췄어요. 사람에겐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요. 그래야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하고 말하자, 이에 공감한 버질은 조르바에게 ‘춤추는 것 좀 가르쳐줘요.’ 하고 말한다. 조르바와 버질이 해변에서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삶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유를 누릴 줄 아는 남자, 여자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남자, 야심차게 추진하던 일을 실패하고도 춤을 추는 남자….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지혜, 야성을 지닌 마초 같은 남자 조르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원작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조르바 역을 맡은 안소니 퀸은 ‘길’(1954년), ‘노틀담의 꼽추’(1957년), ‘25시’(1967년) 등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멕시코 출신의 불세출의 배우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하자, 안소니 퀸은 시상식 무대에서 이 영화의 끝부분에 나오는 춤을 추어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희랍인 조르바’에 나오는 버질은 원작소설을 쓴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롭고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성찰해오던 작가는 결국 조르바라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야성의 인간상을 창출해낸다. 카잔차키스의 인생관을 가장 잘 집약한 표현은 그의 묘비명에 기록된 바로 이 문구(文句)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첫댓글 옛날에 본 영화 같은데, 안소니 퀸의
그릭 댄스가 기억에 남은듯 하네요.
네, 마지막에 안소니 퀸이 추는 춤 멋졌어요.
그 춤을 그릭 댄스라고 하나 보죠?
안소니 퀸에 딱 맞는 영화인 것 같아요. 호탕하고 자유분망한 연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 많이 벌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하고 자식들에게도 강요합니다.
1980년에 보트공장에 인터뷰하기 위해 간 적이 있는데 일하는 청년에게 학력과 직업에 대한 선호도를 물어니 대학을 나왔고 이일 좋아서 하고 있다고 했어요.
동감입니다. 안소니 퀸은 타고난 연기자죠.
'길'에서의 차력사 역, '노틀담의 꼽추'의 꼽추 역 등은 그가 아니면 어느 배우가 그만큼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