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알마)
☜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학자이자 의사가 남긴 유고 에세이
그 속에 담긴 죽음을 대하는 자세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그건 죽음이다. 삶이 의미 있는 것은 그 끝에 죽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죽음의 손바닥 안에 삶이 있는 것. 거꾸로 삶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다. 인간이 삶에 가장 충실해지는 것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실감할 때일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는 언제나 비범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올해 읽었던 책 중 실존적으로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책은 우연하게도 그런 이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유고 에세이인 셈. 그리고 우연하게도 두 사람 모두 뇌신경 분야 의사이자 학자였다. ‘고맙습니다’를 남긴 올리버 색스와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남긴 폴 칼라니티.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같은 책을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쉽고 감동적으로 전해준 세계적 뇌신경학자. ‘고맙습니다’는 그가 암을 선고받고 말년을 보내면서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워낙 문학적인 글쓰기로 유명해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린 그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써내려간 글들은 정말이지 눈물 나게(비유가 아니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곧 닥쳐올 죽음을 마주하고 그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결국 문제는 이것이다)에 집중한다.
그가 선택한 것은 ‘가급적 가장 풍요롭고 깊이 있고 생산적인 방식’. 살아있다는 사실을 강렬히 느끼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글을 좀 더 쓰고 여행을 하고 싶다고, 또 새로운 수준의 이해와 통찰을 얻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중략)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나 또한 삶의 마지막 문턱을 넘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레지던트 생활을 1년 남긴 그에게 유명 대학병원에서의 교수직 제의가 쇄도했다.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주는 최우수 연구상을 받을 만큼 재능 있는 의사로 꼽혔던 그는, 이제 1년 후엔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게 될 터였다. 삶의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 여섯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2년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이다. 남은 생을 계산할 수 없는 그에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절실한 문제. 그는 환자들 곁으로 돌아간다. 그 자신 환자였지만 의사로서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고 남은 레지던트 1년 과정을 끝마친다.
환자를 돌보는 한편, 그는 20년 후쯤의 인생계획으로 세웠던 글을 쓰기로 한다. 그것이 이 책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끝맺지 못한 채 결국 떠나고 만다. 끝내 미완일 생을 닮았다. 그 미완의 기록은 아내가 이어서 마무리했다. 그의 곁에는 또한 8개월 된 딸이 있었다. 이 또한 슬프고 아름다운 은유 같다. 책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뿐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준다. 마지막 순간 스스로 숨 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그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내 삶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래,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책의 제목은 그레빌 남작의 소네트에서 가져왔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올리버 색스와 폴 칼라니티를 통해 다시금 느낀다.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라도 삶은, 한겨울 어둠 속에 피어나는 흰 입김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허은실 시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10-24 (월)
첫댓글 어제 읽을 책들을 찾아보다 잠깐 머물렀던 제목 "숨결이 바람될 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 가을을 지나는데 도움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