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바빠 잠시 제쳐두었던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영양만점 내 님이었더라.'는 식의 등잔 밑 스토리는 꽤나 현실적인다. 어쨌건 사랑을 꿈꾸는 당신도 미워도 다시 한번! 당신의 연애 그 후속편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오래된 친구와의 새로운 연애
survival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알고 지낸 지 5년. 내 친구 중 하나가 그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이지 친구를 돕는 차원에서 자주 그를 만났을 뿐이다. 헌데 농담 따먹기나 하던 예전과는 달리 친구를 핑계로 새삼스레 서로의 이상형이나 연애관을 묻고 답하다 보니 묘한 감정이 들더라. 나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편안함. 함께 술을 마시는 일도 자연히 늘었고 술이 약한 나를 그는 번번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결정적 계기는 그와 내 친구가 모두 함께 우리집으로 놀러와 잠을 잤던 다음 날. 그는 그날 아침 내가 끓여준 국과 반찬에 마음을 뺏겼노라고 훗날 고백했다. 혼자 산 지 오래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아침 밥상이었건만 털털하던 내가 요리를 하고, 식사 전엔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그에겐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고. 며칠 후 그가 먼저 고백했고, 마침 마음이 동하던 나 역시 OK. 친구에겐 미안하나 어쩌겠나. 대신 소개팅으로 보답했다. 김미영(29세ㆍ회사원)
fail 사회생활에 지치고 솔로로 지낸 2년이 넘어가던 시점 문득 9년지기 친구인 그와 통화를 하다 `결혼을 한다면 이 남자와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끓어올랐다 쉽게 꺼져버리는 감정적 연애 따위는 이미 질릴 때로 질린 터.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다."는 참담한 답변. 두 번을 더 물었지만 여자로서 느낌이 오지 않는단다. 그가 바라보는 나는 욕심 많고 감정기복 심하며 술 잘 마시고, 일 좋아하는 씩씩하고 똑똑한 커리어우먼. 요조숙녀를 찾던 보통의 대한민국 남자에게 지나치게 솔직하고 편안했던 나는 여자가 아니라 `동지`라는 무성의 존재일 뿐이었다. 박정은(32세ㆍ프리랜서)
헤어진 그와의 2라운드
survival 일 년을 사귀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동갑인 척 나이를 속였던 그는 사귄지 반 년이 지나서야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고백했고, 그럼에도 계속되는 간섭에 화가 나 내가 먼저 이별을 선언했다. 지금에야 사소한 문제지만 당시엔 심각했다. 그런데 3년후, 압구정 한복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오랜만의 재회는 즐거웠다. 비록 헤어졌지만 어떤 친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편안함 그리고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왠지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는 나와 헤어진 후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은 후였고, 그 때 자신의 철없고 서툴렀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고 했다. 마침 우린 둘 다 애인도 없었다. 그리고 내 생일날 우리 집 앞으로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예전과 똑같은 문제의 반복에 대한 고민하긴 했지만 나 역시 이제는 이해 가능한 부분이었고, 그도 변했다는 확신에 다시 사귀기로 했다. 그리고 우린 5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잘 사귀고 있으며, 곧 결혼 할 예정이다. 안수정(29세ㆍ비서)
fail 쉽게 스킨십을 하지 않은 내가 만나 지 한 달 만에 섹스를 했고 그 후 일 년간 동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던 남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결혼뿐 아니라 나와의 만난 자체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연애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알고 보니 바람둥이였던 그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그가 연락해왔을 때에 난 사랑에 대한 희망을 품고 그를 만났다. 또 혼자 정들고, 그러면 그는 떠나가고, 그런 식의 만남이 3년정도 지리멸렬하게 반복되었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다시 사귀자고 매달린 적도 있었다. 어쨌건 결과는 같았다. 친구로라도 남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상처는 익숙해지는게 아니라 더욱더 깊어질 뿐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게 아니더라. 최겨울(30세ㆍ대학원생)
마흔 총각보다 돌싱남
survival 알고 지내던 밴드가 일본으로 녹음을 하러 갔을 때 통역을 맡으면서 현지 프로듀서이던 그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너무 잘생긴 외모. 열두살 띠동갑에 이혼남이었지만 비주얼에 약한 내겐 완벽 그 자체였다. 성격도 좋았고, 능력까지 겸비한 남자. 보통 그런 남자는 바람둥이인데 그는 전처와의 상처 때문에 오히려 여자들을 멀리하는 스타일이었다. 예전 부인은 그가 밤을 새서 작업하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바람이라도 피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 그가 작업 때문에 일주일간 집을 비우고 밤을 샌 사이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둘은 이혼했다. 그 후 10년간 연애를 하지 않았던 그는 나의 적극적인 대시에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그는 전부인과 전혀 다른 나의 자유로운 성격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는 똑같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우린 지금 결혼해 일본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나와 같은 타입에 끌리게 만들어준 그의 전 부인에게 오히려 고맙다. 이현아(28세ㆍ통역사)
fail 그는 능력 있는 대기업 광고기획부장이었다. 소탈한 성품에 모임을 주도하는 카리스마,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편안함까지. 이혼남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이렇게 괜찮은 남자가 왜? 그와 가까워지고 난 후 그는 흘리듯 예전 전 부인의 헤픈 씀씀이와 드센 성격, 자신의 어머니와의 마찰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전적으로 그의 말을 믿었다. 나쁜 여자와 결혼해 상처받은 착한 남자를 내가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한 건 그런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천원짜리 한 장조차 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하던 그와 결혼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숨통을 조여왔다. 친구들이라도 만난 날엔 그의 어머니까지 합세해 나를 사치스럽고 방탕한 여자로 몰아갔다. 결혼 전엔 그렇게 잘해주시더니 이혼한 지금 나에겐 사람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 남았다. 박은혜(32세ㆍ은행원)
예전에 소개팅했던 그 남자
survival 아는 오빠의 회사 후배였던 그. 첫인상은 좋았지만 취향이 맞지 않았다. 스타일리시한 그에 맞춰 청담동의 커피숍과 파스타 집에 칵테일 바를 전전하며 온갖 내숭을 떨고 돌아오니 피곤의 극치. 당연히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3개월쯤 흘렀을까? 주선자를 만나 전해들은 이야기는 의외였다. 상당히 럭셔리할 것 같던 그가 사실은 소주에 찌개를 좋아하는 무척 소박하고 털털한 사람이라니. 다음날 난 그에게 일을 핑계로 문자를 보냈다. "○○오빠 동생이에요. 이번에는 위스키 론칭 행사가 있는데 시간되시면 와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가식을 털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정말 재미있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즐거운 만남 후 우린 연인으로 발전했다. 알고 보니 그 역시 처음엔 나의 직업과 스타일 때문에 기죽지 않으려고 내숭을 떨었단다. 게다가 주선자가 회사 선배이다 보니 그의 입장에선 더욱 불편했던 것. 내가 먼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면 서로의 기억속엔 그렇고 그런 된장녀와 된장남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을까? 김혜진(30세ㆍ홍보)
fail 소개팅한 지 반 년쯤 지났을까. 문득 그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일찍 끝난 금요일인데 핸드폰 전화 목록을 뒤져도 연락할 사람 없고, 친구들은 모두 바쁘고, 그러다 아직 저장되어 있는 그의 번호를 발견했다. 집도 이 근처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 미친 척하고 그냥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는 처음엔 나를 기억 못했지만 어쨌건 그 날의 만남엔 OK. 술로 시작해 1차, 2차, 3차.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즐거웠고, 우린 무슨 오랜 초등학교 친구라도 만난 듯이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어차피 다음 날은 쉬는 토요일. 그는 근처 모텔로의 직행을 원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헤어졌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그는 연락이 없었고, 나 역시 그 날의 지나친 솔직함이 부끄러워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도 아마 그 날 좀 심심하고 외로웠던게 아닐까. 박미라(30세ㆍ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