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대제라는 말은 제가 알고 있기로 <<환단고기>>에 근거해 사용된 말이며 소설에서는 유현종 작가의 <대제국 고구려(구 연개소문)>에서 쓰인 이후 무협작가 금강의 <발해의 혼> 이광웅의 <여인> 등에서 자주 쓰였습니다.
광개토 대제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정 립 작가가 쓴 대하역사소설 <광개토 대제>에서 비롯됩니다.
소설 <광개토 대제>의 소개문을 제시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태양과도 같은 존재이시며 불세출의 대지존으로 불러 마땅할 광 개 토 대 제 !!!!!
그는 서쪽으로 연나라와 진나라를 공략함은 물론 분란이 많았던 요동지역을 완전히 우리(고구려)의 영토로 확보하고 한반도 남쪽으로는 백제를 압도하여 한강선까지 진출하였다. 또한, 뜨거운 동족애의 일환으로 신라를 침입한 왜를 수차례 크게 격퇴시키는 등 여러모로 신라를 돕기도 하였다. 북으로 멀리 시베리아와 중원대륙의 유주를 넘어 태원영역까지 고구려의 위세를 한껏 떨친 대제의 위업은 영토확장의 뜻 외에 중원국들의 침략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방어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전 중원대륙의 제패를 꿈꾸었던 그의 대망이 39세라는 불혹도 못 넘긴 단명에 꺾여버린 사실이다. 뛰어난 예지와 탁월한 지략으로 전만주와 중원대륙을 풍미했던 광개토대제! 동방의 징기즈칸이나 서양의 나폴레옹에 비해 결코 못날 바없는 그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찬란한 민족적 자긍심과 불굴의 용기는 겨레의 긍지를 더 높게 하기에 한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사료의 부족으로 굳이 외국의 그것을 빌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저자의 애석해 함을 이해하며 그 찬란하고도 위대한 대제의 업적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소설에서 정 립 작가는 <<삼국사기>>가 아닌 다른 근거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연서>> <<진서>> 등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제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책들은 중국 정사 25사에 언급은 될 망정 원본이 나온 적은 없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그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공개하고 서지학적인 검증을 받았어야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기는 중국사람들이나 일본사람들 가운데 간혹 고려와 근대 이전 조선왕들이 황제 칭호를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독립국이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유현종, 정 립 같은 소설가들이나 무인시대 등의 제작진이 굳이 왕을 황제로 바꾸는 것은 저런 중국 일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해 오히려 그들 의도에 부합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칭호와 실제적 권력에 대해서는 상당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황제가 무엇입니까?
황제라는 칭호는 진시황이 이전의 전통적 칭호였던 왕으로는 권위가 약하다고 판단하여 자의적으로 지어낸 명칭입니다.
이 조처는 사람들 마음속에 담겨 있는 주나라 왕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만든 개념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풀려진 감이 큽니다만 이런 폭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발상 속에 분서갱유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 고조 유 방이 천하통일후 다시 왕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이미 중국에서의 왕 칭호는 제후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항 우는 잠깐 천하를 석권한 후 황제가 아니라 패왕이란 칭호를 사용해 진시황이 남긴 단어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지요.
한국사에서는 중국에서 왕을 느닷없이 황제라고 바꾸든 아니든 백성들의 개념 속에 왕이야 말로 자국에서는 지존으로 알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황제란 중국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군왕 명칭을 갈아치운 그냥 중국식 단어인 셈입니다.
고려 왕들은 명칭이 왕이라고 해도 중국의 제후를 뜻하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복식에서는 입고 있는 용포가 노란색인데서도 그 권위가 나타나고 폐하, 태자 전하 등 단어에서 보듯 최고의 권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나중 <<고려사>>를 편찬할 때 조선의 세종대왕이 특별히 전조의 왕들은 스스로를 짐이라 칭하고 폐하라 불렀는데 이같은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기록하라고 지시하는 데서도 나타나지요.
고려시대 뿐 아니라 이전의 삼국시대 및 열국시대에 조상들은 왕을 중국의 황제보다도 더한 귀한 존재로 여겼음에도 소설가들이나 사극 제작진이 굳이 왕을 황제로 바꾸는 의도를 저로서는 쉬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의 개념에 맞추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유럽과 서아시아의 이야기입니다만 유럽의 로마제국이 엠퍼러 즉 황제라 번역되는 그 말에 대해 서아사아의 사산조 페르시아는 왕을 칭했음에도 결코 그 권위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은 왕들의 왕이라는 부연설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한 권위가 있었지요.
고구려의 왕들이 사산조 페르시아 왕들보다 무엇이 뒤져서 중국의 황제보다 저열하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첫댓글 감사,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