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유감, 씨(氏)는 존칭인가?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직장에서 먼저 입사한 직원에게는 00선배.
후배직원에게는 00씨.
회사 호칭규정에 ‘선배’는 없으며
선배가 후배 또는 아랫사람에게 “씨”라고 부르니
후배 또는 아랫사람도 맞받아 같이 ‘씨’라 해도 옳은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씨(氏)’는 정말 애매한 호칭입니다.
국어사전은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그래도 "씨"가 존칭은 아닌것 같습니다.
선배, 상사, 선생님께 감히 씨를 붙여서 이름을 부르지는 못하니까요.
그저, 친하지 않은 사이이고, 같은 레벨 혹은 아래 사람에게 붙여서 막말을 겨우 면하는 수준으로 느껴지네요.
모르는 사이에 이름만 부르면 막말로 느껴지니까요.
존칭을 붙일 때 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국가인 중국에서는 나이나 경험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생(先生: 먼저 선, 날 생. 시엔셩)’이란 말을 씁니다.
일본에서도 존경의 의미로 ‘상(-さん)’을 호칭에 붙입니다.
상은 귀공자나 왕자를 가리키던 ‘사마(様: 모양 양)’가 변형된 말입니다.
영어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남성존칭‘미스터(Mr.)’는 ‘스승/웃어른’을 뜻하던 라틴어 ‘magister(meg-: 위대한)’가 ‘마스터(master)’를 거쳐, 성인 남성에 대한 일반적 호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성 경칭 ‘미시즈(Mrs.)’도 마스터에서 출발해 ‘여성 교사’나 ‘주인/연인’으로 변화한 말입니다.
‘경(卿: 벼슬 경)’으로 알려진 영어 ‘서(sir)’, 스페인어 ‘세뇨르(señor)’, 프랑스어 ‘무슈(monsieur)’는 모두 ‘연장자’란 의미의 라틴어 ‘senior’에서 왔습니다.
이렇듯 한국어의 ‘씨(氏)’는 소속조직을 거쳐 경칭으로 자리잡은 반면,
주요 국가들의 존칭들은 그 자체가 존중의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씨’라는 호칭을 들으면, 존중이 아니라 ‘하대(下待: 아래 하, 대접할 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패한 ‘고관대작(高官大爵)’의 몰락이나 범죄자에게 붙는 수식어로 들립니다.
나쁜 놈들에게 붙여 부르는 모습이 워낙 흔하다 보니, 제대로 불리는 사람에게 묘한 불쾌감을 안기는 듯합니다.
병역기피자를 처벌하기 위해 군대에 보내니, 애국심으로 국방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유감입니다.
‘유감(遺憾: 남을 유, 섭섭할 감)’은 상황이나 결과가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가리킵니다.
씨의 활용 범위와 남발을 조정하지 않으면 많이 섭섭할 겁니다.
그나저나 잘못을 사과하는 자리에서는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합시다.
”유감입니다”를 남발하면 독방귀를 뀐 자가 격노하는 꼴입니다.
그 모습 보는 국민들이야말로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매경/말록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