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 [神風(신풍), kamikaze]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인 1944년 11월 25일.
필리핀 해를 순항하던 미국함선 에식스 호에 일본군 폭격기 한 대가 접근하여 아무런 공격 없이 다짜고짜 배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필리핀에 상륙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최고사령부가 편성한 자살폭탄부대 '가미카제' 의 첫 공격이었다.

이후 일본군 가미카제의 공격으로 400여 척에 가까운 연합군 군함이 피해를 입고 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정작 가미카제의 최우선 공격목표였던 연합군 항공모함은 한 대도 침몰되지 않았다.
사실 가미카제 전술은 연합군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면초가에 몰린
일본군 수뇌부가 자국민들을 상대로 군국주의 정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상징적 자해행위였다.

가미카제 부대원들은 비행기와 배를 이용한 자살공격뿐 아니라 '인간어뢰' 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목표물을 바라볼 때는 적선의 한가운데를 겨냥해서 바라볼 것, 절대 눈을 감지 말 것, 죽을 때는
필살이라는 구호를 외칠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자살지침서를 한 권씩 배급받았다고 한다.
가미[神]는 신, 카제[風]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가미카제, 즉 신풍(神風) 이라고 불리는 이 말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231년 몽고가 처음 고려를 침략한 이후로 1232년, 1236년 3차에 걸친 몽고항쟁에도 불구하고 고려 최씨의
무신정권이 붕괴되면서 몽고와 강화를 선택하게 된다.
고려의 항복을 얻어낸 몽고군은 일본 정벌을 꿈꾼다.
그러나 기마민족이었던 몽고군은 수군이 약하여 고려와 연합군을 결성하여 일본으로 쳐들어간다.
여몽연합군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침략했지만, 두 번 모두 태풍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보통 역사교과서에는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하기도 전에 태풍을 만나 원정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1차 원정 당시 여몽연합군은 쓰시마 섬과 이키 섬을 초토화시키며 일본 대륙을 위협했다.
중군을 거느린 고려의 장수 도독사 김방경이 주장한대로 점령한 섬의 육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전열을 재정비한 후
본토로 쳐들어갔으면, 어쩌면 일본 정벌에 성공할 수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오만한 몽고는 김방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몰아부치다 결국 태풍을 만나 거의 전멸을 하다시피 한다.
그리고 2차 원정에도 역시 태풍으로 본토에 도달하기도 전에 물고기밥 신세가 되고 만다.
아무튼 일본은 자신의 힘이 아닌 태풍의 힘으로 사면초가의 위험으로부터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몽고의 함대를 수몰시킨 태풍을 신풍(神風) 이라고 일컬으며 자기 나라를 지켜주었다고
신격화(神格化) 시켰다.
걔네들은 유기체든 무기체든 의미가 깃든 것들이면 무조건 신격화 시키는 연구대상의 민족이다.
몽고의 일본정벌은 몽고의 세조 쿠빌라이가 사망하면서 막을 내렸고, 고려는 우선 일본원정으로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사회적 피해를 입었고, 이것이 고려왕조가 결정적으로 피폐해지는 원인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둘째로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다.
고려는 일본정벌 이전이나 이후에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여 원의 강압에 못 이겨서 할 수 없이 원정이 개시되었다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본을 위로하는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고려에서는 일본원정에 대한 기억은 망각속에 묻혀버렸다.
여몽 원정이 가져다 준 충격과 변화는 일본측이 가장 심했을 것이다.
우선 일본은 두 차례에 걸친 여몽의 원정에 큰 힘 들이지 않고 태풍으로 인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것은 분명히 가미카제(神風)가 일어난 것이라고 여겨, 일본 조야에서 신과 부처에 대한 신앙열기가 한층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 태풍은 '일본이 신(神) 의 나라이다' 라는 사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 사무라이 계급의 위치가 상승하게 되었고, 한반도와 대륙에 대한 적개심이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훗날 고려말 왜구의 잦은 침공으로 한반도 해안가가 왜구에 의해 유린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여몽 연합군의
일본정벌의 부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운(國運) 은 얼마나 그 나라가 내실을 탄탄히 다지며 부국강병으로 이끄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나라를 사이에 둔 주변 열강들의 자신의 역사관 때문에 우리나라는 세상 밖으로 기(氣)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그저 원정길의 경유지로, 때로는 총알받이, 화살받이로 타인의 전쟁에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항상 그런 피해를 입는건 선량한 민초들의 몫이었다.
이 모든 원인제공은 나라를 온전히 운영하지 못한 사리사욕만 채웠던 그 당시 권신들이었다.
그들은 수백여년이 지난 지금, 시대가 변했고, 문화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국호가 바뀐 이곳에서 환골탈태하여
더 많은 영달을 누리고 있다.
비록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이 실패했지만 그 후유증은 결국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경술국치' 에 까지 이른다.
1945년 일본의 군국주의가 확실한 패배로 귀결되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자행한 모든 흔적들은 결국 우리 스스로
강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비참한 국운이 아니었을까...
연일 떠들어대는 위정자들의 서로 헐뜯는 기사가 메인뉴스를 장식하고, 거기에 점점 잦아들어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책 부재와 여실히 보여준 초라한 한국군의 현주소에 대한 전략의 부재가 이렇듯 먼 과거속 역사의 발자취를
쫓으며 새삼스럽게 만들다니...
730여년전 대마도해협에서 힘없는 나라를 둔 죄로 불귀의 객이 되어야 했던 우리 선대의 조상인 고려민초들의
희생이 어떠한 형태로든 환생한 여러 제국주의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물귀신 정책을 쓰는 북한이든간에
다시는 이 땅에서 선한 민초들에게 재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첫댓글 사진의 비행조조사들 얼굴, 대부분 한국인 얼굴이네요. 저 청년들 조상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로 보여요.
누구를 위한 개죽음입니까? 이런데도 더럽게 살아남아 치부한 자들이 뉴라이또를 만들어 하는짓을 보면 후일 민족의 이름으로 그댓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연합군 항공모함이 한대도 침몰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에서 뭔가 걸립니다. 자살특공대의 목표라면서 ,마치 일부러 저들이 짜고 쑈를 한 건지,진실이 궁금해집니다...
처음엔 '쟤들 왜저래?' 하고 멋모르고 당했지만 나중에 사실을 알고나서는 항공모함에 떨어지기전에 공중에서 산화되었죠.. 그리고 항공모함에 쳐박혀도 제대로 떨어질 수 없었던 비행의 '비' 자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되었던거지요... 짜고 쇼한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