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 일주문
남양주 별내면 수락산 자락에 자리한 흥국사는 “덕절”로 더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조선의 14대 임금인 선조는 자신의 생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 왕의 아들이요, 왕의 아버지이면서도 왕으로 불릴 수 없는 것을 민망하게 여겨 그 묘소만이라도 ‘릉(陵)’으로 불려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간에서만이라도 능으로 불려지게 계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것은 동대문 밖에서 궁중의 땔감을 마련하게 하고 땔감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묻되 덕흥대원군의 묘소를 지나왔다고 하면 다시 돌려보내고 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술과 음식으로 환대하며 땔감을 높은 값으로 사들였던 것입니다. 이후 소문은 빠르게 전해져 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덕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이곳에 건립하고 흥덕사(興德寺)라 사액(賜額)한 이후 흥국사도 덕절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은 임금이라도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이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흥국사는 근대기에는 경산화소(京山畵所)로 불리면서 수많은 화승(畵僧)들을 배출했던 도량이기도 했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덕절(흥국사) 중은 불 때면서 불 막대기로 시왕초(十王草)를 그리고 화계(華溪寺) 중은 불 때면서 초할향(初喝香)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흥국사는 스님들이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신심으로 불화를 그렸던 곳입니다. 지금도 여러 전각을 둘러보면 많은 불화들이 봉안되어 있어 지극정성으로 불화를 그렸을 스님들의 혼이 느껴집니다.
흥국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고종의 아버지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활달한 글씨가 많다는 것입니다. 큰방에 걸린 “흥국사(興國寺)”편액, 만월보전 기둥에 걸린 주련, 영산전 기둥에 걸린 주련 등에서 흥선대원군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흥국사는 약사기도도량이기도 합니다. 현재 만월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약사여래좌상은 스스로 봉국사에서 흥국사로 가시겠다고 하여 옮겨왔다는 전설을 지닌 부처님이십니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올리면 영험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듯 선조 임금의 효심으로 시작된 흥국사는 왕실의 원당으로, 불화를 조성하는 화승들의 교육도량으로, 기도영험이 많은 약사도량으로 이름이 쟁쟁한 사찰입니다.
[관람포인트]
1. 흥국사는 불화를 조성하는 화원들을 키워내던 도량이었습니다. 지금도 각 전각에는 많은 불화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불화들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2. 흥선대원군은 흥국사에 많은 글씨를 남겼습니다. 영산전, 만월보전, 큰방 등에서 흥선대원군의 글씨를 찾아보고 감상하세요.
3. 약사기도량인 흥국사에는 영험한 약사부처님이 만월보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4. 덕릉마을 입구에는 흥국사가 “덕절”로 알려지게 한 덕흥대원군묘가 있습니다.
영산전입니다.
대웅보전이 불사중이다 보니 편액이 걸려 있는 영산전이 눈에 먼저 들어오네요~
대웅보전
대웅보전의 목각 삼존불
흥국사에는 성보가 많이 보전되어있어 보물 사찰인듯합니다.
조선왕실의 원당다운 모습
영산전
나한님들..
육각의 만월보전
약사여래불
시왕전
시왕전외에도 독성각도 있구 아기자기한 전각이 많은 사찰
2014년 현재는 불사중이라 썰렁하구 어수선하지만
그건 날씨 때문이리라...
그래도 그렇지 전각마다 문은 왜 활짝 열어놓았을까
아늑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만월보전 옆에 검둥이는 왜 그렇게 떨고 있는지
경내를 둘러 보고 내려 오는데 스님의 차가 들어온다
찬바람이 덜 들어오게 문이라도 닫아주셨으면
검둥이 밥 좀 주셨으면 하구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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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이 안보이는데...저만 그런지..
다시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검둥이 밥 안주시나~! ? 설마~~~!.,,사람이나 짐승이나 따뜻하게 보낼수 있기을 ...().
몇년전 대퇴부고관절 이상이 있을때.. 여기 흥국사 만월보전 약사부처님에게 기도올렸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