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4024]계구신독(戒懼愼獨)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홀로 있을 때 신중하라-
계구신독(戒懼愼獨)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라는 뜻이다.
‘중용(中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군자다운 사람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조심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군자다운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이다.
君子戒愼乎其所不睹,
(군자계신호기소불도)
恐懼乎其所不聞
(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 군자 신기독야)
君子군자=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
戒=경계 계.愼= 삼가할 신, 乎= 어조사 호. 其=그 기.
所=바 소.不=아니 불.睹=볼 도. 동자(同字)覩
恐=두려울 공.懼=두려워할 구.乎= 어조사 호. 其= 그 기.
所= 바 소. 不= 아니 불. 聞=들을 문.
莫=말 막.見=나타날 현.乎=어조사 호.
隱,=숨을 은.莫= 말 막. 顯= 나타날 현. 乎= 어조사 호.
微=작을 미.故=君子=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
愼=삼가할 신,其= 그 기. 獨=홀로 독.也=어조사 야.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그에게는 ‘청렴강직한 법조인’ ‘헌법 이념의 수호자’ ‘엄결공정한 법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법관은 최후까지 정의를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 가인의 신념이었다. 아울러 냉철하고 공정하게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특히 사법부 독립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 없는 추상 같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했다. 평소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지만,
대통령과 집권당이 헌법의 토대를 흔드는 상황에 이르면 예외 없이
가인의 준엄한 질타가 뒤따랐다. 대통령이 그를 불편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지공무사(至公無私) 역시 법관으로서 늘 지녀야 할 덕목으로 새겼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고 강조했던 것 가운데
‘계구신독(戒懼愼獨)’이라는 경구가 있다.
유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인 중용장구(中庸章句)에 나오는 표현이다.
“군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라는 뜻이다.
법관의 자세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가인은 1950년대 대법원장 재직시절 훈시를 할 때 ‘계구신독’을 즐겨 인용하며
언행을 삼가도록 권면했다고 한다. 가인의 정신은 60여년이 흐른 지금도
후배 법관들로부터 추앙받는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는 가인 김병로(1888~1964)는
일제강점기와 격동의 1950년대 법률가이자 정치인,
독립운동가로 청빈을 신조로 평생을 산 시대의 '변호인'이었다.
요즘과 같은 풍족한 시대의 '전관예우'나 '그랜저 검사'가 있다면
가인의 불호령에 벌벌 떨지 않을 수 없는, 그만큼 진실하고 강직한 법조인이었다.
감동의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에 견디지 못한 한 시골 판사가 사표를 들고
대법원장이었던 가인을 찾아갔다.
가인은 "나도 죽을 먹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라고 했다.
부끄러움에 그 판사는 사표를 집어넣고 당장 물러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인은 절제와 청빈의 표상이었다.
법원의 물품을 구입할 때는 "다른 관청에서는 다 외제를 쓰는데
우리만 질 나쁜 국산을 쓴다"는 직원들의 푸념에
"나라를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관청에서 국록을 먹는 우리가
국산품을 쓰지 않으면 우리 산업은 누가 키우냐"며 타이르기도 했다.
대법관에게 승용차를 주자는 건의에
"법관이란 집에서 법원에나 왔다갔다하면 되는 것인데,
차는 해서 무엇 하느냐"며 거절하는가 하면,
손잡이가 부러져 반 토막이 난 도장을 대법원장 재임 기간 10여년 동안 그대로 사용했다. 비싼 양복 대신 두루마기를 입었고, 직접 점심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가인은 법관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서는 추상(秋霜)같이 엄격했다.
그는 1957년 대법원장 퇴임사에서는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돈과 명예를 좇고 불의에 쉽게 타협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후대 세상을 향해 가인은 이렇게 꾸짖는다.
"계구신독하시오!"
처음에는 낯설게 들릴 수 있는 문장입니다.
우리 사회는 더 자신을 알리고 드러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시대니까요.
그런데 이 말은 사실 진정한 드러냄은
억지로 나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힘이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