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요
광주광역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1,187m이다.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으며 무등산은 대체로 육산(肉山
또는 土山)으로 되어 있으나. 그 특색은 오히려 웅장한 암석미에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 서석대가,
남쪽에는 입석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서석대는 마치 수정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름다운
직절상(直截狀)의 석조(石條)로 이루어진 총석(叢石)의 집단이며 이곳을 ‘서석의 수정병풍’
이라고도 한다.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고려때의 일로 추측된다. 무진주를 광주로 고쳐
부른 것은 940년(태조 23년)인데, [고려사 지리지]는 ‘무등산’이라 적고 ‘혹은 무진악이라고
하고 혹은 서석산이라고 한다(一云 武珍岳, 一云 瑞石山)’고 그 명칭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서석산이란 이름이 이때부터 무등산의 별칭 또는 애칭으로 함께 불려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고려사]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 ‘이 산 서쪽 양지 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백척이나 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석이라 했다
(山西陽崖 數十櫛立 高可百尺 山名瑞石 以此)’ 라며 서석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천변(天邊)에 뜨는 구름 서석을 집을 삼아’라 하였고, 제봉 고경명도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겨 무등산을 예찬하고 있어 서석산은 조선시대의 문인들 사이에서도
즐겨 쓰였던 이름임을 알수있으며 현재 까지도 무등산의 별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등산에는 현재 우리가 서석이라 부르는 서석대 말고도 입석대, 규봉 , 그리고 정상 3봉을 비롯한
의상봉, 새인봉, 중봉 등 직립형 돌무더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돌무더기를 우리 조상들은 ‘선돌’ 또는 ‘신돌’ 이라 불렀던 것이니 뜻을 취하면 ‘立’이 되고
음을 취하면 ‘瑞’가 되었던 것이다.
부정(不淨)을 피하고 성지를 예찬하던 고대의 풍습은 이처럼 신체(身體)에 비길 수 있는 천연의
석경(石景)을 상서롭고 신성한 뜻으로 받아들여 ‘서(瑞)’로 대하였던 것이니, 무등산의 돌
경관은 어느것이나 서석이요 입석이지 따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서석의
절경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이름하였던 것은 과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쪽은 나주평야, 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으며 산세가 웅대하다. 북부는 중생대에
관입(貫入)한 화강암이 분포하고 남부는 퇴적암지대이다.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며 중턱에는 커다란
조약돌들이 약 2km에 걸쳐 깔려 있는데 이것을 지공너덜이라고 한다. 153과 897종의 식물이 분포
하며 이 가운데 465종은 약료작물이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공원 면적은 30.23㎢이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
(元曉寺) 등의 사찰과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을 소장하고 있는 약사암(藥師庵:)·천문사(天門寺)·
미력사(彌力寺) 등의 암자가 있고 입석대.서석대등 정상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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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길상득님 4명 신청(앞자리부탁)
2명 추가 신청
시청 후문 2먕 송내1명 신청 합니다...^0^
1명 신청합니다. 송내 남부역에서 탑니다. (017-720-0011)
현아.코스모.헬륨님 3명 참석합니다 ( 현아 ~ 구시민사거리. 코스모.헬륨님 ~ 송내역) 탑승 (016~294~7382) 구로역에서 첫차가 5시30분이래요 늦더라도 조금기다려주세요
easysong님 신청
죄송합니다. 사정이있어 참석못하겠네요! 다음번 산행에는 꼭참석하겠습니다.
장광호님 신청
토끼님 2명 신청
1명추가신청
신청 합니다.
두명갑니다
장기산님 신청
1명신청입니다.
무등산 경치를 찍으려 하는데 비가 많이 내린다니.. 다음으로 기약하겠습니다. 너무 늦게 취소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