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의 「봄날」감상/ 김기택, 김명철
봄날
이문재 (1959~ )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칼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 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 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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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에도 철가방에도 오토바이에도 배달원에게도 봄은 온다. 1분 1초가 급한 배달을 잠시 멈추게 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차량과 사람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는 속도를 급정거시키며, 봄은 온다. 봄은 제 생애의 가장 빛나는 색깔과 향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젊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봄은, 생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이 극적인 시간에 아르바이트에 끌려다니는 청년의 감성과 정신을 후려친다. 그리하여 이 도취의 순간을 시급 7000원 때문에 잃지 말고 막무가내로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을 준엄하게 명령한다.
그러니 짜장면이 퉁퉁 불어터지고 배고픈 위장이 사납게 꼬르륵거려도 속도를 급정거시키고 볼 일. 세상의 모든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정지시키고 단호하고 엄숙한 태도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볼 일. 이 순간 세상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봄꽃만이 있다는 듯, 우리 삶에서 오직 봄꽃만이 제 시간과 정열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듯, 목련과 벚꽃이 맞이한 천국을 스마트폰에 담아둘 일. 그래서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뭐가 뭔지 모르게 뒤죽박죽되어 있는 이 세상을 몇 십초 동안만이라도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갖춘 유토피아가 되게 할 일.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소한 장면에 숨겨져 있는 이 혁명적 순간을 어찌 시인의 눈이 놓치겠는가.
김기택 (시인)
나는 언제 이 철가방처럼 부아앙, 가속기를 밟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보았나. 눈과 마음이 예기치 못하던 아름다움 쪽으로 급격히 쏠려, 찰칵 찰칵 시간을 정지시켜본 적이 있었나. 급브레이크를 밟고 잠시라도 멈추어 서려면 작은 마음의 틈과 자리가 필요한데, 그것들까지 모두 지루하고 딱딱한 생활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것은 아닌가. 그런데 이 철가방은 누구에게 백목련 사진을 배달하려는 것일까. 애인? 엄마? 친구?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이 봄에는 기어코 백목련처럼 하얗고 순한 마음을 찍어 외로운 누구에게라도 배달을 해보고 싶다.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