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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호 이면수가 유찰 되었다. 여느 해와 다르게 올해는 이면수 발이가 너무 길게 늘어진다. 벌써 끝이나고 꽁치 조업에 나서야 하는데 이상하다.
아마 물길이 변하여 한류가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면수발이는 근해에서 2월 정도에 시작하여 이면수가 점점 커지면서 남쪽으로 내려가서 임원항 앞 커다란 짬(암초지대)에서 조업하는 임원바리로 끝을 내는데, 그것이 대충 5월 초인데, 아직까지도 여전하다.
게다가 잡히는 양도 많아서 값도 너무 떨어졌다.
이번 주에는 더욱 그렇다. 평일에다가 날씨도 더워 말리기도 힘들고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서 중매인들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겼나보다. 아침 경매에 중매인들끼리 서로 눈치를 슬슬 보다가 23번 중매인 혼자만이 성의 없이 적어 수협 경매사에게 주었는데,
그 가격이 4월에 비해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고기 크기도 훨씬 큰데도 말이다. 한 두름 20 마리에 2천 8백원이라니. 그 가격이면 아무리 많이 잡았다 해도 멀리 가는 임원바리 기름값도 않되는 것이다.
"이런 쓰발, 니들 장난치나! 때려치워!"
선주는 중매인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고 중매인들은 미안한 듯 선주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서로 다들 아는 처지에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즈음에서 나의 사설을 풀어봐야겠다. 그 동안 농산물 수산물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봐다.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격 형성 과정을 보면, 중매인을 통한 경쟁입찰이란 점에서는 같지만, 그러나 둘 사이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그 점에서 자본주의가 가지는 악마성과 진정한 사회주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시장은 자본주의만의 특성은 결코 아니었다. 시장은 과거로부터 교환과 소득 재분배의 역할을 하면서 인류와 함께 있어왔다.
그런 시장이 자본주의 시대와 와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었고, 자본주의를 극도로 싫어했던 맑스 조차도 그러했다.
오히려, 나는 자본주의야 말로 진정한 시장을 말살했고 왜곡했고 그래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져서, 오늘 날 모든 인민들에게 잘못된 이데올로그를 주입시켰으며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주게 되었다.
수산물은, 어선이 들어 올 때마다 즉시에 입찰이 진행되어 그 자리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나는, 이곳 묵호항에서 수산물을 팔기 위해 원룸 겸 사무실을 어판장 바로 앞에 두고 있기에 수협에 방송되는 입찰 개시 방송을 수시로 듣고 있다.
나는, 일을 하다가도 그 방송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나가 중매인을 통해 수산물을 사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이윤을 붙혀 전국으로 택배를 보내는 것이다.
수산물을 팔기 전에 나는 농산물을 팔았다. 내가 팔았던 농산물 중에 가장 큰 매출을 차지했던 것이 절임배추였다.
아마, 내가 인터넷 쇼핑몰로 절임배추를 팔았던 것이 한국에서 거의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가 중국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어 중국산 김치를 먹던 주부들과 식당들이 한국 김치로 넘어오던 때였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은 국산 김치 조차도 믿지 못했다.
바로 그 시기에 내가 국산 배추로 절임배추를 인터넷 쇼핑몰로 팔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소박하게 시작하였으나 엄청난 주문 전화에 대량으로 배추를 구입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배추를 심고 밭데기로 배추를 사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배추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 지 알게 되었다.
배추의 가격은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쟁 입찰로 형성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내어 각 지역의 농산물 도소매 센터에서도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나, 가격의 기준은 가락동 농수산물 센터가 될 수 밖에 없다.
중매인을 통한 경쟁입찰이라는 형식에 있어서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같다는 점에서는 정직하고 합리적이고 정확하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될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전혀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 이글을 쓰는 지금도 묵호항에서 입찰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퍼지네요. 그런데, 요즘 저는 오징어 가격이 너무 비싸 장사를 포기하고 쉬고 있는 중이라 여유만만입니다)
수산물과 농산물 가격 형성의 차이점을 설명하면, 일단 그 차이점이 벌어진 이유 중에 하나는 수산물을 현장에서 즉시 입찰이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농산물은 현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즉시가 아닌 차후에 이루어진다는 점에 이다.
어선이 들어오면, 수협에서 나온 중매인이 방울을 딸랑이고 상인과 화주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는데, 고기를 잡아 온 어민, 중매인, 화주, 상인 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거다. 심지어 아들과 아버지와 같은 가족관계인 경우도 있고 한 동네에서 수십년 살아오기도 하고 그래서 매일 만나 이야기 하고 술을 마시는 사이라는 거다.
바로 그 점이 즉시 현장 입찰을 통한 가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상품(생선)에 대한 정보를 서로가 정확하게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 뿐 아니라 고기를 잡기 위한 생산비, 어부의 성격, 고기를 잡는 수심, 생선을 다루는 방법, 심지어 개인적인 친밀도 까지도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오징어 배가 육지에서 몇 시간 동안 바다로 나가서 몇 명의 선원으로 며칠만에 돌아오면서 오징어를 어떤 상태로 잡아 왔느냐에 따라서 생산비가 결정이 되는 거다. 그런 점을 수협 중매인과 상인들과 화주들이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민이 절대로 손해가 안나는 지점에서 가격을 호가한다. 이번 명덕호 사건이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중매인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호가 할 수도 없다.
화주와 상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어민도 손해를 안보고 화주와 상인들도 손해를 보지 않는 절묘한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그 지점에 오기까지는 서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고 고기를 잡는 방법 뿐만아니라 그것이 流通되는 방법까지 정확히 안다는 점이다. 혹시나 중매인이 실수를 하게되면 어민들은 화가 나서 유찰을 시키고 그 생선은 다른 방법에 의해 팔려나간다. 화주와의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거다.
그럼 수협 측에서는 손해다. 수수료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매매하는 것은 사실 불법이다. 수협에서 가끔 항의도 하지만 어민들은 그럴 때 불같이 화를 내고 따지고 들면 수협에서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어민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협의 직원들이 거의 대부분 어민들의 가족이다. 서로 싸울 수도 없는 처지이고 부정을 저지를 수도 없는 강력한 시스템이 갖추어진 거다. 그래서 수산물의 가격 형성은 합리적일 수 밖에 없는 거다.
상품에 대한 정직하고 정확한 정보의 공유와 생산자 판매자 중매인 간의 인간적인 신뢰도와 친밀도는 서로가 생선을 통해 얼마나 이익을 보는지 조차 알게된다. 그래서 어느 사람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하고 일방적으로 폭리를 취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형성되는 거다.
또 한가지 수산물 가격 형성의 놀라운 점이 있다. 농산물 공산품과 달리 수산물은 우연성이 절대적이라는 거다. 고기를 잡는 어민 조차도 자신이 오늘 얼마나 잡아 올 줄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물론, 어구의 현대화로 요즘은 우연성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그물을 넣어 잡는 방법은 변하지 않은 관계로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날은 무지막지하게 잡혀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고기가 말도 안되게 잡혀 주문을 많이 받아놓은 화주와 상인들 실망시키기도 한다.
무지막지하게 많이 잡혀 온 날과 지독히도 못 잡은 날의 수산물 가격 역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정보 공유와 인적 시스템에 의해 합리적으로 형성이 된다. 많이 잡았다고 해서 폭락을 하거나 조금 잡았다고 해서 폭등은 하지 않는다. 오징어의 경우는 세 배 정도까지 변화가 있는데, 그것은 어민들의 생산비를 기준으로 해서 만들어진 거다. 만약 생산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 계속해서 형성이 된다면 어민은 출어를 포기하게 된다. 고기의 생산량을 정확히 예측 못하는 관계로 중매인들과 어민들의 교감이 형성되지 않아 가끔은 어민들이 손해를 보거나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이내, 그들의 시스템에 의해 바로 잡히고 만다.
농산물 가격은 수산물과 같이 경쟁 입찰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현장에서 즉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락동 까지 올라가서 이루어진다.
그곳 가락동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상품(배추)을 사이에 두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 배추가 어떤 배추인지는 관심도 없다. 누가 생산한 것인지는 알 필요도 없다. 배추에 어떤 농약과 비료가 뿌려진지도 모른다. 농협 중매인과 상인과 화주 사이에는 공동체적 시스템이 전혀 형성되어지지 않다.
서로간에는 누가 얼마나 이익을 가져가는냐에만 관심이 있다. 상품 정보에 대한 서로간의 공유가 없는 상태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농산물 가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권력은 중매인에게만 있다. 중매인의 가격 호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다.
배추의 생산량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평균 100프로를 기준으로 80에서 130프로 정도다. 그러면 가격도 그러해야 하는게 정답이 아닌가? 그런데 80일 때는 배추 가격이 몇 배로 뛰고 130일 때는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가 직선이 아닌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말도 안되는 거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수요 공급 이론이 여기서 부터 깨지는 거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그래서 처음부터 엉터리라는 거다. 稀少性의 법칙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되어야 할 가격 형성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오히려, 우연성에 의해 생산되는 수산물에는 가장 인간적인 가격 형성이 이루진다. 서로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래서 상대에 대해 온정을 가질 수도 있고 상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 상품이 함부로 취급되어지지 못한다. 어민들이 잡아 온 그 수산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잡아 온 줄을 알기에 서로간에 따스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우연성을 통해 상품을 무지막지하게 잡아왔더라도 가격은 폭락을 하지 않는 거다. 수산물은 100프로를 기준으로 아마 거의 10프로 미만대에서 1000프로 이상까지도 생산이 될거다.
그러나, 가격은 전혀 거기에 따라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따라가는 척 하다가, 서로간의 공유해야 할 정직한 선에서 머므른다.
여기서도 역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적용이 되지 못한다. 희소성의 법칙이란 말도 무색하다.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격 형성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농산물과 수산물 시장이 어느 지점에 있는가 이다.
수산물은 현장에 있고 농산물을 현장에서 떨어져 있다는것이다. 수산물은 상품정보에 대해 정확하게 공유되어 있고 농산물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수산물 가격 형성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작동을 하고 있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좀더 쉽게 이야기 한다면, 수산물의 시장은 공동체 안에 내재되어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는 거다.
농산물은 공동체를 벗어나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수산물 시장은 공동체를 도저히 위헙할 수 없다. 오히려 공동체 각자가 마음대로 시장을 주무른다.
농산물 시장은 농민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에 의해 공격을 당한다.
김장 배추 수확철이 다가오면, 자본과 유통 능력을 갖춘 상인들이 배추밭에 나타나서 농민과 계약을 한다.
그들은 배추 생산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의도대로 가격이 후려친다. 농민들은 정보가 전혀 없다. 어민들 처럼 우연성 같은 것은 전혀 기대를 할 수 없다. 유난히 날씨가 좋아 배추 수확량이 많아져서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130프로 정도 되면 그 해는 생산비도 못 건지는 거다.
그래서 열 받은 농민들은 배추 밭을 거름이나 하자고 그냥 갈아엎고 말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팔려나간 배추 조차도 가락도 시장 앞에서 며칠씩 기다린다. 전국에서 올라온 배추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매인들의 농간이다. 농협의 농간이다. 배추 밭을 통채로 사들인 상인들 조차도 공포심에 떤다. 그래서 가락도 시장의 중매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거의 똥값으로 처분을 하고 만다.
농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확대시킨 범인은 바로 정부이다. 물론, 어업도 역시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사실이나, 가격 형성의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거다.
아마, 그래서 수산물이 농산물 보다 월등한 이익을 취하는데도 농협이 이렇게 비대해졌을 겁니다. 농협의 확장은 농민들의 피와 땀이다.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락동농수산물 시장을 없애고 농협을 개혁하거나 파괴해야 한다.
어쩌면 농업은 정부에서 간섭을 하지말고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먹고 살 거다.
현대의 국가는 그래서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다.
서로간에 묘한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국가와 자본주의의 밀월 관계가 제국주의이고 그것이 근대 역사의 모든 것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생산수단에만 시선이 머므른 때문이다. 맑스 역시 그렇다. 생산수단의 국유화 사회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장이다.
市場이 사회의 統制下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각국은 생산 수단을 여러 형태로 변형을 시켜 복지국가 파시즘 국가사회주의 형태로 변형 시켰다. 그렇지만 어느 국가도 시장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시장은 간섭하지 않거나 국가가 움켜지고 있거나 없애거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資本主義가 생기기 이전에도 물건의 교환이나 소득 재분배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 왔다. 그렇다고 결코 시장이 사회를 지배한 적은 전혀 없다. 시장을 그렇게 홀대한 적도 전혀 없다.
시장은 인류의 삶과 함께 그들과 조화를 이루며 같이 살아왔다. 시장은 그래서 인류와 함께한 삶이었다.
우리가, 텔레비젼 드라마를 통해 조선시대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 '상도'를 보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도에 나왔던 부자는 특별히 훌륭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시절의 부자는 대부분 그랬다. 자신의 부를 자신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미련한 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과거의 부자들은 자신들의 곡식 창고의 문을 채우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정치제도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사회주의를 민주주적인 정치제도와 생산수단의 국유화 내지 사회화에서 찾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한 거다.
어쩌면 정치제도와 생산수산을 무시하고도 진정한 시장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로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거다.
유찰을 시킨 연신호 선주는, 고기를 어판장에 가져와 통로에 쌓아놓고 한 두름에 5천원에 팔기 시작했다.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 게다가 북평장날이라서 아무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면수를 파는 다른 고기 장사들이 불평을 늘어 놓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정을 충분히 알기에 가슴치면서도 눈감아 줄 수 밖에 없다.
얼마가 지나자 觀光客들도 다가 오지 않자 어판장 사람들이 명덕호 이면수를 사주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이면수를 지겹게 먹었는데도 연신호를 가엾어 하면서, 사서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에게라도 부쳐주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네 두름이나 사주었다.
연신호 이면수의 아침 입찰과정에서 벌어진 시끄러운 사건과 그것을 유찰 시켜서 어판장 사람들이 팔아주는 방식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중매인은 그럴 줄 알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겼고, 그런 중매인에게 선주는 그렇게라도 해야지 체면을 차릴 수 있고 수협 경매사에게도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이다.
이면수를 순식간에 처리한 연신호 선주의 밝은 모습이 기분이 좋았다.
새벽 6시 정도면 나는 어김없이 묵호항에 서 있다. 이윽고 오징어배들이 조명을 켜고 경쟁하듯 항구를 향하여 달려오고, 수협직원의 방울소리가 오징어 경매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경매사들의 진중한 눈치 싸움이 끝나고 살아있는 오징어는 바쁘게 실려나간다.
그리고, 정치망 어장배와 활어를 실은 트럭들이 고기를 내리면 같은 방법으로 경매는 진행이 된다. 나는 늘 그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참여해야 할 지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두 귀를 곧추세우고 두 눈에 핏발이 선다.
묵호항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만들어 온 그들의 방식에 순응하면서 나 역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들이 먹고 사는 방법과 구조는 그들의 삶 속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았다. 누구 하나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누구나가 그 시스템에 의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그래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경제(經濟)라는 말은 돈을 번다는 의미로 왜곡되어 왔다. 사실 돈과 경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경제라는 의미가 이렇게 퇴락된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라는 사기 때문이다.
경제의 원뜻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시스템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생산을 하고 어떻게 분배가 되고 그곳에서 재화와 용역이 본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묵호항 사람들이 먹고 사는 방식, 즉 고기를 잡고 고기를 팔고 그 돈을 분배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경제인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다만 거기에서 생겨난 뜻하지 않는 콩고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 일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느냐에 대한 것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새벽마다 接點에 서 있다. 내가 그 동안 해 온 인터넷 쇼핑몰의 생산 수단과 묵호항의 경제 시스템의 백척간두에서 나는 그것을 접합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둘의 시스템이 원활히 흘러가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것이다.
묵호항 산동네에 불이 켜지고 어부와 어부의 아내와 어부의 부지런한 개들이 어판장에 내려와서 어선이 출항을 하고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 아침에 항구에 들어와 그들의 생산물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으로 分配를 해서 販賣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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