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63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29편 청풍채 부인 29-1
무송과 헤어진 송강은 동쪽으로 가다가 마침내 유명한 청풍산에 도착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 깎아지른 든 둘러서 있고 수목들이 울창했다.
물소리가 귀에 시원하고 산 빛이 아름다웠다.송강이 넋을 잃고 걷는 가운데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여름이라면 하룻밤쯤 숲속에서 잘 수도 있지만 추운 겨울에
산에서 밤을 지내기는 힘들었고, 사나운 짐승이 나타날 위험도 있었다.
송강은 당황했다.인가는 보이지 않고 날은 어두워졌다.이제는 길도 분간이 안 되었다.
그때 문득 다리에 무엇인가 걸리면서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숲속에서 갑자기
왕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어이쿠, 내가 함정에 빠졌구나!’
그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숲속에서 수십여 명의 도적떼들이 달려 나와
그의 칼이며 보따리를 빼앗고 굵은 밧줄로 결박해 버렸다.
그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도적떼들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도적들은 횃불을 들고 웃고 지껄이며 산 위로 올라갔다.
산채에 이르자 주위에 목책이 둘러 있는 한가운데에 초막이 있었다.
대청에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의자가 셋이 있었다.도적 중의 한 놈이 말했다.
“대왕께서 지금 주무시니까 그동안 저놈 간을 꺼내 성주탕(醒酒湯)을 해 올리게.
우리도 고기 한 점씩 얻어 먹세 그려.”
송강은 기둥에 몸이 묶여 옴짝달싹 못한 채 그 말을 듣자 기가 막혔다.
방탕한 계집년 하나 죽였다고 갖은 고생을 다해 여기까지 와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생각을 하니 목숨이 너무 속절없었던 것이다.그때 삼경쯤인 듯한데, 대청 뒤에서
졸개가 달려 나오더니 두목 대왕이 나온다고 소리를 지르며 요란을 떨었다.
송강이 살펴보니 노랑 수염에 두 눈이 크고 둥근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나와
호랑이 가죽 의자에 걸터앉았다.한가운데 놓인 호피 의자에 앉은 두령은 머리를 틀어
붉은 명주 띠로 싸고 몸에는 붉은 모시옷을 입었다.그는 산동 내주 출신연순(燕順)이다.
본래 각지로 양과 말을 팔러 다니던 장사꾼이었는데, 장사가 안 되어 본전을 털어먹고
산채에 눌러앉았다.“저놈은 어디서 잡아 왔느냐?”뜰아래 졸개들이 대답한다.
“뒷산 길목에서 걸려든 놈입니다. 대왕님의 성주탕이나 해드릴까 해서 잡아 올렸습니다.”
“잘했다. 그럼 어서 가서 두 분 대왕도 모셔 오너라.”
졸개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대청 좌우에 두 명의 호걸이 나타났다.
한 명은 오 척이 안 되는 키에 푸른 비단 수를 놓은 장삼을 입고 있었고,
두 눈이 유난히 컸다.그는 양회(兩淮) 태생으로 이름은 왕영(王英)이었다.
또 한 명은 키가 훤칠하게 크고 옥같이 흰 얼굴에 머리에는 진분홍 두건을 쓰고
쇠기름을 먹인 푸른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그는 소주(蘇州) 태생으로 이름은 정천수(鄭天壽)다.
본래 은방울을 만들던 사람이었으나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연히 청풍산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창봉을 익혔지만 왕영에는 못 미쳐 산채에서 순위가 셋째였다.
먼저 왕영이 명령을 내렸다.“저놈의 간을 꺼내 술 깨는 약을 만들어 오너라.”
그러자 졸개가 큰 구리 그릇에 냉수를 가득 담아 송강 앞에 놓고, 또 한 놈은 소매를
척 걷어 올리며 날이 시퍼런 칼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이윽고 한 놈이 물을 떠서 송강의 가슴에 끼얹는다.
사람의 염통은 더운 피가 엉겨 있기 때문에 우선 찬물로 피를 식힌 다음
염통과 간을 꺼내야만 연해서 먹기 좋기 때문이다.
- 64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