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페인을 좋아합니다. 꽤 오랜동안 돌아다닌 정열의 나라
물론 벨라스케즈란 화가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내 소아병적인 집착도 있지만
붉은색과 최근에 계속해서 소개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스페인의 풍광은 우리의 망막속에 강하고 신산한
그들의 영혼의 빛깔을 입힙니다.
벨라스케즈와 달리, 그리고 스페인이 자랑하는 구두의 거장
저는 이 분이 디자인한 구두를 신어보고 싶어서 여자도 태어나면 좋겠다는
망상을 한적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영화 <섹스 앤더 시티>를
통해 알려졌던 그 구두의 명장, 바로 마놀로 블라닉입니다
최근 마놀로 블라닉에 대한 병이 다시 도져서
그의 오랜세월 친구였던 패션 사진작가 에릭 보먼의 사진집
블라닉 : 구두, 스타일, 그리고 대화.....라는 제목의 도록을 아마존으로 신청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작품이 바로 에릭 보먼의 사진작품 속에 등장하는
블라닉 제품이지요. 연보랏빛 사프란과 그 안에 놓여진
보라색 벨벳의 팜프스. 우아함의 극치를 이룹니다.
솔직히 예쁜건 예쁘다고 인정하고 싶습니다.
이 마놀로 블라닉 때문에 뉴욕의 남편들이 그리도 힘들고 버겨워도 말이죠
어찌 합니까? 방금 행구어낸 햇살아래, 보랏빛 환상의 물매를 하고
그렇게 마놀로 블라닉은 우리를 향해 말을 건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게 있어 블라닉은 구두가 아니라 제스처다
우리 모두 의상이란 일종의 기호를 입고 다니는 지시체란 점에서 기호학적 대상으로의
블라닉의 존재론에 대한 멋진 논평이라 생각합니다.
구두는 대지를 거니는 우리 모두의 행동과 제스처를 담아내는 거푸집이 됩니다
우리는 구두를 신고 길을 건넙니다.
그 길의 끝에서서 또 다른 길을 희구하고 꿈꾸는 것은
나와 함께 저 그리움의 지층 사이로 삐져나온 대지의 힘을 함께 밣아온 구두의 향기
가 있기 때문일거라고......그렇게 오늘도 부족한 시구 하나 떠올려 적어봅니다.
에릭 보먼은 원래 스웨덴 출신의 패션 사진작가입니다.
또한 하이힐의 콜렉터이기도 합니다. 남자가 하이힐을 모으다니.....혹시 변태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여성제품이라고 보지않고 예술품이라 생각한다면
충분히 소장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 바비인형을 가장 많이 콜렉션해서 가지고 있는
분도 남자분입니다. 솔직히 사진집을 보니 저도 모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욕망에 솔직해지자, 요즘 저의 모토입니다.
에릭 보만의 사진집을 보면 구두의 마에스트로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가 온 지천에 펼쳐집니다. 그의 사진속에서 마놀로 블라닉은 일상의 오브제와
결합된 예술작품이 되지요. 섹스 앤더 시티에서의 마놀로 블라닉을 기억하기
훨씬 이전부터 블라닉의 구두는 가장 화려하고 섹시한, 극미의 섬세한 감성으로 빚어낸 삶의 제스처가 녹아 있는 구두로서 많은 패셔니스타(유행에 목숨거는 아이들)들의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짝이고
아내의 구두는
내 구두의 짝이다
그 구두 떠난뒤
나의 구두 혼자 외로워 지고
외로운 나의 구두옆에서
나 또한 외로워 진다
잠 깨어 나와 보면
현관에 호올로 남아
옆자리 지키는 한밤의 연민,
돌아올 날 손꼽아 헤어보는 별빛 기다림. . .
눈 보라, 꽃 보라, 날리던 길에
정으로 찍히던 발자국들이
선연히 떠오르는 삼경의 밤
같이 있어 행복하던
신발 두 켤레
아아, 언젠가는 하나만 남는 날이,
기다림도 소용없는
그날이 오려니
오늘도 블라닉의 환상 속에서 멀리 있는 내 연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송문익 시인의 <아내의 구두> 그는 지금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고, 그녀가 신은
그래서 걸었던 그 길을 다시한번 아내의 환상과 사랑의 물매속에
기억하며 걸어가려는듯 합니다. 구두는 소설과 다른 예술매체에서 항상 어두운
느낌의 이미지와 은유를 상징해왔습니다.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남자>라는
소설집을 읽은적이 있지요. 여기에서도 주인공은 이제 사회적인 낙인이 찍힌 그
사회에서 소외된 무능력자 권씨는 가장의 의무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에게 남은 건 열 켤레의 구두뿐. 그에게 있어 구두는 마지막 남은 체면과 자존심.
구두를 닦는건 현실의 냉혹한 폭력 속에서 상처받고 소외된 자신을
지키기위해 권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징이......
그러나 마놀로 블라닉에선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껴안음
이건 결코 삶의 진중함이 아닌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극미의 세계를 사랑한
구두공의 땀이고, 노력이며, 그의 세계를 녹여낸 작품들입니다.
카나리 군도에서 태어난 구두의 명장 마놀로 블라닉은 제네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던 문학도 였습니다. 파리와 런던으로 와서 그는 처음 무대 세트를 디자인
하는 일을 했지요. 1971년, 아 홍기가 태어난 해, 그는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였던
다이아나 브릴랜드에게 차라리 구두를 디자인 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충고를 듣고,
드디어 그의 생의 이력에는 두번째 이모작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사진작가 에릭 보먼은 다양한 사진작업 무엇보다도 <보그>와 <마리 클레르>
<이브생로랑><베니티 페어>에서 다양한 패션 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예술사진이 가진 정물의 고요함을 소비의 아이콘과 결합해 그만의
영상언어를 빗어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취향과 세련의 극치, 귀족의 발에 어울리는 우아함.
뭐 이런 진부한 수사학을 오늘 상당히 남발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놀로 블라닉은 이 진부함 조차도 시각의 프레임 속에 우리를 완전히 포위시켜,
우리로 하여금 숨을 쉬기 조차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집 표지모델이 된 하얀색 가죽 스틸레토는 마치 히치코크의 스릴러 드라마에
버금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죠
블라닉은 항상 구두가 일종의 나무이기를, 정원 속의 꽃들처럼 그렇게 존재하는
대상이기를 바랬던 디자이너 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슈즈는 항상 나무의 빛깔,
자연의 빛깔이 뉴욕의 기계성을 꺽어버리는 힘을 가졌다고 <보그>지의 한 패션 평론가가
이야기 하곤 했지요. 그래서인지 사진집엔 유독 꽃들과 나무의 이미지를 함께 병치시킨
그의 구두작품들이 많이 나옵니다. 샌들의 스트랩 하나 조차도 마치 이탈리안 풍의
스파게피 국수를 연상하게 하는, 먹음직한(?) 달콤한 구두. 마놀로 블라닉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그의 사진적 테크닉은 다시 한번 패션사진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스펠바인딩이라고 하죠
플라워 폼폰(꽃무늬 장식)으로 이루어진 블라닉의
여름용 뮬을 보고 있자니, 이미 우리 안에 여름의 환상이 가득하게 에워오는 것
같습니다. 햇살에 비친 지붕들이 밝게 웃음짓는 스페인의 매력이
그렇게 우리들을 울리고 웃기고 합니다.
사실 사진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보니
그리 매력있는 사진들이 그지 없더라구요. 다음에 도록이 오면 일일히 스캔해서
마놀로 블라닉 특집편을 한번 올리겠습니다. 그의 구두공 인생에 대해
삶의 제스처가 녹아 있는 구두 명장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세요
첫댓글 금색 누드가 맘에 들어요.
구두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의 종착역은 마놀노 블라딕, 근데 정말 비싸요 ㅠ_ㅠ
외화 "섹스앤더씨티"를 보면 주인공 캐리가 마놀노 블라딕에 빠졌죠 난 첨들어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