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40) - 2021 조선통신사 옛길 대장정 기행록(6)
- 경관이 아름다운 국도 따라 충주에 들어서다(음성 생극 – 충주 관아 38km)
4월 9일(토), 아침에 쌀쌀하다가 낮에는 쾌적하여 걷기 좋은 날씨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을 찾기 쉽지 않아 전날 마트에 들러 준비한 식빵과 우유, 과과일 등으로 아침을 가름하고 7시에 승용차에 올라 출발지인 생극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잠시 후 산업도로로 들어서니 10여 분만에 출발지점에 도착, 7시 15분부터 걷기에 나섰다. 도로와 주변 산자락이 벚꽃 동산, 청량한 기운 만끽하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두 시간여 열심히 걸으니 음성군 생극면에서 충주시 신니면에 접어든다. 잠시 후 이른 곳은 옛 지명 모도원(慕陶院),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연결된다는 전설이 의아하여 인터넷을 살피니 조선시대 충청도 연산 땅에 낙향해서 살았던 광산 김씨가 붙인 이름이란다. 명나라 사신으로 자주 간 광산 김씨는 명 의종의 칭송이 대단했다는 선비, 어느 날 노비가 죄를 짓고 야반도주해 이를 찾기 위해 전국 각지를 누비다 모도원에 도착하게 됐다. 김씨는 이곳의 풍수 형국이 워낙 마음에 든 나머지 고향을 버리고 아예 이곳으로 옮겨 정착했다. 그는 이곳에 정착해 거동을 삼가고 도연명의 시를 즐겨 읊었는데 자기가 사는 집을 도연명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도원(慕陶園)이라고 붙인 뒤 인근 마을 전체가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명, 어쨌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고향 떠나 새 보금자리로 삼을 만큼 매력 있는 고장인 것을 일깬다.
모도원에서 얼마 가지 않아 이른 곳은 동탁초등학교, 교정에 김재옥 교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도로변에는 동탁전승비 - 한국전쟁 최초 전승지라 새긴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충주의 향토전문가에게서 들은 설명, ‘김재옥 교사는 한국전쟁 직전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탁초등하교에 부임한 여교사였는데 당시 이곳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중인 전쟁터였다. 전황은 북의 우세, 방심한 북쪽에서 초등학교 교정을 주둔지로 정한 것을 김재옥 교사가 산 위에 주둔한 국군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지대가 높은 곳의 국군부대가 집중포화를 퍼부어 한국전쟁 중 가장 큰 전승지로 기록되었다. 동탁초등학교는 그 후 폐교 위기에 여러 번 몰렸으나 한국전쟁 최대전승에 공이 큰 것을 감안하여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자세한 설명으로 10년 전에 품었던 궁금증이 확 풀리네.
주덕, 충주로 연결되는 국도 따라 걸으니 꽤 큰 저수지(용원지)에 낚시꾼들이 몰려 있다. 휴일이라서 그런가? 저수지 벗어나 잠시 걸으니 아직 11시도 안 되었는데 식당으로 들어간다. 조선통신사 걷기 때마다 들렀던 곳, 다른 때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출발한 탓에 점심시간이 빨라졌다. 메뉴는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를 곁들인 백반, 아침 일찍 출발하여서인지 밥맛이 좋다.
이른 점심 후11시 20분에 이어 걷기, 이내 들른 곳은 신니면 신청리에 있는 박팽년 사당이다. 박팽년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세조 1년에 충청관찰사,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으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사육신의 하나로 사형을 당하였다. 사당에는 중앙에 박팽년, 좌측에 그의 둘째아들 박순, 우측에는 박순의 유복자인 박일산이 충신으로 명정된 편액이 걸려 있다. 가히 대를 이은 충신의 표상이로다. 아침에 살핀 성서의 교훈,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잠언 10장 19절)
오후 1시 반, 국도와 주변도로 25km쯤 걸어서 크고 오랜 하천 요도천에 접어드니 한 시간 넘게 천변 길이 이어진다. 교통대학교 앞에 이르니 30km 지점,여기서부터 시내로 들어선다. 충주의 관문격인 달천교 지나 중심부에 접어드니 조선시대통신사 현창회원이면서 충주학연구원장(중심고을연구원)인 이상기 향토전문가가 일행을 반가이 맞아 목적지인 충주관아까지 앞장서서 안내한다. 가는 길목에 (사)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에서 2007년에 세운 '조선통신사의 길'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 내용, '이곳은 이곳은 1607년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받들고 지나갔던 길입니다. 조선통신사의 일본 왕래 400주년을 기리고 선린우호정신을 다짐하며 여기 이정표를 세웁니다. 서울 - 충주 145km, 충주 - 부산 369km' 잠시 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살았던 집을 지난다. 생가는 음성에 있고 7세부터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옛집을 충주시에서 매입하여 기념관을 만들었다는 이상기 원장의 설명, 이어서 충주관아 주변의 충주읍성과 관아에 대해서도 자세한 해설이 이어진다. 친절한 안내에 감사.
충주 관아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8km를 열심히 걸었다. 관아 앞에서 조선시대통신사 현창회 박성갑부회장(2대 조선통신사 부사였던 박재 선생의 후손)이 일행을 반긴다. 원주에 거주하는데 일부러 충주까지 오신 것,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다시 원주로.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걸은 대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일부러 나와 주신 이상기 원장과 박성갑 부회장, 감사합니다. 성원과 격려를 아까지 않는 여러분께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