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왜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 대한 의식개혁 운동을 하려 하는가?” 라는 자문을 해 봅니다. 저는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안고, 신학을 했고, 목사가 되었으며, 20년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 사역의 초창기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갈등을 안고 시작했지만, 한국 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원형에서 크게 이탈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 자각에 의해, 우리 한국 교회가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삶과 교훈은 물론이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의미 자체가 무의미해질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왜곡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존재하지만 실상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상업화되고 도그마화된 교회에 우리의 신앙과 삶이 끊임없이 이용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주류 개신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열심히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그토록 비난하셨던 바리새적 패러다임의 교리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정작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조소와 멸시를 받고 있고, 지성인들로부터 외면당할 뿐 아니라, 장차 그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목사로서, 아니 그 이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가 진정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께서 하신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교회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한국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 한국 교회는 ‘배타적 구원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으며, 다른 종교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배타적 구원관을 갖고 있는 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와 세계에 끊임없는 갈등의 불씨를 퍼뜨릴 것이며, 공격적인 선교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언젠가는 이 땅, 작게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 넓게는 지구촌 전체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도록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타적인 구원관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열정과 필요에 의해 도입된 도그마(교리)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반드시 재해석되어야 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해 궁극적으로 계시해 주신 ‘사랑’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선포하셨던 참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못한 채, 수많은 갈등과 분열, 싸움을 양산해내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한국 교회는 이웃종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타종교, 특히 인류 역사가 인정하는 고등종교에 대해서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함께 길을 걷는 ‘길벗’으로,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종교’로 인식해야 하며,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웃종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독교라는 종교 시스템을 통해서만 당신을 계시하셨다는 생각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계시가 아니라,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기인한 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종교박물관’이라 칭할 정도로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종교인들 간의 마찰을 피하고 상생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이웃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연구를 통해, 이웃 종교를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존경하고 협력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어야 진정 우리 사회와 세계 역사에 공헌하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국교회는 공격적인 선교정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교리적이고 공격적인 선교정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나누는 화해의 선교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종교인을 대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회심시키며 기독교인이 되게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강요하지는 말 것이며,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웃종교의 가르침을 따라, 그 종교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종교인을 억지로 기독교인으로 개심시키려는 무모하고 공격적인 선교정책에서는 기필코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교정책에 의해 끊임없이 지구촌을 갈등상태로 몰고갈 수 있으며, 종교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식의 공격적인 선교정책은, 우주 만물을 다양하게 창조하시고 당신의 다양한 방식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다양성의 역사를 제한하고 파괴하며, 획일화시키는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슈바이쳐 박사나 테레사 수녀가 모범을 보인대로, 교리를 전하는 선교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화평을 전하고 나누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로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특히 개교회가 존재하는 그 동네에서 존경을 받으며, 그 동네에서부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한국 개교회는, 그 교회가 그 곳에 존재하는 일차적 이유가, 그 동네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임을 깨닫고, 그 동네 사람들의 전인적 행복과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건물은 지역사회의 문화와 복지를 위해 개방하여야 하며, 정부가 정책 차원에서 하지 못하는, 혹은 정부 정책에서 제외되는 부분에 대해, 특히 소외된 이웃을 실질적으로 돕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나눔 센타’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한국 교회는 한국사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한국사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분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는, 역사와 사회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현장임을 깨달아, 구약시대의 예언자들과 같이, 현 사회가 과연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피며, 옳지 못한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비인간화된 모든 현상에 대해 개혁을 외치며, 가야 할 길을 올바로 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 땅 모든 곳에 이루어지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의식 개혁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며,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물리적인 방해도 거부할 것이며, 저 또한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평화와 대화의 방법으로, ‘의식개혁’이라는 방법을 중심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지구촌 이웃들이 그 생각이나 사상과 관계없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기독교 교리 체계가 말하는 하나님 개념을 넘어선) 하느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기까지, 우리 한국 교회가 이 땅에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대승적 기독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평화와 상생의 길을 찾아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또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이 일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교계 어른들과 지인들, 선후배, 동료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구체화시키고 싶습니다. 또한 이미 이런 시각에서 걸음을 내디딘 앞선 사례들을 충분히 살펴보며, 서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끈기있게 추진해 가고 싶습니다.
이상 밝힌 내용은, 이 시점에서의 저의 신앙과 신학일 뿐이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또한 새로운 깨달음이 생길 때마다 기꺼이 수정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벗님들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벗님과 함께...!!
세즈웍님, 님은 님의 생각에 벗어나 있다 싶으면, 유대인이 쓰레기나 개와같이 사마리아人을 홀대 하듯 ... 마치 자신만이 민정을 판단하고 다스리던 사사처럼 혹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던 선지자처럼, 자신의 집념과 다른이들을 취급하시는데 ... 그것은 고쳐야 될 님의 성품 같습니다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생각, 종교적 관점이 다르다고해서..마치 하늘의 죄를 뒤집어 쓴 문둥병자 취급하는 자세, 그것은 기독사상과 전혀 같지않은 태도라는 것은 아시는지 ... 좀더 장성한 그리스쳔이 되시길 바랍니다 ... 그것 마져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면 세즈웍님이나 나로써도 별 수가 없긴 합니다마는...
세즈웍님의 말씀이 얼마나 이상한지 스스로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배타적인 행동을 하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더니 그럼 왜 당신은 나를 배타적으로 대하느냐 라고 따지는 양상입니다. 세즈웍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런 괴상한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지지는 않겠지요.
첫댓글 이글에도 비성서적인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십시오.
김은환님께서는 이글을 본인의 신앙과 같기에 올리신 것입니까?
예수께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문자로만 해석하고 계십니까?
"깨달음이 없는 민족은(종교는) 망-한 다" 라고 성경에도 기록 되어 있지요... 아 ~ 그래서 못된 유대놈들이 망했던것 아닙니까? ... 그래도 깨달은 것이 있어(?) ... 2000년이 지나 다시 세웠지만 ...
그들의 배타적 이기심(필요없을때는 가나안땅도 버리고, 필요하면 다시 빼앗고 ...)때문에 예수를 십가에 매달었듯이 이 세상을 죽일것이다.... 팔레스타인들은 한번도 그땅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자의적(自意的)으로도 말입니다.
세즈웍님, 님은 님의 생각에 벗어나 있다 싶으면, 유대인이 쓰레기나 개와같이 사마리아人을 홀대 하듯 ... 마치 자신만이 민정을 판단하고 다스리던 사사처럼 혹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던 선지자처럼, 자신의 집념과 다른이들을 취급하시는데 ... 그것은 고쳐야 될 님의 성품 같습니다
나는 류 목사에 대하여 잘은 모르지만 위의 그분의 생각에 많은 공감을 하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깨달은 것은 어디로 부터 온것인가요? 그것은 사탄으로 부터 온 것입니까? 세즈웍님의 깨달음만이 하늘로부터 옵니까?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생각, 종교적 관점이 다르다고해서..마치 하늘의 죄를 뒤집어 쓴 문둥병자 취급하는 자세, 그것은 기독사상과 전혀 같지않은 태도라는 것은 아시는지 ... 좀더 장성한 그리스쳔이 되시길 바랍니다 ... 그것 마져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면 세즈웍님이나 나로써도 별 수가 없긴 합니다마는...
세즈웍님의 말씀이 얼마나 이상한지 스스로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배타적인 행동을 하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더니 그럼 왜 당신은 나를 배타적으로 대하느냐 라고 따지는 양상입니다. 세즈웍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런 괴상한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지지는 않겠지요.
숭사리는 다원주의를 수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