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청년 장교 시절이나 장성이 되었을 때에도 예외일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베트남전쟁, 저 유명했던 맹호사단 초대 재구대대장(在求大隊長) 시절을 회상하여 본다.
1966년, 맹호6호작전이 계속되는 동안 베트남 중부 퀴논 북방 푸캇산 '죽음의계곡'에서 부하 장병과 함께 전투에서의 승리와 우리의 피해자를 줄이기 위한 기도를 했을 때, 나는 '남의 전쟁판인 베트남전에 참전한 불행한 현실' 과 '부하 장병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부하 장병의 안녕을 호소하자 전장은 온통 비통으로 가득 찼다.
나는 부하 장병에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 정글에서 잘 싸워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탈취해야 할 목표는 없다. 다만 군인정신 하나로 싸우자. 적병은 사살보다 포로로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 우방은 물론 세계인을 감동시켜서 우리 조국을 가난에서 구할 수 있다. 나라가 돈이 없어 새 무기를 살 수 없고 3류 군대로 여기 정글에 왔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1류 군대로 도약할 수 있다. 세계 모든나라 특히 북한군까지 자동화기로 교체됐는데 우리만이 지금 2차대전 당시의 구식 M1소총으로 싸우고 있지 않는가"고.
이역 만리 정글 속 전장에서 조국과 겨레의 핏줄에 감동이 점화되면서 대대장인 나와 800여 명의 부하 장병이 모두 울었다. 가난한 나라의 군대, 총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나라. 이런 조국을 위해 우리는 피를 흘려야 했다.
눈물로 뭉쳐진 재구대대는 그 작전에서 마침내 베트남전 최대의 전과를 기록하는 신화를 남겼다. 눈물로 감동한 부하 장병이 오로지 조국애와 사명감으로 싸워준 결과였다. 지금도 그 전투에서의 승첩을 증언하듯 내 거실 벽에 걸린 많은 무공훈장들. 그 훈장은 나와 부하 장병의 피와 눈물의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내 작품집이 새로 나올 때마다 하나의 자식을 또다시 맞는 기쁨으로 가슴엔 벅찬 눈물이 고인다. 아름다운 이야기, 정의, 사랑,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의 전우애 등 감성적인 사연에 접할 때, 영화나 TV를 보면서도 감동스러운 장면, 특히 정의가 불의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순간 곧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의미가 독특한 눈물은 바로 멋진 예술작품을 발견 할 때이다. 그것은 혼탁했던 영혼이 마치 투명한 수정체로 환생하는 느낌이다. 아니 스스로 가장 맑고 정결한 영혼이 되는 느낌이리라. 나는 인간이 별에 다가가는 순간이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사랑하는 일이며, 둘째는 예술세계에 탐닉하거나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는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홀로 성찰하여 진정으로 반성한 나머지 눈물짓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곧 별이며 꽃인 순간은 바로 이 세 가지 경우라 할 수 있다. 나는 언제고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미 그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뉘우치는 순간 벌써 별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그의 마음에 넘치고 있기에 울 수 있었다.
실지로 의학계에서는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건강에 매우 좋다는 임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태양 광선,오염된 대기, 인공조명과 컴퓨터 단말기, 혹은 콘텍트 렌즈 등 끊임없이 안구를 괴롭히는 요인들을 자연스럽게 해소 시키는 눈물은 메마른 눈에 수분을 공급하여 안구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가시적이며 임상적인 면만을 다룬 한정된 내용에 지나지않는다. 눈물은 정결하고 지순한 영혼만이 생성하여 내보낼 수 있는 투명한 수정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의 미학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진다.
내 생애의 많은 오류와 자만과 결핍이 눈물로써 정화될수 있다면 내 문학세계 특히 시문학이 후대에까지 편편이 살아 숨쉬리라.
흔히 군대는 무정하고 메마른 곳으로 인식된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질서만이 강조된다. 군인 세계는 눈물도 없고 사랑도 저만치먼것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실제 군대는 어느 집단 못지 않게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만일 사랑이 없는 군대라면 능률이 오를 리 없다. 결국 패배하는 군대가 된다.
나는 지휘관 시절 사랑으로 부하 장병을 보살피려고 노력했다. 사랑을 극대화 시킨 진실은 바로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부하 사랑을 표출 할때 그곳이 전장이라면 그 부하는 상관을 위해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다. 때로 전우애는 육친의 사랑보다 진하다. 그 전우애는 곧 조국을 수호하는 원천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나는 그 까닭으로 군 생활을 통해 문학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내 시문학에서 눈물과 사랑의 의미는 주로 군 시절 배우고 익힌 서정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프로필
*대전고 졸업. 정규 육사 입교 후 출향, 2012년 6월.60년 만에 귀향
*1959년 필명 韓史郞으로 시 등단, 1961년 韓史郞으로 소설 등단
*12.12군란 직후 정치군인과 결별, 육군준장 전역, 전업작가로 출발
*국제PEN, 한국문협, 한국소설가협,현대시협 각각 이사 역임
*21권의 시집, 32권의 장편소설을 비롯 총79권의 창작집 출간
*전쟁문학협회 회장,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상훈-대한민국전쟁문학상 시, 소설부문 수상을 비롯 총15회 수상
을지무공훈장,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비롯 총11회 수훈
첫댓글 많은 집필을 남기시고 화려한 이력을 지니신분이 누가있을가요. 존경하는 장군님.
과찬이지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