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싫어하는 마음이 쌓이면 자궁에 병이 생긴다. 몇 생을 그렇게 하면
암이 된다”고 <불설 삼세인과경>을 인용하여 연세대학교 김 모 이학박사가 말을 했다.
우리 몸에 생긴 병의 원인들을 정확하게 안다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함으로써 병으로부
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고. 그러나 나는 신문 어느 부분의 칼럼처럼, 굳어진 석고 쯤으로 읽곤
했었다.
1997년 늦은 가을날 우리나라는 IMF라는 불명예로운 국제적인 꼬리표를 달았다. 나라가 부도나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단어와 언어 앞에 어제와 오늘의 상황이 지옥과 극락의 갈림길에서 끝없
는 고통의 순간들로 한 번에 다가왔다. 임인생 호랑이, 세상이라는 정글의 숲에서 생명을 유지시
키는 방법은 오로지 표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경남 창녕에서 군내 최초의 외국전문어학원을 개원하여 원만하게 운영이 이루어졌다. IMF가 터
져버리자 영어권 외국인 강사 3인이 밤사이 야반도주해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신들의 나라
에선 주유소 총잡이만 들어도 한국에서의 수입보다는 괜찮다는 메모만 남긴 채.
어학원은 규모를 늘린 상황이라 경영 압박이 가슴을 크게 짓눌렀다. 급기야 한시 바삐 어학원을
정리하는 것이 부채로부터 벗어나는 길인지라, 다른 외국인을 포함해 원가 절하로 매도하려고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여기는 대도시도 아니고 전문 어학원이 경쟁할 상대도 없는 처녀지
였기에. 어학 전공자 또는 경영을 해본 사람 찾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금전에 시달리면서 잠
자기 전 머리맡에 두고 <금강경> 한 편을 천천히 경전공부하듯 독송을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 그
자체로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오로지 한마음 안정시키기 위한 <금강경> 독송은 살아서 의식 속
에 빛나는 보석이 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찰 화왕산 관룡사에
갔다.
저녁예불과 관음기도를 하기 위하여 영산에서 30분 거리를 기도의 가피력이 있을때까지 하리라
마음을 크게 가졌다. 다른 방도가 나에겐 없었다. 공장 부도 나지 말라고 은행 신용보증하여 준
것이, 오빠의 44억 공장부도와 함께 고스란히 나에게 크나큰 짐으로 남았다.
잠 못 이루는 밤. 오로지 <금강경>에 의지하고 관음기도에 희망과 목숨을 걸었다. 집안의 몰락이
밀물과 썰물 교차하듯이 그렇게 깨끗하게 밀려나가는 것이 훤히 보였다. 관룡사 기도는 한달을
넘기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참기 힘든 순간순간의 하루 뿐. 관룡사에는 법당 내 상당 뒤편에 백
의관음벽화가 있었다. 관음기도를 하고 마칠 때는 뒤편 백의관음벽화를 향해 삼배를 올리고 법
당을 나왔다.
두 달이 다 지나갈 무렵, 여느 때처럼 저녁예불이 끝나고 홀로 남은 법당 찬바람에 두 손을 비비
고 떨며, 3천 주력과 참회의 절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절하고 있는데 법당 뒤쪽에서 키가 작은 비구니 스님이 다가와 물었다.
어학원을 얼마에 넘기려고 하느냐. 2장은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참을 바라보시는 비구니
스님은 말없이 법당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들짝 깨어보니 아침시간이었다. ‘아, 꿈이었구나. 온종일 꿈속에서 본 비구니 스님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스님과의 대화는 무슨 의미일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시간이 오래갈 것
이라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한달한달 은행 결제일에 어학원이 부도나지 않게 하는 살얼음판을
걸으며 차츰차츰 지쳐가고 있었다. 영어권 외국인 강사 한 명과 더불어 학교출강 수업과 원내수
업만 하면서 가능한 출강을 줄이고 모든 것을 정리하는 체제로 돌입했다. 그렇게 오빠 부도에 따
른 보증금에 대한 이자와 전세보증금을 손상시키는 어려운 경영난에 힘겨운 IMF와 씨름하며 보
냈다.
겨울의 얼음보다 더 춥고 엄청난 금전의 허리케인 앞에 한 목숨 턱걸이하면서 오로지 <금강경>
독송과 발원기도는 나의 신선한 공기였고 안식처였다.
98년 봄, 4월 9일. 산다는 것에 아픔, 슬픔, 고통을 통감하면서 어느 날처럼 하루업무를 정리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리라”는 절절한 심정으로 침실로 향했다. 어학원 건물 안에
조그마한 원룸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숙식을 하던 차였다.
평소처럼 <금강경>독송을 끝내고 누우면 바로 아침이었는데, 그날은 새벽 3시 30분 경 느낌에
이불 위에 소변을 보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소변이 아니었다. 하염없는 하혈을
하는 것이었다. 원룸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보곤 했었는데,
핏덩어리와 함께 끊임없이 뿜어나오는 하혈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으나 전화기를 어렵게 찾아 창원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어지러
움은 온몸을 마비시키고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플라스틱으로 된 큰 세수대야가 하혈로 가득찼
다. 119도 생각나질 않았고 연락받은 부모님은 너무 놀라 구마고속으로 올라와야 할 것을 남해고
속으로 올라와 뒤늦게야 도착했다. 모친이 방안에 가득한 하혈에 놀라워하는 동안 아버지는 119
구급대를 부르고 방안의 하혈자국과 하혈의 대야를 깨끗이 치우고 계셨다.
5시경 마산 파티마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응급조치를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하혈은 계속 되
었고 꼬박 하루가 지났다. 의식은 선명했으나 의식과 상관없이 어느 곳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
었다. 누군가 옆에서 일으켜 주지 않으면 그대로 꿈꾸는 식물처럼 부동자세로 누워있어야만 했
다.
원인을 알기 위해 아침부터 여기저기를 검사하고 나섰다. 자궁 내시경을 했더니 자궁내막에 근
육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막에 근육종양이 혈관 핏줄에 닿았기에 그것이 터졌고
그 터진 핏줄이 심각한 출혈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치료만 한다면 언젠가 또 반복된 하혈이 언제 어디서 터져버릴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
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출혈과다로 생명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간단명료한 설명을 가족과 본
인에게 해주는 것이었다. 담당 주치의는 자궁 추출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