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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11장은 1~10절, 11~32절, 33~36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1)
이스라엘의 배제는 전적인 배제가 아닙니다.2)
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거절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로마서 11장 1~2절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거절하셨느냐 아니라, 이유는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며 베냐민 지파 아브라함의 씨에서임이라.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그의 백성을 그가 거절하지 아니하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거절하셨느냐고 물은 후 아니라고 말합니다. 파울도 이스라엘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씨에서인 사람입니다(롬 11:1). 베냐민 지파의(of the tribe of Benjamin) 사람입니다.
여기 “거절하다”라는 단어(아포데오)는 밀어제친다는 뜻이며 영어 성경은 거절한다(reject)나 버리다(cast away) 등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거절하지 않으신 증거가 파울 자신입니다.3) 파울은 이스라엘의 자손인데도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유다와 함께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충실하였던 반면에, 나머지 열 지파는 아시리아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4)
하나님께서 예지하신 그의 백성을 거절하지 아니하셨습니다(롬 11:2). 그가 그의 백성을 버려두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반영합니다(시 94:14).
시편 94편 14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상속을 내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장의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에 관하여 논증하는 것입니다.5)
“엘리야 안에 무엇을 그 성경이 말하는지 알지 못하냐”라고 묻습니다. “어떻게 그가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해서 청원하는지”입니다.
로마서 11장 3절에 “주여 당신의 예언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당신의 제단들을 그들이 부수었고(tear down), 나만 홀로 남았고, 그들이 나의 영혼을 찾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답이 “바알의 무릎을 꿇지 아니한 남자들을 7천을 남겼노라”라고 하셨습니다(롬 11:4).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홀로 남겨지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기셨습니다(왕상 19:18).
로마서 11장 5~6절에 “은혜의 선택함에 따라서 나머지가 생겨났노라. 만일 은혜에 의해(by) 그러한 것이라면 이제는 행위들에서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이제는 은혜가 되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4절의 “남기다”의 동족 언어입니다.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전적으로 거절하시지 아니하셨고, 아무리 악한 시대라도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가 생긴 것은 은혜의 선택에 따라서입니다(롬 11:5). 은혜에 의해 특징져지는(characterize) 은혜로운 선택 때문입니다.
만일 은혜에 의해 그런 것이면 이제는 행위들에서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이제는 은혜가 되지 아니합니다(롬 11:6).
그러나 우리는 현대의 서구 문화에 의해 이해되는 은혜의 개념이 아닌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의 은혜의 개념을 살펴야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은혜는 주는 자에게는 선물이나 받는 자에게는 보답할 의무가 생깁니다. 그렇지 못할 때 지중해 문화권에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찍히게 됩니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이런 개념이 “결초보은”에 엿보입니다. 풀을 묶어 적을 넘어뜨려서라도 보은하여야 하는 것이 은혜 개념입니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도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여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값없이 옳다고 칭함을 받게 됩니다(롬 3:24). 행위들에서 아닌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생겼습니다(롬 11:5~6). 은혜를 받을 때는 행위들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은혜에 걸맞은 행위들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소급하여 빚을 갚을 의무가 적용됩니다(마 18:34~35). 참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행위들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증명됩니다.
복음에 칭의만 있고 성화는 없다고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고백한 까닭에 구원받았다고 여기는 오해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야고보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화가 없는 반쪽짜리의 복음은 부족한 복음이 아니라 가짜 복음입니다. 성화가 없는 가짜 복음을 믿고서도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을 받는 믿음은 행위를 산출하고 행위를 통해 증명되는 믿음입니다.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에 행위가 산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2. 그 선택이 추구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11장 7절에 “그 선택(election)이 추구하는 것을 얻었으나, 그 다른 자들은 굳어졌노라(be hardened).”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장 7~10절에서 로마서 9~11장의 선택 교리를 요약하였는데 원어에 보면 “그 선택된 자(elect)”가 얻었다고 기록하지 아니하였고 “그 선택(election)”이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선택된 자에게 강조점이 있지 아니하고 선택 자체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선택된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선택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개역 성경에 “남은 자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로이포스)는 앞에 5절에 나온 “남은 자”라는 단어(레임마)와 구별하기 위해서 “남은 자들(rest)”보다 “다른 자들”로 번역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루카복음 8장 10절과 루카복음 12장 26절에서 “다른”이라고 번역되었고 “남은 자”가 긍정적 뜻이나 “다른 자”는 부정적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선택되지 아니한 자들은 추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굳어졌습니다. 그들이 굳어진 것은 ‘심판’에 의한 것입니다.7)
그런즉 그런 까닭에 그가 원하시는 자를 그가 자비를 베푸시나, 그가 원하시는 자를(whom) 그가 굳히십니다(롬 9:18).
형성된 것이 형성한 자에게 ‘왜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 항변의 질문을 말하지 못합니다(롬 9:20).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무엇을 만들 것이냐’는 토기장이에게 달렸으며, 하나님께서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만드실 주권과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롬 9:21).
그리고 그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으니 이사야가 말하였기를 “들음에(By hearing) 너희가 들을 것이고 깨닫지 못하고 보는 너희가 볼 것이고 너희가 지각하지(perceive) 못하였으니. 이는 이 백성의 마음이 두껍게 함을 받고 귀는 무겁게 듣고 눈은 감으니 그들이 그 눈에 보고 그 귀에 듣고 그 마음에 깨달았고 그들이 돌이켰고 내가 고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마 13:14~15).
로마서 11장 8절에 “무감각의 영(spirit)과 못 보는 눈과 못 듣는 귀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늘날까지 주셨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무감각의 영(a spirit of stupor)”(카타뉙시스)은 “깊은 잠(deep sleep)”을 의미하는 히브리어(타르데마)를 번역하였습니다.
이사야 29장 9~10절에 “너희는 지체하고 몹시 놀라라 너희는 눈멀라, 그들이 술 취하였고 포도주가 아니며 그들이 비틀거렸고 독주가 아니니. 야훼께서 너희에게 깊은 잠의 영(spirit)을 부으셨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경고하셨음에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눈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앞 장에서는 그들이 포도주에 취하고 독주에 비틀거렸다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그들이 취한 것이 포도주가 아니고 독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취하면 진실을 똑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사 29:9).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 깊은 잠의 영(spirit)을 부으셨고 그 눈인 예언자를 감기셨으며 그 머리인 선견자를 덮으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9장 2~4절에 “야훼께서 모든 그 땅에 행하신 일을 보았으니. 너희의 눈이 본 그 큰 시험들이니, 즉 그 큰 표적들과 기적들이고. 그가 너희에게 아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주지 아니하셨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6장 9절에 “너희가 듣기에 들을 것이고 분별하지 못할 것이고, 너희가 보기에 보고 알지 못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장 9~10절에 “그 식탁이 올무와 덫과 함정과 보복으로 되며. 그들의 눈은 어둡게 되고 그들의 등을 언제나 함께 구부려 주소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69편 22절에 “그들의 식탁이 그들 앞에 새 덫에 될 것이고 평화(welfare)들에 올가미(trap)에 될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69편 23절에 “그들의 눈은 보는 것에서 어두워지고, 그들의 허리는 계속 흔들리게 하소서(May).”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69편은 저주 시편(Imprecatory Psalms) 중의 하나입니다.8) 저주의 시편들에 언급되는 말들은 절대로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9) 다윗은 장래의 사건을 바라보며 예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0)
3. 이스라엘은 비틀거렸으나 넘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로마서 11장 11~12절에 “그들이 떨어지기 위해 비틀거리지 않았으나, 그들의 범죄에 구원이 그 이방인들에게 그들을 시샘하게 하기 위해서라. 만일 그 범죄가 세상의 부유함이고 그 실패가 이방인들의 부유함이라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 얼마나( 더 부유함일 것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비틀거림”은 크리스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절입니다.11)
신명기 32장 21절에 “그들이 신(神)이 아닌 것에 나를 질투하게 하며 그들이 그들의 헛됨으로 나를 성나게 하였고,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겠으며 나도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성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 범죄가 세상의 부유함이고 그 실패가 이방인들의 부유함이면, 그들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욱 부유함일 것이냐고 질문합니다(롬 11:12).
이스라엘의 실패(loss)가 이방인들의 이익이 되었습니다.12) 이스라엘의 실패(failure)는 그들의 소수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13)
그런데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방인들의 부유함이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은 얼마나 이방인들의 부유함일 것이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충만(fullness)”이라고 번역한 헬라어(플레로마)는 “충분한 분량”(full measure), “완전”(completeness)을 표시합니다. “충만”은 질적 의미로 “성취”(fulfillment), “완전”으로 이해되며 양적 의미로 “충분한 숫자”(full number)로 이해됩니다.14)
질적 의미로, 이스라엘의 “실패”의 반의어인 “완성”을 언급합니다.15)
양적 의미로, 파울의 언급은 유대인들의 “충분한 숫자”일 것입니다.16)
만일 그들의 소수가 복음을 믿는 것이 이방인들의 부유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이방인들에 끼치는 부유함은 얼마나 클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교회로 들어오면 더 부유함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들의 충만함이 이방인들에 복음의 복을 더 크게 누리게 합니다.17) 그들의 충만은 세상과 이방인들에게 큰 부유함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그들의 다수가 복음을 믿는 것으로 이방인들은 큰 복이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3~15절에 “그러나 너희에게 내가 이방인들에게 말하니, 확실히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인 만큼에서 나의 직무를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나의 육체를 시샘하게 하고 그들에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겠으니.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의 거절이 세상의 화해(reconciliation)면 그 받아들임이 만일 죽은 자들에서부터 생명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로마 교회에 속한 사람 대부분이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롬 11:13).18) 그러므로 파울은 이방인들을 “너희”라고 부르며 이방인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파울은 유대인들이 아닌 그 이방인들 너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파울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의” 사도인 것을 강조합니다.
파울은 자기 직무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기 직무에 열심히 종사한다는 뜻입니다.19)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그는 압니다.2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 파울을 보내신 것입니다.21) 파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라는 그의 직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11장 13~14절에 이방인들을 위한 파울의 사역이 언급됩니다.22) 그는 자기 육체를 시샘하게 하고 어떤 자를 구원할 것입니다(롬 11:14).
13절 뒤에 쉼표를 찍는 헬라어 역본보다는 마침표를 찍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13절과 14절의 문장은 연결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번역들은 주로 13절과 14절을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여 13절 뒤에 문장부호를 생략하거나 쉼표를 찍습니다.23)
소수의 번역본만이 콜론을 찍어서 13절과 14절을 구별합니다. 파울이 그의 직무를 영화롭게 하는 일은 이방인들의 사도와 관련됩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에서 어떤 자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이유는 만일 그들의 거절이 세상의 화해면 그 받아들임은 죽은 자들에서부터 생명입니다(롬 11:15).
15절은 12절과 교차 대구법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24)
“만일 그 범죄가 세상의 부유함이고 그 실패가 이방인들의 부유함이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 얼마나 더 그러냐?”라고 하였습니다(롬 11:12).
12절의 “충만”과 15절의 “받아들임”이 병행되며, “세상”이 언급됩니다. 두 구절은 모두 유대인들의 회심 때문에 더 큰 복이 올 것을 내다봅니다.
파울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질투하게 하여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유대인들의 구원으로 이방인들에게 더 큰 복이 도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가 이방인들의 사도가 된 궁극적인 이유는 이방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에서부터 생명”은 온 세상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부흥’입니다.
1)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671.
2)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22.
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73.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25.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29.
6) James D. G. Dunn, 『로마서 9-16』, WBC 성경주석 38하, 김철·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05), 231.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64.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78.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83.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85.
11)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86.
1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88.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109.
14)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89.
15)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89.
1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89.
17) John Murray, 『로마서 주석』, 아바서원 번역팀 역 (서울: 아바서원, 2014), 556.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129.
19) Murray, 『로마서 주석』, 556, n. 24.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131.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1』, 133.
22) 최종상, 『이방인의 사도가 쓴 로마서』 (서울: 아가페, 2003), 282.
23) 최종상, 『이방인의 사도가 쓴 로마서』, 283, n. 215.
24) 최종상, 『이방인의 사도가 쓴 로마서』, 282.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그러나 언덕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여유롭고 평화롭습니다..
내게 미움이 다가 왔을때 미움 안으로 몸을 담그지 마십시오..
내게 걱정이 다가왔을 때 긴 한숨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미움과 걱정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미움 걱정 떨쳐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