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65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30편 명궁 화영 30-1
송강은 그 후 연순의 무리들과 헤어져 화영을 찾아 나섰다.
청풍진(淸風鎭)의 관아는 남쪽에 문관 유지채가 있고, 북쪽에는 무관 화지채가 있다.
송강은 북채(北寨)로 가서 파수병에게 이름을 전했다.잠시 후 머리에 띠를 쓰고,
전투복을 입고, 옥대를 차고 가죽신을 신은 소년 장군이 급히 달려 나왔다.
그가 곧 활을 한 번 당기면 백보 밖에서도 버들잎을 쏘아 맞힌다는 청풍채의 무관 지채
소이광 화영(花榮)이었다.화영은 송강을 만나자 청사에서 머리를 네 번 숙여 절했다.
“형님, 못 뵈온 지도 벌써 5~6년이 됩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소문에는 형님이 계집 하나를 죽이고 피신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관가에서도 체포령이 내렸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모시고 싶어서 계속 십여 통의
편지를 썼는데 받아 보셨는지요?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송강이 화영에게 염파석을 죽인 후 자기가 겪은 일들을 낱낱이 얘기했다.
화영은 송강을 후당으로 청하여 부인 최씨와 누이를 불러 인사시켰다.
송강은 좋은 물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화영과 술을 마셨다.
술이 얼큰하게 취했을 때 송강은 자기가 청풍산에 머물러 있을 때 청풍채의 부인을
살려보낸 이야기를 해주었다.그러나 화영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형님, 그런 계집은 구해주실 것까지 없었습니다.”송강은 뜻밖의 말에 놀랐다.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자네 동료의 부인이라기에 애써
구해 준 것인데 왜 그런 말을 하는가?”“형님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무관이어서 부관이고, 유고란 놈은 문관이라 정관인데, 그놈이 늘 저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그쯤은 참을 수 있습니다만, 놈은 부임한 이래 법도를
어길 뿐만 아니라 백성을 해치고 재물만 탐내어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그 계집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습니다. 나쁜 년, 산채에서 혼 좀
나야 하는 건데 형님을 만나서 운좋게 살아났군.”송강은 좋은 말로 화영을 위로했다.
“예부터 원수는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가 유고란 자와 동료인 이상 설혹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악한 것은
감추어 주고, 착한 것은 드러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부디 사람들과 원수를 맺지 말고 좋게 지내기를 바라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어서 술이나 드십시다.”
그로부터 송강은 며칠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온종일 집안에 들어앉아 있었다.
간혹 화영의 권유대로 수행인과 함께 청풍진 거리로 나가 시내의 번화가와 촌락이며
사원들을 두루 구경하면서 주막이나 찻집에 들러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그가 청풍산에 온 지도 그럭저럭 한 달이 넘어 해가 바뀌면서 원소절이라는 명절을
맞게 되었다.물론 동경성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청풍진의 원소절도 제법 커서
집집마다 문에 등불을 달았고,특히 토지대왕묘(土地大王廟) 앞에는 소오산(小鰲山)
한구석을 쌓아 올린 듯 갖가지 꽃들이 찬란하고,6~7백 여 개의 꽃들이 불꽃처럼
휘황하게 밝았으며, 중심 번화가는 온갖 기예와 재주꾼들이 몰려들어
굿판을 벌이는 바람에 사람들이 들끓었다.그날 화영은 수백 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각처를 경계하며 채문을 지키느라 바빠서 송강만 하인 두어 명을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날씨가 맑고 하늘에는 큰 달이 유난히 밝았다.성내는 수천 만 개의 꽃들 속에 묻혀 있었다.
송강은 소오산을 구경한 후 발길을 돌려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쯤 가다보니 어느 큰 담장 모퉁이에 밝은 등불이 켜 있고, 거기에는 한떼의
사람들이 삥 둘러 서 있었다.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누군가 포로무(鮑老舞)를 추고 있었는데 인기가 그만이었다.
- 66회에 계속 -